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55
155
내가 기다리는 건 다름 아닌 J.P. 크롬웰.
내가 뼛속부터 증오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게 의아할 수 있었지만, 상황과 시기만 맞아떨어지면 충분히 기다리게 된다.
‘특히 10억불을 털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물론 부와 권력을 가진 억만장자의 돈을 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우리가 ‘내기’를 했다고 하지만, 결과가 나온 직후 사람의 마음이 달라지는 건 순식간. 특히 패배자의 경우는 더 그렇다.
“어서오십시오, 로한님. 지난주 이벤트는 아주 잘 봤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고층 빌딩 최상층. 거대한 투자 은행의 VIP실에서 나를 맞이한 건 정중한 신사였다.
“아직 크롬웰 회장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약속 시간에서 10분간 지체되면 바로 위약금까지 함께 얹어서 처리하기 시작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번 ‘내기’를 강제 집행하기 위해서 보증인을 중간에 두었다.
현금 조달이 어려울 수 있으니, 당장은 10억불 이상의 담보를 맡겨서 내기를 공증했고, 우리 둘이 직접 와서 내용을 처리하는 방식.
‘사실 대리인을 내세워도 될텐데, 일부러 당사자들이 오게 설정했다.’
우리에게 10억불을 잃는 상실감도 크지만, 그걸 직접 대면해서 건네주어야 한다는 수치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도착하셨다고 합니다. 자리를 옮기실까요?”
역시나 J.P.는 딱 마지막 1분까지 기다린 후에야 나타났다.
60대 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한 그.
평소의 가식에 가득찬 사람 좋은 얼굴이 아닌, 딱딱하게 굳은데다 거만하기까지 해 보이는 진면목을 드러냈다.
“왕국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환영한다,는 호쾌한 포부는 여전히 간지하고 계신가요?”
“시끄럽다.”
J.P는 신경질적으로 신사가 건네주는 서류를 서명했다.
나는 부들부들 떠는 그의 손가락을 보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며, 더 이상 트집을 잡지 않았다.
이 공간에, 우리 둘이 마주 서야 한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트레버 퓨리를 통해 나를 망신 주다 못해, 복싱 커리어에 흠집까지 내려고 했던 얕은수가 철저하게 파훼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자존심에 영원한 흉터를 남겼을 것이다.
‘세상을 자기 손 위에 놓고 가지고 논다고 착각하는 노인네이니… 이번 일에 대해 상상을 초월하는 모욕감을 느끼겠지.’
게다가 J.P. 아무리 억만장자라고 해도, [Kings]를 통해 나에게 10억 불을 정산해준지 3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 또 털린다는 건 어떤 심정일까?
5분 만에 일 처리가 끝나자, 나는 계좌 이체 내용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인사도 생략하고, 아예 J.P.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로한.”
하지만 역시나 이대로 패배를 받아들이기에는 J.P.는 너무 소인배다.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
그래도 내가 지나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자, 결국 J.P.가 한숨을 쉬며 뒤따랐다.
“아직 우리 관계는 회복 가능성이 있다. 너에게는 크롬웰의 피가 흐르고, 지금까지 네가 이룬 모든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따지면 크롬웰 사람들 대부분이 인성 파탄 난 것도 그 영향이겠네요.”
“…너도 알다시피 정상에 서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타협 없는 뚝심과 거친 심성을 필요로 한다.”
“……”
이번에는 괜히 말로 주고 되로 받은 느낌.
특히 나를 격려해주는 말투와 눈치여서 더 어이가 없었다.
‘나처럼 착한 사람이 어딨다고??’
“어쨌든 저는 더 할 말이 없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
이 빌어먹을 엘리베이터가 빨리 오면 말이다.
J.P.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번에 NBA와는 완전 틀어졌다는 거, 잘 알고 있지? 이번 드래프트는 물론, 앞으로도 쉽지는 않을 거다.”
“아이고, 그럼 어쩌죠?”
“……”
내가 건성건성 맞장구를 쳐줬지만, 오히려 J.P.의 웃음기가 싹 가셨다.
