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6
26
오버타임 시작 직전.
헤드 코치의 허락하에, 대런 로저스는 공격팀을 모아 마지막 전술을 지시했다.
“잘 들어.”
항상 무표정에 가까운 대런 로저스는 어째서인지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자. 너희 한 명 한 명에게 정확한 역할을 준다. 전담할 퍼시픽 하이츠 수비진은 물론, 동선까지 알려줄 테니까 한 번만 그대로 따라줘.”
“……?”
나머지 10명의 선수 모두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원래 전술은 갑자기 바뀌지 않는다.
런닝백을 활용하는 전술, 와이드 리시버를 활용하는 전술, 비장의 조커 카드 등 모두 미리 철저하게 익혀서 게임을 뛴다.
그래서 정작 경기가 시작되면 쿼터백이 간단한 신호를 통해 입력값을 넣으면 미리 익힌 전술에 따라 각 팀원들이 움직인다.
하지만 대런은 시스템을 딱 한 번 깨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자,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무조건 동선을 외워.”
어느새 작은 화이트보드를 가져와 플레이 바이 플레이를 직접 보여주었다.
“너는 상대 라인을 저지하는 척하면서 왼쪽에 틈을 살짝 만들어줘. 그쪽은 뚫려도 돼.”
“……?”
“리시버 둘은 아예 오른쪽에 나란히 서.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전속력으로 뛰면 돼.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일직선으로.”
“……?”
“러닝백은 공을 받는 척 모션을 하고, 내가 그려주는 방향으로 뛸 거야. 역할이 중요하니까 잘 숙지해.”
“……?”
“그리고 타이트 엔드, 너는… 너는… 잠깐.”
대런은 황급히 뒤쪽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로한에게 다가갔다.
“……!”
놀랍게도 로한과 뭔가를 속닥이고 돌아온 대런은 다시 확신을 가지고 전술을 알려주었다.
“조금 동선이 복잡하니까 잘 봐. 스플릿 동선인데, 마지막에 컴백을 할 거야.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대런은 정말 10명 모두에게 일일이 지시를 했다.
‘이거… 완전 개판인데? 플레이가 정말 될까?’
다 들으면 납득이 될 줄 알았는데, 다 들으니까 더 혼란스러워졌다.
다들 이미 익히고 있는 동선이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포지션이 각각 다른 전술을 위한 동선을 알려줬다는 것이다.
라인 절반은 러쉬 플레이를 위한 동선, 나머지 절반은 패스 플레이를 위한 동선. 런닝백들도 제각기, 와이드 리시버는 장거리 패스를 위한 동선.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 팀의 동요를 대런이 모를 리가 없다.
“명심해.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없어. 시작하자마자 이대로 가는 거야. 조금이라도 주저하면 망하니까, 딱 한 번만 나를 믿고 가자. 부탁할게.”
부탁한다는 한마디에 분위기는 평정됐다. 대런은 팀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주장. 공격팀은 머릿속의 의구심을 지웠다.
“가자.”
드디어 오버타임 시작. 공격팀은 힘 있게 필드 위로 입장했다
[오클랜드 28: 퍼시픽 하이츠 28]양 팀은 바로 포지션을 잡았다.
노스캘 리그의 오버타임 규칙에 따라, 오크랜드의 공격은 킥오프 없이 바로 25야드 선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최소 75야드(69m)를 전진해야 엔드존.
공격이 한 번만 잘 풀려도 얼마든지 터치다운을 할 수 있지만, 오클랜드의 공격팀은 본 경기 내내 단 한 번도 점수를 올리지 못했다.
그 말은 시작점인 25야드 선에서 45야드도 전진하지 못해서 필드골조차 시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필이면 리그 첫 경기. 이대로 끝난다면 전체적인 성적에 영향을 준다.’
대런은 플레이 시작 전, 짧고 굵게 한마디만 했다.
“저기 수비팀의 누군가가 우릴 얼마나 욕하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얼마나 조롱당할지 생각해보라고.”
