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4
14
나는 돈을 벌어야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의식주를 책임지는 가족에게 너무 감사하지만, 그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마 전생에서부터 생긴 강박관념일 수 있겠다.
‘그런 상황에서 책이 출간되기만을 한없이 기다릴 수 없지.’
그래서 나는 곧바로 알바 자리부터 알아봤다.
‘미국은 많은 고등학생들이 일을 하는구나.’
한국에서도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하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다만 나처럼 보육원 출신이거나, 집안형편이 정말 어렵지 않은 한 공부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야, 나 여름방학부터 영화관에서 일했잖아… 완전 꿀잡이야. 대충 돌아다니면서 쓰레기 비우고, 일 끝나면 영화 공짜로 볼 수 있어.”
“근데 너드들만 일하지 않아? 나 수영장 안전요원 했는데 좀 지루하긴 해도 다른 애들이랑 시시덕거리기 좋았어. 애프터 파티도 많았고.”
“에휴, 거기 다 최저시급 아냐? 차라리 나처럼 배달 앱 종류별로 돌아가면서 시작 보너스 받아가는게 훨 좋음. 4개월 동안 2만불 번 듯.”
어차피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애들이 대부분이라, 어디 가면 일을 편하게 할 수 있더라, 어디 가면 상사가 좋더라.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교환하는 애들이 많았다.
“요즘 근데 알바 경쟁이 너무 치열하지 않아? 페이가 쎄진 건 좋은데, 이 근처는 다 꼴통학교 밖에 없어서 좋은 알바일수록 한 자리에 3~40명씩 지원하더라.”
“특히 여름방학이 심해. 나 어쩔 수 없이 버거 구웠잖아… 때려친지 한 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옷에서 패티 냄새 나는 거 같아.”
“우욱, 꺼져. 어디서 고기 찌든내 나나 했네.”
‘역시 패스트푸드 알바가 가장 기피 직종이구나.’
나는 딱히 친한 아이가 없어서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고 (만약 ‘로한’이랑 친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기피해야 하지 않을까?), 열심히 엿들으면서 정보를 모았다.
지역 사회가 돌아가는 소식은 인터넷보다, 이렇게 직접 돌아다니며 듣는 게 훨씬 도움이 됐다.
‘일단 우리 동네 고딩 알바 1티어는 공공기관인가?’
나는 쉬는 시간, 점심 시간동안 귀동냥한 내용을 핸드폰에 메모했다.
[1티어]장소: 시청, 학교, 도서관 등등
시급: $17+
장점: 업무 강도가 굉장히 낮고, 나중에 대학교 갈 때 가산점이 붙는다. 시간이 남으면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기 좋은 환경이다.
단점: 경쟁률이 가장 치열해서 자격 요건을 까다롭게 본다.
‘와, 17불이면 한화로 2만원 정도 되는데… 인건비가 비싼 동네이긴 하지만 기대 이상이야.’
당연히 1티어부터 공략했다.
공공기관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서, 모집요강을 각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
현재 모집신청이 열려 있는 곳을 싹 뒤져서 11곳 지원했다.
답장이 온 곳은 셋. 그것도 ‘지원해주어서 감사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모집이 마감되었다,’는 형식적인 이메일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순 없어.’
나는 아직 연락이 오지 않은 곳은 일일이 찾아갔다.
“인사담당관을 만나고 싶다고? 약속을 하고 왔니?”
“아뇨. 제가 고등학생 인턴직에 지원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어서 직접 만나 뵙고 싶었어요.”
“음, 니가?”
“네?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다. 이미 뽑혔을 거다. 앞으로 안 찾아와도 된다.”
“……”
전생에 익숙한 일이라, 저런 사람들 표정,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날 차별하는구나.’
흑인 혼혈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워낙 위험한 동네라서 그런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나는 낙담하지 않고 모든 곳을 직접 찾아갔다.
인사관련 직원이 나를 직접 만나준 곳은 딱 하나.
“열심이더구나.”
