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2
12
‘이게 미식축구인가?’
나는 처음 해보는 미식축구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퍼스트 다운!”
미식축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전쟁에 가까운 형태를 띄고 있다.
공격진은 수비진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공격진의 침투를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는 가장 덩치가 좋고 힘이 센 이들이 라인을 형성한다.
어떻게든 쿼터백을 압박해서 패스할 시간을 빼앗는 것이 수비진 라인의 목표.
반대로 공격진 라인은 최대한 수비진을 밀어내면서 쿼터백에게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라인맨들이 어렵게 벌어놓은 시간 동안, 공격진의 리시버들은 수비진의 영역을 침투해 치열한 공간 쟁탈전을 벌인다.
모든 공격의 시작을 다루는 쿼터백은 3~4초만에 전황을 정확하게 읽고, 공을 누구에게 패스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대런 로저스는 원래 굉장히 느긋하게 상황을 살피며 정확한 패스를 던지기로 유명했다.
“세컨드 다운!”
그런데 경기가 진행될수록 패스 실패가 많아졌다.
공격진 라인이 불안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잠식된 모양.
나에게 당한 태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불안하기 시작하면 머리가 새하얘져서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지.’
“써드 다운!”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대런이 러닝백에게 공을 건네주는 러쉬(Rush: 공을 들고 정면으로 수비진의 라인을 공략하는 방식.) 플레이를 펼쳤다.
“우오오오! 감히 이 웨이드 존스를 뚫고 가려고? 그럼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
하지만 웨이드가 들어오면서 한층 탄탄해진 라인을 돌파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러닝백은 2야드도 채 앞으로 가지 못하고 웨이드에게 깔렸다.
미식축구는 4번의 공격 턴을 통해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하면, 공수가 전환되는 방식.
주전 팀은 어쩔 수 없이 4번째 공격에 공을 멀리 찰 수밖에 없었다.
후보생 팀이 터치다운 존에서 최대한 멀리 시작하면, 득점권에 들어오기 전에 턴오버가 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자자, 이제 공수 교대다. 공격팀은 얼른 필드로!”
코치의 지시에 따라 팀이 움직인다. 물론 나랑 웨이드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공격이 더 재밌는지, 수비가 더 재밌는지 잘 모르겠네.’
“헛, 헛, 하이크!”
나는 공을 받아서 공수의 흐름을 살폈다.
미식축구에 재능이 꽤 있는지, 굳이 모든 사람을 보지 않아도 대충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어쨌든 모든 선수는 주어진 역할이 있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는 경로가 제한되어 있기 마련.
눈으로 보지 않아도 상상이 가니, 나의 플레이는 훨씬 간결해졌다.
“미친, 저런 공을 누가 받아!”
“저 새낀 학습이 안 되나?”
무려 두 명의 수비진이 웨이드에게 따라붙었지만, 미세한 틈을 공략해 공을 힘껏 던졌다.
못해도 75야드 이상 되는 거리. 이미 두 번은 실패한 장거리 패스였기에 주전 팀은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애초에 웨이드에게 따라붙은 코너백 중 하나가 노스캘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이었으니까.
“……?!”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와 점점 합이 잘 맞게 된 웨이드는 감각적으로 패스 경로를 읽었고, 마지막 순간 온몸을 띄우면서까지 간신히 공을 받아냈다.
“터치다운!!”
[후보생 팀 13 vs 주전 팀 21]‘나이스!’
웨이드는 양쪽 팔에 힘을 주어 근육을 자랑했고, 나는 소소하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맛에 쿼터백 하지.
경기는 이제부터 시작 아닐까?
*
“……”
후보생을 돕는 몇몇 코치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대부분 관중석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선수들이 좀 작아보이긴 하지만, 필드 전체가 훤히 보여서 경기의 흐름을 파악하긴 좋은 위치였다.
“……!”
“……?!”
진행되는 플레이 한 번 한 번에 코치진 몇 명이 움찔했지만, 아무도 감탄사나 탄식을 내뱉지는 않았다.
중앙에 앉아 있는 헤드 코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그는 민머리 뒤통수가 새빨갛게 물든 것을 보고 다들 눈치만 봤다.
‘안 그래도 다혈질인 사람이, 저러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거 아냐?’
물론 차마 진정하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
실제로 헤드 코치는 후반전이 시작되고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저런 놈들을 주전이라고 데리고 있다니…’
마음 같아서는 전부 갈아치우고 싶었다.
