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54
154
……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뭔가 투박한 케이지 안에 갇혀 있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그 위에 나와 트레버 퓨리가 맨발, 맨손까지는 아니지만 복싱 글러브에 비해서는 확실히 자유로운 손으로 격투를 펼치는 공간.
손끝에서부터의 미세한 떨림이 경기내내 잦아들지 않았다.
긴장을 해서가 아니라, 너무 흥분되어서.
그러다가 피를 봤다.
복싱을 하면서도 충분히 피를 봤지만, 살점이 찢어지고 분수처럼 솟는 양의 피는 처음이었다.
……!
내 안의 무언가가 나의 컨트롤을 벗어나 날뛰기 시작한 것이 그때였다.
사 악 – !
백 스피닝 엘보우를 완벽하게 적중시키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뺨이 찢어발겨진 트레버 퓨리.
그 순간만큼은 내가 먹이 사슬의 정점에 선 포식자가 되어 순한 눈망울의 사슴을 잡아먹기 직전이 되었다.
나의 몸은 저절로 트레버 퓨리를 들어올려 땅에 세게 내리찍었고, 그는 낙법으로 충격을 완화시키지 못해 정신이 혼미한듯했다.
종합격투기에서는 이런 상태에서도 상대가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히 피니쉬를 한다고 알았지만, 나는 복싱의 습관이 남아서 그런지 다운된 사람을 선뜻 때리기가 꺼려졌다.
파 앙 !!!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내 몸의 주도권을 빼앗긴 듯하면서도, 여전히 내가 움직이는 것만 같은 모순된 감각에 몸을 맡기며 파운딩을 시작했다.
한 방 한 방에 얼굴이 처참하게 뭉개지는 트레버 퓨리. 피가 옥타곤 전체에 튀겨졌고, 내 온 몸에 흘렀지만… 그게 오히려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스톱!! 경기 끝이야. 떨어져!!”
반응속도가 어지간한 현역 선수보다도 빠르다고 알려진 심판 호르헤 마르티네즈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생각보다 늦은 시점에 몸을 날려 뛰어들었지만… 빈틈이 너무 많았다.
내가 멈추지않고 계속 파운딩을 시도하자, 트레버 퓨리측 코너가 제일 먼저 뛰어 들어와서 나를 뜯어말리려고 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안 떨어져?? 실격당하고 싶어서 미쳤구나?”
나는 조용히 그들을 마주봤다.
‘고작 너희가?’
덩치만 커다란 놈들이라, 몇 명이 날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서너 놈을 달고도 꾸역꾸역 트레버 퓨리에게로 다가가는 나.
혈관 전체를 타고 폭발하는 이 힘을 발산하지 않으면 터져 죽을 것만 같아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절실한 눈으로 조지 코치와 지오반니 관장님에게 SOS를 치고 나서야 둘이 다가왔지만… 내 발걸음이 살짝 늦춰졌을 뿐.
마음 같아서는 다 치워버리고 싶은 충동과 내 이성이 치열한 싸움을 펼쳤다.
“으아아아아아!!!”
그래. 아직 나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내 기세에 모두가 자기도 모르게 슬쩍 물러난 그때.
“……”
광란에 빠진 관객들 사이에서 혼자 평온하게 서 있는 여성이 보였다.
아무런 걱정의 기미가 없지만,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려는 듯, 냉정하게 상황을 관찰하는 그녀.
‘이런 거칠고 야만적인 종합격투기 경기에서 혼자 패션쇼에 온 것처럼, 우아하고 고상하게 차려입고 오다니. 참 엘리답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몸의 열기가 천천히 식었다.
“……”
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계속해서 나를 경계하는 퓨리측 코너.
분위기를 좀 가볍게 하려고 농담을 던졌다.
“종합격투기 재밌네요. 이참에 전향할까봐요.”
“……”
재미가 없었나?
퓨리 측 인물들이 사색이 되어 딱딱하게 굳었다.
‘어?’
