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0
100
로한이 의외로 창던지기에 관심을 보이자, 심주한은 작게 속삭였다.
‘오, 형님. 좋은 기회 아닙니까?’
‘후후후… 드디어!’
단순히 친해질 기회가 생겨서가 아니었다.
보통 체육인끼리 모이면 알게 모르게 서열 정리가 이루어진다.
한국이다보니 나이와 경력이 크게 인정을 받긴 하지만, 체육계는 어쨌든 기록으로 순위를 매기는 약육강식의 사회.
체육인의 존중을 받기 위해선 나이나 선배임을 들먹이는 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종목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로한은 진천선수촌 전체의 존중을 받고 있었고, 만약 그런 상대에게 황인철이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앞으로 육상 선수들이 더 뭉치기 쉬울 거라는 단순 계산이 있었다.
‘얘는 단거리 달리기… 장애물 달리기… 미식축구… 농구?? 아 그리고 복싱도 있었지. 어쨌든 자신이 속한 분야에 압도적인 분야를 보여주지만, 창던지기라면 다르지.’
황인철의 개인 최고 기록은 85.5m, 즉 한국 신기록 보유자였다.
전국 대회는 물론 아시안 게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최소 동메달, 어쩌면 그 이상을 노려볼 수 있는 엘리트 체육인이었다.
“창던지기 해본 적 있나?”
옆에서 김민선 아나운서가 번역을 해주었고, 로한은 고개를 한 번 저을 뿐이었다.
“이 창던지기가 얼마나 대단한 종목이냐면, 무려 고대 올림픽의 5종 경기 중 하나였으며…”
로한은 빨리 본론으로 넘어가라는 듯, 손짓을 했다.
“크흠. 하긴, 올림피언이니 그런 정통성에 대해선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 거겠지. 일단 내가 한 번 시범을 보여줄게.”
처음부터 기본기를 차근차근 알려줄 수도 있었지만… 체육인의 집중력을 끌어올리기엔 실력행사만큼 확실한 게 없다.
“……”
창을 들자, 황인철은 사뭇 진지해졌다.
도움닫기를 하며 안정적인 자세로 속도를 올렸고, 운동 에너지를 한 점에 모으듯 온몸을 날리며 창을 휙 – 던졌다.
문외한이 봐도 감탄이 나오는 깔끔한 무브먼트.
[85m]실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투창 거리를 자랑했다.
황인철은 애써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는데, 그래도 시범으론 나쁘지 않았지?”
“와… 형님 무슨 85m를 숨쉬듯 자연스럽게… 진짜 이번 올림픽에서 일 내는 거 아닙니까? 1, 2등이 살짝만 삐끗해도… 메달 색이 바뀌겠는데요? 그 번역사님, 제 말도 꼭 전해주세요.”
심주한이 힘을 실어주듯 호들갑을 떤 효과가 있었는지, 황인철을 바라보는 로한의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일단 창을 하나 잡아보지. 내가 간단한 원리부터 알려줄게.”
황인철은 로한에게 어울리는 그립, 도움닫기 요령, 투창 각도등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나중에 지도자로 전향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교육은 직관적이면서도 깊이가 있었다.
‘번역을 통해서 얼마나 알아들을진 모르겠지만… 운동 신경이 상당한 편이니 기본은 하겠지.’
“직접 해보면 더 쉽게 요령을 익힐 거야. 일단 도움닫기 없이, 자세에 신경을 쓰면서 가까운 곳에 던져보자. 자세가 익숙해지면 점점 더 힘을 줘서 던지는 식으로. …입촌기간이 끝날쯤이면 풀로 투창을 시도할만큼의 감각이 생길 거야.”
황인철의 시범은 무척 단순해보이지만, 사실 투창은 굉장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종목이었다.
2.6~2.7m의 길이, 800g의 무게.
그런 창을 들고 도움닫기를 한 후, 최대한 많은 힘을 실은 채 정확한 각도로 던지는 역동적인 과정에서 프로들도 종종 실수하곤 한다.
그래서 보통 대회에서 6번가량의 기회 중 최고 기록을 보는 것.
황인철은 의외로 기본기를 빠르게 습득하는 로한을 보며 감탄했다.
“확실히 젊은 애들은 뭘 해도 빨라. 그럼 내가 봐줄 테니까 일단 가볍게 한 번 던져 볼…?”
분명 김민선 아나운서가 제대로 통역을 하는 것 같았는데, 로한은 황인철의 제안대로 제자리에서 투창을 해볼 생각이 없어보였다.
