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1
131
이벤트 매치 당일.
차악 차악-
나는 조지 코치에게서 래핑을 받고 있었다.
글로브까지 착용하자 주심이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리고 그가 테이프 위에 싸인함으로써 모든 준비 완료.
“WBC 복싱룰을 따르니 엄격하게 지키도록.”
주심은 단단히 주의를 준 후 대기실을 나갔다.
그제야 소렐리 집안사람들의 말문이 트였다.
“농구를 해서 그런지 캐치웨이트에서도 기량 저하는 없네?”
“이제는 그냥 제 평체 같아요.”
트레버 퓨리는 SFC 미들급 챔피언.
185lbs(=84kg)의 제한이 걸려 있는 체급인데, 복싱보다 종합격투기가 훨씬 감량이 심하다는 걸 고려하면 평체가 최소 195lbs 대라고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아무리 육상에 전념할 때라고는 하지만, 올림픽시기만 해도 200lb를 넘었던 나.
진짜 열심히 먹고 웨이트도 열심히 했으나, 농구 시즌을 소화하느라 결국 195lbs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가 이벤트 매치에서 합의를 본 캐치 웨이트가 195lbs.
둘 다 평체에서 맞붙기 때문에 공평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근데 겉으로 보여지는 수치상으로는 아무래도 트레버 퓨리가 더 양보를 했기 때문에, 다들 핸디캡을 갖고 뛴다고 생각하더라.”
“아무래도 여론이 저에게 불리하니까… 뭐든 안 좋아보이겠죠.”
“대중은 쉽게 휩쓸리는 편이니까, 너무 신경쓰지 마라. 좋은 경기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그럼요. 결국 잘하면 그만이잖아요.”
좀 생소한 경험이기는 했다.
스포츠를 시작한 시점부터 빌런의 이미지로 오해(?)를 받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착한(?) 빌런의 포지션이었다.
밉지만은 않은 악동 스타일이랄까?
하지만 트레버 퓨리가 워낙 영악하게 홍보를 해서 그런지, 이번 이벤트 매치는 트레버 퓨리를 응원하는 팬층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지오반니 관장님은 그게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흐름이 그렇다. 정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아무런 외부의 압력 없이 꿋꿋이 오르기만 하면 된다.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응원하는 사람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그 순간부터 추락하기를 바라는 세력이 생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온 우주의 기운이 정상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
“챔피언은 바로 그런 자리다.”
그런 생태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건지, 트레버 퓨리는 자신의 악명을 벗어내기 위해서 나를 계속 걸고 넘어진 것이다.
우리 둘이 붙으면 적어도 그의 승리를 저절로 바라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네 컨디션이나 몸 상태만 봐도, 그동안 꾸준히 복싱 훈련을 거쳤다는 걸 우리는 한 눈에 알 수 있지만… 이 시대의 대중은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세대가 아닌가.”
트레버 퓨리가 열심히 자신의 훈련 영상을 올리고, 피땀을 흘리는 모습을 대중에게 공개한 것처럼… 나도 그랬어야 했다는 지오반니 관장님 식의 책망이었다.
나는 그냥 웃었다.
“콜라를 너무 흔들면 병뚜껑을 열었을 때 폭발하잖아요. 어차피 콜라가 흔들린 상황이라면, 김이라도 조금 빼야죠.”
조지 코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했다.
“어차피 정상에 오래 있다보면 대중들이 돌아서는 시기가 올 거… 더 곪아터지기 전에 먼저 그림을 만들었다?”
“조금은 그런 의도가 있었지만, 트레버가 더 신이 나서 열심히 놀아나준 덕택도 크죠.”
“뭐, 나쁘지 않은 전략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쩌려고? 트레버 퓨리는 몰라도 대중은 네가 원하는 대로 놀아나주지 않을 거다.”
“대중의 뜻까지 제가 컨트롤한다는 건 말도 안 되죠. 전 그냥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
조지 코치는 나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지오반니 관장만 ‘설마?’라는 눈으로 나를 힐끔 쳐다볼 뿐.
“무슨 생각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몸조심하고. 네 농구 코치가 얼마나 전화를 해대는지… 아예 차단해버렸다.”
하버드의 스포츠팀이 아무리 각 선수의 선택권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라지만, 사실 시즌 중 이런 이벤트 매치를 허락해주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
다만 애초에 하버드 입학 자체를 학업으로 뚫었고, 타 스포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약속을 받고 들어온 것이라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
그나마 부스터들이 어떻게든 이번 이벤트 매치를 막기 위해서 돈으로라도 매수하려고 했지만, 이번 이벤트 매치를 통해 얻을 내 추정 수익을 말해주자 조용히 사라졌다.