‘당근과 채찍질로 사람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나에게 써먹을 게 없어서 난감할 거다.’
다리우스나, 차머스 등. 크롬웰 집안 사람들이 J.P.에게 조련당하는 방식이 모두 똑같다.
최고의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게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고, 자신의 영향력과 화려한 인맥으로 각 업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기회들을 물어다준다.
작은 성과도 크게 부풀려지고, 세계가 주목하는 스포츠 스타로의 길이 고속도로처럼 뚫리는 것.
그러다 어느 정도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되면, 그때 J.P.는 고삐를 틀어쥔다.
‘왕국의 발전을 위해 힘써라.’
하나의 장기 말로 전락하는 것이다. 벗어나려고 하면 그동안 주었던 모든 걸 회수해나가거나,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위기에 빠트린다.
실제로 두 손으로 직접 몰락 시킨 스타가 적지 않아, 단순 협박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적지 않은 수가 스스로 족쇄를 차게 된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내가 가장 탐이 나는 먹잇감이지만, 그만큼 통제할 수단이 없기에… 아마 J.P.에게 있어서는 내가 가장 큰 난제일 것이다.
NBA가 안 되면 육상이나 복싱에 전념할 수 있고, 몇 년 기다리긴 해야 하지만, J.P.의 영향력이 비교적 적은 NFL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J.P.가 쌈짓돈을 적지 않게 퍼주었으니… 여러모로 뼈가 아프겠지.
“NBA 총재와는 내가 이야기를 잘 해서 이번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마.”
“괜찮습니다. 제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제가 져야죠.”
“……”
J.P.의 입이 결국 굳게 닫혀버렸다.
지금은 말이 안 통하다고 느꼈는지, 이내 한숨을 쉬며 체념했다.
“그래. 비즈니스를 위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걸 보니, 새삼 네 나이가 체감 되는구나. 때론 직접 부딪혀서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를 때가 있지.”
“그게 나이 어리다는 강점 아니겠습니까. 미숙해도, 실수를 해도 회복할 수 있으니… 반대로 말하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건 슬프시겠어요.”
“……”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
– 어린아이 취급을 하는 건 좋은데, 정작 그런 상대에게 몇 번이나 당하지 않았나?
– 나야 실수 몇 번 해도 나이탓 할 수 있지만, 당신은?
– 나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남았는데…
J.P.는 몇 년이나 더 늙은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먼저 떠났다.
“너는 지금 오만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이카루스의 날개를 잊지 말아라. 너는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고 있고, 언젠가는 추락하는 순간이 찾아오겠지. 그때 그냥 운명을 받아들이지 말고, 나에게 손을 뻗어라. 그래도 핏줄이라는 정이 있으니 딱 한 번, 잡아주마.”
J.P.가 멀어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며, 솔직히 감탄했다.
‘그놈의 왕국이 뭔지.’
자존심과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여전히 나에게 손을 뻗고 있다.
안타깝지만 상대를 봐가면서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NBA는 좀 아쉽군. 프로 리그에서 뛰어보고 싶은데.’
세계 최고의 무대.
그곳이 나의 영혼을 부르는 것이,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졌다.
*
NBA는 따지자면 하나의 커다란 회사다.
30개의 프로 구단 구단주가 동등하게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구조.
그러니까 구단주는 단순히 자신의 구단 운영뿐만 아니라, NBA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역할까지 겸임하고 있는 셈.
하지만 30여 명의 구단주가 본업도 바쁜 와중에 구단의 일에 관여하고, 심지어 NBA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하루하루 업무를 지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바로 NBA의 총재가 있는 것이다.
NBA라는 거대한 회사의 CEO. 즉 협회의 최고 경영자.
‘따지자면 구단주는 대부분 투자자에 불과하고, 총재의 역량에 따라 NBA가 성장하고 하락한다고 보면 된다.’
총재는 NBA를 이끄는 선장.
내적으로는 대회 규칙을 정비하고, 트레이드 및 드래프트와 같은 선수 관련 거래를 감독.
