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3
103
올림픽이 시작되기 직전, 칼은 오랜만에 차머스를 찾아갔다.
차머스는 로한과의 경기 이후 병원 신세를 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퇴원을 했지만, 그는 개인 저택에 필요한 의료 시설을 다 갖추어 놓고 있었다.
간호사 둘이 항상 상주하면서 차머스의 수발을 들어야했다.
“이제 됐어. 필요 없으니까 이제 꺼져.”
간호사를 물리고 그는 꼿꼿하게 쇼파에 앉아 칼을 마주했다.
“평생 이런 꼴이 되기를 바라기는 했는데… 정작 보니까 별다른 감흥이 없군.”
“이런 상태라도 너 따위는 한 주먹 거리다. 네가 달리기를 시작했던 이유가 나한테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크롬웰 집안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칼과 차머스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특히 같은 세대이고, 나이대가 비슷하다보니 평생을 경쟁하던 입장이었던 것.
칼 또한 육상계에 이름을 남긴 거물이고, 현재는 미국 육상 연맹을 이끄는 중역 중 하나이지만… 아무래도 언디스퓨티드 챔피언 차머스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영향력을 지녔다.
‘아레스를 잘 성장시켜서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없잖아 있었지만…’
차머스는 더 이상 예전의 차머스가 아니었다.
경기 후 7개월 만에 근육이 대폭 빠지고 피부가 푸석해졌다.
거기에 음침한 눈빛까지,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복잡했다.
“너 따위가 날 안쓰럽게 쳐다봐?”
“오랜만에 찾아온 형제에게 너무 날카로운 거 아닌가?”
“내가 잘 나갈 땐 얼씬도 안 한 주제에, 지금에서야 얼굴을 비치는 이유가 뭐겠나.”
“아, 그건 부정할 수 없군. 스타의 추락은 항상 자극적이잖아.”
차머스는 화를 내기는커녕 칼을 보고 비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여유로운 척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었다. 상황이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다음 타겟은 너인가 보던데?”
“……”
로한이 한국 국가 대표로 소속을 바꾼 이후, 칼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
육상 연맹에서는 물론, 미국 올림픽 위원회에서도 다방면으로 압박을 가해왔고, 가장 큰 문제는 대중의 반응이다.
‘로한의 성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나를 비롯해 아레스가 무너지길 기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
아직 로한이 공식 대회에서 보여준 것이 없고,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올림픽에서 복싱이나 멀리 뛰기를 제외하면 걱정할 게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미증유의 공포가 칼을 옭아맸다.
로한의 눈빛과 기세는 한참 어른인 자신이 마주하기에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그 새끼가 진짜 위협적인 놈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온 것 같은데… 직접 당해보지 않는 한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없을 거야.”
“차머스 네가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한다고?”
“너… 걔가 선발전에 참가하고, 일부러 모욕을 감수한 후… 게이 팝의 나라로 전향한 게 다 설계된 거라면 믿을래?”
“미친놈. 혼자 집에 처박혀 있더니 망상이 심해졌군. 사회 경험이 부족한 18살이 미래를 내다 보는 것도 아니고…”
“딱 보니 너도 이제 끝이군.”
“……”
차머스는 헛소리를 하는 성격이 아니기에, 그것이 칼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넌 너무 정석적이라 안 되는 거야. 수작을 부려도 그~럴싸하게 실격시키고, 슬쩍 진로 방해로 괴롭히기나 하고.”
“아무리 그래도 내 아들에게 너처럼 약을 시킬 순 없지.”
“왜 혼자 깨끗한 척 하시나? 미국 육상계도 약물 스캔들로 한참 시끄러웠으면서.”
“시간 낭비 했군.”
칼이 그대로 뒤돌아서 나가려고 하자, 차마스가 한 마디만 보탰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 새끼가 11개 종목에 참가한다고 마음먹은 건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야. 겉으로야 양아치에 관종으로 연기하지만, 속에는 교활한 악마가 똬리를 틀고 있다.”
“……”
차머스가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어도, 전하려는 말은 정확하게 이해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지 않는다면, 잡아먹히는 건 내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칼은 경력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자신이 평생을 쌓아 올린 모든 것과 이제 빛을 볼 일만 남은 아들의 앞날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그걸 가만히 지켜볼 사람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가장 좋은 그림은 올림픽 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것.’
