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5
25
경기 시작 전.
J.P. 크롬웰은 오늘의 게임을 관람하기 위해 럭셔리 박스 스위트를 빌렸다.
미식축구 경기장의 최상층. 경기 내용이 한눈에 보이고, 아무런 방해 없이 조용히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오클랜드 고교 헤드 코치가 도착했습니다.”
그가 비서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민머리의 헤드 코치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경기 준비로 바쁠 텐데, 잠깐 시간을 내줘서 고맙네. 일단 앉지.”
“네.”
J.P.는 사람을 불러놓고 한참동안 가만히 경기장을 내려봤다.
경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퍼시픽 하이츠와 오클랜드 고교 선수들이 간단하게 몸을 풀고 있었다.
“우리 손자가 갑자기 미식축구부에 입부했다지?”
“네, 그렇습니다.”
“흐음.”
‘과연 나를 찾아온 이후로 마음이 바뀌었다는 거로군.’
트라이아웃이 끝나고는 전혀 관심이 없다가, 일전에 자신을 방문한 이후 곧바로 입부했다.
문득 손자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할 생각이니, 지켜봐 주세요. 할아버지가 만든, 이 작은 우물 너머로 보시기 힘들겠지만.
“당돌한 녀석… 그래서 일주일 동안 성실하게 훈련하던가?”
“한동안 개인 훈련에 집중하다가 어제 처음 팀 전술 훈련에 참석했습니다. 워낙 명석해서 한 번만 설명을 해도 직접 뛰어본 것처럼 바로 이해하더…”
“개인 훈련? 경기가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팀 훈련에서 열외 시켜주었다고?? 그 아이의 요청이었나?”
“네, 그렇습니다. 로한 선수에게는 그 정도의 재량 허락해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허어.”
J.P.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아무리 컨트롤하기 어려운 아이라지만, 팀에 합류시키기 위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특별대우를 해주나? 자네가 그러고도 헤드 코치인가?”
프로 씬에서는 선수 감독 관계가 다르지만, 적어도 고교와 대학 단계에서 헤드 코치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핵심 주전이라도 헤드 코치에게 말대꾸 한 번 못할 정도로 철저한 상명하복의 지휘 체계.
그런 힘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로한 한 명을 위해 특혜를 준다는 건 헤드 코치로써의 자질 부족 아니냐고 꾸짖는 것이었다.
“네, 제가 헤드 코치 맞습니다.”
“…내가 무슨 뜻으로 묻는 건지 알잖나.”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답변드린 겁니다. 제 체면보다 중요한 건 팀의 분위기, 그리고 성적입니다. 저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헤드 코치의 알량한 권력 싸움 정도는 져줄 수 있습니다.”
“쯧.”
J.P.는 불만족스럽다는 듯 혀를 찼다.
“팀의 개개인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비로소 한 팀이라고 할 수 있다. 출신, 환경, 생각 모두 제각기 다른 고교생이 한 몸이 된 듯 전술을 이행하려면 헤드 코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몸이 먼저 나설 정도로 장악해야 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개인 기량이 뛰어나다고 해서 한 명을 위해 특혜를 준다면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불만을 가지고, 코치의 결정에 의구심을 갖게 된다. 거기에 로한을 이런 중요한 경기에 주전으로 내세운다? 기존의 모든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악수야.”
언성만 높이지 않았지, 분명 질책의 자리였다.
헤드 코치는 잠자코 듣다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손자를 굉장히 아끼시는 모양입니다. 사실 오클랜드 미식축구팀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배님이 보시기에 한없이 부족한 제 아래에서 로한이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급하신 거 아닙니까?”
“……”
정곡이 찔린 J.P.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과한 걱정이십니다. 아이들 모두가 로한을 이레귤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특혜가 아닌 당연한 대우라고 여기죠. 무엇보다 팀에 긴장감을 주고 자극이 되어서 모두 전보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레귤러라… 그래. 작은 우물에서는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지. 하지만 퍼시픽 하이츠만 봐도 그 정도의 재목은 넘쳐난다. 당장 뼈를 깎을 정도로 훈련을 해도 모자랄 판에…”
J.P.는 혈압이 오르는 걸 느끼곤 다시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바쁠 텐데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네. 손자를 잘 설득해서 퍼시픽 하이츠로 전학을 시키거나, 하다못해 우리 전문가들의 트레이닝을 성실하게 받게 한다면 앞으로 4년 동안 매해 100만불(=13억 가량)을 자네 팀에 기부하겠네.”
“……!”
100만불이면 오클랜드 고교 미식축구팀의 1년 예산보다 많았다.
아무래도 헤드 코치인만큼, 그 정도의 기부금으로 프로그램을 얼마나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계산해보게 됐다.
