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4
24
‘음, 다들 너무 살벌하게 쳐다보는데.’
플레이가 시작되기 전, 공격팀과 수비팀이 포지션을 잡았다.
두 팀 사이엔 보이지 않는 ‘라인’이 존재하는데, 공격이 시작되기 전까진 양 팀이 그 라인을 넘어 서로의 영역에 침범할 수 없었다.
그 라인에 가장 근접하게 정렬해 최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각 팀의 라인맨.
오로지 힘과 무게로 서로를 밀어붙여 상대의 영역을 침입하거나 저지해야 하는, 말 그대로 상남자의 포지션이다.
“너, 죽을 수도 있어.”
“평생 못 걸어도 괜찮아?”
건너편에 선 퍼시픽 하이츠의 라인맨들이 나를 조롱하며 자기들끼리 웃었다.
양 팀의 라인맨끼리 트레쉬토크를 하며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상대팀의 대부분이 내게 이목이 쏠려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자의식 과잉일까?
‘참, 트라이아웃 때도 그러더니… 로한이 어그로는 잘 끈단 말이야.’
나는 진형 파악부터 했다.
포메이션 상으로 우리 수비 라인은 넷, 상대 공격 라인은 다섯이다.
숫자도 열세인데, 퍼시픽 하이츠는 덩치부터가 대학 선수 수준. 직접 부딪혀봐야 알겠지만 힘도 상당해보인다.
‘우리 라인은 아마 웨이드 존스가 아니면 정면 승부가 힘들겠지.’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자세를 잡았다.
“헛, 헛, 하이크!”
다리우스의 신호와 함께, 상대팀 센터가 공을 그에게 스냅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양 팀의 라인맨들이 서로에게 달려드는 신호이기도 했다.
“……!”
다리우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던 나는 순간 싸한 느낌이 들어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러쉬다!”
과연 다리우스는 패스 모션까지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자신의 뒤에 있던 러닝백에게 공을 건네주었다.
러쉬(Rush) 플레이는 말 그대로 정면 돌파.
수비의 벽 사이에 구멍을 뚫어 최대한 전진하는 전략이다.
당연히 공격 라인맨들도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수비 라인맨들을 거칠게 밀어낸다.
‘이것들이?’
그런데 퍼시픽 하이츠의 러쉬는 조금 달랐다.
상대 런닝백은 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나와 웨이드 존스의 틈새 공간을 노린 것도 아니었다. 정면돌파가 아닌 정면충돌!
두 명의 공격 라인맨들까지 러닝백을 보조하기 위해 나에게 달려들었다. 어떻게든 부상을 시키겠다는 그들의 악의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야생 짐승처럼 달려드는 피지컬 괴물들. 본능적으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내 안의 ‘로한’은 웃었다.
“그래, 오늘 누구 한 명은 죽어보자고.”
덕분에 나도 피가 끓었다. 문득 오늘 경기를 준비하며 읽었던 문구가 떠올랐다.
나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공격팀.
“과연, 쉽게 가는 법이 없군.”
내 옆을 지키던 웨이드 존스는 아주 흡족하게 웃으며 나를 지원했다.
정말 정신 나간 짓이지만, 나 또한 정면 돌파를 마음먹었다.
허벅지의 힘을 폭발시켜 러닝백에게 달려들었다. 코앞이지만 가속도가 붙었다.
“……!”
나에게 달려들던 공격 라인맨들은 내가 전혀 겁먹지 않고 오히려 전력을 다해 들이박는 걸 보고 경악했다.
그 미세한 찰나를 놓칠 내가 아니었다. 상당한 운동 에너지를 바탕으로 아주 깔끔하게 런닝백을 태클했다.
‘무게가 부족하다면 속도로 충당하면 된다.’
퍼억!
모든 것을 부숴버릴 각오로 돌진하던 런닝백은 놀랍게도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웨이드까지 달려드니 속수무책으로 다운되면서 공격이 허무하게 끝났다.
결국 1야드도 전진하지 못한 것이다.
“미, 미친놈인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공격 라인맨들은 그런 나를 미친놈 취급했다.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플레이. 겁도 없이 달려들면 하루아침에 병신이 될 거라고 으르렁거렸다.
“……”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봤다. 정작 런닝백은 내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두 번째 공격을 위해 조용히 자신의 포지션을 찾아갔다.