외적으로는 스폰서십, 방송 계약, 티켓 판매, 상품 판매 및 다른 수익 관련 활동을 조직.
말 그대로 NBA와 관련된 모든 영역을 총괄하는 중역인데…
월터 골드는 NBA 창립 이래 4번째 총재로, 무려 30년간 구단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연임하는데 성공했고, 총재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구단주를 강제로 갈아치운 전적이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그런 오늘날의 월터 골드를 있게 한 철칙이 있었으니…
‘선수를 통제하지 못하면 팀이 무너지고, 결국 NBA에 대한 신뢰가 깨진다.’
선수에 대한 구단의 대우가 점점 좋아지고, 페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또 사회적인 인식이 커지면서 선수들의 머리가 너무 커졌다.
그러면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는 물론, 개인 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무엇보다 게을러져서 퍼포먼스가 극도로 악화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지고 있는 것.
‘예전에는 프렌차이즈 스타라고 불릴만한, 실력과 경력이 입증된 팀의 주역들이 그랬다면… 이제는 SNS가 발달하면서 대학 선수들은 물론 빠르면 고교 쪽에서부터 난리도 아니다.’
원래 이쪽 바닥이 유망주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는 조금만 실력이 받쳐주면 SNS를 통해 고교 때부터 주목을 받고 셀렙에 가까운 위상을 가지게 된다.
월터 골드는 실제로 보수적이기도 하고, 올드 스쿨의 사람인만큼 이 모든 흐름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비록 프렌차이즈 스타들이 사건 사고를 일으키면 이해관계가 복잡해 자격 박탈을 시킬 수 없었지만… 아직 NBA에 입성도 안 한 놈이라면?’
프렌차이즈 스타들이 물의를 일으키면 구단과 스폰서, 팬들과의 이해관계가 복잡해 경기 출장 금지 몇 번에, 벌금형이라는 손 방망이 처벌밖에 할 수가 없었으나… 이제 막 드래프트에 참가하려는 신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안 그래도 본보기가 필요했는데, 마침 잘 됐다.’
이미 NBA에서 누구 한 명이 뜨고, 또 스타로써의 위상을 갖게 되면 골치 아픈 일이 수두룩하게 생겨나는데… 드래프트 참가 전부터 스타 대우를 받으려는 싹들은 일찌감치 뽑아버려야 한다.
마침 매년 6월 말은 NBA 드래프트.
어떻게 보면 총재가 주관하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전, 6월 초는 연례 구단주 총회가 개최되었다.
한 해 동안 NBA의 실적을 보고하고, 다음 한 해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들을 발표하는 중요한 구단주 총회.
오늘은 바로 월터 골드가 가장 힘쓰는 연례 구단주 총회가 있는 당일이었고, 그는 오늘을 위해 통상적인 식순을 따름과 동시에 아주 은밀한 안건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시작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골드 총재님. 기존에는 예년처럼 열 분 정도의 구단주님이 직접 참석하시고, 대부분은 대리인을 보내 유선상으로 참석을 하실 예정이었으나…”
“……?”
“오늘 아침… 뒤늦게 직접 참석하겠다고 하신 구단주분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그게… 연세 때문에 거동이 불편하셔서 못 오시는 두 분을 제외하고, 스물 여덟분입니다.”
“……”
월터 골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 정도면 전원 아닌가??’
이 세상에 억만장자들만큼 발걸음이 무거운 사람들이 없다.
아무리 가치가 높은 NBA 구단의 내사라고 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이가 대부분.
대부분은 GM에게 일을 떠넘긴 방임형 투자자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게 언제가 마지막이지??’
그나마 월터 골드니까 지난 30년 동안 다들 얼굴을 몇 번 봤지, 한 자리에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NBA가 점점 성장세에 있고, 중요한 안건을 여럿 다룰 것이지만, 그래도 그들이 전부 본사에 직접 모이게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월터 골드는 이미 30년 동안 진행해온 총회를 앞두고, 식은땀을 흘리며 바쁘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