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28
28
내 심상 세계는 정확한 영역이 나뉜 건 아니지만, 그곳을 구성하는 요소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현실]단순한 ‘기억’과는 조금 달랐다. 심상 세계에 기록된 현실의 경험은 마치 어제 겪었던 것처럼 언제든 생생하게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기피하는 곳.
[상상]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영역이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의 인물들, 인물들이 겪는 사건,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배경을 선명하게 이미지화하면, 어느 순간 그것들이 심상 세계에서 살아숨쉬게 되었다.
이 세상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10여 년을 넘게 ‘상상’의 세계에 빠져 현실을 잊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겐 마약이나 마찬가지였고, 현실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의사가 그 위험성을 경고했다.
[창조]이게 전생의 마지막에 완성한 영역이었다. 한 줌 남은 생명의 불꽃으로 이곳을 밝혔다.
[현실]과 [상상]의 영역을 기반으로 나만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나는 [창조]의 영역에서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수많은 캐릭터들을 빚고, 그들이 서로 충돌하며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관찰했다. 그리고 ‘기록’될 의미가 있는 이야기는 작품으로 옮겼다.
그렇게 나의 100작품이 완성된 것이다.
‘겨우 1년 만에 완성한 줄은 몰랐지만…’
그때는 병상에서 하는 일도 없어 하루종일 몰입하고 있었고, 심상 세계의 시간이 흐름이 좀 이상했다. 어떨 때는 시간의 흐름이 빠르고, 또 어떨 때는 느리고.
‘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두 가지의 다른 영역이 하나로 얽힌 적은 없다.
새로운 현상에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로한의 포효」라고 임의로 이름을 붙인 [현실] 파편과 임의로 융합한 나의 작품은 「착한 사람」.
몇 없는, 내가 실제로 제목을 지어놓은 습작이었다.
나는 일단 「착한 사람」의 파편을 매만졌다.
그러자 심상 세계는 잠깐 암전이 되더니, 습작 「착한 사람」의 이야기를 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나는 ‘착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사실은 그냥 겁쟁이였다.]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두려워했다. 보통은 화를 낼 만한 상황에 바보처럼 ‘허허’ 웃으며 넘어갔다.] [남들도 내가 진심으로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호구’라고 하면 앞으로 이용해먹기 어려우니까 ‘착하다’라고 포장했을 뿐이다.]‘이 작품이었구나.’
나는 곧 습작의 내용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착한 사람」은 내가 심상 세계에 창조한 인물 ‘겁쟁이’를 관찰하면서 집필한 작품이었다.
평생 갈등을 피하며 살아온 ‘주인공.’
부당한 일을 당해도 ‘그냥 사람 좋은 내가 참지,’라고 인내하면서 사는 인물이었다.
‘착하게 살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더니, 오히려 안 좋은 일만 따라다녔어.’
그런데 주인공은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착한’ 성격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만 남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직장 동료도, 친구도, 심지어 한 때는 사랑했던 아내도 모두 기생충처럼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런 게 인생인가?]놀랍게도 그것을 깨닫게 된 주인공은 거의 작품의 마지막까지… 사람 사는 게 그런 거라며,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병신처럼 웃으며 알고도 당해주었다.
[뭐라고? 임신했다고?]그런 그의 가면이 깨진 건 다름 아닌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후.
그것도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직장 상사의 애라는 걸 알게 되자 주인공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자살하며 이야기가 끝났다.
‘왜 하필이면 이 작품과 융합된 걸까?’
냉정하게 평가해서 내가 쓴 100 작품 중 무척 밋밋한 작품이었다.
「착한 사람」
몰입도: 9/10
소재: 6/10
구성: 6/10
캐릭터: 6/10
유일한 장점은 바로 몰입도.
주인공은 누구나 한 번쯤 일상에서 경험해봤을 부당한 일들을 당한다. 주변에서 그를 이용해먹는 사람들도 어딘가 친숙한 캐릭터.
남녀노소 쉽게 공감할 수 있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 독자의 몰입도를 높였다.
