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2
102
– 지금… 올림픽 예선 단계에서 이렇게 많은 시청자가 몰린다고?
로한은 굉장히 논란이 되는 WBC 헤비급 챔피언이었지만, 그의 화제성만큼은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의 라이브 경기를 보려면 최소 PPV $99불(=13만원)은 줘야 하는데, 올림픽은 무료로 스트리밍되자 미국에선 아침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수십만여 명의 시청자가 몰렸다.
– 추하다. 명색이 챔피언이라는 놈이 아마추어 무대로 내려가냐.
– 올림픽이 어디 평범한 아마추어 무대냐. 프로도 참가 가능해지면서 명성에 굶주린 실력파 복서들이 몰린지 오래야.
– 쟨 그냥 분탕이야. 올림픽 복싱을 봤어야 알지. 잘 다듬어진 프로 경기랑 완전 공기가 달라. 여긴 정글이라고.
– 의외긴 하다. 보통 챔피언쯤 되면 몸 사리면서 쉽고 돈 되는 경기만 골라서 뛰는데… 제 발로 도마 위에 오르다니.
– 3라운드라지만, 올림픽 경기는 훨씬 페이스가 빠르고 과격한 편이라 다양한 난관에 부딪히게 될 거야. 과연 로한이 챔피언으로써의 자질이 있는지 볼 수 있겠지.
[차머스 vs 로한]의 타이틀매치는 2023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시청한 복싱 경기였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복싱판 안에서의 이야기다.차머스와 로한의 팬이 대부분이었지… 대중은 소셜에 떠돌아다니는 유명 짤을 본 게 전부.
그러니 오늘의 올림픽 복싱 16강, [무자파르 vs 로한]은 올림픽 특수로 몰린 이들, 그리고 로한의 이적 사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으로 보는 로한의 정식 매치였다.
– 와, 뽑기운도 참 없지. 첫판부터 무자파르가 걸리네. 강력한 금메달 후보잖아.
– 로한은 말만 챔피언이지, 겨우 1전밖에 안 치른 신인이라면, 무자파르는 벌써 12전 12승의 검증된 실력자야. 키나 리치 차이도 안 나서 로한이 쉽지 않을 듯.
– 존나 처맞았음 좋겠다. 안 그래도 더 빌런이라고 깝죽대는 거 눈꼴사나웠는데. 주제도 모르고 올림픽에 처 나온 거 보소.
– 글쎄. 나만 차머스와의 타이틀전을 본 건가? 로한은 프로 중에서도 어나더레벨이야. 무자파르에게 꺾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로한에게 족쇄가 걸려 있다는 거야.
└ 그게 무슨 말?
– 복싱은 로한이 참가하는 올림픽 종목 11개 중 겨우 한 종목이야. 아무리 3라운드라지만, 신체적 부담이 상당히 큰 투기 종목이고, 잘 풀리면 10일 만에 4경기를 뛰어야 할 수도 있어.
└ 아, 다른 참가자들이랑 다르게 부상이랑 체력 소모를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거구나.
– 맞아. 아마 장기인 풋워크를 통해 최대한 덜 맞는 아웃복싱을 선택할텐데… 그럼 경기도 지루할 뿐만 아니라, 로한의 상대들도 그런 의도를 너무 잘 알고 있단 말이지. 아마 어떻게든 개싸움을 유도할 거야.
└ 하긴. 이미 들고 온 전략을 알고 있으면 대응하기도 더 쉽겠지. 거기에 무자파르가 끝이 아니잖아? 어떻게 계속 이긴다고 해도 세 명이나 더 붙어야 하고… 진짜 결승까지 올라가면 끝판왕이랑 붙게 되지 않나?
– 그러니까 흥미진진하지. 로한이 진정한 WBC 헤비급 챔피언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좋은 무대가 될 거야.
땡 !
[무자파르 vs 로한]의 경기가 시작됐다.– ……
갑자기 채팅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 내가 복싱 풀 경기는 처음 봐서 그런데… 원래 저렇게 다 맞으면서 거리 좁혀도 됨? 원래 K.O 당하는 거 아님??
└ 음… 그게 말이야… 보고 있으면서도 잘 안 믿기네.
└ 일단 기세가 장난이 아님. 무슨 솜주먹을 맞는 것처럼 아무리 잽을 넣어도 흔들림이 없어. 그냥 막 돌진해.