뒤돌아보니 그건 조지 코치와 지오반니 관장님도 마찬가지.
“한동안은 옥타곤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곧이어 의료진이 슬금슬금 들어와 나의 눈치를 보더니 트레버 퓨리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곧이어 의식을 되찾았으나 계속해서 누워 있기를 선택.
심판의 양해를 구하고 들 것에 실렸다.
“……”
방송이라는 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출혈만 간신히 멈춘 날 것 그대로의 외관이 그대로 화면에 담겼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없는 박수를 친다.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제안을 건넸다.
“이번 경기, 반응이 나쁘지 않았는데… 나중에 세 번째도 진행하던가. 종합격투기든, 복싱이든.”
“……”
트레버 퓨리는 곧바로 나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의료진에게 지시를 해 곧바로 실려 나갔다.
*
SFC 오너, 킬리언 화이트에게 이번 이벤트 매치는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복싱은 죽어간다는 프레임으로, SFC에 많은 팬들을 유입해온 지난 20년.’
한때 황금기를 누렸던 복싱은 너무 많은 단체, 비양심적인 프로모터, 그리고 PPV에만 의존하는 체계로 점점 인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챔피언이 된 선수들은 돈맛을 잊지 못하고, 어려운 경기를 끝까지 피하며 팬들을 실망시켰고, 단체들이 직접 나서서 승부조작을 하는 등. 복싱의 진정성과 가치를 훼손하며… 그 빈자리를 더 잔인하고 경기력이 화끈한 SFC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빌어먹을 SNS 인플루언서들이 복싱에 관심을 가지더니…’
특히 젊은 층은 SFC가 꽉 잡고 있어서 앞으로 점점 많은 파이를 뺏어올 예정이었는데, 하필이면 인플루언서들이 다른 인플루언서와의 불화를 복싱으로 풀기 시작하면서 구도가 이상해졌다.
‘어지간한 인기 복싱 매치나 SFC 매치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고 오게 되었어…’
입식 타격, 그것도 주먹으로만 진행되는 복싱은 분명 종합격투기 못지않은 오랜 단련과 뛰어난 기술력을 요구하는 투기 종목이었으나, 사실 입문 자체는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특성 하나로 그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 불길을 제때 잡지 않으면, 투기계 판도가 이상하게 돌아갈 수도 있다.’
그나마 SFC가 유리한 것은, 모든 SFC 선수를 자신들이 독점하니, 오너인 자신이 쉽게 빅매치들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직은 종합격투기 선수가 복싱 선수보다 ‘더 세다’라는 원초적인 믿음이 대중에게 더 팽배하다는 사실.
결국 투기 종목이라는 게 누가 더 강한지 겨루는 것이기 때문에, 각 종목에서 가장 센 챔피언이 있다면, 다른 투기 종목과 비교가 더 노골적이고 말초적인 부분이 있었다.
복싱 하나 잘하는 것보다, 다양한 상황에 쓸 수 있는 여러 무술을 장착한 종합격투기 선수들이 더 뛰어난 것은 당연한 이치.
그런 부분들을 꾸준히 마케팅하고 어필하며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 킬리언 화이트는 적지않은 자본을 투입했으나… 그런 SFC의 유리한 점들을 또 무색하게 만들어버린 개인, 그것도 겨우 3년을 채 활동하지 않은 신인이 있었다.
‘로한이라는 규격 외의 슈퍼스타가 하필이면 복싱을 선택해서!!’
다리우스와의 가족 내전도 상상을 초월하는 흥행력을 보여주었지만, 차머스와의 타이틀전에서 정점을 찍고 내려올 줄 알았더니… 올림픽 이후에는 그 어떤 스포츠 스타보다 관심이 뜨거워졌다.
– 화이트 대표님. 오히려 그런 부분을 이용할 때입니다. 크롬웰의 적극적인 푸쉬도 있겠다, 어떻게든 트레버 퓨리와의 이벤트 매치를 성사 시키는 겁니다.