바로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
무척 점잖게 생긴 사람이었지만, 눈빛이나 말투가 딱딱해서 지금까지 만나온 그 어떤 공공기관 직원보다 꼬장꼬장했다.
‘요즘 따라 조금은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하고.’
표정만 봐서는 분별하기 힘들어도, 그냥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랬다.
“얼마나 근처를 쏘다녔는지, 우리 학교로 직접 확인 전화가 오더군. 로한 킴이 정말 오클랜드 고등학교 학생이고, 성실한 친구냐고.”
“음… 겨우 구직활동을 한걸로 학교에 컴플레인이 들어올 정도인가요?”
“컴플레인이 아니고 신분 확인 및 나름대로의 인성 검사지. 고등학생이 뭐 대단한 이력이 있다고. 재학하는 학교에 전화해서 평판을 물어볼 정도면, 네 모습을 좋게 본 사람이 몇몇 있는 모양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차별을 당하거나, 문전박대를 당한 기억이 대부분이라, 교장 선생님의 말이 의외였다.
“요즘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메시지 하기 바쁘지, 제대로 된 이력서를 내거나 전화를 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지. 직접 찾아와서 정식으로 문의하고, 예의에 어긋나지 않은 점을 높이 사더군.”
“그럼 제게 일자리를 준다는 사람이 있었나요?”
“아니.”
“……”
“그런 표정할 것 없다. 우리 지역에 고등학생이 할 만한 제대로 된 일자리가 몇 개나 있다고. 대부분 내부적으로 해결된다.”
“역시 그렇군요.”
세상사가 다 그렇다. 인맥으로 모든 일이 통한다. 인맥이 없으면 능력이라도 있어야 하고, 능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확인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했지만, 교장 선생님이 제지했다.
“아직 용건이 남았네. 우리 학교 행정 인턴으로 지원했었지?”
“아, 네! 혹시…?”
“당연히 우리도 내정자가 있네.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어려운 학생인데, 성실하고 똘똘해서 행정 직원들이 다 좋아해.”
“……”
“자네 표정으로 욕하는 스타일이었군?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만은.”
내 안의 ‘로한’을 깨어나게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나가려 했다.
“대신 자네를 위해서라면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지. GED 시험 준비 학생 튜터(Tutor: 과외 교사) 어떤가? 우리 학교의 특성상 졸업을 못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데, 시험으로 졸업 자격을 얻게 해주려고.”
“아, 네. 역시 선견지명이 있으십니다. 학생들을 위해주시는 참된 교장 선생님이시군요.”
“…아직 좋아하기는 일러. 신설된 제도라 신청하는 학생이 있고, 실제로 가르치는 시간을 계산해 시급이 지급돼.”
“영업을 열심히 해야겠군요.”
“아~주 열심히 해야겠지. 무려 ‘로한 킴’이 과외를 해주겠다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줄을 서겠나.”
“…아.”
한국에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지. 그게 이 ‘학생 튜터’ 자리에 딱 맞는 표현이었다. 애초에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꼴통학교 + 교내 최고의 문제아에게서 과외를 받을 학생이 있을 가능성은 너무 희박했다.
“이 정도면 아무 쓸모 없는 자리 아닌가요?”
“아니지. 나는 선심 쓰듯 네 편의를 봐준 셈이고, 실질적으로 예산이 나갈 일이 없으니 행정직원들 눈치 볼 일도 없고. 내 입장에선 최고의 정치적 한 수지.”
“……”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나갔다.
*
일단 그래도 정식으로 학생 튜터 등록은 해두었다.
정성스럽게 만든 전단지를 교내 게시판에 게재도 했다.
【과외 안내】
!¡!¡ GED 시험 3개월이면 마스터한다 ¡!¡!
고등학교 수업이 지루하신가요? 4년 내내 다닐 생각하면 토 나오죠? 교장 선생님을 임기도 한~참 남았어요. 이럴 땐 뭐다? GED 시험을 쳐야 한다.
