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08
108
아레스는 화면 속 숫자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부정했다.
불가능한 숫자였다.
‘초단거리 종목에서는 0.01초를 단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불과 한 달 전이었던 미국 국대 선발전. 그 때 로한의 기록이 12.96초였다.
그런데 뭐라고???
[남자 110m 허들 최종 결과]1. 로한 김(대한민국):
반응속도 – 0.110초
기록 – 12.86초 (올림픽 신기록)
2. 아레스 크롬웰(미국):
반응속도 – 0.130초
기록 – 12.89초
3. 한젤 레비(자메이카):
반응속도 – 0.125초
기록 – 13.04초
로한은 무려 0.1초를 단축하며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이번 올림픽에서만 높이 뛰기 다음으로 두 번째 신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
아레스는 정말 자신 있는 종목에서의 패배라 충격이 훨씬 컸다.
‘무슨 반응속도가…’
초단거리에서는 반응속도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록과 함께 반응속도도 표기가 되는데, 이번 110m 허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다시 리플레이가 되는 경기.
특히 스타팅블록에서의 무브먼트를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자 차이가 확연했다.
로한이 가장 먼저 반응하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폭발적인 스타트를 보여주었다.
영광스러운 메달 수여식에서도 아레스는 웃지 못했다.
은메달은 상상도 안 했기 때문에, 너무 분한 나머지 목에 매달지도 않고 손에 든 채로 사진을 찍었다.
그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며 태도 논란이 일었지만,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일곱 번째 금메달.’
육상에서만 여섯 개.
아레스는 평생 미국을 대표하는 육상 선수가 되고자 노력했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이미 4개 종목만으로도 세상은 자신을 10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한 천재라고 칭송했으니까.
그런데 로한은 그런 자신을 비웃듯 일곱 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채, 마치 래퍼라도 되는 것처럼 이리저리 으스대고 있었다.
1, 2등이 어쩔 수 없이 서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을 찍는 순서에는 그냥 로한의 손을 쳐냈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는다.
“한국에는 말이야,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말이 있어. 영어로는 뭐라더라?”
그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가,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한 번 쳤다.
“아 맞다. Fuck you. Fuck you였다.”
“……”
아레스는 너무 이를 꽉 깨문 나머지 잇몸 사이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마음껏 즐겨라. 남은 세 종목에서 피눈물 나게 해줄 테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지. 목에 더 이상 걸 자리도 없는 거 보이냐?”
“……”
본전도 못 찾은 아레스는 신경질적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남자 200m 결승은 4시간 후.
그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회복 운동을 집중적으로 할 생각이었다.
‘절대 혼혈 잡종 새끼한테 질 수 없다.’
*
나는 스타드 드 프랑스에 마련된 개인 운동실로 돌아왔다.
평소 가볍고 흥겹기까지 한 분위기의 육상 코치는, 심각한 얼굴로 내 다리를 마사지하며 뭉친 근육을 풀기 시작했다.
“왜요, 또 전 재산을 날리신 거죠?”
“……”
그는 희미하게 웃었지만, 대꾸하는 대신 마사지에 집중했다. 한 시간 동안 꼼꼼하게 하느라 온 몸이 땀에 젖으셨다.
“아무래도 400m는 무리였던 것 같다. 아직도 근육통이 심하지?”
“네? 완전 멀쩡합니다.”
“이래도?”
육상 코치는 아직도 단단하게 경직된 내 종아리를 움켜쥐었다.
나는 애써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몸은 솔직했다.
“윽.”
신음이 저절로 입을 비집고 나온다.
“다시 검사받아보자.”
“…네.”
대기하고 있던 한국 측의 의사가 5분 안에 도착했다.
“로한 선수! 무슨 일입니까.”
과할 정도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의사 선생님.
육상 코치와 비슷한 방식으로 여기저기에 압력을 가하며 고통의 정도를 측정한 후, 김민선 아나운서를 통해 일차 진단을 전달했다.
“아직 미미하지만, 인대 손상의 후유증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종아리 근육이에요. 파열의 조짐이 있어요.”
단기간에 강도 높은 운동을 자주 한 나머지 종아리 근육과 무릎 인대를 혹사했다.
육상 코치의 말대로 신체적 부담이 가장 큰 400m에서 과하게 무리를 한 게 확실했다.
‘한계를 돌파한 대가구나…’
“일단 시설에 가서 정밀 점검을 하는 게 먼저라고 하십니다.”
항상 사무적으로 일 처리만 하던 김민선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휠체어를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육상 코치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바로 뛰쳐나가려 했다.
“잠깐만요. 제 몸 상태는 제가 잘 압니다. 아직 괜찮아요. 200m 결승이 3시간 후인데, 시설에 다녀오긴 빠듯합니다.”
“하지만…”
육상 코치도, 의사도 내 확고한 의지에 할 말을 잃었다.
“오늘 일정 끝나고 바로 검사받겠습니다. 부상의 정도가 심했으면, 제가 어떻게 방금 경기에서 신기록을 세웠겠어요.”
“…욕심이 나는 건 당연히 이해하지만, 부상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다. 이미 전설에 가까운 성과를 올렸고, 앞으로가 더 창창하지 않니?”
“당연하죠. 근데, 아직 더 할 수 있어서 말씀 드리는 거에요. 무리가 된다 싶으면 그때 제가 먼저 그만두겠습니다.”
“……”
셋은 복잡한 시선을 교환했다.
“너, 아직 법적으로 미성년자야. 이런 부분은 부모와 상의해야 하는 거 알지?”
“아직은 심각하지 않으니까, 3일만 보류하면 어떨까요?”
“올림픽 다 끝나서 말하겠다? 웃기고 있네. 육상 코치나 의사 말은 안 무서워도 엄마한테는 끔뻑 죽나 보네.”
