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5
15
‘잘못 왔나?’
[레드 드래곤]은 낡은 70년대풍의 간판을 단 동네 중국집이었다.오후 네시에 딱 맞춰 도착하니 문은 닫혀 있었다.
‘재료 준비 시간이구나.’
열심히 노크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는데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일단 급한 대로 루카에게 문자를 넣었다.
[나: 도착해서 기다리는 중. 문을 안 열어주시네?] [루카: 혼자 가게 운영하셔서 정신없으실 거야. 잠깐만.]‘혼자 운영하는 가게라.’
문밖으로도 가게의 열악한 상황이 느껴지는 듯했다.
– 쉽지 않을 거야. 근데 너도 알다시피 고등학생은 일단 경력을 쌓아서 신뢰성을 높여야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
굳이 루카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전생에서 뼈저리게 느낀 부분이다.
드르륵 –
“…아?”
그때 갑자기 입구가 열렸다.
오클랜드의 위험 지역에 살면서 험악한 인상의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눈앞의 중년 남성은 뭔가 야생 동물의 느낌이 났다.
‘곰을 눈앞에서 만나면 이렇지 않을까?’
그는 심드렁한 눈으로 나를 내려보고 있었다.
“흠.”
그리고는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루카 소개로 온 로한 킴입니다. 여기, 고용계약서 찾으시는 거죠?”
엄마에게 급하게 서명받은 고용계약서를 건네자 그는 힐끔 쳐다보더니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흠.”
그는 나에게 턱짓을 한 번 한 후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따라오라는 거겠지?’
식당 안은 간판이 주는 낡은 느낌 그대로였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나무 가구들. 분위기가 무척 삭막했다. 액자나 식물이 하나도 없어서 더 그랬다.
‘의외로 깨끗하긴 해.’
당연히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구석구석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다.
“……!”
그를 따라 들어간 주방은 아예 결점이 없었다.
아무리 재료 준비 시간이라고 하지만, 작은 식당의 주방은 금방 전쟁터가 된다고 읽었다.
‘사람은 역시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면 안 돼.’
지금도 얼굴을 마주보기엔 부담스러웠으나, 식당을 쭉 둘러본 이후 경계심이 조금은 줄었다.
“흠.”
“……?”
그는 멀뚱멀뚱 서 있는 나를 잠깐 보다가 앞치마, 고무장갑, 위생모자, 마스크를 차례차례 던져주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자기도 하나씩 착용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적장의 목을 따러 나가는 장수가 갑옷을 착용하듯 비장해보였다.
“흠.”
그는 나에게 설거짓감이 산처럼 쌓여 있는 구석을 가리켰다.
“설거지부터 할게요.”
“흠.”
이번에는 벽에 붙어 있는 영업시간을 가리킨다.
“저녁 오픈 시간인 다섯 시 전까진 다 하라는 말씀이죠?”
“흠.”
그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부터 40분 남았다. 저녁 오픈이 문제가 아니라, 마감 시간까지 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을 해보기도 전에 불평을 하는 건 내 성격에 안 맞아서, 일단 나도 그처럼 무장을 갖췄다.
커다란 냉장고 사이로 비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솔직히 급식 아줌마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곰에게는 비벼보지도 못한다.
“흠.”
‘내 모습을 흡족해하시는 건가?’
내 정신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묵묵히 설거지를 시작했다.
워낙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어디에 그릇을 놔야하는지 한눈에 보였다. 심지어 곳곳에 레이블이 꼼꼼하게 붙어 있어서 오래 헤매지도 않았다.
‘식기 세척기는 없지만, 다행히 건조기가 따로 있구나.’
나는 주인아저씨의 성향을 고려해 깨끗하게 설거지를 했다. 친환경 세제를 적당히 덜어 기름때 위주로 닦았다.
하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일단 한꺼번에 음식물을 버리고, 그다음에 페이퍼타월로 한번씩 닦아냈다.
그리고 커다란 대야 하나를 가져와서 물을 반쯤 채운 후, 세제를 풀었다. 기름때가 심한 그릇을 위주로 그 안에 푹 담갔다.
그 사이 수저나 요리 도구들을 세세하게 닦았다.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일이다보니 지루할 수 있었지만, 정말 더러웠던 그릇이 새하얗게 반짝이는 걸 보면 성취감이 생겼다.
그걸 건조기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을 때마다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흠.”
무아지경에 빠져 설거지를 하니까 정말 40분만에 전부 끝냈다.
주인아저씨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다가와 그릇을 점검했다.
“흠.”
함께 있었던 시간 동안 가장 밝은 “흠,”을 내뱉으셨다. 괜히 나도 뿌듯해서 큰 용기를 내어 시선을 마주쳤다.
“……”
“흠.”
우리 둘 다 금방 고개를 돌렸다.
분위기가 급어색해졌다.
그래도 정적은 오래 가지 않았다. 드디어 가게 오픈 시간이었다.
*
이후 일주일 내내 설거지만 했다.
일종의 타임어택 게임 같았다.
내가 출근하면 점심시간 동안 밀린 설거짓감을 저녁 오픈 전까지 해치워야 했다.
그럼 일단 오픈하면 괜찮냐?
‘아니, 이 작은 가게에 손님이 이렇게 많이 와? 음식은 또 테이블당 왜 이리 많이 시켜?’
오픈하기가 무섭게 손님들이 물밀려 들어오고, 주문이 쌓인다.
주인아저씨는 그럼 굉장한 솜씨로 요리를 하나씩 쳐냈다.
나는 주인아저씨가 쓴 요리도구를 그때그때 씻어야했고, 그게 끝나기가 무섭게 손님들의 테이블을 치우고 다시 설거지를 해야 한다.