그래서 읽는 내내 화가 부글부글 끓는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폭발할 것만 같은 분노에 휩싸인다.
그런데 그게 끝이다.
‘빌드업은 괜찮았는데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어.’
내가 화가 치밀면서도 ‘겁쟁이’를 오랫동안 관찰한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서 바로 내 자신을 봤기 때문.
나를 투영하다보니 무의식적으로 응원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겁쟁이’가 나보다 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위안을 얻기도 했다. 잘되기를 바라면서도 더한 지옥을 맛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뒤틀린 감정을 갖고 지켜보게 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결국 너무 과몰입한 나머지 마지막까지 버텨내지 못하고 관찰을 포기했다.
심상 세계에 조금 더 머물러 그의 이야기를 지켜봤더라면 더 좋은 마무리가 나왔을 텐데.
후회는 있었지만, 대충 마침표를 찍고 조금 더 흥미로운 작품으로 넘어갔었다.
‘그런 미완의 작품과 나의 현실 기억이 융합이 되었다라…’
나는 이번에 「착한 사람」과 「로한의 포효」가 융합된 결과물을 매만졌다.
‘아!’
그 안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또 잔혹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그곳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좀처럼 헤어 나올 줄을 몰랐다.
아주 잠깐이지만, 전생에서처럼… 심상 세계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험을 했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보고 싶다.’
아마 현실에서의 삶이 조금이라도 덜 흥미로웠다면, 나는 위험한 상태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나는 「착한 사람」을 완성하고 싶었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틈틈이 집필을 시작했다.
글이 막히면 심상 세계에 빠져들어 ‘겁쟁이,’의 삶을 관찰했고, 때론 내가 직접 ‘겁쟁이,’가 되어 그의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
.
.
그렇게 대략 2개월 정도가 걸렸던 것 같다.
“…해냈다.”
나의 두 번째 작품이 완성되었다.
공교롭게도 나의 첫 번째 작품이 정식 출간된 바로 그날에.
*
「그녀가 사라졌다」의 출간 당일.
제임스는 이번에도 출판팀 매니저 케이트와 함께 오클랜드를 찾아왔다.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 문학계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 순간을 꼭 작가님과 함께 해야죠.
– 그래요 그럼.
나도 내 자신이 좀 싫어지려고 하는 게, 제임스가 하도 호들갑을 떠니까 어느새 이 모든 게 익숙해져 버렸다.
‘이러다가 습관이 되지 않게 조심해야지.’
우리는 날씨가 좋아서 근처 공원에서 만났다.
“작가님!!!”
나를 보자마자 제임스와 케이트가 온갖 오두방정을 다 떨며 뛰어왔다.
“여기요. 초판 중에서도 가장 먼저 찍은 첫 번째 단행본입니다. 넘버링되어 있는 거 보이시죠?”
「She’s Gone」
나는 제임스가 건네준 나의 책을 한참이나 들고 있었다.
‘진짜 책으로 나오다니.’
연재를 할 때도 비현실적이었는데, 책을 받아보니까 감정이 격해졌다.
표지는 예상보다 더 잘 나왔다.
“잘 빠졌죠? 역시 이 분의 작업물 정도는 되어야 작가님 작품에 흠이 안 가는 것 같습니다.”
“…제발 다른 곳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저에게 과분한 표지죠.”
제임스는 자신이 뭘 잘못 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고, 케이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말도 마세요… 차라리 작가님을 위한 영업용 멘트였으면 좋겠어요. 어딜 갈 때마다 ‘그녀가 사라졌다,’ 이야기를 얼마나 하고 다니는지… 이번 표지 건도 동네 우체국 아저씨가 다 알 정도로 떠들고 다녔어요.”
“……”
원래 표지는 [마법 도서관] 소속의 일러스트 팀이 진행하고 있었지만, 내 연재 작품을 읽고 먼저 에이전트를 통해 연락을 한 유명 아티스트가 있었다.
‘그분이 내 표지를 맡아주실 줄이야…’
나도 개인적으로 팬이었고, 무엇보다 그쪽 업계에서는 탑에 해당되는 분이라 내 표지 작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기사도 몇 개가 나갔다.
