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35
135
[썸녀: 그게 중요해?]머릿속에 대학 농구팀을 분석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나는 순간 그녀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전생의 나는 어쩔 수 없이 모쏠이었지, 적어도 사람 관계를 읽지 못할 정도의 쑥맥은 아니었다.
‘재밌네. 역시 미국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장난을 좀 치기로 했다.
[나: 중요하지. 안 그래도 토너먼트 준비를 위해서 자료를 검토할 필요가 생겼거든. 화면이 크고 화질이 좋을수록 좋아.] [썸녀: ……] [나: 없어도 괜찮아. 도서관에서 방을 빌리거나, 학교서 티비를 빌리면 기숙사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그러자 그녀에게서 칼 답장이 왔다.
[썸녀: …우리집에 따로 영화관도 있으니까, 그냥 와.]*
가족과 원래 1주일에 한 번은 함께 화상통화를 했다.
되도록 자주 돌아가려고 하지만, 동부에서 서부로 왔다갔다하는 건 하버드생으로써 부담스러웠다.
당연히 돈 문제라기보단… 시간 문제. 어쨌든 농구 원정 경기도 뛰어야 하고, 작가 활동으로도 여러 시간을 소모하기 때문에 일정을 전략적으로 짜야했다.
– 니가 썸을 탄다고?
보통 부모님이랑만 통화를 하는 편인데, 내가 썸을 탄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는지 오늘은 얼굴을 비쳤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동안 이성에 너무 관심이 없긴 했어.”
전신마비의 환자로 살다가 갑자기 로한의 몸에 빙의를 하니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그동안은 미성년자라는 심리적인 부담감도 아예 떨치기 쉽지 않았고.
– 재미도 없고, 공부랑 운동밖에 모르는 사람이랑 도대체 누가???
“…아니, 나처럼 유머러스한 사람이 어딨다고??? 이런 매도는 태어나서 처음 당해보네. 안 그래요 엄마, 아버지??”
– 에이, 우리 아들… 다 잘하려고 하면 양심에 털 난 거지. 하나 정도는 못 해도 돼. 인간미 있어.
– 크흠…
“…여러분?”
나는 진심으로 상처를 받고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 들어나보자. 어떻게 만났는데?
“1학기 첫 주부터라…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 긴데…?”
– 뭐야! 6개월 가까이 숨겼다고? 크리스마스 때도 아무말 없이??
어째서인지 리아는 내가 숨겼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는 모양이었지만, 그런 건 내게 아무 의미 없었다.
“간단하게만 요약해줄게.”
1학기가 시작되었을 때였다.
내가 하버드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수준.
노벨상 수상자나 그에 준하는 권위자들에게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열심히 수업을 골랐다.
‘그때 좀 무리하긴 했지.’
일단 학기 시작 전부터 각 수업과 교수를 평가하는 웹사이트를 싹 뒤져서 관심이 있는 과목을 추렸다.
거기에 수강 신청 변동 기간 동안 현실적으로 한 번씩은 들어볼 수 있는 과목 수가 대략 4~50개.
아침 일찍서부터 저녁 늦게까지 수많은 수업을 듣는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학교 규정상 6개 과목밖에 못 듣다니. 내가 꼭 전국 토너먼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총장이랑 네고를 쳐야지.’
‘그녀’를 만나게 된 건 바로 강제로 과목을 쳐내야만 했던 불합리한 탄압의 시기였다.
‘첫 주부터 나랑 겹치는 수업이 꽤 있긴 했어.’
딱히 진짜 예뻐서가 아니라, 내가 완벽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고, 그녀의 외모가 또 내 심상 세계를 자극해 저절로 기록될 정도라 어쩔 수 없이 기억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 순간에 1학기의 최종 과목 6개를 확정하자, 그녀를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 …설마?
– 너도?
그녀도 나처럼 여러 수업을 들어보고, 마지막에 6개의 과목을 선택했는데, 하필이면 모든 과목이 나랑 겹쳤다.
– 같이 수업 듣고 싶었으면 그냥 말을 하지 그랬어?
그녀의 말에 나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 무슨 소리야. 그냥 수강 신청 기간에 4~50개의 수업을 듣다가 어쩔 수 없이 추리고 추려서 이렇게 시간표를 짠 건데.
– 그 4~50개의 수업 중 나랑 겹치는 과목이 딱 이 여섯 개밖에 없지 않았나?