“그럼, 가봅시다.”
드디어 입장 시간.
관장님과 코치를 비롯해, 체육관 선수들과 함께 당당히 걸어 나갔다.
*
[드디어 로한과 트레버의 슈퍼 매치가 진행되네요. 아쉽게도 종합격투기가 아닌 복싱 룰로 진행이 되지만, 그래도 승부를 알 수 없는 박빙의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실제 도박 사이트들의 승률을 보면 평균적으로 50:50. 반반으로 예측하는 곳이 많죠. 아무래도 트레버가 복싱을 베이스로 하는 MMA 선수라서 높게 평가하는 모양입니다.] [특히 투기 종목에서 트레버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5번의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챔피언이지만, 로한은 아직도 자신의 입지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라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토니 로이스 선수가 재조명을 받지만, 어쨌든 올림픽 결승전에서 신인에 가까운 선수와 장기전을 펼치기도 했고… 신념을 이유로 대기는 했으나, 어쨌든 카스트로를 계속 피하고 있어서 복싱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거든요. 실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니냐.] [그런 상황에서 트레버와의 슈퍼 매치가 성사되었죠. 비록 SFC 선수이긴 하지만, 챔피언은 챔피언. 로한이 생각보다 고전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맞아요! 로한이 하드 펀쳐이고 풋워크가 아주 우수하나, 민첩성에 있어서는 미들급에서 단련된 트레버와는 비교하기 힘듭니다. 경험이 많아서 돌발 상황도 쉽게 대처하고, 상대의 리듬을 망가뜨리는 변칙적인 플레이를 즐겨하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갈수록 로한 선수는 정신도 못 차릴 겁니다.]경기의 중계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여론이 비슷했다.
아무리 이벤트 매치라지만,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로한에 대한 괘씸죄도 더 해져서 그런 분위기가 팽배했다.
링 위에 올라온 트레버도 그런 기류를 정확하게 읽고 거들먹거렸다.
“널 여기까지 끌고 오기 위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심력을 쏟고, 시간을 낭비했는지 모를 거다.”
로한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간단하게 스트레칭만 했다.
“고생했어. 대신 빨리 끝내줄게.”
“……”
음성이 들어가진 않았으나, 트레버의 똥씹은 표정이 클로즈업 되었다.
[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분위기가 과열됩니다. 듣기로는 로한 선수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트레쉬 토크에서는 따라올 상대가 없다고 하죠?] [아주 유명합니다.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굉장히 재치 있게 받아치고, 사람 속을 긁을 줄 안다고… 아마 심리전에서 이기고 들어가기 때문에 승부도 더 쉽게 나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말씀하시는 바로 그 순간! 경기가 시작됩니다. 확실히 트레버는 빠른 풋워크와 민첩한 움직임을 무기로 삼은 모양이네요. 아웃복싱을 하며 굉장히 현란하게 무빙합니다.] [로한 선수는 머리가 복잡하겠어요. 로한 선수도 체력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지만, 미들급에서, 그것도 체력소모가 극심한 종합격투기판에서 활동한 트레버를 상대로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한 선수는 분명 강한 펀치가 핵심 전력이니,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고 할텐데… 트레버는 이미 그런 노림수를 꿰뚫고 있는 모양이에요. 절대 거리를 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생각보다 복싱에 잘 적응한 모습이죠?] [원래 고등학교 때까지만해도 복싱 데뷔를 준비했으니까요. 다만 복싱이 점점 부진하고, 종합 격투기의 시대가 올거라고 예견해서 일찌감치 뛰어든 사례입니다.] [트레버가 아직 SFC 소속이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차라리 복싱 라이센스를 따서 정식 타이틀 방어전을 치렀다면, 이번 경기가 훨씬 흥미진진했을텐데…]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분명 화끈한 경기가 펼쳐질테니 두고 보…]콰 앙 – !
[…지금 무슨??!]순간 중계자들의 말이 뚝 멈췄다.
관중들도 땅이 무너지는 듯한 커다란 충격을 느낌과 동시에 얼어붙었다.
수만 명이 모인 경기장.
아무도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카메라맨도 본분을 잊었다.
