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2
22
할아버지 댁에 두 번째 방문.
‘감각이 무뎌지긴 하는구나.’
처음만큼의 감회가 없었다. 다만 태평양 위의 금문교가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회장님이 급하게 미팅에 들어가셔야 해서 잠깐만 기다려달라 하셨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미 와본 만큼, 알아서 응접실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걸어갔다.
“음?”
선객이 있었다. 누군지 바로 알아봤다.
‘이름이 다리우스였나?’
지난번 할아버지와의 만남 이후 가계도를 조사할 필요성을 느꼈다.
‘딱히 조사할 필요도 없이 검색만 하면 다 나오더라.’
좀 눈살이 찌푸려지는 표현이었지만, 할아버지가 집안을 ‘왕국’이라 부를 만했다.
‘그 왕국이라는 게 동물의 왕국이었을 뿐.’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결혼을 한 적이 없었다.
다섯 여자 사이에서 10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 아래 직계 손주만 25명이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할아버지가 성욕에 미쳤다기보단 경주마를 교배하듯, 최고의 유전자를 조합하고 싶은 광기의 결과…라는 것이 인터넷의 지배적인 추측이었다.
‘차라리 성욕에 미쳤다면 납득이라도 되지.’
온라인에 떠도는 소문이라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할아버지와는 더더욱 접점을 만들고 싶지 않아졌다.
“로한.”
내가 주변에서 서성이는 것을 느꼈는지, 그때까지 졸고 있던 다리우스가 눈을 떴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조카, 오랜만에 얼굴 보네.”
다리우스는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
가까워질수록 위압감이 상당했다.
키, 196cm. 몸무게, 135kg.
프로필 수치로도 장난 아니었지만, 실제로 마주 서니 피지컬 괴물이 따로 없었다.
우리 학교 미식축구부의 유망주 웨이드 존스가 완전하게 성장한다면 그제야 비벼볼 만한 완성형 신체의 소유자였다.
“이젠 내 앞에서 당당하게 고개도 쳐들고, 참 많이 컸어? 진짜 얼마 전만해도 나한테 먼지가 나도록 많이 맞았는데.”
“……”
몸이 다리우스를 기억하는 것 같다. 그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말 존나많네. 그럼 함 붙던가? 여기 지하에 복싱장 있는 거 아냐?”
이런 상황일수록 폭발하는 ‘로한’의 영향. 하지만 내가 다리우스에게 느끼는 적개심만큼은 나의 본심이 섞여 있었다.
“…어쭈. 이제 고등학생이다 이거야?”
“무슨 어른이라도 된 척 꼴값 떨지 마. 지도 고딩인 주제에, 존나 무게 잡네.”
다리우스는 나에게 무려 외삼촌, 즉 할아버지의 막내아들이지만 동시에 같은 또래의 고등학생이기도 했다.
그는 내가 가소롭다는 듯 목을 간단하게 풀었다.
“언제 날 한 번 잡기는 해야겠다. 머리 좀 커졌다고, 주제를 너무 몰라. 그깟 동네 미식축구부에 들었다고 나랑 동급인 것 같아?”
“아직 입부 안 했는데? 그깟 애들 공놀이에 목숨 거는 놈들이 병신 같아서.”
“음? 영상 보니까 아주 엄마 젖 먹는 힘까지 다 짜내서 발악하시던데요?”
“……”
더 이상 상대해주기 귀찮아서 그냥 나 먼저 쇼파에 앉았다.
다리우스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잡종 새끼치고는 나쁘지 않았어. 이제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었나 봐?”
“뭔소리야.”
“후계 경쟁에 참여하기로 작정한 거잖아. 그동안 온갖 고상한 척 다 떨다가 막상 나이 차니까 개처럼 달려오잖아.”
한숨부터 나왔다.
‘후계 경쟁? 이놈의 집안은 무슨 재벌가 흉내를 내? 진짜 무슨 왕국이라도 돼?’
“어차피 내가 벌지도 않은 돈에 관심 없거든?”
“돈? 돈도 돈이지만, 회사도 물려받고 싶잖아??”
“회사? …회사를 물려준다고?”
다리우스는 피식 웃었다.
“하긴, 넌 아직 이름을 받지 못해서 모르겠지. 이름에 딸려오는 자격과 권한은 단순히 돈이 아니야. 아마 그걸 설명해주려고 아버지가 오늘 널 불렀을 거야.”