– ……
심상 세계에서의 기억을 샅샅이 돌이켜보니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 의도(?)는 완전히 달랐다.
– 아니, 반대로 생각해보면 니가 나랑 수업 맞춘 거 아냐?
– 난 이미 일주일 전부터 수업 확정 지었는데? 넌 오늘 마무리했지?
– ……
또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누구한테 말로 져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벌써 두 번이나 말렸다.
– 괜찮아. 다들 나랑 수업 같이 듣고 싶어하니까 그렇게 민망해할 필요 없어. 근데 수업들이 좀 어려운데 괜찮으려나?
그녀의 이름은 엘리 G. 보웬.
미국 최상류층 집안의 금지옥엽이자, 정식 후계 경쟁을 하는 인물 중 하나로 모든 미국 여성들의 워너비 롤 모델로 유명한 이 시대의 아이콘.
특히 패션에 관심이 많아 유행을 선도할 정도로 감각이 있어, 입는 아이템이 모두 업계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이 있다고 들었다.
뭐, 그런 자세한 내막을 몰라도 조상들이 유럽의 전통 깊은 귀족 가문 출신답게 외모도 굉장히 아름답고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서려 있어서 또래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매력의 소유자긴했다.
‘어려운데 괜찮냐고?’
물론 그런 외적인 부분은 내 눈에 전혀 드러오지 않았다.
다만 오랜만에 나의 학구열을 불태우는 그녀의 물음에 나는 더욱 열심히 수업을 듣기로 마음 먹었다.
*
‘걘 무시하고 수업이나 재밌게 잘 들어야지.’
나의 각오는 수강 신청이 마무리된 후 첫 수업부터 물 건너 갔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항상 그녀가 앉아 있었다.
가장 앞줄 정중앙.
이런 부분에 있어서 민감하기 때문에, 모든 좌석 수를 세서 딱 정중앙에 앉는 걸 좋아했다.
사실 그 양옆에 앉아도 크게 다른 점은 없지만, 그냥 내 미신적인 믿음으로 공부가 더 잘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걸 하필이면 엘리가 선점하다니.
허탈한 마음에 내가 가만히 서 있으니까 그녀가 의아한 얼굴로 날 올려봤다.
“왜? 내 옆에 앉고 싶어서? 자.”
“……”
결국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옆에 앉았다.
‘내가 앞으로 최소 10분 먼저 수업에 오든가 해야지.’
안타깝게도 그런 묘책도 먹히지 않았다.
“너… 따로 할 일 없어?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항상 그녀가 먼저 와 있었고, 내 최애 자리는 그녀의 몫이었다.
시간표가 같으니, 마음 먹으면 그녀보다 먼저 올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는 나는 농구 시즌이라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빼먹어야 하는 때도 있고, 훈련 때문에 10분 이상 수업에 일찍 오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아니, 수업 시작하고 나서 간신히 도착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그나마 앞자리 좌석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아… 열심히 뛰어왔는데…’
아마 다들 공감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맨 뒷자리에 앉아야할 때의 박탈감. 수업을 열심히 들어도 왠지 거리 때문에 방청객이 된 것만같은 허망함.
힘없이 터덜터덜 뒤로 걸어가기 시작할 때, 엘리가 날 불러세웠다.
“늦길래 내가 미리 자리 잡아놨어. …앞으로도 맡아줄까?”
“…고마워.”
이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그녀의 옆에 앉게 되었다.
엘리에게서 받은 도움은 그게 시작.
내가 원정 경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업에 빠지면 아이패드로 열심히 노트 정리한 것을 꼬박꼬박 내게 넘겨주었고, 조별 과제가 있으면 꼭 나와 함께 조를 편성해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어차피 교수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눠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녀 덕분에 그럴 필요성도 없었다.
내가 편한 시간에 조별 과제를 도울 수 있도록 그녀가 미리 균등하게 숙제를 나눠준다든가… 수업을 직접 듣지 않고는 알아차릴 수 없는 교수님의 시험 팁 등을 나에게 아낌없이 전해주었다.
“……”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까지 물심양면으로 서포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생소한 기분이었다.
“성가시지 않아? 너 덕분에 시간을 많이 아끼긴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도 내 학점은 잘 챙길 수 있어. 귀찮으면 언제든 그만 둬도 돼.”