‘분명 태클이 제대로 들어갔는데… 보호장구를 차서 그런가?’
나는 머릿속에서 방금의 플레이를 수십 번 돌려보며, 조금 더 좋은 자세, 더 이상적인 타이밍, 그리고 완벽한 타점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심상 세계의 시뮬레이션. 방금 몸으로 직접 체험한 경험을 보태며 더욱 정교한 이미지 트레이닝이 가능해졌다.
*
“어떻게 된 거야?”
다리우스는 덩치가 좋은 공격 라인맨들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장면을 보진 못했다.
다만 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해야 할 로한이 멀쩡하게 서 있자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분명 충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1야드도 전진 못하고 다운된 거야?”
“……”
정작 러닝백, 제이든 깁스도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지?’
제이든은 2년 연속 올 어메리칸(All-American: 매년 가장 우수한 고교 선수 100명에게만 주어지는 상)으로 뽑힌 전국구 러닝백이었다.
매 시즌 200번 이상의 러쉬 플레이를 펼치는 베테랑 멤버인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묵직한 태클이었어. 그 사이 몸무게가 늘었나?’
트라이아웃 당시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파악한 ‘로한’은 절대 라인맨의 재목이 아니었다.
풋워크, 즉 발놀림이 좋았지만 그거야 몸이 가벼우니 당연한 것. …그러나 태클의 무게감은 당연하지 않았다.
‘진짜 라인맨과 부딪힌 느낌이었다.’
제이든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양 팀은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똑같이 갈 거니까, 이번엔 제대로 해라.”
“걱정마.”
그는 잡념을 떨치고 다시 플레이에 집중했다.
‘그래 조금 전에는 작다고 방심했다. 어쨌든 다리우스와 피가 섞였으면 내세울 무기가 하나쯤은 있겠지.’
상대가 상대라지만 정면충돌은 무모했다. 일단 라인의 빈틈을 찾아 어떻게든 전진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이크!”
다행히 모든 게 완벽하게 풀렸다. 오클랜드는 두 번의 연속 러쉬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수비 라인이 흐트러져 있었고… 허를 찌르는 타이밍에 공을 건네받은 제이든이 공을 꽉 껴안고 뛰었다.
‘좋다.’
컨디션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수백 번은 뛰어본 루트. 이대로 수비벽을 뚫고 공격 횟수가 갱신되는 10야드는 물론, 어쩌면 터치다운까지 노려볼만한 경로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컥!”
제이든은 첫 번째 공격 때와 똑같은 지점에서 태클을 당했다. 그것도 로한의 어깨에 정확하게 명치를 얻어맞으며 순간 시야가 깜깜해지고 숨이 턱 막혔다.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정신까지 잃었다.
“……”
언제 쓰러진 걸까? 눈을 뜨니 하늘을 올려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오, 이런 느낌이구나. 근데… 태클이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갔으면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
제이든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오늘 상태 별로야?”
그때 다리우스가 와서 제이든을 번쩍 일으켰다. 그는 눈을 얇게 뜬 채 자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쉴래?”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리우스의 쉬겠냐는 질문은 한두 경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위험.’
이런 때일수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다시 가자.”
“…그래야지. 관중들 분위기 안 보여? 만회해라.”
누구보다도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다리우스답게 무척 예민해져 있었다.
“하이크!”
이제 4번의 공격 기회 중 3번째. 실질적으로 이번에 10야드를 전진하지 못하면, 4번째는 공을 멀리 차야하기 때문에 마지막 공격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리우스는 이번에도 자신에게 공을 주며 러쉬 플레이를 강행했다. 이쯤되면 전략이라기보단 자신에 대한 시험에 가깝다.
‘내가 또 당하면 병신이지.’
제이든은 반대쪽 라인을 노리며 돌파했다. 다행히 처음 노리는 방향이라 수비 라인맨들이 허점을 보였고, 그 사이를 손쉽게 뚫었다.
라인을 넘어서자 전방에서 우왕좌왕하는 후방 수비팀이 보인다.
‘됐다.’
달리기에 꽤 자신이 있는 제이든은 금방이라도 터치다운 존에 도착할 것 같았다.
“어?”
근데 언제 따라온 걸까? 전력으로 달리는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따라잡힌 경험이 없어서 상상도 못했다.
