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18
18
[ghostagent: 왜 연락이 안 돼? 급한 건 아니지만, 두 출판사의 조건을 비교하면서 전략을 세우면 좋을 것 같은데?] [c.k.: 미안, 일단 주말에 연락하자. 잠깐 바쁜일이 생겨서.] [ghostagent: 그래~ 일 잘 보고. 먼저 연락줘. 내 나름대로 물밑작업을 하고 있을게.]너무나 기다려왔던 일이지만, 고스트 에이전트와 이야기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하루종일 패닉상태였다.
‘미국은 역시 사건사고의 스케일도 천조국답다고 할까?’
우리 학교에만 봐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재학생이 급격히 줄어드는 이유가 있다.
무려 남학생의 50%가 고등학교 졸업 전 노동전선에 뛰어들거나 감옥에 간다.
여학생 50%는 마찬가지로 노동전선에 뛰어들거나 갑작스런 임신으로 휴학한다.
정말 극악한 생존율. 그런 환경에 노출되다보니, 이런 쪽지를 받아도 전혀 놀랍지 않았다.
나는 이미 수십만 번은 확인한 내용을 다시 읽었다.
[Rohan, I think I’m pregnant with your baby. We need to talk(로한… 나, 니 애를 임신한 것 같아. 따로 이야기 좀 해…)]‘하, 하지만 나는 이성의 손도 잡아본 적이 없는 걸??’
이렇게 억울한 상황이 있을까. 쾌락 없는 책임은 한국의 밈으로만 접해봤건만. 그게 나의 이야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해봤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당연히 친자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정말 로한의 아이로 확정이 난다 한들, 내 아이처럼 느껴질까?’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일단 학교를 쉬었다. 장 아저씨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알바를 쉬었다. 다행히 루카가 하루만 대신 일을 해주기로 했다.
“……”
하루종일 내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뭔가라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과연 누가 쪽지를 남겼을까]용의자는 셋.
나는 빙의 초창기에 핸드폰을 샅샅이 뒤져서 작성해둔 [인물 관계도] 노트를 꺼냈다.
‘일단 접점을 찾아보자.’
손벽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아이가 생기는 것도 만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어제 식당에서의 만남을 떠올려보면, 그 정도로 ‘로한’과 친분이 있어 보이는 관계는 없었다.
뭐, 일부러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면 나를 속일 수도 있겠지만, 리아의 친구들은 전부 순진하고 착해보였다.
절대 ‘로한’처럼 흉악무도한 문제아와 어울릴 것 같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
그런데 그건 곧 나의 착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노트는 충격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다.
– 클로이 (여자친구?)
[고스트] 앱에서 친밀한 채팅을 하는 관계.로한이 일방적으로 자기 사진을 보내고, 새벽에 종종 불러서 만남.
여자친구라고 단정 지을 순 없는 게, 일상적인 대화는 조금도 나누지 않았다. 이게 미국인가?
– 아이비 (여자친구?)
리아의 중학교 시절 친구.
세 달 전, 인스타 DM을 통해서 아이비가 처음 연락함.
갑자기 오클랜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며 만나자고 함.
여기까진 정상적인데, 다음날 이상한 메시지가 왔다. ‘미안… 집이 비는 날이었는데 갑자기 이모가 들이닥칠 줄 몰랐어요.’
– 알리사 (그냥 아는 동생?)
리아의 중학교 시절 친구.
어려서부터 알리사가 로한을 많이 좋아했는지, 일방적으로 DM을 많이 보냈다.
로한은 항상 무시했는데, 알리사가 중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알리사의 비키니 포스트 위주로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가끔씩 먼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
나는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애가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라이프 스타일이잖아…’
나는 울고 싶어졌다.
*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건 이런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날 새벽 꿈을 꾸었던 것이다.
나만의 심상 세계에 작고 귀여운 2~3살짜리 아이가 나타났다.
너무 해맑게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미안. 나는 너의 아빠가 아니야.’
아이는 상관이 없다는 듯 내 품에 쏙 안겼다. 포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나는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었나?
나는 억지로 아이를 내려놓았다.
‘……!’