└ 방금 위빙 봤어? 잽이 무슨 슬로우모션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미리 움직임을 읽는 것처럼 손쉽게 피하잖아.
└ 가드를 한 듯 안 한 듯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정신 나갈듯. 빈틈이 너무 많아서 어딜 때려야 될지도 모르겠고, 각 보고 때리면 슬쩍 흘리거나 대충 맞아주는데… 정신 차려보니 내가 코너에 몰렸다고??
빠 악 – !!
그러다 1라운드 1분 만에 로한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교과서적 어퍼컷을 적중시킨다.
– 순간 내가 턱 맞은 줄 알고 움찔함.
– 난 팬티 갈아입고 옴. 마우스가드 개발한 사람 상줘야 한다.
– 무자파르 죽은 거 아님? 개 무섭네. 아웃복싱 할 줄 알았더니, 경기 시작하자마자 닥돌이라니.
– 무자파르도 나름 정석적으로 대응했는데… 그냥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다가 결국 번쩍! 와, 이게 챔피언의 위엄인가??
막상 까보니 일방적인 경기 내용.
올림픽 슈퍼헤비급 16강 영상 짤은 실시간으로 퍼져 나갔다.
– 아니 이런 경기를 놓쳤다고??? 8강은 무조건 본다!!
그 결과 8강을 앞두고 훨씬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아쉽게도 8강전 상대가 부상을 이유로 기권을 하며 김이 팍 새버렸다.
– 안톤 저 새끼 쫄은거임. 이미 프로 판에서도 두 번 런 쳤을 걸.
– 맞을 듯. 전형적인 강약약강. 16강 상대 존나 가지고 놀면서 양학하더니… 로한 첫 경기 보자마자 런 때린 게 확실함.
– 이전 경기에서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웃기고 자빠졌네. 바디샷은 딱 한 번 스친 게 다 아냐?
어쨌든 그 덕분에 로한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준결승 전에 임했다.
– 시청자 수 실화냐? 지금 백만 명이 들어왔는데?? 복싱이 원래 이렇게 인기가 많았어??
– 이건 그냥 미국 채널이고, 복싱 좋아하는 영국, 맥시코, 러시아 쪽도 사정이 비슷함.
– 근데 솔직히 복싱팬 보다, 로한이 진짜 첫 금메달을 딸 수 있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더 많을 듯. 내가 지금 똥줄 타고 있는 칼 크롬웰이면 손?
– 다른 건 몰라도 진짜 더 빌런의 화제성은 인정해줘야 한다. 요즘 들어 올림픽 복싱에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올림픽 7일 차.
로한은 준결승에서 영국의 떠오르는 신성, 테드 조슈아를 상대로 1라운드 K.O승을 거두었다.
이제 결승만 남았다.
*
올림픽 8일 차.
나는 한국 육상 대표팀과 훈련 일정을 소화한 후 다시 조지 코치를 만났다.
“준비 됐어?”
“네.”
“꼭 도와줄 필요 없는 거 알지? 지금은 서로 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니까.”
“괜찮아요. 저 때문에 꽤 고생했잖아요.”
“그건 그렇지.”
우리는 미국 국가 대표의 베이스 캠프로 이동했다.
정확하게는 복싱 시설.
‘이젠 어딜 가도 편하게 돌아다니진 못하겠군.’
적어도 미국 국가 대표 중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들어서자 불쾌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분위기를 풀 겸 내가 먼저 미국식으로 미소를 지어주었는데, .역효과만 났다.
“왔나?”
복싱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곳에 도착하자 지오반니 관장님이 맞아주었다.
지금까지 제안은 여러 번 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미국 복싱 헤드 코치로 올림픽에 참가하셨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참가자 중 한 명 때문.
“로한!”
뒤늦게 스파링이 끝나고 내려온 이는 다름 아닌 키스였다.
“오, 올림픽 왔다고 눈빛이 많이 좋아졌는데?”
평소의 권태로운 눈빛이 아니다. 지오반니 관장님이 열심히 굴리는 건지, 아님 나라를 대표해 이 자리에 왔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느끼는 건지 제법 기세가 날카로웠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찾아와? 너 때문에 준결승에서 떨어질 뻔했잖아!”
키스는 장난스럽게 나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내가 가드 단단히 하라고 누누이 말했잖아. 누군가가 공략할 거라고.”