“과분한 제안 감사합니다. 열심히 설득해보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지금이 손자에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 줄 안다면…”
“그런데 뭐, 아시피다시피 로한이 남의 말을 잘 듣는 학생은 아니잖습니까. 굳이 선배님의 지도편달보다 우리 프로그램이 너무 좋아서 남겠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존중하겠습니다.”
“……”
헤드 코치는 그러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에 대한 조언도 뼈에 새기겠습니다. 다만, 이번 경기… 아마 생각보다 재밌을 겁니다.”
J.P.는 그가 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작년만 해도 내가 하는 말이라면 착실하게 따르던 놈이…’
이러다 화병이 나서 쓰러지겠다. 손자 놈이고, 까마득한 후배 놈이고 마음대로 따르는 녀석이 없다.
‘이게 다 모두를 위한 일이건만… 제 발로 복을 걷어차다니.’
J.P.는 그나마 늠름하게 팀의 훈련을 진두지휘하는 다리우스의 모습을 보며 마음을 풀었다.
‘착실하게 성장해주고 있어. 이대로만 간다면 NFL 주전도 멀지 않았다.’
반면 팀원들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로한. 그 상반된 모습이 J.P.의 영혼을 갉아먹었다.
‘오늘의 경기가 부디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아직 로한은 트라이아웃의 영광에 취해 오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바닥에 처박혔을 때의 참담함이 큰 법.
J.P.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자에게 손을 내밀 생각으로 오늘 이 자리에 왔다.
자손의 잠재성을 발굴하고 한계까지 성장시켜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가문의 지도자로써 마땅한 역할이었다.
“……”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J.P.는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라인? 로한이 라인을 선다고? 저 코치를 어떻게든 경질시켜야한다.’
가장 부상을 많이 당하는 포지션에, 상대적으로 작은 로한을 세우다니.
트라이아웃 때야 이벤트성으로 허락해줄 수 있다지만, 이런 중요한 경기에 아무리 선수 본인이 원한다고 한들 들어줘야 할 요청이 있고, 무조건 거절해야 하는 요청이 있다.
한 번의 부상으로 언제든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게 미식축구.
J.P.가 다급하게 헤드 코치에게 전화를 넣으려고 했는데…
“……!”
상대 러닝백을 상대로 정면 태클을 날리는 로한.
J.P.는 멍청하게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저렇게 완벽한 태클을 구사한다고?’
교재에 넣어도 될 정도로 정석을 따른 완벽한 태클. 더욱 놀라운 건 그것이 우연이 아닌지, 두 번째 러쉬 플레이도 순식간에 막았다.
‘방금 러닝백이 혼절했다.’
자기보다 키도, 몸무게도 적은 상대에게 태클을 당해 정신을 잃는 건 그만큼 기술력이 뛰어났다는 의미다.
“…맙소사.”
마지막으로 로한이 최단거리를 따라 러닝백을 추격해 펌블시키고, 공격권을 빼앗자 J.P.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공간 지각 능력까지 뛰어나다.’
퍼시픽 하이츠는 동네 오합지졸이 아니다. 돌발변수로 로한이 공을 빼앗아 터치다운 존으로 쇄도하는 상황이었지만, 퍼시픽 하이츠의 공격진은 철저하게 공간을 좁혀오며 쥐를 몰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로한은 적절한 움직임으로 상대를 속이고, 빈공간을 활용해 공격진을 바보로 만들었다. 이건 로한이 잘했기 때문에 쉬워 보이는 거지, 조금만 방향을 잘못 틀었다면 언제든 다운될 수 있었다.
그런 변수를 사전에 차단하고 터치다운에 성공하다니
‘역시. 나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다.’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철저하게 가르친다면 다리우스 못지않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가 두 주먹을 불끈 시켰다.
희귀한 원석은 J.P.의 심장을 뛰게 했다.
‘우리 가문 안에서 두 명의 NFL 자원을 더 배출할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외출할 가치가 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를 잘했다.
“…어?”
로한이 가진 잠재성의 크기를 정확하게 파악했다고 확신한 J.P.는 경기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상식을 벗어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1쿼터, 2쿼터, 3쿼터, 4쿼터.
J.P.의 두 눈이 격심히 흔들렸다. 그의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대변하듯…
*
[오클랜드 28: 퍼시픽 하이츠 28]오버타임이 시작된 시점.
동점임에도 불구하고 양 팀의 쿼터백들은 이미 일방적으로 경기를 진 것처럼 멘탈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아무리 퍼시픽 하이츠가 상대라지만, 단 한 번도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하다니…’
대런 로저스는 오늘의 경기를 가장 열심히 준비했다.
신입생으로 들어온 첫해, 주전 쿼터백으로 발탁되어 리그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퍼시픽 하이츠와의 격차는 상당했다.