툭 –
로한이 너무 깔끔하게 자신의 공만 쏙 쳐 냈다.
하필이면 수비진의 영역 깊숙이 들어와서 도와줄 팀원이 없었다.
“실례.”
로한은 바닥에 데구르르 구르는 공을 순식간에 잡아채더니, 이번에는 공격 진영으로 매섭게 뛰기 시작했다.
제이든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따라갔지만, 점점 격차가 벌어졌다.
‘뭐야? 분명 40야드 대쉬 기록은 나랑 비슷했는데???’
“잡아!!!”
제이든이 다급하게 외쳤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퍼시픽 하이츠의 대형은 수비에 적절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각자의 기량을 고려하면 임기응변으로라도 막아낼 법했다.
하지만 로한은 4~5명 사이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순식간에 50야드를 질주해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
[오클랜드 6 : 퍼시픽 하이츠 0]– 와아아아아아아아아!!!!
– 제이든이 펌블(Fumble: 공을 놓치는 것)하다니. 이거 한 시즌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진귀한 장면이네?
– 아니 퍼시픽 하이츠 공격으로 시작했는데, 먼저 실점한 적이 아예 없지 않나?
– 저 디펜시브 엔드 누구야? 제이든이 전혀 힘을 못쓰네??
제이든은 물론, 퍼시픽 하이츠 진영이 조용해졌다.
지난 두 시즌 연속, 리그 전승을 기록한 챔피언들은 로한의 플레이 한 번으로 정신이 바짝 들었다.
*
절치부심한 퍼시픽 하이츠는 간결한 패스 플레이를 펼쳤다.
다리우스의 빠른 상황 판단과 우수한 리시버 자원을 바탕으로 거침없이 전진했다.
“어딜 감히…”
간혹 라인이 뚫려, 로한에게 태클 당할 위기에 몰리면 재빨리 무릎을 꿇거나 패스 실패를 통해 직접 다운을 했다.
[오클랜드 7 : 퍼시픽 하이츠 7]“……”
결국 퍼시픽 하이츠의 터치다운과 필드골로 이어졌지만, 다리우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팀원 대부분이 마찬가지였다.
‘설마 로한… 수비를 뛴 주제에, 공격까지 나서진 않겠지?’
차라리 그렇게 생각이 없기를 바랬다.
“저 자식 정신 상태를 보면 공격도 뛸 수 있어. 트라이아웃 때 허세가 생긴 편이라 쿼터백이나 리시버로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다리우스는 공수가 교체되어 퍼시픽 하이츠의 수비팀이 필드로 나가기 전에 명심시켰다.
‘두 발로 걸어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한은 오클랜드의 공격 타이밍에 벤치를 지켰다.
‘겁쟁이 자식.’
오클랜드는 주장 대런 로저스를 필두로 제법 그럴싸한 공격을 펼쳤지만, 퍼시픽 하이츠의 수비벽은 두터웠다.
결국 1쿼터는 동점으로 끝났다.
“……”
잠깐의 휴식 시간 동안 코치진은 열심히 2쿼터의 전략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다운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지역 리그를 제패하는 것이 퍼시픽 하이츠의 전통.
주전들은 유리한 조건으로 대학 진학을 노리고 있는데 첫 경기부터 제대로 체면을 구겼다.
“아직 늦지 않았어. 오히려 지금부터 학살하면 관중과 리쿠르터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운동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위기 대처 능력. 스포츠라는 현실 드라마에서 골리앗이 쓰러지는 경우는 운도 있겠지만, 바로 이 위기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리우스는 오늘의 경기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증명할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보고 계신다.’
그에겐 자신의 자질을 증명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필요하다면 반칙을 써서라도 박살내버리겠다.’
*
4쿼터까지 경기를 치른 다리우스는 창백해진 얼굴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허망한 표정을 관객들이 실시간으로 찍고 있었지만, 다리우스는 그런 것에 신경 쓸 힘이 없었다.
2쿼터
[오클랜드 14: 퍼시픽 하이츠 14]3쿼터
[오클랜드 21: 퍼시픽 하이츠 21]4쿼터
[오클랜드 28: 퍼시픽 하이츠 28]오클랜드의 공격팀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점수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4쿼터까지 동점. 결국 오버타임을 가게 되었다.
‘이건 악몽이다… 현실 일 수가 없어…’
그 침착하고 냉정한 다리우스도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