마침 투기 종목인 복싱이 가장 치러졌고… 오랜 물밑작업 끝에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 먼저 약속한 1밀리언은 선금으로 주고, 일을 무사히 성사시켰을 때 1밀리언을 완수금으로 지급한다면… 로한이 평생 못 걷게 해드리겠습니다.
칼은 곰곰이 고민을 하다가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모두 처리했고, 일이 잘못되어도 돈을 회수할 방법은 차고 넘쳤다.
‘일단 지켜보면 알겠지.’
이제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
복싱 결승은 역사적인 롤랑 가로스 경기장에서 펼쳐졌다.
원래 프랑스 오픈이 개최되는 고풍스러운 곳.
이번 올림픽에서도 테니스 종목을 위한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으나, 어제 테니스 결승이 막을 내리며 다음날 바로 복싱 링이 세워졌다.
‘올림픽 복싱은 큰 인기가 없어서 결승전이어도 좌석이 절반 이상 안 나간다고 하던데…’
소문과는 달리 15,000석이 진즉에 매진되었고, 암표는 현재 10배 이상의 가격대를 이루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들어오는 관람객들.
현장의 분위기만이 이렇게 뜨거운 게 아니라… 복싱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미국, 영국, 멕시코 등지에서는 동 시간대 시청률이 가장 높았으며, 스트리밍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수백만 명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
나는 잠깐 눈을 감고 모두의 기운을 느껴보려고 했다.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는 느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수록 힘이 넘치는 건 나만 그런 걸까?’
경기에 앞서 조촐한 선수 입장이 이루어졌다.
프로 경기에서는 선수의 등장이 마치 영화 속 영웅이나 악당 출현씬만큼 퍼포먼스에 공을 들였지만, 올림픽에서는 아무런 조명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입장했다.
– 로한 ! 로한 ! 로한 !
– 첫 번째 금메달 LFG!!
– 더 빌런 이즈 백!!
다만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들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토니 때와는 180도 상반된 분위기.
그는 익숙한 듯 표정 변화 없이 링 위에 올랐다.
[홍코너: 토니 로이스]– 6ft 3in(=191cm)
– 215lbs(97kg)
[청코너: 로한 킴]– 6ft 6in(=198cm)
– 201lbs(91kg)
“딱 보면 알겠지만, 토니가 통나무처럼 몸이 딴딴한 유형이다. 대신 키나 리치에선 네가 압도적이고, 나이도 많아서 민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웃복싱으로 상대하기 편할 거야.”
“보통 세컨드는 선수에게 긴장감을 주려고 상대의 강점을 부각시키던데…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 거 아니에요?”
“…괜히 너 긴장 바짝 하게 해서 상대 잡을 일 있냐. 여유를 가지고 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거리 주지 말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심의 신호에 따라 링의 중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규칙 준수하고, 올림픽 정신에 맞춰 페어플레이한다. 터치 글러브!”
툭 –
우리가 글러브를 맞부딪히자마자 1라운드가 시작됐다.
토니는 바로 전력을 다해 거리를 좁혀왔다.
‘좋은 전략이다.’
퍽 !
하지만 내 몸의 상태는 최상. 내 공격권에 걸치자 곧바로 잽으로 응징했다.
그의 얼굴이 크게 흔들린다.
‘……?’
뭔가 손에 걸리는 감각이 이상했다.
차머스가 약을 했을 때 느꼈던 이질감과는 또 달랐다.
‘뭐였지?’
일단 경기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높이나 거리에 우위가 있는 건 나고, 풋워크로 좋은 위치를 끊임없이 선점하고 있는 거도 나였기 때문에… 토니는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기 위해서 잽을 허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퍽 퍼 벅 !
빠른 잽으로 밀어내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면 바디샷이나 훅으로 데미지를 축적시켰다.
‘……’
분명 주먹이 제대로 들어갔고, 그때마다 그의 몸이 움찔거리며 고통에 반응했다.
‘단순히 맷집이 좋은 건가?’
하지만 그는 금방 떨쳐내고 다시 거리를 좁혀왔다.
가드를 하고, 열심히 몸을 움직이지만… 나에겐 살짝 흔들리는 샌드백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움직임이 정확하게 보였고, 타이밍이 있을 때마다 원 투 – 콤비네이션을 먹였다.
미안하지만 기본적인 피지컬은 물론, 테크닉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났다.
‘1라운드에 끝낸다.’
서로의 실력을 가늠했으니, 난 곧바로 페이스를 올렸다.
퍽 !