대신 자신이 보여주었던 시범 때처럼 도움닫기를 하기 위해 투창 운동장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어… 그게… Rohan?”
평소 사무적이기만 했던 김민선 아나운서가 다 당황해서 그를 부르려고 했지만, 황인철이 피식 웃으며 제지했다.
“그냥 두시죠. 원래 체육인들이 좀 그렇습니다. 조금만 배워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바로 적용해보고 싶어 해요. 깨지면서 스스로 깨닫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에요.”
“아… 네.”
다만 창던지기는 크게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황인철은 로한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그때였다.
팍 파박 – !
로한이 창을 뒤고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어? 저렇게까지 빨리 뛰면 오히려 악영향을 주는데?’
역시 단거리 달리기 주자여서 몇 걸음 떼자마자 폭발적인 가속도가 붙었다.
문제는 창던지기의 도움닫기는 ‘적당한’ 속력이 중요하다는 것.
도움닫기 내내 창을 흔들림 없이 운반해야 하고, 완벽한 타이밍에 정확한 투창 자세를 잡아야 하며,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투창 무브먼트가 필수.
빠른 달리기가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지나치면 힘을 얻는 대신 정교함을 잃게 된다.
아무리 세게 던져봐야 투창 각도가 너무 높거나 낮아도 안 되고, 릴리즈가 거칠면 창이 흔들려서 얼마 날아가지도 않는다.
‘어??’
그런데 로한은 전력으로 질주하는 듯 보이면서도 들고 있는 창에 흔들림이 없었다.
순식간에 투창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긴 팔을 이용해 새총을 당기듯 창을 쭉 뒤로 당겼으며, 벼락처럼 힘껏 창을 던졌다.
‘저렇게 동작이 깔끔하다고?’
아는만큼 보인다고, 황인철은 로한의 투창을 보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휘이이이익 –
바람 가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잠깐… 이게… 아닌데???’
*
‘저 사람, 상당한 실력자다.’
나는 황인철을 처음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투창이 내 심상 세계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잠깐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심상 세계가 열리고, 그의 투창이 뇌리에 각인 되어 몇 번이나 무브먼트나 궤적을 곱씹어보게 했다.
“한 번 해볼래?”
그래서 가르쳐준다고 할 때 기꺼이 받아들였다.
내가 언제 국대의 실력자에게서 기술을 전수 받을 기회가 있겠어.
나는 심상 세계에 황인철을 초대해, 몇 번이나 그의 투창을 다시 재생해보곤 했다.
현실의 그가 가르쳐주는 기본기를 빠르게 습득하며, 내가 직접 시뮬레이션을 해보기도 했다.
황인철의 [투창]을 나의 신체 조건에 맞춰서 최적화하기에는 심상 세계만한 곳이 없었다.
잠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정교하게 영점을 맞췄다.
‘내가 느끼기에 투창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달리면서 축적한 운동 에너지를 추진제로 불태워서 강한 어깨의 힘으로 던지는 것.’
다행히 나에겐 올림픽에서 경쟁할만한 빠른 두 다리가 있었고, 미식축구의 롱패스와 복싱의 하드 펀치가 가능한 어깨가 있었다.
나는 심상 세계에서 내 신체적인 조건을 고려해 도움닫기서부터 투창까지 최대한 자연스러운 무브먼트를 고안했다.
‘일단 좀 해보면 감이 잡히겠지.’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바로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그냥 달리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고대의 전쟁에 투입된 느낌. 박자감 있게 뛰면서 창을 운반했다.
심상 세계에서의 시뮬레이션은 현실의 체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내 몸을 마치 투석기처럼 운용하며 온 힘을 창에 집중해 힘껏 던져버렸다.
휘이이이익 – !
나를 비롯해 운동장의 모든 선수가 침을 삼키며 창의 포물선을 지켜봤다.
쭉쭉 뻗어나가는 창의 모습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투창의 매력에 빠질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
툭 –
창은 정확하게 땅에 꽂혔다.
[86m]*
황인철은 직접 거리를 확인했다.
“……”
자신의 신기록보다 무려 50cm가 더 멀다.
그동안 무슨 짓을 해도 깰 수 없었던 86m의 벽을 로한은 아주 우습게 뛰어넘어버렸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차라리 몰래 카메라였으면 덜 답답하겠다.
원래 투창을 잘하는 친군데, 자신을 골려 먹으려고 못하는 척 배운다는 클리셰 중 클리셰라면 이 사태가 이해라도 되지.