그러자 주변이 흔들리면서 나에게 무척 친숙한 병원의 풍경으로 심상 세계가 물들었다.
병상에 홀로 누워 있는 3~4살짜리 아이.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린 시절, 나였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아려온다.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아이의 심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갓 생긴 상처처럼 쓰라리다.
“……”
나는 결국 잠에서 깼다.
어쩌면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빨랐다.
아침이 되어 우리 한 가족이 테이블에 모였다.
엄마는 특별히 나를 위해 검보를 만들어주셨다. 사실 누가 봐도 내가 많이 다운되어 있긴 했지.
“감사합니다. 너무 맛있어요.”
“다행이야. 원하면 얼마든지 더 먹으렴. 오늘은 특히 많이 만들어뒀어.”
나는 한동안 묵묵히 먹었다. 평소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 리아도 오늘따라 조용했다.
‘내가 분위기를 너무 많이 흐리나?’
나는 결국 속내를 털어놓았다.
“엄마. 저, 아직 확실해진 건 아닌데… 만약 확실해지면 한동안 학교를 쉬었다가 바로 대학 준비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어차피 GED 시험을 치렀으니, 그래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알려줄 수 있겠어?”
“한동안 일을 열심히 하려고요. 일단 ‘레드 드래곤’ 알바 시간을 좀 늘리고, 다른 일도 찾아볼게요.”
“갑자기 돈이 필요한 일이 생겼니?”
“네. 저, 애가 생겼을지도 몰라요. 아니, 평소 로한.. 아니 제가 하고 다닌 꼴을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
엄마도 차마 아니라고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걸 보고 더 확신을 얻었다.
“만약 진짜 제 애가 있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 부양해보고 싶어요. 애 엄마 쪽의 의견이 중요하겠지만, 최소한 금전적인 지원은 아낌없이 해주어야죠.”
어쨌든 ‘로한’으로 빙의한 이상, 뛰어난 육체를 가지게 된 책임도 감수해야 한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아이와 관계도 형성하고 싶어요. 아이에게 부모가 없으면 너무 힘들잖아요?”
나는 주절주절 나의 계획을 늘어놓았다.
엄마, 아버지만 허락해준다면 한동안 우리집에서 살림을 꾸려 돈을 모으고 싶다. 꼭 적절한 생활비를 보태겠으니, 염치없지만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신세를 지겠다고 사정을 했다.
“로한.”
그러자 엄마가 화를 냈다.
“적어도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너는 내 아이다. 네가 벌써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부양을 걱정하듯, 너는 그때까지 내 책임이라는 거야. 금전적인 부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일단 여자애부터 데리고 와. 함께 헤쳐나가보자.”
“……”
나는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려고 했다. 엄마의 진심이 나에게 전해졌다.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나 혼자 극복해야만 하는 처지가 익숙해져서 이런 경험이 너무 생소했다.
‘그래. 모든 아이는 이런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어.’
건강한 몸도 있고, 나를 이렇게 위해주는 가족이 있으니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아주 작은 기대감이 대신했다.
‘어떤 기분일까?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느낌은?’
“너, 갑자기 왜 이래?”
그때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까지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리아였다. 그녀는 나를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뭐, 평소 행실을 보면 숨겨놓은 애가 둘 셋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데… 설마 그저께 식당에 남기고 간 쪽지를 보고 이 유난을 떠는 거야 거야?”
“리아! 말 좀 곱게 하라고 했지?!”
“네, 네. 근데, 로한 너는 정말 내 글씨체도 잊었어?”
“……?”
“우리 항상 이런 식으로 장난쳤잖아. 더한 짓도 많이 했으면서, 겨우 이 정도로 난리야? 설마 지금 연기도 나 속여먹으려고 하는 거지? 그럼 인정. 쫌 하네.”
“……???”
입이 떡 벌어졌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필체를 대조했다.
내가 받은 쪽지, 리아의 노트. 누가 봐도 똑같은 사람이 썼다.
“…너. 최악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욕을 날리고 그대로 방으로 돌아갔다.
어차피 금요일이라 학교랑 알바를 하루 더 쉬기로 했다.
‘아니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그런 장난을 칠 수 있지??’