다들 슬쩍 로한을 돌아봤다. 악마처럼 사악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전투의지를 불태웠다.
“헛, 헛, 하이크!!”
센터의 스냅과 동시에 대런이 공을 받았다. 양 팀의 선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게 맞나?’
시야가 넓은 대런. 전황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실 자신 있게 전술을 알려주었지만, 대런 본인도 크게 신뢰하지 못했다. 다만 잘 풀린다면… 잘 만 풀린다면 퍼시픽 하이츠의 허를 찌를 수 있다는 점만 동의했다.
라인맨들이 치열하게 서로를 밀고, 리시버는 맹렬히 뛰기만 했다. 각자 발 빠른 코너백들이 추격하고 있어서 공간이 거의 나오질 않는다.
패스도, 러쉬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진형이 망가졌다.
이대로라면 역사상 가장 형편없는 즉흥 플레이가 아닐까?
– 기다려. 이 플레이에서 핵심은 바로 쿼터백 네가 압박감을 이겨내고 기다리는 거야. 평생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분명 기회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와. 그러니까 기다려.
쿼터백이 공을 받는 순간 수비팀 모두가 달려든다. 공격팀이 최대한 저지를 해보려하지만, 평생 막아낼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시간에 쫓겨 최적의 패스를 연결해야 한다. 느긋하게 뭔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신없이 주변을 살피며 최선책을 찾아야 하는 역할.
실제로 라인이 무너지고, 수비팀의 라인백커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이 보인다. 참지 못하고 패스를 던질 뻔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동선을 따르던 런닝백 중 한 명이 간신히 막아주어서 2초 정도를 벌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
대런은 로한이 자신에게 약속했던 바로 그 ‘기회의 문’이 열린 걸 확인했다.
끊임없이 패스 줄 사람을 찾는 척 하던 대런은 그대로 공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 와아아아아아아!!!
이어진 플레이에 경기장이 뒤집어졌다.
*
‘이런 플레이를 하면… 일회성이지만 먹히지 않을까?’
나는 경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독특한 경험을 했다.
오클랜드의 공격이 진행될 때 나는 벤치에 앉아서 체력을 회복했다. 그리고 유심히 경기를 지켜봤다.
미식축구는 정말 상남자의 스포츠였다.
오로지 육체적인 재능을 놓고 승부를 가리는 혈전. 가만히 경기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가 끓었다.
왜 미국이 미식축구에 미쳤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음… 우리는 굉장히 정석적인 전술을 착실히 따른다면, 퍼시픽 하이츠는 데이터 기반의 최적화된 전술을 활용하는군.’
플레이가 거듭될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상 세계에서 양 팀의 전술을 시뮬레이션 해볼수록 그 생각은 확신이 되었다.
오클랜드는 효과적인 전술들을 열심히 익혔고, 이행능력이 뛰어났다. 다만 퍼시픽 하이츠는 우리 팀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그것을 토대로 특별한 전술을 새롭게 적용했다.
고교 스포츠 수준에서는 보기 힘든 분석력과 전술 기획력이었다.
‘과연 할아버지가 투자를 많이 한 시스템답군.’
굉장히 ‘반응’적인 팀이었다. 우리 팀의 행동에 반응을 하듯 플레이가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1쿼터, 2쿼터, 3쿼터, 4쿼터… 퍼시픽 하이츠는 정말 플레이 자체를 예술적으로 승화했다.
공격에서 애를 먹는 건 나라는 변수 때문일테고, 수비가 철저하게 오클랜드를 봉쇄하는 이유는 그런 변수가 없어서겠지.
‘우리에게 승산이 아예 없나?’
어려운 문제였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면서… 어느새 심상 세계가 열렸다.
“……”
심상 세계에서 우리가 가진 전술들을 수십 차례 시뮬레이션했다. 경기를 지켜보며 쌓인 데이터를 토대로 퍼시픽 하이츠의 대응을 예측해봤다.
“오.”
