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50
150
도미닉은 사실 스파링을 하면서 적잖게 당황했다.
로한이 세계 탑 레벨 복서인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압박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공간에 대한 이해도만큼은 그 어떤 선수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로한의 약점이 뚜렷하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클린치의 영역으로 그를 끌고 들어와야 공략이 가능하다.
얼굴과 얼굴이 마주할 정도로 초근접전. 타격도 쉽지 않고, 붙잡히면 바로 테이크다운으로 이어지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로한은 허락하지 않았다.
‘타격따윌 무시하고 들어가기엔 한 방 한 방이 급소를 정확하게 노리고 들어온다.’
무엇보다 펀치 속도가 헤비급에서는 보기 힘든 수준이라, 간담이 서늘해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딴 게 스파링이라고??’
트레버 퓨리는 분명 괴물이지만, 로한의 미지의 영역에 선 규격외의 파이터. 온몸의 감각이 요란하게 자신을 경고했다.
‘발을 묶어야 하는데… 빌어먹을 풋워크.’
펜스로 끌고 가서 개싸움을 하거나, 억지로 달라붙어서 치열한 공방을 유도해도, 로한은 이미 자신의 모든 동선을 읽고 두수는 앞서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자신의 노림수를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파훼하는 게 가능한가? 그것도 단순히 풋워크로?
다리를 묶기 위해서 끊임없이 로우킥을 시도하지만, 방어가 얼마나 철저한지, 한 번은 잘못 걷어차여 정강이가 저릿해질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계속 뭔가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게 자신이라는 것. 로한은 여유롭게 방어하며 체력을 아꼈고, 심리적으로 몰린 도미닉은 몸이 벌써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미친. 당장 수를 내지 않으면…’
체력이 떨어진 랭커 파이터는 물 먹은 솜덩어리에 불과하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형편없는 공격을 보여주기 마련.
가만히 선 채로 샌드백 찜질을 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든 변수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래서. 조언이 있습니까? 여기서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다행히 로한도 지지부진한 신경전에 지쳤는지, 이런 상황에서 뾰족한 해법이 있는지를 물었다.
“거리 조절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데다, 주먹으로 제한된 타격만으로도 충분히 경기 진행이 되니… 아마 간단한 킥 몇 가지만 적재적소에 섞을 수 있으면 트레버 퓨리와의 경기에서도 재미를 볼 수 있겠지.”
“아, 하긴. 도미닉의 로우킥 때문에 모기처럼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몇 번이나 넉다운 시킬 수 있었는데, 좀처럼 거리가 안 좁혀져서.”
“…어? …어…”
‘개새끼가?’
자신의 수준 높은 완벽한 타이밍의 로우킥을 모기가 문 듯 성가시다고 말하거나, 언제든 쉽게 넉다운 시킬 수 있다는 표현에 성질이 뻗쳤지만… 그는 큰 그림을 계속해서 떠올리며 화를 억눌렀다.
“어쨌든 일단 가볍게 네 루틴에 로우킥 정도는 곁들여도 될 것 같다. 공간도 훨씬 넓게 쓸 수 있을 거고, 어째서 대부분의 종합격투가들이 무에타이를 기본으로 배우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음, 몇 번 연습해보긴 했는데… 도미닉도 쉽게 할 수 있는 걸, 전 괜히 자세가 어정쩡해지더라고요. 수준 떨어지는 로우킥은 오히려 제가 더 위험해지지 않을까요?”
“…으드득. 일단 스파링이니까 좀 엉성해도 타이밍이나, 자세를 익힐 겸 마음 편히 써보도록.”
“오, 그래도 될까요?”
“그래. 내가 봐주마.”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도미닉은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수준 높은 대전에서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무기를 쓰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드디어.’
안 그래도 성질을 박박 긁던 로한을 두동강내고 싶었는데, 드디어 그 기회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분명 비슷한 양상으로 스파링이 진행됐다.
로한이 반쯤 망설이며 가볍게 던지는 로우킥 정도는 웃으면서 맞아주었다.
‘뭐? 도미닉도 쉽게 할 수 있는 로우킥이라고??’
고수들은 그만큼 단련을 하기 때문에 쉽게 구현하는 것.
치밀한 수싸움이 벌어지는 종합격투기에서 효과적인 로우킥을 차려면 그만큼의 노력과 훈련이 뒷받침해야 한다.
로한은 확실히 초보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일 뿐. 괜히 저런 로우킥을 써먹었다간 바로 전세가 역전되고, 한순간에 그라운드로 끌려가 서브미션을 당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걸 어떻게 요리한다?’
도미닉은 점점 자신감이 붙어 과감한 로우킥을 시도하는 로한을 보며, 너무 신이 나서 어깨가 들썩였다.
팍 – !
