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14
114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책은 다른 차원으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열쇠다.
몇 페이지 읽다 보면 책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과 함께, 머릿속에서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한 번 중독되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지.’
그래서 현생에 너무 지치면, 휴가를 내서라도 밤낮없이 책을 읽는 게 내 전생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그땐 단순히 내 현실이 너무 시궁창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감사하게도 ‘로한’으로 빙의한 이후 인생이 너무 재밌어졌지만, 여전히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대체하진 못했다.
“그렇게 책이 좋냐?”
내가 오늘도 책을 잔뜩 사 오자, 리아가 질린 듯 혀를 내둘렀다.
“당연하지.”
“그럼 나 대신 공부 좀…”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리아를 비롯한 친구들.
사실 알리사랑 클로이는 크게 관심이 없어보였지만, 열혈 공부 소녀 아이비가 여름 방학 동안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좀 힘들지, 공부 하다보면 너무 재밌어서 다른 걸 못하게 될 거야. 배우는 즐거움이 얼마나 크다고.”
“…어떻게 2년 내내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리아는 귀를 씻어내는 척하며 좀비처럼 자기의 방으로 올라갔다.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고.”
“됐거든. 질문 하나 하면 가만히 앉아서 혼자 신나 가지고 특강이나 해대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원래 문제의 답을 모른다는 건, 딱 해답하나가 아니라 그 해답의 결론을 내리기 위한 전반지식이 필요한 거라 어쩔 수 없이…”
“아아아아아아.”
잽싸게 도망치는 리아. 아이비만큼은 나중에 찾아와서 물어보겠다며 다 함께 동생의 방으로 올라갔다.
‘좋을 때지.’
가끔씩 마주치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을 제외하면 모든 일정을 비운 채 그동안 밀린 신간을 차례대로 읽었다.
수십 권을 잔뜩 쌓아놓고 하나씩 해치우는 느낌이 좋았다.
책의 산이 줄어들수록 만족스러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공존했다.
“……”
또 한 권을 완독했다.
나만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한 권을 다 읽으면 바로 그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책이 주는 여운을 만끽했다.
해피 엔딩이면 해피 엔딩대로, 새드 엔딩이면 세드 엔딩대로 곱씹어볼만한 요소가 남아 있다.
내가 독서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소가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일단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건, 이미 소설 속 캐릭터와 배경이 내 심상 세계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뜻.
원작자의 이야기는 끝났을진 몰라도, 내 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독자는 일종의 창작자이지 않을까?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독자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지만, 독자의 상상력이 없이는 스토리가 완성되지 않는다.’
소설 속 단어와 문장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결국 주인공의 외모를 연상하고, 머릿속에서 각 장면을 구축하는 건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독자는 작가의 인도에 따라 스토리를 따라가다가도, 문득 재밌는 발상이 떠오르면 잠깐 자기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가기도 한다.
실제로 독자가 신이 나서,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했을까?,’ ‘차라리 이런 전개였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처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 훌륭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독자의 머릿속의 캐릭터들이 더 생생하게 구현되고, 소설속 내용을 따라가는 게 더 재밌어지니까.’
내게는 현실에서만큼 뚜렷하고 생생한 심상 세계가 있어서 독서가 더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나만의 세상을 창조해, 그 안에 소중한 캐릭터를 하나씩 쌓는 만족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오.”
그렇게 일주일간 책만 읽다 보니, 슬슬 내면의 욕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바로 창작욕.
아마 독자와 작가의 유일한 차별점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대부분 독서를 좋아하지만, 순수하게 독서를 즐기는 부류가 독자라면, ‘나도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의욕이 들면 작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독서를 하다보니 심상 세계의 스토리가 점점 발전해, 그 안의 이야기가 통통 튀기 시작했다.
얼른 이것을 바깥으로 꺼내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서 책상 앞에 앉았다.
‘확실히 올림픽 기간동안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
폭넓은 경험 또한 창작욕을 부추기는 훌륭한 요소.
전생에는 간접 경험과 뛰어난 상상력으로 습작을 이어나갔다면, ‘로한’으로 빙의한 이후 사람다운 삶을 살다보니 다양한 ‘파편’을 모을 수 있었다.