현재 로한의 인기는 절대적.
적지 않은 신생팬들이 복싱에 유입되었고, 투기 종목의 역사를 잘 모르는 신생팬들은 단순히 로한이 활약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복싱을 최고로 치는 기분 나쁜 분위기가 생겼다.
– 그런데 트레버 퓨리가 복싱에서 무려 몇 체급 위의 로한을 꺾는다? SFC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SFC를 세계 최고의 투기 종목으로 성장시키는데 주효한 역할을 했던 마케팅 부서의 권유. 그래서 트레버 퓨리의 첫 번째 이벤트 매치를 허락시켰고…
‘처참한 결과에 어쩔 수 없이 MMA에서라도 회복하려고 거금을 들여 리벤지 매치를 성사시켰건만.’
복싱전은 져도 타격이 비교적 적다. 전례들도 있고, 어쨌든 그들의 홈그라운드였으니까.
대신 SFC로 판을 끌고 와서 이기면, 기존의 망신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역시 복싱 선수들은 종합격투기 선수들보다 약하다는 프레임을 강화할 수 있다.
‘…설마?’
그런데 당연히 트레버 퓨리가 로한을 가지고 놀 거라고 확신했거늘, 막상 까보니까 경기 양상이 상상과 달랐다.
1라운드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지만, 2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
지금까지 SFC의 큰 경기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관을 했던 그는 수많은 격투 천재들을 봐왔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말까한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들과, 역사에 길이남을 경기를 코앞에서 직관한 사람이다.
비즈니스상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스토리텔링을 위해서 과하게 선수들을 칭찬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잔인하고 피튀기는 경기라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무미건조한 감성의 직업병이 생겼다.
‘이 놈은 진짜다.’
그런데 2라운드의 로한을 보자마자, SFC를 운영하며 평생 딱 두세 번밖에 보지 못한 눈부신 잠재성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피를 보고 나서 미친 듯이 광분하는 야성적인 모습.
‘얘는 무조건 SFC로 데리고 와야한다.’
오늘날의 자신을 있게 한,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이 말했다.
로한은 이 시대의 진정한 글래디에이터.
피를 갈구하는 검투사이자, 전쟁에서도 앞장을 설 선봉장.
심판이 로한의 승리를 선언하고, 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당당하게 퇴장하는 로한을 보며… 킬리언 화이트의 눈은 탐욕에 물들었다.
‘돈은 억만금을 주어도 아쉽지 않을 테고… 어떻게 또 한 번 옥타곤의 무대로 끌고 들어오지?’
이번 경기도 기적과도 같이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성사된 이벤트 매치.
막상 어떻게 로한이 추가 경기를 승낙한다고 해도 두 눈이 달려있는 SFC 선수라면 아무도 로한과의 경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데리고 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
*
킬리언 화이트는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눈을 뜬 시간 내내 방법을 구상했다.
꿈에서도 로한이 나올 정도로 집중했다.
슈퍼스타 한 명이 종목 전체의 인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스포츠 시장. SFC를 다음 단계로 도약시킬 주역이 눈앞에 있는데, 데려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그의 영혼을 괴롭혔다.
“대표님!”
그런 자신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걸까?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방금 ‘그’ 선수가 트윗을 날렸습니다.”
“……??”
SFC에서 오너인 킬리언 화이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것 때문에 선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한 논란이 많이 생기지만, 어쨌든 자신이 모든 선수와 경기 순서들을 컨트롤하기 때문에 SFC가 가장 풍성한 볼거리가 넘치는 종목으로 성장한 것도 사실.
하지만 그런 킬리언 화이트도 통제할 수 없는 선수가 있었으니…
“미카엘 발락이 로한 선수를 저격했습니다.”
SFC가 낳은 괴물.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선수가 있을 때만 매치업에 동의하는 최악의 챔피언, 미카엘 발락.
