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15
115
‘마침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다고 했지.’
고스트 에이전트는 자신의 첫 클라이언트를 떠올렸다.
서로 무명이고, 성공에 굶주려 있던 시절.
개인 블로그에서 SF 소설을 연재하고 있던 작가 ‘나이트 라이더(Night Ryder),’를 고스트 에이전트가 발굴했고, 대형 계약은 아니더라도 간신히 소설을 전국적으로 배포할 수 있었다.
시작은 정말 미미하였으나, 결국 시간이 흘러 출판계를 뒤흔들게 된 사건.
나이트 라이더는 이후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잡은 굵직한 작품들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아직도 SF 팬들 사이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최고의 SF 소설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런데 20년 전을 마지막으로 집필활동을 쉬고 있는 작가 ‘나이트 라이더’보다… 현재의 그를 기억하는 대중이 훨씬 많아졌다.
다름 아닌 영화 감독 마커스 라이더(Marcus Ryder).
20년간 딱 세 작품을 찍었으나, 모든 작품이 흥행 순위 10위 안에 든 전설 중의 전설.
이젠 감독보다는 거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SF 영화계의 거물이 바로 고스트 에이전트의 첫 담당 작가였다.
“후후후….”
고스트 에이전트는 흑막처럼 웃으며 이메일을 보냈다.
*
마커스 라이더는 경치 좋은 어느 시골 마을의 별장에서 생활하는 중이었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
항상 시나리오를 함께 쓰는 파트너와 작가진,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 시시각각 이미지화 해야 하는 아티스트 팀 위주로 합숙을 하고 있었다.
“요즘 SF 소설들은 예전 같지 않단 말이지…”
65세의 마커스 라이드.
영화감독보다는 전문 보디빌더에 가깝다고 여길 정도로 덩치가 좋고 근육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과시욕도 있어서 항상 민소매나 바깥에 해라도 뜨면 상의 탈의를 한 채 생활을 했다.
“진짜 4~50여 년전이 최고였는데… 그놈의 슈퍼 히어로물이 대중을 다 버려놨어. 다 하나 같이 능력엔 책임이 따르고… 필요할 땐 영웅 취급, 그러다가 대중의 미움을 받고 정체성 혼란… 지긋지긋하다, 진짜.”
마커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팔굽혀펴기를 하며 머릿속을 비웠다.
“그래도 최근에 나온 ‘더 섀도우’는 괜찮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말이었지. 어쨌든 말초적인 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라도 있잖아. 나름 작품성을 담으려고 최소한의 고민도 했고. 하지만… SF만의 고찰과 깊이는 따라올 수 없지.”
작가진은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실제로 SF가 최고의 장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마커스의 고집은 아무도 꺾지 못하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
SF 장르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그를 오늘날 최고의 비져너리이자 영화 거장으로 거듭나게 했으나, 자신의 비전을 위해서라면 주변 사람 한 명 한 명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낼 수 있는 소시오패스였다.
‘돈을 많이 주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다면… 당장 때려칠 텐데.’
“음? 방금 표정이 좀 불손했는데?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랐나?”
“네? 아닙니다. 계속 고민 중입니다.”
“그래야지. 여기가 공기는 참 맑지만… 1년 내내 여기 있고 싶은 건 아니지? 하긴, 가장 평가가 좋았던 두 번째 작품을 구상할 때 말인데… 이런 곳에서 한 2년 동안 함께 지냈던가? 요즘 애들은 근성이 부족해서… 2~3개월만 해도 죽으려고 하더라고. 오랜만에 그 전통을 부활하면 다시 마스터피스 하나 찍을 수 있지 않을…”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들의 얼굴이 점점 핼쑥해졌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요즘 멀티버스가 유행하고 있는데, 주인공과 똑같은 인물이 다른 차원에서 넘어와 침략을 주도하는 구도는 어떻습니까.”
“식상해. 이미 슈퍼 히어로물에서 질리도록 썼잖아.”
“AI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를 이용하면 어떻습니까. 이 세상은 모두 가상으로 꾸며진 곳이고, 현실에서 우리는 약물에 취해 AI의 노동력으로…”
“매트릭스가 참 재밌긴 했지.”