바쁘게 관중들의 리액션, 중계자의 표정, 그리고 로한의 얼굴을 번갈아 가면서 비춰줘야 할 여러명의 카메라맨이 모두 경기장 한가운데만 동시에 찍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다.
그런 이질적인 환경속에서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은 딱 한 명.
다름 아닌 트레버 퓨리였다.
새우처럼 등이 굽은 채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초라한 모습.
반쯤 의식을 잃고,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뒤늦게 주심의 신호에 따라 트레버 퓨리의 코너측이 경기장에 난입했고, 의료진까지 달려 들었다.
주심은 진즉에 경기 종료를 선언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 둘이 살짝 가까워진 거만 봤어. 그러다 갑자기 쓰러져??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제대로 본 사람도 없었다.
다행히 슬로우모션으로 다시 영상이 나가고 있었다.
그걸 본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 뭐야? 트레버 퓨리 미친 거 아님? 자기가 가까이 다가가서 처맞는데?
– 그냥 나 여기 있으니 함 때려봐라, 도발하는 건가? 로한을 상대로??
– 열심히 준비하길래 기대했는데… 이게 뭐임? 이거 짜고 하는 거 아냐? 돈 벌라고??
대부분의 라이트팬들은 허무한 반응이었다.
적지않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역대급 슈퍼 매치를 보러왔더니, 경기 시작 10초만에 끝나버렸다.
반면 헤비팬들은 두 번 세 번 돌려주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말없이 지켜보고 나서야 입을 뗐다.
– 지금 저 짧은 시간 안에 수싸움을 몇 번 하는 거야?
– 트레버가 먼저 뒤로 빠질 듯 발을 움직여, 로한의 진입을 유도한 거 맞지?
– 가드도 살짝 내린 게, 가능하면 오른쪽 훅을 때리도록 도발한 것 같아.
– 맞는 듯. 트레버가 언제든 카운터 넣으려고 이미 왼쪽 주먹이 준비하고 있잖아.
– 아주 짧은 찰나라서 실제로는 못봤는데, 영상에서보니까 로한도 넘어간 듯 했어. 몸도 앞쪽으로 기울이고 주먹이 나가고 있잖아.
– 트레버는 자신의 계획이 맞아떨어진 게 좋아서 벌써 웃고 있어. 카운터를 뻗으면서.
–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로한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저게 사람의 움직임이야?
분명 트레버의 함정에 빠져 로한이 카운터를 얻어맞는 구도였다.
그런데 영상으로 딱 두 프레임. 사람의 인지 능력으로는 따라가기도 힘든 찰나의 시간동안 구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어느새 트레버의 카운터를 빗겨내고, 로한의 강력한 펀치가 정확하게 그의 턱을 적중했다.
– …죽은 거 아니야? 얼마나 세게 맞았으면 온 몸의 땀이 사방으로 퍼져?
슬로우모션이라 더 적나라하게 보였다.
로한의 주먹이 트레버의 턱에 강타하는 그 순간, 마치 물에 바위를 떨어뜨린 것처럼 안면에 거대한 파동이 일더니, 전신에서 땀이 튕겨져 나갔다.
그것도 모자라 의식을 잃고 바닥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트레버가 밟힌 지렁이처럼 보였다.
– 로한… 복싱 챔피언은 챔피언이구나.
과연 헤비팬들은 그 안에 담긴 치열한 수싸움을 읽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
가장 가까이서 경기를 지켜봤던 지오반니 관장을 비롯해 상대측 코너는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너무 높은 차원의 복싱을 직관한 나머지, 두려움과 경외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진짜다.’
이제 겨우 18살.
어쩌면 복싱판에서 다시는 없을 인재를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를 스쳤다.
*
“……”
차마 직관하러 가지는 못했지만,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던 J.P. 크롬웰.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번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WBC측에 건내준 지원금은 물론 마케팅비까지 적지 않은 돈을 투자했다.
그 모든 노력이 10초만에 증발해버렸다.
‘이쯤이면 인정해줘야겠군.’
비록 돌아섰으나, 아직 로한이 자신의 손주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그런 너그러운 관용은 자신의 왕국에 위협이 없을 때나 존재하는 것.
이제는 직접 개입할 때가 되었다.
*
“뭐야? 연락도 없이 왔어?”
항상 여유롭다 못해 조금은 거만하기까지한 내 스포츠 에이전트 지미가 웃음기 싹 뺀 얼굴로 내 기숙사를 찾았다.
“이벤트 매치가 끝나고…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
미국 피지컬 천재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