∠( ᐛ 」∠) 공부를 재밌게 배울 수 있는 또래 과외 선생님을 만나보세요!
(づ。◕‿‿◕。)づ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해주세요!
email: [email protected]
(˘︶˘).。.:*♡ 곧 함께 공부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누가 봐도 당장 연락을 하고 싶어할만한 전단지를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연락하지 않았다.
‘일부러 내 이름을 뺐는데? 왜지??’
어쨌든 나는 허울만 1티어 알바를 구했지만, 제대로 된 알바를 위해 2티어(영화관, 슈퍼마켓)는 물론 지원만하면 붙는다는 3티어(패스트푸드) 일자리까지 모조리 지원했다.
“……”
그런데 서류를 통과해도 면접에서 떨어졌다.
‘로한의 악명이 설마 지역 사회에까지 널리 퍼졌을 줄이야.’
상심하지 않고 여기저기 공고가 나면 일일이 매니저를 찾아가서 얼굴 도장을 찍었다. 거절은 전생에서부터 익숙했다.
다행히 아예 성과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로한.”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혼자 먹고 있는데,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통통한 남미 학생이 있었다.
“너, 알바 구한다면서. 사실이야?”
“맞아. 어떻게 알았어?”
“지역 소상공인 커뮤니티가 있어. 서로 돕기 위해서 알바 블랙리스트를 공유하거든.”
“…그리고 그 리스트 안에 내 이름이 있겠네?”
“당연하지. 안 그래도 고등학생은 성실성이 떨어져서 기피하는 분들인데, 그중에서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알바는 피해야지.”
“……”
‘갈 길이 멀구나.’
“단순히 그 이야기를 해주려고 온 건 아니겠지?”
“물론. 정말 알바를 구하고 싶다면, 내가 알선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오! 진짜??”
“업무 강도는 좀 있는 편이지만, 대신 페이도 시간당 20불. 지금 니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중에서는 최고일 거야.”
“20불?? 너, 진짜 좋은 아이구나.”
워낙 고생을 해서 그런지 눈물이 다 나려고 했다.
“대신 조건이 있어.”
“무슨?”
“나… 운동 좀 가르쳐줄래?”
“운동?”
“그, 그래. 많이도 안 바래. 그냥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흐음.”
“그럼 일주일에 하, 한 번! 더 이상은 양보 못해.”
나는 그냥 머릿속에서 시간표를 정리해보고 있었던 건데, 인상이 험악한 것이 처음으로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좋아. 대신 네가 소개해준 일자리에 붙을 시에만 받아주겠어.”
“그거야 당연하지. 근데… 만약 하다가 짤리면 그건 네 탓이니까, 적어도 학기가 끝날 때까진 운동을 가르쳐줘야 해.”
“그 정도는 받아주지.”
“내 이름은 루카스야. 그냥 루카라고 불러.”
“로한. 앞으로 잘 부탁해.”
“무조건 붙을 거니까, 그건 나만 믿어. 대신 너도 약속을 지켜야 해.”
“물론이지.”
우리는 서로 웃으면서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멀지 않아, 나는 어째서 루카가 두 번이나 약속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
[루카: 네가 일할 곳은 이스트몬드 시내에 있는 ‘레드 드래곤’이야. 이미 주인 아저씨랑 말 맞춰놨으니까 월요일 오후 4시에 가보면 돼.]루카는 나의 이력서를 요청하지 않았고, 따로 인터뷰도 없을 거라며 나에게 고용 계약서를 주었다.
[루카: 부모님이 싸인한 고용 계약서 꼭 가져가. 그럼 매주 금요일마다 바로바로 알바비 정산해주실 거야.]‘이게 바로 인맥의 힘인가?’
물론 [레드 드래곤]이 대단한 일자리는 아니었다. 작은 미국식 중국 식당이었고, 따지자면 3티어에 가까운 알바였다.
하지만 지역 블랙리스트에 오른 내가 아무런 검증 절차 없이 바로 채용이 되다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