“하하하…”
육상 코치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심해. 조금이라도 이상 징조가 보이면 바로 다이애나에게 다이렉트로 보고할 거야. 올림픽 7관왕이 엄마에게 귀가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진풍경을 보게 될 거라고.”
“…알겠습니다.”
*
[남자 200m]올림픽에서 육상이 가장 인기 있는 종목 중 하나라면, 육상 안에서도 시청률이 제일 높은 경기는 100m. 그다음으로 릴레이, 그리고 200m 순이었다.
그런데 이번 파리 올림픽은 여느 올림픽과 좀 달랐다.
[와, 관객수가 보이십니까?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이 8만석 매진되었다고는 하지만, 보통 올림픽은 해외 판매량 때문에 노쇼가 많은 편 아니겠습니까? 매진이 돼도 빈자리가 10%, 많게는 20%도 생기기 마련인데… 오늘은 관중석이 빼곡하게 찼습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이 무척 성공적인 대회인 건 맞지만, 지금 이건 로한 선수의 영향이라고 봐야 맞겠죠.]로한의 금메달 수가 늘어나면서, 로한이 참가하는 종목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
[처음에는 더 빌런으로 악명 높은 이미지 때문에 화제가 되었다면, 이제는 실력이 받쳐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악당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죠.] [맞습니다! 벌써 금메달 7개!! 지금까지 한 올림픽에서 최다메달을 딴 걸로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펠프스 선수가 세운 8개가 최고 기록이죠?] [절대 깨지지 않을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로한 선수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과연 오늘 200m 결승에서 기존의 최다메달 기록과 동률을 이룰 수 있을지, 관심 있게 지켜보시죠!]*
나는 경기에 앞서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전문가분들의 도움으로 계속 근육을 풀어주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컨디션을 확인하고 나서야 200m 결승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어떤 경우에도 몸의 건강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가끔은 ‘로한’의 몸이 너무 사기라, 한계를 시험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하지만… 그때마다 전생의 ‘철수’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튼튼한 육체가 주어진 건 말 그대로 기적.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기에, 이 기회를 소중하게 잘 다루어야 했다.
그래서 꼼꼼하게 몸 상태를 살폈고, 이상이 없다고 확신이 들자 당당하게 경기장을 찾을 수 있었다.
“로한… 무리하는 건 아니지?”
엄마가 귀신처럼 낌새를 맡고 나의 온몸을 훑어봤지만, 나는 애써 태연하게 안심시켜드렸다.
‘아무리 로한의 몸이라지만, 너무 가혹한 일정인가…’
나도 경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참가하기를 잘했다.
200m의 스타트부터 결승 지점까지 부상 없이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남자 200m 최종 결과]1. 로한 김(대한민국):
반응속도 – 0.110초
기록 – 19.63초
2. 아레스 크롬웰(미국):
반응속도 – 0.165초
기록 – 19.67초
3. 노아 나이튼(미국):
반응속도 – 0.158초
기록 – 19.94초
나는 여덟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
*
올림픽 17일차.
‘이제 올림픽도 이틀밖에 안 남았다.’
파리에 입국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처음 올림픽에 참가했을 때만 해도, 칼과 아레스에게 한 방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엄마를 위한 복수가 제일 컸고, 부자의 입지를 줄일 수 있다면 그 부상이 나한테 찾아올 거란 계산이 있었다.
“……”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올림픽 정신에 매료가 되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게 되었다.
신체를 끝없이 단련해 세계 최고의 체육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영광에 감사하면서도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상을 감수하고서라도 남은 일정에 모든 걸 불태우기로 작정했다.
시작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멀리 뛰기 결승.
[어?? 로한 선수! 창던지기 때와 마찬가지로, 딱 한 번만 뛰고 나머지 다섯 번의 기회를 모두 포기합니다.] [와아… 솔직히 저런 패기가 너무 부럽습니다. 예전에 육상의 전설 칼 루이스가 똑같은 전략을 썼죠. 릴레이를 앞두고 체력을 아끼기 위해 멀리 뛰기는 딱 한 번만 뛰었죠. 그런데도 금메달을 땄습니다.] [핀란드의 육상 영웅 파보 누르미의 육상 금메달 5개를 재현하더니, 이번에는 미국의 육상 영웅 칼 루이스의 전략을 재현하네요. 어찌 됐든, 우리는 지금 살아 있는 전설을 목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 멀리 뛰기 최종 결과]1. 로한 김(대한민국):
기록 – 8.91m (올림픽 신기록)
2. 아레스 크롬웰(미국):
기록 – 8.42m
3. 후안 디아즈(쿠바):
기록 – 8.21m
[아… 아레스 선수 안타깝습니다. 로한의 첫 기록을 넘기 위해 여섯 번을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이번 역시 은메달에 만족해야할 것 같네요.] [그래도 대단합니다! 로한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그 의미가 퇴색된 듯 보이지만, 아레스 선수는 지금까지 3종목에 참가해 모두 은메달을 따며 확실히 세계 정상급 육상 선수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아, 하필이면 로한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게 한 신을 원망해야죠. 그것도 어떻게 보면 같은 핏줄 아니겠습니까.]‘같은 핏줄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쨌든 모든 건 내 계획대로 순탄하게 흘러갔고, 체력도 만전.
몸에 어느 정도 통증이 있었지만,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 올림픽 마지막 날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금메달을 하나라도 더 따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네?’
나는 메달 현황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파리올림픽 17일차 메달 집계]1. 중국 – 금35 은28 동31
2. 미국 – 금34 은41 동30
3. 프랑스 – 금22 은29 동17
4. 일본 – 금14 은12 동12
5. 대한민국 – 금14 은5 동10
‘그래,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지.’
미국 피지컬 천재 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