그때 생각보다 예리한 잽이 자신의 턱을 흔들었다.
‘내가 너무 방심했나?’
골이 흔들릴 정도. 확실한 타격이 들어오면서, 아찔한 마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내심을 가지며 서로 타격을 교환했고, 도미닉은 차분하게 기회를 기다렸다.
‘곧!’
슬슬 로우킥을 발동시키고 있는 로한의 자세.
대비를 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지금까지 거리 좁히는 걸 극도로 꺼려하던 로한이, 무서운 속도로 치고 들어왔다.
빈틈이 없는 잽. 아까보다 훨씬 묵직해진 펀치들이 가드 위를 때렸다.
‘저러다 주먹이라도 깨지면?’
주먹이 깨질 때는 깨지더라도,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자신의 뚝배기가 먼저 깨지게 생겼다.
갑자기 너무 빠르게 페이스를 올려서, 로우킥에만 집중하던 도미닉은 조금씩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맹수와 같은 기세에 결국 펜스를 등지게 됐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복서들은 펜스에서의 싸움에 미숙하기 때문에, 도미닉은 조금 안심을 했으나…
빠른 원투에 이어 바디샷을 허용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이거 뭔가 이상한데?’
물러날 구석이 조금도 없는데다, 로한의 공격의 연계가 물흐르듯 자연스러워서 빈틈 자체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도미닉은 보았다.
지금까지와의 엉성한 로우킥과는 상상을 초월한, 무지막지한 회전력이 감긴 완벽한 자세의 로우킥을.
빠 악 – !
정강이뼈로 너무 정확하게 자신의 무릎 위 허벅지를 가격했다.
진심 아름답기까지한 아웃사이드 레그 킥.
“……”
순간 허벅지의 감각이 사라졌다.
인대에 근육 전체가 파열한 느낌. 다리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콰 앙 !
로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지금까지 가장 큰 동작으로 펀치를 내리꽂았고… 거대한 망치에 박힌 못처럼, 도미닉은 그대로 땅에 처박혔다.
“역시, 저에게 딱 필요한 조언을 해주셨네요.”
그러면서 사악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로한.
“그런데 종합격투기는 복싱과 달리, 다운이 되어도 계속 경기가 진행되는 거죠??”
“…..!”
도미닉은 진심으로 생명의 위험을 느꼈다.
순식간에 땅에 떨어지며, 지금까지 아무런 예고도 없던 엘보우를 정확하게 자신의 얼굴을 가격하려 들었다.
‘이거 맞으면… 죽는 거 아닌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예술의 경지에 다다른 역동적인 자세의 로우킥.
아무리 정통으로 맞았다지만 한 번에 근육이 파열하고 무기력하게 다리를 잃은 것은 15년의 경력 동안 처음이었다.
거기에 이 살인적인 엘보우는 맞아보지 않아도 살상력이 대단한 게 느껴진다.
‘하드 펀쳐였던 게 아니라… 주먹의 구조적인 한계가 이 아이의 파괴력을 봉인하고 있었던 거였구나.’
말 그대로 타격의 신.
도미닉은 눈을 감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슬며시 눈을 떠보니, 로한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테이크다운 이후 후속타는 없다고 했더라고.”
“……”
도미닉은 얼떨떨한 얼굴로 로한의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무슨 사람의 힘이??’
스파링 전, 자신이 번쩍 들렸던 게 과연 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로한은 본인보다 한참 무거운 도미닉을 휙 일으키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직 라운드가 아직 안 끝났는데 더 할 수 있죠? 못해도 이벤트 매치처럼 5라운드는 소화해야지?”
“…아.”
도미닉은 다시금 이게 스파링임을 깨달았다.
경기였으면 방금 끝이 났지만, 스파링은 위험한 부상을 피하는 대신 몸만 움직인다면 계속 진행된다.
도미닉은 더 이상 로한을 부상시켜서 한 몫을 크게 얻겠다는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의 스파링 계약 기간은 5일.
도미닉은 처절하게 몸부림친 끝에 [아이언복싱] 체육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로한을 상대로 무려 이틀을 버텼다.
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
결국 막대한 위약금만 물고 도망치게 된 그는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로 체육관을 떠났다.
그가 어린 사슴과도 같은 눈망울로 로한을 돌아보며 한 말은, 체육관 내에서만큼은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복싱계에 너와 같은 선수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꼬옥 복싱 선수로 오랫동안 남기를…”
그렇게 초라하게 떠나간 도미닉 본즈.
로한은 이후 2주의 훈련 기간 동안 총 8명의 각기 다른 스타일의 프로와 함께 스파링을 하며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
“도대체 남자들은 왜 서로 싸우는 거에 이렇게까지 미치는 거야?”