강력하게 치고, 토니의 펀치가 내게 닿기 전에 빠져나간다.
퍼억 !
다시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빠진다.
풋워크에 리듬감이 생겼다.
상대의 허점을 정확하게 읽고 나비처럼 유유히 거리를 좁혀 잽이나 훅을 적중시켰고, 벌처럼 빠르게 멀어졌다.
그러면서 진입하는 방향이나 퇴로를 시시각각 바꾸었고, 왼손 오른손을 자유롭게 바꿔가면서 다양한 콤비네이션을 펼쳤다.
경기 시작 후 2분.
일방적인 공기 내용에 벌써 토니의 얼굴은 엉망이 되었다.
눈 위가 찢어져 피가 흘렀고, 제대로 맞은 부위들은 벌겋게 부어올랐다.
“……”
난 그제야 경기 내내 나를 괴롭힌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눈빛에 변화가 없다. 몸도 크게 둔해지지 않았고.’
애초에 프로레벨에선 빠르지도, 힘이 세지도 않은 스타일이었으나… 맷집이라고 해야 하나? 회복력 하나는 인정해주어야 했다.
눈빛은 처음 경기가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무뎌지지 않았다.
‘아직도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경기를 뛰고 있다.’
나는 적잖게 놀랐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프로들과 스파링해본 결과, 그들은 견적이 나오면 바로 자신의 몸을 사리는데 집중했다.
분명 토니도 나와의 격차를 확연히 느꼈을텐데, 조금도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점이 의외였다.
“……”
그의 모습에 나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나는 마지막 1분. 숨도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 모든 걸 쏟아 부었다.
“다운!”
결국 10초 만에 훅을 정확하게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풋워크에서부터 펀치까지의 무브먼트가 예술적으로 이어졌기에, 적잖은 힘이 실린 펀치.
못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으나…
“8…9… 경기 진행할 수 있나? 주먹을 쥐고, 나를 쳐다보게.”
토니는 이를 악물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프에 몸을 지탱하려는 듯보였지만, 이내 눈을 부릅뜨고 다시 나를 노려보았다.
“파이트!”
느낌이 뭔가 좋지 않았다.
단순히 맷집이나, 약물로 표현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지?’
내 감각이 경고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쪼개 활용했다.
‘간다!’
이번에는 내가 접근했다.
토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돌진했다.
난타전을 기대했겠지만, 나는 신체적인 우위를 극한까지 활용했다.
퍽 !
좁은 거리에서도 한 발자국 물러나거나, 위빙으로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나는 때리고.
숄 더 롤이나, 기회가 되면 일일이 펀치를 쳐내며 나만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여기까지다.’
기세를 올리니, 토니가 처음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코너까지 몰리자, 움직임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요리하기에 딱 좋은 위치에 있었다.
퍽 ! 퍼벅 ! 빠 악!!
토니는 단 한 번도 눈을 감지 않고 필사적으로 내 공세를 막았다.
하지만 가드는 풀리고, 점점 허용하는 공격이 많아졌다.
마지막엔 위험한 어퍼컷이 정확하게 들어갔다.
“……”
분명 처음 다운이 되었을 때보다 강도가 셌다.
그런데 토니는 휘청거리면서도 가까스로 쓰러지는 것만은 피했다.
땡 !
“각자 코너로!”
1라운드 끝. 1분간 휴식이 주어졌다.
나는 앉아서 입을 헹구며 반대 코너의 토니를 가만히 지켜봤다.
곧 죽을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면서도, 눈빛은 여전히 차분했다.
조지 코치도 이상한 점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저 친구…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군.”
“도대체 뭐죠?”
“일단 2라운드도 긴장 늦추지 말고, 이대로만 해. 상대에 대한 파악이 쉽지 않을 땐 철저하게 네가 유리한 게임을 해야 해.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하게 요리하는 거다. 1라운드는 네 압도적인 승리였어.”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후, 시간에 맞춰 몸을 일으켰다.
2라운드 시작.
‘……!’
토니는 1라운드 때보다 더욱 저돌적으로 다가왔다.
그래 봐야 발이 빠른 내가 쉽게 빠져나와 다시 거리를 벌리고, 틈틈이 잽을 먹였지만… 토니는 맞으면서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먹잇감이 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함정을 놓는 사냥꾼을 비웃듯 나는 자리를 피하고 새로운 무대에서 그를 맞이했다.
퍽!
그러다 처음으로 유효타를 얻어맞았다.