“음? 전혀. 어차피 노트 정리는 나도 평소 하는 대로 계속 하는 거고, 조별과제는 너처럼 실력이 확실한 조원을 데리고 하는 게 낫지. 일정이야 맞추면 되니까. 그리고…”
“음?”
“너 덕분에 날 귀찮게 하는 남자들이 전부 사라졌어.”
“아?”
평소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확실히 항상 남자에 둘러싸여 있던 그녀의 주변이 싹 정리가 되었다.
“다들 제풀에 지쳐서 떨어져나간 거 아니야? 내가 딱히 한 게 없는데?”
엘리는 내 말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어째서인지 사람의 기분을 환기시켜주는 미소였다.
“항상 우리가 함께 수업을 듣고, 조별과제가 있으면 꼭 함께 조를 편성하고. 대화라고는 우리 둘 다 서로만 하잖아.”
“…아.”
“니가 관심이 있어 보이는 여자를 감히 귀찮게 할 만큼 날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나봐.”
“…예쁜 여자에 대한 특정 남자들의 집착을 너무 얕잡아보는 것 같은데?”
“글쎄. 너에 대한 다른 남자들의 두려움을 너무 경시하는 거 아니야?”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딨다고.’
납득하기는 어려운 논리였지만, 어쨌든 결과론적으로는 맞았다.
‘하긴 남자들이 엄청 귀찮게 했겠지. 나랑 엮이면서 주변 정리가 되어 고마운 나머지 나에게 잘해주는 건가?’
어쨌든 손해를 볼 것은 없는 사이였다.
농구 시즌 때문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공부를 그녀 덕에 따라갈 수 있었고, 그녀는 일상생활을 되찾았으니까.
“오늘은 도서관 언제 와?”
“음… 문자로 일정 보내줄게. 요즘 존 킴이랑 스티브 보웬이랑 자주 훈련을 해서.”
“그래.”
서로 편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모든 과목을 같이 듣다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이로 발전했고, 진짜 같이 공부만 하는 사이로 머물렀다.
가끔씩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그녀가 물어볼 뿐. 서로 사적인 대화를 아예 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딱 공부만 하고 떠나는.
‘원래 이런 애인가…?’
스터디버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기가 길었는데, 그의 사촌인 스티브 보웬은 나를 이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놈 취급했다.
“너… 걔가 원래 그런 성격도 아니고, 애초에 그렇게 한가한 애가 아니야. 수업이야 당연히 꼬박꼬박 참가하겠지만, 도서관에서 네가 올 때만 함께 공부한다? 가문의 후계자 수업을 받아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애가?”
“뭐, 평범한 하버드생의 일상을 살아보고 싶겠지. 이때 아니면 할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바쁜 애가 꼬박꼬박 노트 정리해서 바치고, 과제 분담해서 도와주고… 항상 같은 도서관 테이블에서 공부를 한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몇 마디를 덧붙였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식사 시간이 겹치면 도시락도 싸 오던데? 어차피 집안 쉐프가 차려주는 거라 내 몫까지 넉넉하게 챙겨오는 거라고.”
“…아하! 그런데 그냥 플라토닉한 관계고,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이건 니가 이 악물고 모르는 척 하는 거지, 이 정도로 병신일 리가… 웃어?? 웃어?? 지금 나 가지고 논 거냐?”
당연히 가지고 논 거다.
이쯤되면 모쏠인 나라도 의심할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다만 엘리는 진짜 자연스럽게 내 인생에 스며들었고, 딱히 그걸 어떻게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 뿐.
워낙 바쁜 삶을 살다보니, 지금의 관계가 딱 좋았다.
적당한 긴장감.
하지만…
[썸녀: 그게 중요해?]우리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달라진 건, 그녀가 나를 집에 초대한 바로 그 날부터였다.
내가 전국 토너먼트를 준비할 겸, 대학 농구 자료들을 검토하기로 한 바로 그 날.
‘음… 그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지…’
*
나는 별 생각 없이 엘리의 집을 찾았다.
보웬 가문의 본가는 뉴욕의 어딘가이고, 오로지 그녀가 편하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캠퍼스에서 가까운 대저택을 새로 구해줬다고 전해 들었다.
“어서 와.”
항상 조금은 무미건조한 표정의 그녀가, 오늘따라 새초롬한 얼굴로 날 맞았다.
“영화관 준비해놨어.”
“오! 고마워.”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둘 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못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 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