알바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보면 된다.
“……”
그래도 나는 묵묵히 설거지했다. 보통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또는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이런 육체적인 노동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내 땀을 흘려 돈을 벌 수 있다는 성취감은 정말 중독적이었다.
특히 옆에서 웍의 불길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나보다 훨씬 열심히 일하는 주인아저씨가 있어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나도 시킨 일만 하지 말고 조금씩 발전을 하는 걸 목표로 하자.’
일주일 남짓이 흐르니까 식당 돌아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일단 설거지를 마스터하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그 시간을 테이블 치우는데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테이블을 깔끔하고 빠르게 치울 수 있을까? 식사하는 손님들을 방해하지 않고.’
소란을 일으키거나, 음식물을 손님들 앞에서 처리하면 불쾌할 수 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일단 테이블 위에 있는 모든 걸 주방으로 옮겨와서 치웠다. 동선이 복잡해져서 번거로워졌지만, 적어도 손님의 입장에서는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식사 하실 수 있었다.
3주차가 되니까 이젠 주방으로 눈이 돌아갔다.
‘진짜 대단해.’
주인아저씨는 철인이었다. 아무리 주문이 많이 들어와도 순서대로 요리하셨다. 페이스가 말리는 법 없이 착착착 진행했다.
‘이러니 혼자서 가게 운영이 되는 거겠지.’
다만 손님이 너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아저씨도 한계에 부딪혔다. 요리를 소홀할 수 없으니, 손님들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구조였다.
그것까지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훌륭한 대처이지만, 아저씨가 괴로워하는 것이 한눈에 보였다. 남들이 보기엔 평소보다 아주 살짝 불쾌한가? 의심이 가는 수준이겠지만, 이제 3주를 함께 한 내 입장에서는 책 읽듯 아저씨의 감정이 훤히 보였다.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흠.”
고민을 하다 말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저씨에게 전염됐는지… 나도 “흠,”하고 말았다.
이런…
*
오클랜드 고교는 전담 사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학기마다 도서관을 관리하는 담당 선생님이 달라지는 방식.
이번 학기 도서관을 덤핑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수학 선생님, 소피아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팍 썼다.
“…또 왔어?”
“아니, 학생을 위해 마련한 도서관을 학생인 내가 쓰겠다는데 너무 눈치 주는 거 아니에요?”
“파릇파릇한 나이에 도서관에서 썩고 있는 청춘을 보니까 내가 다 아쉬워서 그래. 여자 친구 없어? 친구 없어? 왜 항상 여기서 그러니.”
“…네. 그런 거 없어요.”
“……”“그래도 책이 있어서 외롭지 않으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죠.”
“그러니까 더 걱정되는 거 있지. 그리고 요즘 따라 말도 많아지는 것 같다? 내 시답잖은 말은 다 무시하곤 했는데… 투머치토커라면서. 괜찮아?”
“…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런 게 직업병인가.’
알바를 시작하면서부터 [레드 드래곤] 주인아저씨와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보니, 대화가 고파지는 부작용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저 책 좀 추천해주세요.”
“그래. 이번에는 또 뭐니. 미식축구 관련 서적은 이미 싹 대여해갔으니, 이번에는 뭔가 다른 주제에 꽂히셨겠지?”
“…음 네. 이번에는 식당 경영 관련 책들로 골라주세요. 10권이 안 넘어가면, 다른 비즈니스여도 좋으니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노하우가 담겨져 있으면 좋겠네요.”
“하아. 그냥 재밌는 소설책 추천해주세요. 야한 거 많이 나오는 내용 없나요? 이런 평범한 요청 좀 해주면 어디가 덧나니?”
“…뭐 그것도 같이 끼워넣어주세요.”
“아나, 이 자식은 빼지도 않아요.”
소피아 선생님은 툴툴대면서도 내가 원하는 책들을 척척 골라냈다.
[패스트푸드의 기초] [손님은 왕이 아니다] [안정적인 시스템, 답은 공장에 있다].
.
.
[식당은 마라톤처럼]‘역시 통한다니까.’
전생부터 책벌레였던 나는 동류(?)의 사람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소피아 선생님은 검색도 따로 안 해보고 나의 요청대로 스무 권 정도를 바로 가지고 왔다.
그녀는 한 권씩 대출해주면서 위협적으로 눈을 부릅떴다.
“너 다 읽어봤는지 내가 테스트 할 거야. 알겠어? 이렇게 날 귀찮게 해 놓고 대충 읽었다? 내 권한으로 너만 도서관 밴 때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넵, 감사합니다. 대신 테스트 통과하면 다음 주제에도 이 정도 퀄리티로 책을 맞춰주세요. 신간을 들여오면 더 좋고요.”
“어이구, 그럼요, 그럼. 학생님께서 이기시면 제가 사비를 털어서라도 신간을 사드려야죠.”
소피아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끝까지 나를 비웃었다.
*
나는 일상속에서 틈틈이 빌려온 책을 읽었다.
원래도 책을 정말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로한’의 몸으로 빙의가 된 이후 책 읽기가 훨씬 흥미로워졌다.
그건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능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가 그것을 처음 깨달은 건 GED 공부를 할 때였다.
‘이게 된다고??’
내가 멍청한 편은 아니지만, 갑자기 공부를 한다고 며칠만에 만점을 볼 정도는 아니었다.
두 번째는 미식축구 트라이아웃을 준비하면서 느꼈다.
‘직접 연습을 좀 하긴 했지만… 그건 마치 복습을 하는 느낌이었어.’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기분으로 식당 운영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
역시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피지컬 천재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