내가 워낙 많은 잽을 날리다보니, 토니는 완벽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얻어맞으면서까지 카운터를 날린 것이다.
‘…뭐지?’
골이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심리적인 충격이 더 컸다.
약을 빤 차머스의 주먹이 더욱 매서웠다.
그런데 이렇게 뼛속 깊이 아픈 적은 처음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쉬운 상대가 아니야.’
나는 더욱 집중력을 펼치며, 1라운드 때와 마찬가지로 아웃복싱으로 최대한 덜 맞고, 힘이 덜 들어가도 확실한 펀치로 포인트를 올렸다.
퍼억 !
내가 또다시 수십 번의 펀치를 적중시켰으나, 이번에도 정확한 틈을 읽고 카운터를 꽂는 토니.
‘……!’
턱을 맞은 나머지 충격이 상당했다. 균형 감각이 살짝 이상해져서 허점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풋워크를 자제했다.
2라운드 마지막 1분.
토니는 다시 침착하게 거리를 좁혔다.
내가 다 질릴 정도로 똑같은 방식을 고수한다.
‘그럼 나도!’
이번에는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옆에서 ‘조급해하지 말라니까!! 뭐 하러 상대가 원하는 게임을 해주는 거야!!’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인파이팅이야말로 내 주특기.
퍽 퍽 퍽 퍽 !
공방이랄 것도 없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듯, 우린 쉬지 않고 주먹을 교환했다.
“다운! 자넨 떨어지게!”
토니의 두 번째 다운.
그는 성급하게 일어나려고 하다가 미끄러져서 다시 쓰러졌다.
주심이 경기를 종료시키려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토니가 벌떡 일어나 그를 제지했다.
여전히 강렬한 눈빛으로 말없이 호소한다.
“…한 번만 더 다운되면 그땐 진짜 끝이다.”
“감사합니다.”
우린 곧바로 다시 맞붙으려 했지만, 종이 울리며 2라운드가 끝났다.
“……”
토니는 정말 다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간신히 자리로 돌아갔다.
나도 코너에 앉아 잠깐 쉬자 아드레날린이 한 차례 지나가고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호오.’
온몸 구석구석 뼈마디가 아렸다. 체력 소모도 고작 2라운드를 뛰었다고는 안 믿길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느끼던 위화감의 정체가 더욱 뚜렷해졌다.
토니의 펀치 하나하나가 어느덧 내 심상 세계를 자극하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제가 좀 정신이 이상해진 걸 수도 있는데… 토니의 펀치에는 남다른 의지가 느껴져요.”
내가 공격을 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분명 때리는 건 난데,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음… 어째서인지 아버지가 자신감을 가지더라니.”
미국의 토니 로이스. 저쪽 코너는 지오반니 관장이었다.
그는 나도 한 번 못 본 따스한 눈빛으로 토니를 쉴 새 없이 격려하고 지도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슬쩍 비웃어주시기까지 한다.
“항상 고장난 장난감처럼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있잖아.”
– 복싱은 누가 가장 세고 빠른지 견주는 스포츠가 아니다. 그 어떤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 패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불굴의 정신력이 전설을 만든다.
올드스쿨다운 철학관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적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토니를 상대해보니 수박 겉핡기 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 와아, 토니라는 선수 처음 봤는데… 저 나이 먹고 대단하다.
– 다른 선수면 1라운드에 뻗었을 듯. 계속 일어나는 거 보니까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네.
– 리플레이에서 로한 눈동자 흔들리는 거 봐. 이러다 토니 큰일 내는 거 아니야?
토니의 필사적인 발악은 관람객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부분이 나의 활약을 보러 왔는데, 그새 돌변해서는 적지 않은 수가 토니를 응원하고 있었다.
“……”
지금까진 말만 ‘더 빌런’이었지, 실제로는 관객들이 내 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처음으로 내가 진정한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분명 착한 심성을 타고난 나는 상심하기 쉬운 상황.
그런데 어째서인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나는 눈을 감고 잠깐이나마 심상 세계에서 토니의 의지를 머릿속에 담았다.
1,2라운드를 통해 드러난 그의 절실한 마음, 결연한 의지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반면 내 의지는 어떠한가.’
다행히 경기가 재개되자마자, 나는 생각을 완전히 정리할 수 있었다.
땡 !
토니가 고마웠다.
빠아아악!!
덕분에 내 주먹에도 의지가 깃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철저한 악당이 되리라.’
미국 피지컬 천재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