굉장히 리스크가 크지만, 그만큼 리턴이 확실한 방법이 떠올랐다. 정작 방법을 떠올리니까 안달나기 시작했다. 이걸 현실에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와아아아아아아!!!
다행히 헤드 코치와 대런을 설득할 수 있었고, 그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분명 플레이의 초반은 엉망이었다. 쿼터백이 패스를 할지, 런닝백이 뛸지, 쿼터백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난해한 구도였다.
그런데 딱 어느 시점이 되자 길이 열렸다.
공격팀과 수비팀이 정신없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가운데, 쿼터백은 자신이 본 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너무나 확인하게 뚫린 직선의 길. 다만 수비팀은 진형이 망가지면서 시야가 가려 아직은 보질 못했다.
‘쿼터백을 하기엔 아까운 피지컬이라니까.’
대런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접 공을 들고 뛴 적이 없는 정석적인 쿼터백. 근데 막상 뛰니까 속력이 무시무시했다.
순식간에 30야드를 돌파했다. 뒤늦게 코너백이 방향을 틀어 추격했지만, 대런의 동선은 완벽했다.
퍼억!
마지막 순간에 태클을 당해 쓰러지긴 했지만, 그곳은 바로 엔드존.
– 터치다운!!!!
– 지금… 대런이 러닝 플레이를 한 거야?? 한 번도 한 적이 없잖아???
– 캬아. 뽕이 차오른다. 내가 이런 경기를 직관하다니.
대런은 터치다운임을 확인하고 쓰러진 그 상태로 주먹만 번쩍 들었다.
그러자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지만, 근처에 있던 공격팀 몇몇이 그의 위에 달려들었다.
‘최고다.’
나도 흥분에 취해 두 주먹을 흔들었다.
내 머릿속에서 상상한 장면이 현실로 펼쳐지다니.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설명하기 힘든 쾌감이었다.
*
오클랜드 공격팀은 경기를 지체시킨다며 심판의 경고를 받고 서둘러 필드골을 성공시킨 후 퇴장했다.
그 자리를 채우는 퍼시픽 하이츠 공격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클랜드 35: 퍼시픽 하이츠 28]처음으로 점수가 역전됐다.
“……”
심지어 오버타임 룰에 따라 이번 공격권을 마지막으로 게임이 끝날 수도 있다.
‘리그 28연승 기록이 깨진다고?’
리그에서는 지난 2년 동안 무패를 기록한 퍼시픽 하이츠.
3년 전의 8연승과, 2년 동안의 20연승을 기록한 다리우스는 졸업까지 38연승을 찍어 고교 최고의 기록을 갱신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자신의 무결점 경력에 치명적인 흠집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으드득 –
이게 모두 한 사람 때문이다.
여전히 라인에서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 로한. 경기 내내 거친 태클을 하고, 당하기도 하고. 이미 자잘한 부상과 체력 문제로 양팀의 라인 여럿이 교체되었는데, 로한은 여전히 생기발랄한 표정으로 포지션을 잡았다.
“……”
그런 쌩쌩한 모습에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는 건 다리우스만이 아니다.
퍼시픽 하이츠의 공격팀 모두가 질릴 정도로 당했다.
특히 매 쿼터 턴오버를 당했다는 트라우마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조금만 플레이가 무뎌도 허점을 찌르고 들어올 수 있다.’
정교한 플레이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플레이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기계처럼 신속해야 성공한다.
고교 레벨에서 매번 그런 수준을 유지하기란 쉽지가 않다. 지금처럼 패배의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하이크!”
하지만 그들은 퍼시픽 하이츠. 대학팀들과도 연습경기를 치르는 전국구 선수들이다. 무엇보다 양팀 간 교체 멤버의 차이가 크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이크!”
다리우스의 침착한 페이스 조절을 통해, 퍼시픽 하이츠는 계속 10야드 이상씩 전진했다.
4번의 공격 기회 안에 10야드를 따내면 다시 4번의 공격 기회가 갱신된다.