분명 주전 측 전력이 훨씬 강하다. 어쨌든 대부분 갓 중학교 졸업한 후보생들이다. 날고 긴다해도 중학생 vs 고등학생 미식축구팀은 천지차이.
그런데 점수는 어느새 [후보생 팀 20 vs 주전 팀 21].
후보생 팀의 키커가 필드골을 놓쳐서 1점이 모자란 거지, 터치다운 횟수는 똑같이 3회씩이다.
‘차분하게 훈련받은 대로 전술을 펼치면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데…’
그게 가장 한심했다. 오로지 로한 한 명 때문에 멘탈이 털려서 전술 이행능력이 떨어졌다. 반면 후보생 팀은 코치진이 붙어서 일일이 지시를 해주니 기량 차이를 전술로 극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순간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그동안의 훈련을 상기하는 것이 주장의 역할이거늘.’
오클랜드 고교 역사상 2학년이 주장을 맡은 적이 없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비교적 미성숙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4학년이 주장을 맡는데, 대런 로저스는 1학년 때 압도적인 실력으로 쿼터백으로 발탁되며 자연스럽게 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헤드 코치도 대런 로저스만큼은 무결점 플레이어로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더 뼈아팠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패배가 확실한 순간에서도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였기에 팀이 받는 영향도 만만치 않았다.
‘충격이 크겠지.’
퍽!
“…네 번째 쌕을 당한 건가…?”
대런은 상황판단이 빠른 편이라, 보통 수비진에게 태클이 걸릴만큼 시간을 끌지 않았다. 정상급 팀과의 경기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경기에 한 번 태클을 당할까 말까?
그런데 오늘만 4번 당했고, 점점 강도가 강해지면서 부상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후보생들과의 모의 경기가 이렇게까지 살벌해질줄이야.’
주전 팀의 자존심이 걸린만큼 대런을 빼지도 못한다. 그랬다가는 선수들이 자신을 평생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털고 일어나기를 기대할 수밖에…’
헤드 코치는 마음속으로 대런을 열심히 응원했다.
물론 그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기 10초 전.
“이 개자식이! 니가 그러고도 주전이고 주장이냐!!! 경기가 끝나기만 해봐라. 장식으로 달고 있는 네 머리통을 갈아서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마셔버릴테니까!!”
“코, 코치님? 아직 하, 학생입니다.”
“오호라 그래서 네가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 이거군. 당장 이리 텨 와라.”
“…잡아! 헤드 코치님 눈 뒤집혀지셨어!”
*
“오, 살벌한데?”
점수가 1점 차가 되자, 주전 선수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치 자신의 목숨이 달린 일인 것처럼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후보생들도 체력적인 한계라 부상자가 속출했다. 코치진들이 직접 나서서 양 팀을 뜯어말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최후의 1분.
나와 웨이드가 눈빛을 교환했다.
“역시, 나를 성장시킬 영혼의 라이벌. 뜻이 통했군.”
“……”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이런 상황일수록 더욱 피가 끓었다. 상대가 아등바등 발악할수록 패배했을 때의 절망감을 보고 싶었다. 비웃어주고 덧난 상처에 소금을 뿌리…
‘잠깐… 로한. 그건 좀 너무 나간 것 같은데?’
어쨌든 우리 둘 다 이런 상황일지라도 반드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통했다.
“세컨드 다운!”
우리 공격진은 서둘러서 진형을 맞췄다.
남은 시간은 45초. 터치다운 존까지 50야드. 공격은 두 번의 기회가 남았다.
모든 상황이 불리했지만, 1점 차이밖에 안 나기에 모두 마지막 힘까지 쥐어짰다.
‘최소 필드골이 가능한 위치까지 전진해야 한다.’
미식축구의 득점 방법은 터치다운만 있는 게 아니다.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할 수 있다면 골대 안으로 공을 차서 3점이라도 노려볼 수 있었다.
‘우리 후보생 키커는 최소 25야드까지는 접근을 해야 8~90% 확률로 필드골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했던가?’
두 번의 기회 안에 25야드(23m)는 전진해야 한다는 뜻.
“헛! 헛! 하이크!”
일단 나는 바로 공을 받아서 웨이드에게 건네주었다.
웨이드가 여전한 힘으로 수비진을 밀어낸다.