“……”
마커스는 끊임없이 운동을 하며 끊임없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비웃었고, 결국 오늘도 모두 지쳐서 퇴근했다.
퇴근이라고 해봤자, 마커스 지도하에 운동 1시간을 한 후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는 것.
다음날 새벽 5시에 기상해서 조깅을 한 후 녹색 영양 쉐이크를 먹고 나서 다시 모여야 했다.
“뭐, 이렇게 다들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해도 나쁘지 않지. 영화 찍어서 뭐해. 건강한 신체가 최고잖아.”
“……”
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삼삼오오 모여 잠이 들기 전까지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 사이 마커스는 뒷마당에서 얼음 목욕을 하며 시가를 피웠다.
그제야 비서가 그를 찾았다.
“오늘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입니다. 먼저, 영화 판권 계약을 마친 작품의 리스트…”
워크샵에서는 인터넷과 데이터 사용 금지.
다만 마커스만 예외로 하루에 한 번, 업무를 몰아서 처리했다.
“이 정도면 급한 불은 껐고… 아! 그, 고스트 에이전트라는 분에게도 연락이 왔습니다.”
비서와 중요한 순서로 쳐내고 있는데, 잠깐 한숨을 돌릴겸 화제를 전환시켰다.
“흠, 그래? 한 번 보여줘봐.”
“여깄습니다.”
마커스는 화면을 확인하다가 시가를 뱉을 뻔했다.
[일단 이 원고 함 보시죠. 저한테 크게 빚지는 겁니다. Okay?]“하하하. 여전히 유머러스한 친구야.”
원고의 퀄리티를 의심하진 않았다.
지금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로, 고스트 에이전트의 실력만큼은 업계 탑.
실제로 마커스의 입봉작을 고스트 에이전트가 물어다 줬을 정도로, 그의 안목을 누구보다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 이후로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안부를 묻고, 인맥을 연결해달라고 부탁할 때나 연락했지… 원고를 읽어보라고 먼저 말한 건 진짜 딱 20년만이군.’
참 세월이 빠르다.
그 사이 많은 게 변했다.
적어도 SF 장르에서 최고의 시나리오들은 무조건 자신의 손을 거친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모자라면 자신의 팀을 갈아 넣어서 어지간한 A급 시나리오를 뚝딱(?)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런 워크샵을 매년 하면 좋으련만…’
그러니까 안 그래도 까다로운 마커스의 입맛이 이제는 거의 맞추기 불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어떻게 할까요? 출력해드릴까요?”
“음. 그럴 필요는 없고, TTS 프로그램 준비해주게. 마무리 스트레칭하면서 잠깐 듣지 뭐.”
시간 낭비를 극도로 싫어하지만 옛 정이라는 게 있다.
‘초보 작가의 작품인가? 멸망 후 2만년, 뭐 이딴 식으로 시작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겠지.’
그는 계속 비아냥거리면서 원고의 내용을 들었다.
30분 후.
‘어?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은데 계속 들을 수밖에 없는데??’
1시간 후.
“뭐야? 어디 갔어?? 이거 빨리 출력해서 가져와!!”
이미 마무리 운동 따위는 오래전에 잊었다.
그는 비서를 다그쳐 「Beyond Perfect」의 원고를 받았다.
신체의 건강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는 수면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데, 오늘은 아예 책상 앞에 앉았다.
‘조금만 더 읽어보자.’
“……”
결국 다음날 새벽, 단체 조깅 시간이 될 때까지 마커스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안 가십니까?”
작가진이 와서 그를 찾기 전까진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누군가가 마커스를 흔들고 나서야 그의 정신이 돌아왔다.
“아아. 왔나? 다들 일단 거실로 모이라고 해주게. 함께 검토할 작품이 있다.”
“네?”
지금까지 라이더 사단으로 일한지 최소 10년, 오래된 몇몇은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이들이기에 마커스의 돌발 행동에 다들 당황했다.
막내는 이미 지시를 받아 「Beyond Perfect」의 원고를 복사해 배부했다.