‘42 대 7… 철저한 원사이드 경기였어.’
그때의 절망감을 극복하기 위해 미식축구에 미친 사람처럼 훈련했다. 작년의 주전들이 대부분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더 경기다운 경기를 펼칠 자신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난 1년동안 퍼시픽 하이츠의 수비팀도 놀고 있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대런 로저스는 경기 내내 좋은 패스를 여러 번 성공시켰지만, 엔드존은 무슨… 결국 필드골 거리까지도 좁히지 못했다.
‘솔직히 우리 수비팀이 아니었다면 점수가 0점. 완전 콜드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키커가 터치다운 후 보너스 킥을 성공시켜 총 4점을 기록했지만, 공격팀이 기여한 부분은 없었다.
공격팀이 미식축구 경기에서 점수를 못 올리다니… 적어도 대런에게 있어서 이건 이미 진 경기나 마찬가지였다.
*
“……”
오클랜드 고교의 공격팀을 철저히 무력화시킨 퍼시픽 하이츠라고 사기가 높은 건 아니었다.
그나마 퍼시픽 하이츠의 공격팀은 매 쿼터 한 번의 터치다운과 한 번의 보너스킥을 성공시켜 총 28득점을 올리긴 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오클랜드 공격팀의 무득점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퍼시픽 하이츠에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네 번의 턴오버(Turnover: 공격권을 수비팀에 빼앗기는 행위)라니!!!’
다리우스는 한 번도 상상조차 못해 본 악몽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는 완벽주의자라 안전한 플레이를 통해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을 최우선시했다.
그 결과 지난 3년 동안 경기당 한 번의 턴오버도 잘 나오지 않았다. 노스캘 리그는 물론, 북미에서도 랭킹 안에 들 정도로 우수한 안정성이었다.
물론 사람인 이상, 실수는 나오기 마련.
1쿼터의 펌블은 방심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설마 트라이아웃에서 보여준 모습이 다가 아니었다니.’
로한이 영악하게 일부러 기량을 숨길 줄은 몰랐다. 아마 오늘 경기를 대비한 계책이란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어쨌든 2쿼터는 더욱 신중하게 공격에 임했다.
“씨발!!!!”
그런데 또 한 번의 턴오버를 당했고, 1쿼터의 악몽이 재현됐다.
다리우스는 라인맨을 넘어 리시버에게 짧은 패스를 던졌다. 성공률 80%를 자랑하는 그의 전매특허 택배 패스.
이미 오늘의 경기에서도 재미를 쏠쏠하게 본 플레이였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쪽에서 튀어나온 로한이 그걸 인터셉트(Intercept: 패스 가로채기) 해 다시 한 번에 터치다운을 시켰다.
‘미리 경로를 읽은 거야.’
이때부터 다리우스는 평정심이 흐트러졌다.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실력이기 때문.
설상가상으로 3쿼터에 또 한 번 펌블을 당했고, 4쿼터에 다시 인터셉트를 당했다.
똑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다리우스는 그냥 죽고 싶었다.
‘공의 소유권을 빼앗기는 건 둘째치고, 그걸 매번 터치다운까지 성공시키다니.’
그게 턴오버의 위험성이었다.
공격팀은 수비진을 뚫고 상대의 영역에 전진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지, 갑작스러운 공수전환도 모자라 뒤늦게 수비에 가담하는 게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로한은 라인맨일 때야 어색한 체격이지, 정작 공을 들고 뛰는 러닝백의 역할은 완벽하게 소화했다.
각 쿼터에 딱 한 번 직접 기회를 만들었고, 단 한 번의 기회를 점수를 올렸다.
오버타임에 들어가는 퍼시픽 하이츠가 보기 드물게 위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노스캘 고교 리그의 오버타임 룰은 간단했다.
양쪽 팀 간에 공격 기회를 한 번씩 가진다.
턴이 끝났을 때 점수가 높은 쪽이 승리.
여전히 동점이라면 승부가 날 때까지 턴을 반복했다.
“미안하다.”
대런은 잠깐의 휴식 시간 동안 수비팀에게 사과했다. 특히 나를 볼 면목이 없는지, 내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다.
사실 수비팀이 이 정도의 활약을 펼치면 무조건 이긴 게임이다. 그런데 승부가 이렇게 된 것은 오로지 공격팀의 부진 때문.
“그럼 당연히 미안해야지.”
내 안의 ‘로한’이 조롱하듯 말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공격팀은 후배의 건방진 태도에 그 누구도 발끈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잠깐 보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대런을 붙잡고 자세하게 설명했다.
“……!”
그는 경악한 눈빛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다가, 이내 경기 재개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필드 위로 나갔다.
‘어떻게 되려나?’
오클랜드의 공격으로 오버타임 시작.
나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