평생 이렇게 화가 난 적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
한편으로는 실망감도 들었다. 이게 리아에 대한 실망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장난을 쳤니? 로한이 아직 기억이 다 돌아오지 않아서 고생하는 거 뻔히 알면서.”
“…알지. 아는데, 예전처럼 장난 좀 치면 기억을 자극하는데 도움이 되나 싶었어.”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좀 심했어. 나중에 꼭 사과하렴.”
“알겠어. 그럴게.”
리아는 순순히 엄마의 조언을 따랐다. 잠깐 심호흡을 한 후, 로한의 방문을 노크했다.
“……”
하지만 로한은 단단히 화가 났는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리아는 잠깐 그의 방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이내 포기했다.
‘생각보다 굉장히 성숙하게 반응했어. 기억상실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온 느낌? 어쩌면 이젠 준비가 되었을지도…’
그녀는 생각이 많은 얼굴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주말이 되자,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뤄둔 일을 진행했다.
[ghostagent: 어때 확실히 조건이 좋지?]나는 고스트 에이전트가 보내준 조건을 확인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c.k.: 이래서 30%나 떼가는 거구나?]내가 스스로 노력해 받아낸 사이먼하퍼의 조건은 평범했다.
– 사이먼하퍼
[선인세 $1000] [인세 6%]고스트 에이전트가 가져온 두 개의 조건은 월등했다.
– 출판사 A
[계약금 $2000] [선인세 $20000] [인세 10%]– 출판사 B
[계약금 $5000] [선인세 $10000] [인세 10%]두 출판사는 사이먼하퍼처럼 빅5까지는 아니지만, 장르에 따라서는 빅5를 상회하는 기획력과 마케팅력을 보여주는 대형 출판사였다.
평균적인 판매량은 빅5가 높아도, 글로벌 베스트셀러는 이 두 대형 출판사에서 많이 나왔다.
‘능력이 대단하긴 해.’
고스트 에이전트는 그런 대형 출판사를 상대로 신인에게는 잘 안 준다는 ‘계약금’을 받아냈고, 선인세는 단위 자체가 달랐으며, 무엇보다 가장 파격적인 건 인세였다.
[ghostagent: 너도 계산해보면 알겠지만, 평범한 에이전트랑 계약해서 15%를 뜯기는 것보다… 나와 함께 일하면서 30%를 합당하게 정산해주는 것이 훨씬 이득이야.]고스트 에이전트의 말대로였다.
내가 간단하게 암산해본 결과, 만약 사이먼하퍼와 계약해 1000불치 책이 팔렸다면 내가 정산받는 금액은 60불이다($1000 x 6% 인세 ). 평범한 에이전트를 끼면 더 줄어든다.
반면 고스트 에이전트가 협상을 마친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판매량을 기록했을 때 무려 70불을 받는다($1000 x 10% 인세 x 70%).
책의 판매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차이는 급격히 늘어나기 마련.
거기에 더 많은 선인세와 아무 조건도 달리지 않는 계약금까지 얻어왔으니, 고스트 에이전트는 자신의 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한 셈이다.
[ghostagent: 일단 두 출판사 관계자 모두와 미팅을 주선할게. 누가 찾아오는지, 어떤 대우를 약속하는지 확실하게 한 후 결정을 해도 늦지 않아.] [c.k.: 잠깐만. 미팅을 조금만 미루자.] [ghostagent: ??? 갑자기 왜?] [c.k.: 나도 그동안 완전히 놀고 있었던 건 아니거든.] [ghostagent: 그게 무슨 뜻이야?] [c.k.: 조금만 더 기다려봐. 너도 곧 알게 될 거야.]사실 사이먼하퍼와의 일이 있은 이후,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신인 작가에게 출판사는 분명 갑이다.
‘어차피 이번 한 작품만 하고 작가 생활 접을 것도 아닌데, 일단 어떻게든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고스트 에이전트는 사이먼하퍼를 제물로 삼아 출판사끼리 경쟁을 부추기면서 갑의 힘을 약화시켰다.
나의 작품은 똑같은데, 수요가 많아지면서 값어치가 뛴 것이다.
그것을 목격한 나는 본격적으로 판을 키우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