‘그런 파편을 활용하면 깊이가 다른 소설이 나온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전생의 습작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100% 새롭게 창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예전에는 여러 소재를 발전시켜보고, 좀 가닥이 잡히면 하나를 집중적으로 집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써보고 싶은 명확한 작품이 있었다.
*
작가는 흔히 일상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떠오른 심상.
[장르: SF]딱히 가리는 장르는 없지만, SF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느 정도 현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더 쉽게 몰입하면서도,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판타지스러운 요소를 접목하는 게 가능하다.
특히 조금 더 직관적인 설정들을 통해 사회적, 윤리적 이슈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다루며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장르적 재미!’
나는 심상 세계에서 배경을 완성한 후, 그 안에 소재를 녹여냈다.
[소재]–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강화소’가 생겼다.
– 포인트를 지불하면 신체의 원하는 부위를 강화할 수 있다.
– 포인트는 노동력과 교환할 수 있다.
– 근력, 체력, 미관 등 세분화해서 강화하면 더 효과가 좋다.
– 누적 강화량이 많을수록 추가 강화가 비싸진다.
올림픽에서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주어진 신체를 단련하는 구조다.
당연히 주어진 피지컬이 바탕으로 깔려야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의 우열은 내면에서 품고 있는 욕망의 크기에 따라 판가름난다고 느꼈다.
‘그걸 조금 더 직관적인 설정으로 바꾸면… 재밌는 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바탕으로 탄생한 ‘심상 세계의 파편.’
나는 틈이 날 때마다 그 세계를 재현하면서,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을 밀어 넣었다.
그들을 관찰하면서 흥미로운 사건사고는 기록해두었다.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 직업들은 얼굴에 가장 많은 포인트를 투자했고, 스포츠는 각 종목에 필요한 점프력이나 힘을 길렀다.
‘이 정도는 정말 평범한 사람의 범위안에 들고…’
세상에는 평범한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남들보다 많은 포인트를 투자하는 것이 목표인 사람도 있고, 그중에서 악랄한 몇몇은 남의 포인트를 빼앗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연구하기 시작한다.
선한 사람들은 그런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겠지.
재벌가, 정치인, 군경 등 다양한 세력은 각기 다른 목표를 가지고 포인트를 모을 것이다.
대혼돈의 시대.
‘잘만 활용하면 인간의 진화를 통해 문명이 훨씬 발전할 수 있는 선물.’
하지만 정말 신의 선물이 될지, 아니면 인류의 멸망을 촉진시키는 재앙이 될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재밌다.’
이제 내 심상 세계의 파편은 정말 하나의 살아 숨쉬는 생태계를 이루었다.
그 안에 수많은 인물들이 공존했고, 쉴 새 없이 충돌했다.
그 안에서 절대적인 관찰자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마음 같아서는 100부작의 대서사시를 시작하고 싶은데…’
세계관 안에 너무 흥미로운 인물들과 이야기 줄기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수많은 줄기를 추리고 또 추려서, 딱 하나의 이야기를 골라낼 수 있었다.
워낙 훌륭한 스토리가 많아서 딱 세 가지의 이야기를 뽑는 건 어려워도, 압도적인 하나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건 클리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진짜 최하위층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차근차근 올라가면서 겪는 역경, 배신 등은 언뜻 진부해보일 수 있으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이기도 했다.
‘내가 바로 밑바닥이었으니까.’
그 안에서도 충분히 많은 변곡점을 줄 수 있고, 다양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과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트북의 녹음 프로그램을 통해 집필을 시작했다.
이미 심상 세계에서 완성된 단면.
나는 그 이야기를 직접 체험하며 동시에 읊조렸다.
4시간 후.
나의 신작이 완성됐다.
*
‘이런 주인공을 소설에 쓰면 개연성 없다고 욕 먹을 거야.’
고스트 에이전트는 로한의 모든 신상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 고교 미식축구 6개 포지션 랭킹 1위의 유망주.
– 고교 농구 전체 랭킹 10위. 최고의 수비수 상을 받은 유망주.
일단 이것만으로도 전도유망한 고교 학생이었다.
프로까지 커리어를 잘 이어가느냐는 별개이지만, 어쨌든 두 가지 스포츠에서 전국 1위를 찍는다?
외계인이다 외계인.