그의 러쉬로 10야드 이상 전진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 한 번 허점을 노려봤는데, 주전 팀 한 명 한 명이 필사적이라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써드 다운!”
결국 5야드도 못 간 채 다운됐다. 이제 남은 기회는 딱 한 번. 경기 종료까지 25초.
키커가 창백한 얼굴로 몸을 풀고 있었다.
“60야드 필드골은 대학에서도 잘 안 나오는데…”
우리는 45야드 선까지는 도달했지만, 최전선은 라인맨이 서고 키커는 보통 거기서 18야드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공을 차게 된다. 그러니까 45+18, 최소 60야드는 차야 득점 가능성이 생기는 상황.
“선수라는 새끼가 자신감이 그 정도밖에 없으면 그냥 벤치나 지켜.”
“……!”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나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물은 엎질러졌고, 키커는 잘 됐다며 황급히 필드를 벗어났다.
“…너, 공도 찰 줄 알아?”
‘그럴 리가.’
하지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나도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우리 팀을 정렬 시켰다.
“뭐야? 키커는 어디다 버려두고…”
“설마 이대로 터치다운을 노리려고??”
“웃기고 자빠졌네. 마지막까지 마음에 안 든다니까.”
주전 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 않고 우리는 마지막 플레이를 준비했다.
“어… 저 새끼들 찬다? 도대체 누가??”
전담 키커가 없었지만 포메이션 자체는 필드골을 노리는 형태. 주전들은 어쨌든 들소 떼처럼 달려들며 저지하려 했지만… 내가 조금 더 빨랐을 뿐이다.
퍼엉!
대포처럼 쏘아지는 공.
“왜 또 쟤야??”
주전 중 한 명이 허탈한 얼굴로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지켜봤다. 아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선수와 관중들이 조용히 숨죽였다.
팅!
놀랍게도 내가 찬 공은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맞고 안으로 들어갔다.
최종 점수 [후보생 팀 23 : 주전 팀 21]
결국 우리가 승리했다!
“우오오오!! 웨이드 존스의 전설은 시작됐다!!”
어째서인지 웨이드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무도 그를 비웃지 않았다.
– 아니… 쿼터백 맞아? 도대체 몇 개의 포지션을 혼자 다 해먹는 거야.
– 이 정도면 짐싸야 할 놈들 한 둘이 아니겠는데?? 쿼터백, 디펜시브 엔드, 키커… 다 꺼지라고 해
– 올 시즌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러다 우승하는 거 아냐?!!
– 로한! 로한! 로한!
“……”
나는 경기장 한 가운데 서서 조용히 주변을 둘러봤다.
나를 욕하는 사람, 칭찬하는 사람, 시기하는 사람, 별 생각이 없는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공통점이 딱 한 가지 있었다.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군.’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건강한 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
‘내가 새로운 작가를 영입한 게 얼마 만이지?’
사이먼하퍼의 치프 에디터, 로렐라이 콜린스는 뉴욕에서 직접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며칠간 [미제 7]의 작가와 이메일을 주고받아 약속을 잡게 되었다.
보통 이름 있는 기성 작가만 상대하다가, 신인을 발굴하려니 낯설면서도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예전에는 거의 하루건너 하루 비행기를 타곤 했지.’
한창 열정 있던 시기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외국에도 출장을 가곤 했다.
지금이야 이미 자신을 신뢰하는 유명 작가들과의 작업이 줄지어 있으니, 그럴 필요성이 없었지만 [미제 7]은 그런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어쨌든 어떤 작가인지는 몰라도, 아주 큰 행운을 잡았어. 내가 어떻게든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로 성장시킬 거니까.’
그녀는 야망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치프 에디터를 맡고 있는 로렐라이 콜린스입니다.”
일단 작가를 만나자마자 작품을 칭찬했다. 작가의 재능을 칭송했다. 신인 작가일수록 칭찬에 약하니,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긁어주었다.
다듬을 부분은 계약을 진행한 이후 걸고 넘어져도 늦지 않았다.
‘아직 영업 실력이 죽지 않았어.’
로렐라이는 스스로 만족스러울 정도로 매끄럽게 일을 진행시켰다.
작가는 순순히 계약서를 건네받고 검토했다. 그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사이먼하퍼와는 계약하지 않겠습니다. 멀리까지 와주셨는데 좋은 소식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네?”
로렐라이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도대체 왜??’
미국 피지컬 천재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