“이번에 붙은 한국 선수 실력이 좋긴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 소속을 바꾸자마자 암살자를 키워서 보내?”
“하도 말을 안 들으니… 방법을 바꾸는 수밖에. 하하하.”
1980년대와 같은 황금기는 지났지만, 한국 복싱도 전통이 깊은 스포츠 종목이었다.
그래서인지 꾸준히 좋은 유망주들을 배출했고, 마침 국대 중에서 키스와 같은 체급에서 경쟁하는 친구가 있었다.
‘자기의 눈과 빠른 반응속도만 믿고 가드를 허술하게 하는 약점을 노릴 수 있게 도와줬지.’
내가 키스로 빙의해 몇 번 스파링을 해주었더니, 스펀지처럼 습득해 실전에서도 키스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몇 번은 정말 위협적인 공세로 몰아붙였고, 승패가 언제 뒤집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라졌다.
아직 둘 다 한창 성장 중이라서, 몇 년 후 프로씬에서 만나면 좋은 경기를 보여주리라 예상했다.
“축하한다, 키스. 이제 금메달까지 한 걸음 남았구나.”
그때 조지 코치도 아는 척을 했지만, 키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배신자. 로한은 이중국적이라도 되지… 사람이 어떻게 조국과 가족을 버리죠?”
“야야. 넌 관장님이 전담 케어하잖아. 복지 규모도 미국이 세계 최고야.”
“…그러니까! 나를 지옥에 버려두고 둘만 천국에!! 그쪽 국대들은 예쁜 사람도 많더만!”
“아버지.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부드러워지신 모양입니다? 아직 키스가 기운이 팔팔 넘치네요.”
“키스! 당장 링 위로 다시 돌아오거라.”
지오반니 관장의 불호령에 키스는 원망의 눈빛을 보내며 끌려갔다.
오늘은 기본적으로 응원차 방문했다.
비록 경쟁국이지만, 우린 모두 같은 체육관 소속. 적어도 체급이 다르기 때문에 올림픽 같이 특수한 기간 동안 한 번쯤은 찾아오고 싶었다.
과연 미국은 복서 자원 풀이 넓어서 그런지, 좋은 스파링 상대들이 파리까지 날아와서 키스의 트레이닝을 도왔다.
‘천재는 천재인가. 그 어떤 상대에게도 쉽게 적응하고 바로 약점을 찾아낸다. 진짜 짐승같은 감각이야.’
원래는 키스의 훈련을 지켜보면서 간단하게 조언만 해주려고 했는데, 수준 높은 스파링을 보고 있다 보니 내 몸이 다 근질거렸다.
“뭐야? 갑자기 로한 너까지 몸을 푸는 거야?”
우린 체육관에서 늘 그렇듯, 어지간한 경기보다도 더 열심히 스파링을 뛰었고… 땀을 쏙 빼고 나서야 훈련을 마쳤다.
“금메달리스트로 다시 만나자.”
“고맙다, 로한. 넌… 제발 살살 하고. 도대체 몇 개를 따려고 이 난리를 떠는 거야?”
같이 밥을 먹고 다시 한국 숙소로 돌아가려고 짐을 챙기고 있던 찰나.
지오반니 관장님이 날 조용히 불렀다.
“잠깐 나 좀 따라오게.”
“네?”
임시 감독실로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 관장님을 따라 들어가니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토니?”
바로 내 결승 상대, 35살의 노장 토니 조이스였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푹 수그렸다.
“이 친구가, 할 말이 있다는구나.”
*
토니 조이스는 꽤 어렸을 때부터 복싱의 매력에 푹 빠졌다.
복싱의 구도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링 바깥에서 각 선수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링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조건은 평등해지고, 오로지 자신의 주먹에 모든 것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두 사람만 남았다.
‘어차피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건 내 두 손 뿐.’
불우한 환경 속에서 차별도 많이 당하고, 세상의 가혹함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토니이기에… 복싱의 세계는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토니. 너 의외로 근성이 있다. 제대로 한 번 해볼래?
그는 실제로 복싱에 재능을 보였다.
아무리 고된 훈련도 묵묵하게 수행하고, 몸이 좀 아픈 정도로는 내색조차 않는 인내심이 높게 평가 받았다.
하지만 토니는 갑작스럽게 중학교를 그만두면서 복싱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암울했던 인생에… 그나마 복싱 하나 찾아서 살만해졌는데, 세상이 날 그렇게 내버려둘 리가 없지.’