“차기작은 이 작품으로 정했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좀 뜯어고쳐야겠지만, 어쩌면 내 두 번째 작품을 뛰어넘는 역작을 만들어낼 지도.”
“……!”
이미 부와 명예를 다 얻은 마커스이기에, 결국 자기 만족도가 가장 중요한 그였다.
흥행 성적과 작품성 모두, 과거의 영광을 뛰어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기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영혼까지 갈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작품을 선택했다니?
다들 호기심에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겼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단번에 완독한 이들은 온몸에 털이 쭈뼛 서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납득했다.
‘소시오패스의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수준의 작품이다.’
과연 마커스는 차기작을 확정했다.
“바로 원작 작가와 미팅을 잡아줘. 아직 출간 전이니, 내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전달해줘도 좋고. 출간 일정을 늦춰서 영화 개봉에 맞추던가… 아님 그 이후로 잡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미 「Beyond Perfect」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쳤다.
그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계 최고의 흥행 감독이자, SF 감독의 절대자 마커스 라이더.
과거 자신이 썼던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거나, 직접 시나리오를 제작해 영화화 했다면… 최초로 다른 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겠다고 결단을 내렸다.
무려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을 연출하기 위해.
마커스가 어떤 무리한 조건을 내걸어도, 작가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천운이었다.
말 그대로 SF 소설계의 파워볼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그런데…
며칠 후 비서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음… 고스트 에이전트를 통해 들은 작가분의 말씀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왜? 소설을 먼저 내고 싶대? 영화 제작 될 때까지 그거 2~3년을 못 기다리나… 홍보 효과가 상상을 초월할 텐데…”
“그게 아니라… 작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영화화를 추진할 단계가 아니라서 미팅은 거절하셨고, 추후에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연락을 주시겠다고…”
“…뭐???”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이후 다양한 방면으로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 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하하하… 재밌는 친구야. 아~주 재밌는 친구야.”
보통 감독이라면 그대로 접고, 다른 프로젝트를 알아보겠으나… 마커스는 보통 감독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걸 단 한 번도 이뤄보지 못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마커스는 워크샵 일정을 곧바로 마무리하고, 자신의 전용기로 이동했다.
“바로 LA로 가지. 고스트 에이전트한테 바로 작가의 정확한 위치 확인하고.”
*
‘오늘이… 올림픽보다 더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작가님… 피트가 더 좋아지셨습니다. 턱시도 모델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나는 피셔 형제 중에서 프로덕션 매니저를 맡고 있는 데이비드를 만나, ‘오늘’을 철저하게 준비했다.
간단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미리 몸에 맞춘 턱시도를 착장.
주로 운동복만 입고 살다가, 격식이 있는 옷을 차려 입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작가님 아무래 생각해도 액션 영화 주연… 아니다. 악역으로 출연하셔야겠습니다. 와, 분위기가… 누구 한 명 담그러 가시는 것 같은… 아, 죄송합니다. 제가 또 무슨 말을… 하하.”
“……”
“시간에 맞춰 루나의 리무진이 작가님을 픽업할 겁니다. 그럼 이따 차이니즈 극장에서 뵙겟습니다.”
LA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차이니즈 극장.
무려 1927년에 개관해 헐리우드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박물관 같은 장소라고 할 수 있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개봉 시사회가 진행되는 곳이었다.
그것도 바로 「착한 사람」의 개봉 시사회.
홍보를 위해 피셔 감독은 물론, 주조연들이 모두 모일 예정이며, 피셔 감독과 친분이 있는 A급 배우들까지 자리를 빛내줄 예정이었다.
“……”
물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를 긴장하게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부분이었다.
그동안 올림픽 일정 때문에 「착한 사람」의 편집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최근 한 달은 내가 힐링이 꼭 필요했기 때문에 대외적인 활동을 아예 끊었던 상태였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 역시 「착한 사람」의 풀버전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는 뜻.
‘워낙 피셔 감독님의 연출력이 뛰어나시니… 걱정할 건 없겠지만.’
나는 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첫 영화를 볼 생각에 하루 종일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처음 참석한 개봉 시사회는 완전 혼란의 도가니가 펼쳐졌다.
미국 피지컬 천재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