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
2
나는 어째서인지 병실에 누워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일단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너무 생소한 감각이었다. 어디서 배운 적이 없지만, 손과 팔이 의사대로 움직였다.
마치 원래 알고 있던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새로워서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다니.’
남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 그런데 나는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너무 경이로웠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피부가 좀 까맣다?’
완전히 새까만 색은 아닌데, 한국인의 정서상 현재 내 구릿빛의 피부도 무척 낯설었다.
나는 바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설마 흐, 흑인인가??”
이제야 아침에 보고 큰 충격을 먹었던 ‘그것’의 개연성이 타당해진다.
다만 과거의 김철수가 갑자기 흑인이 된 개연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아아…”
정신이 아득해졌다.
*
한동안 심호흡을 하면서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 상황파악부터 해보자.’
병실에서 최대한 나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침대에 환자 차트가 붙어 있었다.
[Name: Rohan Kim] [Gender: Male] [Age: 16] [Height: 6ft 1in(=187cm)]“……”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외국애들이 피지컬이 좋다고는 들었지만…’
화장실에서 확인한 ‘로한 킴’의 얼굴은 아무리 적게 봐줘도 20대 중반의 액면가.
거기에 187센치에 달하는 큰 키가 겨우 만 16살이라고?
혹시나 오타가 아닐까 싶어서 내(?) 짐을 뒤졌더니 갓 발행된 따끈따끈한 캘리포니아 주 운전면허가 나왔다.
‘얘, 풋풋한 고등학생이었잖아…?’
요즘 애들이 신체적 발달이 빠르다곤 하던데… 미국은 완전 별세계였다. 이게 16살의 피지컬이라니.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또 다른 건 없나?’
환자 차트에선 그 이상의 단서를 찾을 수 없어서, 일단 운전면허를 찾은 지갑을 샅샅이 뒤졌다.
가족사진이나, 학생증, 미성년자이니 엄카(?)와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어??”
20달러 지폐만 50장, 즉 현금으로 1000달러가 나왔다. 고등학생이 가지고 있기엔 조금 큰돈이 아닌가?
‘설마 부잣집 아이인가?’
그 이외에는 별다른 내용물이 없었다. 지갑 곳곳에 다양한 브랜드의 콘돔만 잔뜩 나왔다.
“헉!”
내가 워낙 경험이 없는 분야이다보니, 괜히 낯 뜨거워서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딱 그때 누군가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로한!! 이게 무슨 짓이니!”
“으악!”
갑자기 흑인 여성이 등짝 스매싱을 날리면서 쓰레기통의 콘돔을 하나씩 주워 담고 있었다.
“니가 밖에서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신경 안 쓸 테니까 피임은 꼭 하라고 했지!”
그러면서 일일이 지갑에 다시 꽂아 넣기 시작했다.
‘누구지?’
바로 내(?) 이름을 부르고, 하는 행동을 봐서는 가까운 사이가 맞는 것 같다.
유심히 그녀의 얼굴을 보면 뭐라도 기억나려나.
일단 연한 갈색의 피부에 갈색의 눈동자라고 해야 하나? 햇빛을 받으면 금빛으로도 보이는 눈동자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이목구비도 또렷하고, 진한 화장을 좋아해서인지 무척 화려한 이미지였는데,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라고 하기엔 좀 젊고, 이모? 아니지, 콘돔을 챙겨줄 사이면 좀 나이 차이가 나는 누나인가?’
내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는지, 그녀는 다시 성큼 다가오더니 또 한 번 등짝스매싱을 날렸다.
“아, 아파…”
“아프라고 때렸으니까 당연히 아프지! 도대체 너는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러면서 날 때리려고 또 한 번 손을 들자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기… 누나(Sis)? 내가 지금… 기억이 잘 안 나거든? 일단 앉아서 이야기 좀 할까?”
“누나??”
순간 그녀의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내 눈동자를 잠깐 마주 보더니, 그녀의 얼굴이 점차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퍽 – 퍼벅! – 퍽
“이게 좀 컸다고 잔머리를 굴려? 뭐어어? 기억이 안나?? 날 누나라고 부르면 속을 줄 알았니? 자, 이 엄마가 충격요법으로 사랑하는 아들을 고쳐볼까??”
나는 처음으로 감각이 되살아난 게 꼭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진짜 한 대 한 대 얻어맞을 때마다 죽을 듯 아팠다.
“으이구 진짜 속상해서 못살아.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놈이 가장 먼저 하는 게 콘돔 버리는 거냐, 어??”
나는 필사적으로 엄마(?)의 손바닥을 피하면서도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단서를 놓치지 않았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쓰러졌다고?’
대충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약물 과다복용으로 급히 병원에 실려간 아들. 연락을 받은 엄마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병원으로 이동하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그런데 막상 병실에 도착하니 멀쩡하게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안도감이 든다. 다만 모든 엄마가 그렇듯, 안도감은 금방 아들에 대한 분노로 전환된다.
‘부모가 이렇게 훌륭한 피지컬로 태어나게 해줬더니, 감히 약물로 건강을 해쳐??’
평생을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살았던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로한 킴에게 분노했다.
그녀의 마음이 너무 잘 이해가 됐다. 그것도 모자라 죽다 살아나자마자 콘돔을 몽땅 버리는 모습을 목격했으니, 아들이 얼마나 괘씸하겠나.