“……”
하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몰래 카메라라며 유명 MC나 유튜버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자신만큼 놀란 다른 국가 대표들.
그 모두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으며, 투창 거리에 만족하는 로한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로한은 고맙다는 인사인지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 어어… 그래.”
얼떨결에 인사만 받아주고, 도대체 어떤 말을 해줘야 하는지 곤란하기 짝이 없는 상황.
다행히 누군가 어색한 정적을 깨주었다.
“어이, 거기 잠깐!”
운동장 건너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창던지기 코치가 부리나케 뛰어온 것이다.
“또 던질 수 있나?”
저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진지한 코치의 표정. 황인철은 그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아주 제대로 꽂혔다.’
로한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또 한 번 역동적인 투창을 선보였다.
내심 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으나…
[86.5m]아직 감을 잡는 중이었는지 기록이 오히려 좋아졌다.
3번째 시도는 [86.9m].
충격의 도가니였다.
‘아직도 한계가 아니란 말인가…?’
창던지기 코치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로한 선수.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지금 국가의 명예를 어깨에 지고 있는데,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내가 급히 처리할 일이 있으니… 내일 다시 이야기함세.”
로한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개인 훈련에 집중했지만… 황인철은 하루종일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의 불안감은 현실로 드러났다.
“저 친구가… 창던지기에도 참가한다고요?? 이렇게 갑자기요??”
코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올림픽위원회에서 힘을 좀 썼지. 각 지역 위원회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국대를 뽑을 수 있는 와일드 카드가 주어지거든. 물론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공식적인 승인이 있어야 하지만… 그 양반들이야 로한 선수가 참가만 해준다면 감사한 입장이지.”
“아, 그렇습니까.”
황인철의 표정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현재 동메달도 간당간당한 처지에 강력한 경쟁자를 자기의 손으로 추가시켰다.
그런 자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치는 아쉽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원반던지기나, 포환던지기도 일찌감치 다른 대회에 참가시켜서 검증을 받는 건데… 분명 저 정도 피지컬이면 아시아권 신기록은 먹고 들어가지 않겠냐?”
급하게 추가 등록할 수 있는 종목은 하필이면 창던지기가 마지막이었던 모양.
어이가 없었다. 육상팀을 단합시켜보려던 자신의 노력이 발등을 찍었다.
“…너무 기죽지 마. 스포츠계가 냉혹한 건 네가 가장 잘 알잖아. 게다가 실전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끝까지 최선을 다 하고. 알겠어?”
“넵.”
대답은 잘 했지만… 이후 영혼이 쏙 빠져나간 사람처럼, 훈련이면 훈련, 사람 관계면 관계에 집중하지 못하던 황인철.
‘그냥 때려칠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느니, 다른 선수들을 위해서라도 퇴촌을 고민하는 나날이었다.
“뭐야? 갑자기.”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로한이 김민선 아나운서와 함께 먼저 찾아왔다.
“그… 황인철 선수. 창던지기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괜찮으면 여기 로한 선수가 깨달은 몇 가지를 나눠주고 싶다고 하네요.”
“예?”
처음에는 갑자기 자기를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아서 언짢았지만, 생각해보니 나쁠 건 없었다.
어쨌든 그는 세계적인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 다른 종목의 스포츠라도 한 길을 깊게 파면 다른 분야에 대한 통찰 또한 좋아지기 마련이다.
특히 로한이 워낙 진지해서 황인철도 덩달아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매일 밤 창던지기 운동장에서 만났고…
“……!”
황인철은 빠르게 평상시의 분위기를 되찾은 것도 모자라,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밝아졌다.
*
2024년 7월 20일.
대한민국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들은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파리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나는 창문 밖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내가 올림픽이라니…’
전 세계 최고의 운동 선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축제의 현장.
과거에 내가 가장 동경하던 무대를 직접 밟게 된다고 생각하니, 평소보다 더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
하지만 그만큼 흥분이 됐다.
열심히 준비한만큼 얼른 경기를 치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내가 이번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는 건 정확하게 11종목.
‘모두 금메달을 따긴 어렵겠지만… 최선을 다해 후회를 남기지 말자.’
나는 각오를 다지며 파리 땅을 밟았다.
일주일간의 현지 적응 훈련이 끝나고, 드디어 기다리던 올림픽 개막식.
“……”
전 세계를 충격으로 빠뜨린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서막이 열렸다.
미국 피지컬 천재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