‘어느 정도 전적을 쌓고, 실력이 정점을 찍어서 좀 키워볼 만한 선수가 나타났다하면 바로 저격하고 경기에서 반쯤 죽여놓는 암 덩어리…’
하지만 실력만큼은 신이 없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절대적이어서, 아무리 한 체급을 장악할만한 실력자라도 손쉽게 가지고 노는 이레귤러였다.
그래서 인성에 문제가 있고, 감옥에 들락날락해도 미카엘 발락의 경기는 무조건 챙겨보는 투기 종목 골수팬들 적지 않았다.
아니,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아도 SFC 최고의 흥행메이커, 트레버 퓨리에 준하는 티켓 파워를 보여주었다.
‘돈이 되니 쫓아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경기에 내보내면 SFC의 귀중한 인재들이 죽어나가고…’
한 마디로 계륵이나 다름없었는데, 모처럼 킬리언 화이트도 쌍수들고 환영할만한 일을 해주었다.
@KillerBalrog
화이트 대표. [로한 vs 미카엘] 성사시켜라. 3개월 안에.
44.4M views / 2.6K replies
안 그래도 로한의 첫 종합격투기 경기를 놓고 난리가 난 투기판.
아무리 미들급과 헤비급 간의 경기라고는 하지만, 같은 체중에서… 그것도 올타임 레전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트레버 퓨리를 상대로 로한이 승리한 건 핵폭탄급 파급력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SFC 최악의 괴물, 미카엘 발락이 직접 로한을 저격한다?
‘투기판을 완전히 들쑤시면서 내가 경기를 성사시킬 스토리텔링을 해주는군.’
처음으로 미카엘의 기행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로한 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SNS에서는 물론, 공식적인 발언도 하지 않았다.
“로한의 에이전시에 연락을 넣었지만 답신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킬리언 화이트가 직접 로한의 담담 에이전트에게 연락을 넣었다.
– 아, 화이트씨? 우리 클라이언트가 관심 없답니다.
“아니, 조건이 안 맞으면 어디가 안 맞다. 뭐가 필요하다고 협상이라도 하든지? 그냥 관심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로한 vs 미카엘] 경기는투기 종목계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로한 vs 트레버 II]도 이미 역대 5위 안에 들었을 정도였지만, [로한 vs 미카엘]은 경기 내용과 상관없이 그 관심도만으로도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다.‘그런데 조건도 한 번 들어보기 전에 깐다고?’
Billion 단위가 오락가락하는 경기를??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
– 퓨리와의 경기도 썩 내켜 하지 않았던 거 아시죠? 동네 깡패와의 패싸움도 관심 없다고 했으니, 앞으로는 연락을 하셔도 답을 받기 어려우실 겁니다.
뚝 –
“……”
킬리언 화이트는 멍청하게 핸드폰을 한참이나 들고 있었다.
자기의 본론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끊긴 적이 있었던가?
“하하하… 아주 재밌는 친구들이네?”
킬리언 화이트는 이를 바드득 갈며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를 걸었다.
*
[‘로한 vs 트레버 II’ 이번에도 승자 독식의 진검승부를 펼친 끝에, Billion 단위의 정산금을 받는 건 로한??] [트레버 퓨리의 충격적인 패배. 병원에서는 퇴원했으나, 집에서 은거. 스포트라이트를 사랑하는 관종 스타답지 않게 모든 인터뷰 거절하다.] [정식 매치는 아니었으나 SFC 미들급 챔피언을 무너뜨린 로한. 이대로 SFC에 입성하냐는 질문에, “한 경기에 10억불 단위로 받다가, 많아봐야 5백만불 받기 힘든 SFC로 다운그레이드 할 이유가 있나?” 뼈 있는 한 마디 남겨.] [최악의 챔피언, 미카엘 발락이 저격했다는 소식에 로한, “허울 좋은 마케팅으로 거품만 낀 SFC에 흥미 잃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맥주나 마시고 입 닥쳤으면…”]세상이 시끄러웠지만, 나는 한동안 독서를 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내가 기다리는 소식은 따로 있었다.
미국 피지컬 천재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