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엄마도 크게 다른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이벤트성 계체량을 앞두고 굳이 분위기를 흐릴 생각이 없어보이셨다.
“패싸움이 아니라, 엄연히 스포츠란다. 어쨌든 남자의 습성상 서로 견줄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이고, 투기 종목만큼 그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 없지.”
아버지만큼은 모두 이해한다는 듯 커버를 쳐주셨다.
다만 내 손을 한참이나 꽉 잡아주시는 것으로, 걱정 및 우려를 전달하셨다.
나는 굳이 가족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한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감 잃는 모습을 잃지 않고, 착실하게 경기를 준비하는데 집중했다.
‘진짜 미국이 대단하긴 대단해.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으니…’
[로한 킴 vs 트레버 퓨리 II: MMA]나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경비행기의 꼬리에 달려있는 플랜카드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이번 이벤트 매치는 복싱과 SFC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크게 개최될 예정이었다.
장소는 파리 올림픽에서 영감을 받아, 어떤 특정한 경기장이 아닌 아예 뉴욕의 상징적인 도심, 타임스퀘어에서 진행된다.
하루에도 수십만이 찾는 관광 명소의 교통을 통제하고, 정중앙에 옥타곤을 세워 진행되는 역사적 이벤트 매치.
옥타곤을 중심으로 VIP석은 물론, 수많은 벤치를 세워 1만여 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좌석들은 티켓을 팔지만, 그 너머의 반경은 사람들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추정치로 대략 20여만 명이 몰릴 것이라고 했던가?’
사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수백 명의 경찰관과 소방관,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배치될 정도로 거대한 행사.
말 그대로 미국 복싱의 시작을 알렸던 뉴욕에서 진행하는 하나의 축제라고 보면 됐다.
거기에 타임스퀘어의 고층 빌딩이 하루에도 수십억을 벌어들이는 수많은 야외 광고 화면들이, 적어도 우리의 이벤트 매치 동안은 전부 나와 퓨리의 경기를 중계하기로 했다.
그것뿐만 아니라 이번 경기는 첫 번째 이벤트 매치처럼 기존의 PPV 판매 방식이 아닌… 입찰을 받아 미국 최대의 지상파 채널에 중계권을 팔았고, 온라인 스트리밍권은 넷플, 그 이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방송국이 실시간 중계를 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지미가 신이 나서 나에게 떠들었던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돌았다.
– 옛날 복싱의 황금기 그 이상의 인기야. 이제는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안 들어가는 곳이 없잖아. 지역 대회인 슈퍼볼은 우습고, 전 세계적으로 월드컵에 가까운 관심을 받고 있어.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번 이벤트 매치 사이사이 나갈 광고 단가가 30초에 10 million(=130억)이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의 영향력인지는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진짜 스포츠의 영향력은 대단하구나.’
수많은 사람이 실시간으로 지켜볼 경기.
어쩌면 내가 이기길 바라는 사람들만큼이나, 처참하게 지길 바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 어깨가 무거웠다.
‘최선을 다해야겠다.’
오늘은 다른 언더 카드 없이 이벤트성 계체량을 시작으로, 무려 30분 동안 요즘 가장 인기가 많다는 가수 3팀이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공연을 펼칠 예정.
분위기가 가장 무르익었을 때 곧바로 경기가 시작되는 구조였다.
나는 계체량 전. 조지 코치, 그리고 지오반니 관장님과 차분하게 몸을 풀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로한!”
그때 갑자기 지미가 다급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항상 여유롭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지미가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찾았다.
“좀 전에 J.P 크롬웰이 도착했어. …혹시 알고 있었어?”
“아니. 연락이 끊긴지 오래라. 그런데 뭐, 예상은 했지.”
“그럼 월터 골드는?? 월터 골드랑 함께 참석하실 줄은 언질을 받았어???”
“뭐??”
그제야 지미의 반응이 이해됐다.
월터 골드(Walter Gold).
NBA의 네 번째 커미셔너(Commisioner: 총재, 대표)이자 한 때 경쟁이 치열했던 농구 프로 리그를 통합하고, 글로벌 진출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낸 전설적인 인물.
농구씬은 당연하고, 스포츠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거물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타났으니 아무리 날고 기는 에이전트 지미라고 해도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어진 그의 말은 나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지금 너 바쁜 거 아는데… 꼭 시간을 좀 내달라고 하시네.”
“계체량 시작 30분 전에??”
지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대답을 줬다.
“거절해. 내키진 않지만, 기다리시겠다면 경기 끝나고 잠깐 뵙지 뭐.”
“그게…”
그의 대답을 마저 듣지 않아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창밖으로 J.P.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월터 골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J.P.
그의 기분 좋은 미소가 평소보다 더 불길하게 느껴졌다.
미국 피지컬 천재 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