– 미국 대학 입시 시험 만점.
– 미국 데카슬론 1위의 학업 우수 장학생.
‘근데 공부까지 잘한다??’
상위 0.001%의 고교생이 아닐까?
다른 고등학생들이 신을 원망해도 무죄라고 생각한다.
근데 여기까진 상대적으로 그나마 납득이 가능한 범위였다.
[c.k.]「She’s Gone」
– 판매량: 300만부(종이책:201만/이북:99만)
「The Shadow: Legacy」
– 판매량: 100만부(10부작)
[Hyde]「A Good Man」
– 판매량: 232만부(종이책:184만/이북:48만)
로한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는 작가임을 증명하며, 2023년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천재적인 작가였다.
‘문제는 그걸 나만 알고 있다는 거지…’
저 중 어느 한 작품만 집필했어도 성공한 작가의 인생이었다.
특히 모든 작품이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며, 2차 창작의 활로까지 열었다.
‘이쯤 되니까 내가 담당하는 작가이면서도 시기심이 날 수밖에 없는데…’
팬심이 더 커서 망정이지, 아니면 자신이 흑화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단한 업적이었다.
여러 필명을 둔 작가는 많아도, 같은 해에 수많은 상을 휩쓸고 판매량까지 받쳐주는 작품들을 낸 작가는 지금까지 한 손에 꼽을 것이다.
“…여기에 올림픽을 더한다고?”
올림픽 국대 선발전부터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우리의 소중한 작가님.
‘우리 천재 작가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고스트 에이전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올림픽을 실시간으로 챙겨봤다.
초반부의 복싱 금메달은 그렇다 치고…
“아, 그러고 보니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기도 했지? 하하..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잠깐 잊었네.”
문제의 올림픽 후반부에선 하루에 금메달 1~2개씩 획득했다.
‘원래… 올림픽이라는 게 이렇게 혼자 다 해먹는 건가?’
로한이 출전하면 1등을 하는 게 어느새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단 한 번의 올림픽 출전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육상인으로 거론되고 있는 로한.
‘이쯤되면… 굳이 글을 써야 하나?’
에이전트인 자신이 다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냥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비싼 스위스제 시계와 꽃들을 보냈고, 당분간 연락은 자제하기로 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핫한 화제의 인물.
오히려 대한민국 소속으로 나가서 메달을 땄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받았고, 어지간한 미국 메달리스트보다 광고나 토크쇼 섭외가 많이 간다고 들었다.
‘올림피언들이 늘 그렇듯, 유명 토크쇼 한 바퀴 돌고 광고도 찍고 하면 두세 달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거리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라? 한창 물 들어올 때 아닌가?? 어째서…’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이나 지났지만 로한은 그 어떤 방송에도 나가지 않았다.
광고를 찍었다는 소식도 없고… 기존 [니케]와의 스폰서쉽을 통해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지급 받았다는 정도?
그 이외의 근황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다른 올림피언들만 바쁘게 대외 행사를 뛰는 상황.
슬슬 언론에서도 로한의 은둔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추측성 찌라시를 내고 있었고, 고스트 에이전트 역시 혼자만 호기심을 키웠다.
“엌?!”
그러던 어느날, 고스트 에이전트는 컴퓨터를 확인하곤 너무 놀라서 뒤로 쓰러질 뻔했다.
[「Beyond Perfect(완벽을 넘어서)」 – Hyde]‘…에이전트가 신작에 대해 고민도 하기 전에 이미 탈고해서 넘기는 작가가 있다?’
고스트 에이전트는 원고를 확인하기 전에 일단 달력앱부터 열었다.
이후 중요한 일정이 많았지만, 아무 고민 없이 모두 삭제했다.
‘내가 한두 번 당하지…’
잠깐 내용을 훑어보려다가 시간에 삭제된 경험이 두 번이나 있다.
노련해진 고스트 에이전트는 여유롭게 원고를 읽었다.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4시간이 순식간에 증발했고, 그는 소설이 주는 여운에 1시간을 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걸 꼭 봐야하는 사람이 있다.’
고스트 에이전트는 먼저 로한의 허락을 구하고, 아주 특별한 사람에게 다이렉트로 원고를 꽂았다.
미국 피지컬 천재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