‘확실히 느낌 있다.’
이미 시안과 완성본을 받아봤지만, 직접 책으로 보니까 느낌이 또 달랐다.
여성의 뒷모습을 몽환적으로 그린 표지. 마치 그녀가 존재하면서도 사라지고 있다는 게 동시에 표현이 돼서 너무 신기했다.
“이건 초판 0번. 오로지 작가님 소장본으로 빼둔 거고, 이외에 첫 1000권을 차례대로 넘버링하였습니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가장 먼저 [마법도서관]을 통해서 직접 판매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보통은 인터넷 연재를 거친 인기 작품은 가장 좋은 조건을 내거는 대형 배급사에 독점 유통권을 약속하는데, 「그녀가 사라졌다」는 전국적인 돌풍을 불러일으켰던 메가 히트 작품.
“다들 뭐 독점 판매를 안 해주면 아예 유통할 생각이 없다, 팔긴 팔더라도 마케팅에 투자하지 않겠다며 끈질기게 협박하지만… 우리 ‘마법도서관’쪽 판매량을 보면 바로 돌변할 겁니다.”
우리는 어느 배급사 한 곳에 의지하기보단 판매량의 극대화를 위해 먼저 직접 판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판매량이 일정 수준만 되면 뒤늦게라도 여러 배급사가 관심을 보일 것으로 판단됐다.
“판매를 위한 웹사이트 업데이트는 완료하였고, 테스트도 큰 문제없이 마무리하였습니다. 예정대로 한 시간 후에 정식 판매 링크가 열릴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연재 마무리한지 겨우 30일 만에 이 모든 걸 마치시려면 엄청 힘드셨을텐데…”
“하하하. 다른 작품의 정식 출간은 보통 빨라도 3개월, 평균 6개월의 작업 기간을 요구하는데…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는 ‘그녀가 사라졌다’에 회사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가끔은 제임스가 하는 말이 농담이었으면 좋겠어요.”
“아! 저도 농담을 좀 할 줄 알면 좋을 텐데… 너무 진지해서 재미없다고 핀잔을 듣는 편입니다.”
“그러니까요…”
내가 제임스와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기가 빨린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케이트가 마저 이야기를 했다.
“사전에 논의했던대로, 딱 오늘 하루 ‘그녀가 사라졌다’를 구매하시는 분들 중 1000분을 추첨해 넘버링 시리즈를 보내드리는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벌써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 이벤트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좀 과도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딱 저희 예상대로입니다.”
“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이런 사태를 예견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부수를 준비했으니까요.”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물었다.
“그… 많은 부수라고 표현하셨는데, 책을 얼마나 많이 찍으셨을까요?”
고스트 에이전트에게 듣기로 북미 시장에서 ‘마법의 숫자’는 5000부로 통한다고 했다.
그 정도는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때문에 일단 5000부를 찍고, 초판의 판매량 추이에 따라 증쇄를 결정하는 방식.
[ghostagent: 그나마 「그녀가 사라졌다」는 인터넷 연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팔로워 기반이 있는 만큼, 초판으로는 1~2만부를 찍을 거야. 아무래도 이북을 동시에 파니까 그 정도로 충분하지.]근데 제임스는 내 질문에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하하, 제 기준에서는 많다고 했는데 실망하실까봐 부끄럽네요. 기한이 기한이다보니, 인쇄소 여러 군데를 섭외하고, 테스트하고, 일정 조율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일단 5만부 정도 확보되었습니다.”
“……”
“그래도 다음 30일 안에 10만부는 더 쌓일 예정입니다.”
“……”
나는 제임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외면하고 물끄러미 케이트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미 땅에 고개를 박고 차마 나를 마주 볼 생각조차 못했다.
“……”
우리는 어색한 침묵 속에 「그녀가 사라졌다」의 판매 런칭 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캘리포니아 시간 오후 6시. 방금 링크 공개되었습니다.”
우리는 케이트의 노트북을 통해 판매 실현황을 지켜봤다.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