어? 나도 생각보다 물욕이 있는 사람이었나. 다리우스의 말에 순간, 할아버지의 회사들이 하나씩 뇌리를 스쳤다.
‘음, 냉정히 따지자면 재벌은 재벌이지…’
할아버지는 농구 선수 커리어만으로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전설이었지만, 그걸 기반으로 더욱 크게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었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와 공동 지분을 갖고 설립한 [크롬웰]은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농구 스포츠용품, 의류 회사였다.
‘미국에서 5번째로 큰 자동차 대리점 체인점도 소유하시지.’
그 이외에도 자잘한 사업체가 많은 걸로 아는데,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할아버지의 기업은 바로 [퓨처]라는 단순한 이름의 벤처 캐피털, 즉 투자회사였다.
‘진짜 투자의 천재인지, 아님 그냥 시류를 잘 탄 기인인 건지…’
할아버지가 1980년도에 자리 잡은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와 맞닿아 있었다.
실리콘밸리는 그 당시에도 스탠포드 대학을 끼고 성장한 컴퓨터 산업의 허브로 유명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세계 최고의 자본, 인재, 기술이 젖과 꿀처럼 흐르는 약속의 땅은 아니었다.
‘그때부터 돈을 벌어들이는 족족 투자하셨으니… 실리콘밸리의 성장에 그대로 올라탄 격이겠지.’
“우리 조카도 역시 욕심이 있었구나? 눈알이 바쁘게 돌아가네. 하긴, 조 단위를 증여받을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제 발로 걷어찬 우리 누님이 별종이지.”
‘조, 조 단위??’
나의 초심은 아주 조금, 진짜 거짓말 안 하고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 조금만 흔들렸다.
다행히 다리우스의 낯짝을 계속 볼 필요는 없었다.
“기다려주어서 고맙구나.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지…”
“아니에요. 저도 바빠서 일단 할 말만 하고 가봐야겠습니다.”
“……?”
안 그래도 자리가 불편했던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동안 미뤄왔던, ‘크롬웰’이 되라는 할아버지의 제안에 대한 대답을 드렸다.
*
로한의 할아버지, J.P. 크롬웰은 가만히 앉아서 금문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국 곳곳에 저택을 두었지만, 주로 이곳에서 지내는 이유가 바로 이 풍경 때문이었다.
‘당돌한 놈.’
그는 좀 전, 로한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 지난번 할아버지의 제안에 대한 대답을 아직 드리지 않았는데, 대뜸 운동 장비를 보내시고, 각종 지원을 하시려고 해서 당황했습니다.
– 네 미식축구 트라이아웃 영상을 봤다. 몸도 온전히 회복하지 않았을 텐데, 나쁘지 않은 기량이었어. 나는 그게 너의 대답인 줄 알았는데?
로한의 트라이아웃 이후, 오클랜드 고교 미식축구부 코치진에게서 먼저 영상을 보내왔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가능성을 보았다.’
열등한 피가 섞이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워낙 우수한 딸 아래에 태어난 아이다 보니 기대할만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J.P. 크롬웰은 조급한 마음이 들어 바로 로한의 지원 및 통제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다.
‘더 이상 늦어지면 재능을 온전히 꽃피우지 못할 거야. 이미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는 자기부터가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성장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걸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영혼이 깎이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그런데 말이지…
– 저는 엄마와 할아버지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한, 크롬웰의 지원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
J.P. 크롬웰은 로한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혈압이 오르기 시작했다.
좀 전에도 거의 호통을 치듯 말했다.
– 뭐라고? 그건 감히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나와 다이애나 사이의 일이지. 네놈의 말 한마디로 20년에 가까운 갈등이 풀릴 거라고 생각했…
– 네, 저도 감히 끼어들 생각은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엄마와 할아버지의 사이가 소원한데, 아들된 입장에서 개별적인 관계를 쌓을 수 없습니다.
– ……!
J.P 크롬웰은 로한의 말이 너무 황당해서 오히려 분노가 사그라들기까지 했다.
‘내 지원 따위는 필요도 없고, 차라리 관계를 끊어버리겠다고 나선 손주가 있었나?’
그는 자녀가 많은 만큼 다 사이가 원만한 건 아니었다. 때때론 다이애나처럼 원수가 되기도 했다.