동생은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꾸준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는데, 미국의 병원비를 감당하기 위해 아버지는 주말도 없이 일을 하셨다.
그런 기간이 5년 10년이 되자 아버지의 건강도 급격히 악화하였고, 결국 과로로 쓰러지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가 되며, 토니가 15살이란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도망치고 싶어도 그럴 용기가 없었다.’
책을 펼치기만 하면 잠이 왔고, 애초에 중퇴한 놈이 할 수 있는 일은 몸 쓰는 것밖에 없었다.
그나마 건장한 체격에 힘이 좋은 편이라 공사 현장을 따라다니며 어린 나이에도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페이도 쎄지고, 복지 혜택이 늘어나니…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토니도 겨우 10대였기에, 현장에서 같잖은 일로 욕을 처먹거나, 금방 쓰러질 것처럼 아파도 일에 나가야 할 때 몇 번이라도 때려치고 싶었다.
실제로 짐을 싸들고 더러운 집구석에서 가출을 하려고 해도…
– 토니! 너무 힘들지. 내가 일부러 초콜릿 다 남겨놨어. 이거 먹으면 힘 나!
이 세상에서 초콜릿을 가장 좋아하는 동생이, 하루종일 쥐고 있어서 다 녹아버린 초콜릿을 잔뜩 건네줄 때.
– ……
가만히 누워서 말도 못하고, 손을 바르르 떠는 아버지가 안간힘을 다 쓰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토니는 다시 짐을 풀고 다음날 새벽 일찍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퍽 퍽 퍽 퍽!!
일주일에 한두 번. 어쩌다가 시간이 나면 복싱 체육관을 찾아 시원하게 샌드백을 쳐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을 줄 알았더니…’
지금도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그 사이 좋은 여자를 만나 삶의 안정을 조금씩 찾았다.
이런 게 행복이지 않을까?
인생의 고점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내게서 금방 결핍을 찾아냈다.
– 토니, 가족은 내가 보살필게. 자기는 복싱을 해. 지금 아니면 다신 못 하잖아.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러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줘.
몇 년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결국 토니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아마 내심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이기심도 있었고.’
그동안 꾸준히 훈련했다지만, 나이가 들어 다시 아마추어 세계에 입문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묵묵하게 모든 난관을 정면으로 헤쳐 나갔고, 짧은 기간 안에 꽤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래봐야 아마추어 바닥은 돈이 안 돼. 이래선 그녀와 가족만 고생시키는 꼴이다.’
– 아마추어 성적이 좋은 편이야. 그런데 너무 말도 없고 캐릭터성이 부족해서 큰 매치가 잡히질 않네. 그나마 올림픽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제대로 된 프로 데뷔가 가능할 거야.
항상 때려치고 싶고,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토니만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복싱을 하면서도 내내 죄책감을 느꼈고,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정말 그만둘 생각으로 출전했다.
[WBC 헤비급 챔피언, 로한 킴!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다.]“……”
‘그럼 그렇지. 내 인생이 쉽게 풀릴 리가 있나.’
토니는 웃음밖에 안 나왔다.
운이 좋게도(?) 결승에서나 만나는 토너먼트 편성이라, 최소 은메달까지는 왔다.
하지만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는 크다. 그것도 모자라 모든 화제성을 로한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 아직은 그렇게 이름도 알리지 못했다.
‘그래. 이 정도면 복싱도 원 없이 했다. 내 실력에 여기까지 온 것도 참 대단한 거야. 은메달도 부상이 적지 않으니 다시 공사 일이라도 하면, 돈 좀 모아서 조촐하게 식도 올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나름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던 와중.
의외의 인물이 찾아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했다.
“딱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면, 돈을 주겠네.”
*
토니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일찌감치 털어놨어야 하는데, 내가 워낙 파렴치한 놈이라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솔직히 로한이 당장 자신에게 달려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면 돈을 주겠다니.’
그걸 고려한 것 자체가 수치스럽고, 스스로 용납하기 힘들었다. 복싱계에서 퇴출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그녀를 당당하게 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로한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얼마 준대요?”
“예? 아, 그게…”
눈치를 살피다가, 로한이 진지하게 되묻자 상대가 1밀리언(=13억)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나쁘지 않네.”
“……???”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이어서 로한은 상상을 초월하는 역제안을 했다.
‘…미친 건가?’
미국 피지컬 천재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