다리우스는 욕심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패스를 성공시켰고 결국 필드골 영역. 엔드존까지 30야드 안의 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때 정말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필드골은 절대 안 된다.’
3번의 공격을 펼쳤지만 공격 갱신 10야드에서 딱 2야드를 남기고 다운이 됐다.
마지막 공격 안에 2야드를 넘기지 못하면 그대로 공격권 박탈. 오버타임 룰에 따라 경기가 끝나며 패배하게 된다.
“제이든.”
이 정도의 거리에선 러닝백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라인맨을 살짝만 밀어낼 수 있다면 2야드 정도는 거의 열이면 열, 다 따낼 수 있다.
제이든 잠깐 주저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크!”
4번째 플레이. 다리우스는 제이든에게 공을 넘겨주는 척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방향을 틀어 바로 앞에 있던 타이트엔드에게 패스를 했다.
다행히 타이트엔드가 순발력이 있어서 5야드를 얻어내고 다운당했다.
“집중하자.”
다리우스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팀원들을 격려하며 다시 공격팀을 정비했다.
‘아직 2년은 멀었다 애송이.’
그는 극한의 집중력을 보이며, 팀의 기량 차이를 무기로 오클랜드의 수비팀을 찍어눌렀다. 체력이 이미 바닥인데다, 교체명단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에 퍼시픽 하이츠의 공격은 무척 순조로웠다.
– 퍼시픽 하이츠, 터치다운!
[오클랜드 35: 퍼시픽 하이츠 34]다리우스는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그만큼 기뻤지만,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
터치다운 후 추가 득점 기회.
헤드 코치는 안전하게 1점인 필드골을 시도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강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정이다. 어쨌든 동점이 되면 다시 한 번씩 공격권이 주어진다. 그럼 벤츠가 두터운 퍼시픽 하이츠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
‘리스크가 크다.’
하지만 로한과 눈이 마주친 순간, 다리우스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준비해.”
2점 컨버젼(Conversion: 필드골이 아닌 또 한 번의 터치다운을 통해 득점하는 것)을 노리기로 했다.
필드골은 3야드 선에서 차는 만큼 거의 100% 확률로 1점을 확보하는 대신, 2점 컨버젼은 딱 한 번의 공격 기회 안에 3야드를 패스나 러쉬를 통해 전진해야 하는 리스크를 감수한다.
고작 3야드. 성공할 확률이 높다지만, 필드골만큼은 아니다보니… 강팀은 이런 상황에서 추가 오버타임을 노리는 게 정석이다.
‘이대로 확실하게 끝낸다.’
하지만 로한에게 당할만큼 당한 다리우스는, 여기서 경기를 끝내기로 마음 먹었다.
퍼시픽 하이츠의 포메이션에 맞춰, 오클랜도 2점 컨버젼에 대비를 했다.
“……?”
그런데 로한은 기존의 라인이 아닌, 좀 더 뒤에 포지션을 잡았다.
‘패스를 차단하겠다는 의미인가?’
자신들이 러닝백이 아닌, 패스 플레이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로한이 흐름을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걸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다리우스는 순간 좋은 생각이 번뜩였다.
“하이크!”
패스를 하는 척하다가,
러닝백에게 공을 넘기는 척하다가,
빈틈을 찾아 뛰었다.
키, 196cm. 몸무게, 135kg.
무엇보다 퍼시픽 하이츠 최고의 40야드 대쉬 기록을 가진 다리우스는, 사실 러닝백에 더 최적화된 피지컬을 지녔다.
그는 라인을 밀어내고, 정말 딱 한 발자국만 더 걸으면 엔드존 안에 도착할 거리에 도착했다.
퍼어어어억!
“커허억!”
다리우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몸이 공중을 나는 경험을 했다.
“…….”
어째서인지 그 장면을 지켜보던 대런이 오히려 창백해지며 호흡이 가빠졌다.
‘저거… 안 당해보면 어떤 느낌인지 모르지.’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