‘일단 오해를 풀어드리자.’
나는 내 뺨을 후려치려는 그녀의 두 손을 꼬옥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혼전순결을 지킬 거라 콘돔은 필요가 없어서 전부 버린 거에요.”
“……!”
‘오, 씨알이 먹혔나?’
내 말에 격한 감동을 받았는지, 그녀의 눈동자가 극심하게 흔들렸다. 혹시 그녀가 눈물을 쏟아낼까봐 서둘러서 티슈를 찾았는데… 그것이야말로 내 오해였다.
잠시 후.
그녀는 다급하게 의사를 호출했고, 의사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 우리 아들이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같아요. 혹시 이대로 영영 기억을 못 찾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
*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요청에 무척 당황했지만, 간단하게 내 몸을 검진하고 퇴원 조치를 내렸다.
“일단 집으로 가자.”
어째서인지 무척 상냥해진 그녀는 나를 차에 태웠다.
‘음, 부자는 아닌가?’
분명 내 지갑 상태를 봤을 때는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었는데, 엄마의 차는 한 20년쯤 된 허름한 일제 소형차.
뭔가 괴리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한동안 얌전히 정보를 모으기로 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한국 속담을 믿었다.
‘여기가 영화로만 접해본 캘리포니아였구나.’
차의 번호판, 그리고 도로의 표지판을 통해 이곳이 미국에서도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임을 알게 되었다.
너무 날씨가 좋고, 뭔가 여유로운 분위기가 풍겨서 정보 모으는 것도 잠시 잊어버렸다. 조용히 바깥의 풍경을 즐겼다.
“……”
가끔 엄마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도착했다. 이제 들어가자.”
‘꽤 허름한 동네에 사는군.’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오클랜드 외곽의 작은 동네.
병원 근처와는 달리 오래된 집들이 많았고, 거리가 정돈되지 않아서 문외한인 내가 봐도 낙후된 지역 같았다.
우리(?) 집도 무척 조촐한 외양을 지녔는데, 그나마 들어가니까 포근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가 풍겼다.
“아직 몸이 완전히 좋아지지 않았을 테니 쉬고 네 방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렴.”
“아, 네…”
대답은 곧잘 했지만, 나는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네 방이 어딘지 기억이 안 나니?”
그녀는 나를 탐색하듯 훑었다.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 여기야.”
결국 그녀가 직접 방문을 열어주었다.
무척 작고 지저분한 방이었다.
‘집의 거실이나 주방은 엄청 깨끗하던데, 이 방만 더럽네?’
그 이유를 금방 알게 됐다.
엄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피식 웃었다.
“내가 방에 들어와도 발작 안 하는 걸 보니, 연기가 아니라는 건 알겠네. 으휴.”
그녀는 나의 손을 이끌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아기를 보는 것만 같은 눈으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억도 안 나는 일 가지고 잔소리할 정도로 야박하진 않으니, 한동안은 좀 쉬렴. 학교에도 전화 해 놓을게.”
그녀는 내게 이불을 덮어주며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그리곤 방문을 열었다가 멈춰 서서는 나를 돌아봤다.
“혹시 필요한 게 있니? 배가 고프다던가…”
안 그래도 필요한 게 하나 있었다. 이렇게 장시간 ‘그것’ 없이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서 나름대로의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이 방은 아무리 둘러봐도 ‘그것’의 흔적 조차 찾을 수가 없어서 불안한 마음이 커지고 있는 상황.
“저, 혹시 그럼… 책이라도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뭐라고?”
그녀는 내가 마치 무슨 마약이나 총을 가져다 달라고 한 것처럼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 이 몸의 주인은 책과는 거리가 멀었구나…’
아무리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핑계를 댔다고는 하나, 기존의 ‘로한 킴’과 너무 다르면 주변의 괜한 의심을 살게 분명했다.
당분간은 주변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니 최대한 기존의 컨셉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제가 책은 무슨.”
“그, 그렇지? 무, 무척 재밌는 농담이었어.”
물론 조금도 의심이 가시질 않은 눈빛이다.
“음, 그럼 혹시 제 핸드폰을 주실 수 있나요?”
“아, 그래. 네 소지품을 보호자인 나에게 다 주더라. 내가 계속 가지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워낙 정신이 없어서 깜빡…”
별일도 아닌데 괜히 변명하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당연한 거죠 뭐. 전 미성년자고, 부모님이 법적인 책임자니까 병원에선 절차대로 한 거네요. 게다 약물 과다복용이었다면서요. 걱정할 만도 하죠.”
“…그래. 잘 쉬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불러.”
“네, 오늘 감사했습니다.”
“……”
그녀는 몇 번이나 나의 얼굴을 돌아보고는 방을 나섰다.
‘대충 반응을 보니까 이렇게 공손한 아들은 아니었나 보네. 하지만… 아무리 컨셉이라고 해도 어른에게 함부로 대하진 못할 것 같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단은 나에 대한 단서를 더 모아야 한다.
겉보기에는 멀쩡하니, 언젠가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갈길이 멀었다.
엄마이외의 가족 관계도 모르고, 16살이면 고등학교에 다닐 텐데 어떤 수업을 듣는지, 친구는 있는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하는 난관이 너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핸드폰이야말로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는데…
“헉!!”
나는 핸드폰의 내용을 보고 도저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로한 너는 누구냐.’
미국 피지컬 천재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