다만 그는 공평한 사람이기 때문에, 손주들에겐 따로 기회를 주었다. 어쨌든 크롬웰의 피가 섞였다면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 평생을 노력해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상류층의 특권을 걷어찬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뿐이었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죠?”
“…미카엘라.”
다리우스의 친모이자, 자신의 파트너 중 한 명인 미카엘라가 몸을 기댔다.
“아무리 봐도 기억을 잃은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래 보이나?”
“네. 아예 사람이 바뀌었잖아요. 로한이 저렇게 강단 있고, 가족의 의리가 있던 애였나요?”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전 조금 감탄했어요. 우리 아들도, 나를 저렇게 아껴주면 좋겠건만.”
J.P. 크롬웰은 힘없이 웃었다.
“다리우스는 야망이 있는 아이니까.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나도 팔아먹을 놈이야.”
“그래서 크게 성공할 것 같지만… 엄마된 심정으론 마음이 안 좋죠.”
그러다 미카엘라는 로한과의 대화가 떠올랐는지, 한참을 깔깔 웃었다.
“그래도 아직 로한이 애는 애인가봐요. 아직 치기 어린 게…”
“아, 자길 지켜봐달라고 한 걸 말하나?”
미카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제안을 확고히 거절한 로한이 안타까웠다.
– 그럼 아무런 조건도 걸지 않겠다. 가족의 이름을 받으라고 강요도 안 할 테니, 당분간 최소한의 지원은 받는 게 어떻겠냐. 지금 시기를 놓친다면 나중에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아무 의미가 없어. 평생을 후회한다고.
– 아니요. 할아버지도 사람이고, 저도 사람이에요. 뭔가를 주면 기대하게 되고, 뭔가를 받으면 보답하고 싶죠.
– 하지만…
– 할아버지의 지원 없이도 잘만 살아왔어요. 트라이아웃 보셨다시피 결과도 괜찮았고.
– 작은 우물에서는 개구리도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고 거드름 피운다.
– 아, 다리우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 …말장난은.
– 할아버지.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원하는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습니다. 딸이 없으면, 손자도 없어요.
– ……
–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할 생각이니, 지켜봐 주세요. 할아버지가 만든, 이 작은 우물 너머로 보시기 힘들겠지만.
그렇게 선언을 하고 로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그 모습이 예전, 다이애나의 모습과 똑같이 겹쳤다.
“일단 지켜보자고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뭐, 그래야겠지. 부디 너무 늦지 않아야 할 텐데.”
J.P. 크롬웰은 물끄러미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고… 미카엘라는 그런 파트너를 의미 모를 눈빛으로 지켜봤다.
*
오클랜드 고교 미식축구부의 트라이아웃이 있었던 정확히 1주일 후, 금요일 저녁.
“드디어 시즌 개막인가!!”
인근 대학 미식축구 경기장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트라이아웃 당시보다 훨씬 많은, 만 명에 달하는 관중들.
모두가 상기된 얼굴로 경기 시작을 기다렸다.
“와, 퍼시픽 하이츠… 저게 고등학교 팀이냐?”
지난 10년 동안 지역 1위 놓치지 않은 퍼시픽 하이츠 고교.
과연 미식축구 프로그램에 대학 수준의 막대한 투자를 하는 팀답게, 장비서부터 선수까지… 모두 전문적이었다.
“저기 쿼터백이 그 유명한 다리우스 크롬웰이라며? 이미 전국 1위, 앨러배마 대학에 싸인했는데 아직도 경기 뛰는 건 너무한 거 아냐?”
“그러니까… 3년 내내 뛰었으면 됐지, 졸업반 됐으면 후배들한테 좀 양보하면 안 되냐?”
“쟤, 스탯 파밍 하려고 계속 참가한다더라. 양학 하면서 모든 스탯을 펌핑하려는 거지…”
“너무한다. 다리우스 없어도 사실 이미 올스타 팀 아냐? 애들 발육 상태가 다들 대학생이라 해도 믿겠다.”
오클랜드 고교도 약한 팀은 아니지만, 그냥 한눈에 봐도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올해는 다르다.”
“후후후. 당연하지!”
평소의 오클랜드 고교 학생이었다면, 경기 시작 전부터 주눅들 수 있었겠지만… 올해는 과연 달랐다.
다들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한 명의 선수가 필드 위에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봤다.
미국 피지컬 천재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