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
3
‘최신 기종이네?’
핸드폰에 비번이 걸려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얼굴 인식으로 잠금 해제가 됐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카카오톡’부터 찾았지만… 당연히 미국 고딩의 폰에는 없었다.
‘몇 개의 유명한 SNS앱을 제외하고는 너무 생소한데?’
아무래도 ‘로한 킴’과는 세대 차이도 나고, 문화 차이도 있으니 쓰는 어플리케이션들이 많이 달랐다.
어차피 시간도 많겠다, 앱을 하나하나 다 열어서 꼼꼼하게 살피기로 작정했다.
‘뭔가 죄짓는 기분이야.’
남의 사생활을 들여본다는 죄책감이 들면서도, ‘어차피 이제는 내가 로한 킴 아닌가?,’라며 애써 합리화했다.
“……”
핸드폰을 싹 한 번 훑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무슨 사진첩에 누드 사진이 이렇게 많아??’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이니 남의 누드사진이라면 납득이라도 가지, 자기 자신의 사진이 너무 많았다.
오늘 아침, 병실에서 봤던 ‘그것’이 다양한 각도로 찍혀 있었다.
아무리 내 몸에 붙어 있는 거라지만, 어제만 해도 남의 ‘그것’이다보니 저절로 토가 쏠렸다.
‘이걸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답은 [고스트]라는 채팅앱에서 찾을 수 있었다.
.
.
.
[나: (사진)] [클로이: 새벽 3시에 뭔 짓이야?] [나: 그냥 니 생각을 하다가.] [클로이: 더러워. 맨날 발정 났을 때만 연락하지?] [나: 좀 이따 나와.] [클로이: 꺼져. 이번엔 절대 안 나갈 거니까 기다리지 마.] [나: 가는 길.].
.
.
[수지: (사진)] [나: 지금 찍은 거야? 밋밋한데.] [수지: (사진)(사진)(사진)] [나: 간다].
.
.
[라라: 자?].
.
.
‘내 눈!’
나는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장실로 달려가 나의 눈을 씻었다. 귀도 씻고, 내친김에 세수를 했다.
아예 목욕 재계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럽혀졌어…’
평생 야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기에, 이런 부분에 대한 면역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
거기에 그 자극적인 메시지를 읽고 내 몸은 자기 멋대로 반응하는 게 가장 혐오스러웠다.
‘실망이야, 로한.’
이렇게 훌륭한 육체를 타고났으면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망가뜨리고, 자신의 몸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나라도 내 몸을 소중하게 다루어야겠다고 다짐했다.
[Rohan_gangsta: 운동 좀 하나 본데? 같이 Gym에라도 갈까?] [Rohan_gangsta: 오, 우리 동네 살아? 얼굴 함 보자.]다른 SNS 디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예쁘다 싶으면 먼저 집적대기도 하고, 의외로 로한에게 관심을 보이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것까진 일일이 읽을 필요 없겠지.’
혹시나 가족에 대한 내용이 있지 않을까, 인내심을 가지고 검색한 내가 한심했다.
로한은 고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가족에 대한 언급을 피했다. 개인 계정은 물론, 남들과의 메시지에서도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없었다.
‘거기다 평소 어울리는 무리도 무척 위험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 로한을 중심으로 인물 관계도를 그려봤다. 앞으로 언제까지 로한의 몸으로 살아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었다.
‘피해야 하는 인물과 중립적인 인물, 그리고 가까이하면 좋은 인물로 나눠보자.’
사람을 분류하는 건 전생의 습관이었다. 내 몸을 가눌 수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적일 수밖에 없는데, 인생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도 사람, 해가 되는 것도 사람이더라.
‘고등학생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나?’
나는 모든 메시지들을 뒤져 사람을 분류하고 각자의 특징을 기록했다. 로한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
“로한, 밥 먹어라.”
엄마의 호출을 받고 바로 나왔다.
부엌에서 좋은 냄새가 났다.
“지금 생각 없으면 나중에 먹어도 돼.”
“아니에요. 안 그래도 배가 고팠어요.”
나는 바로 다이닝 룸의 식탁에 앉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엄마는 묘하게 지켜봤다.
‘이게 영화로만 보던 검보(Gumbo)인가?’
남부 지역에서 즐겨 먹는 검보는 일종의 수프였다.
기름과 밀가루를 섞어서 졸이면 만들어지는 루(roux)가 기본 베이스. 거기에 셀러리, 양파, 파프리카, 파슬리, 오크라 등을 고기 육수에 오랜 시간 끓인다.
마지막으로 닭고기, 소시지, 새우와 같은 프로틴을 얹어주면 완성.
검보를 보통 밥 위에 얹어서 덮밥처럼 먹거나, 빵을 찍어 먹는데 내 몸 상태를 고려해서인지 수프만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차분히 기다렸다.
“왜 안 먹니?”
“엄마 먼저 드시면 먹으려고요.”
“아니 왜??”
‘아, 이건 미국에는 없는 예의인가?’
그래도 책에서 보면 모든 사람의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다 함께 먹는 문화는 있는 것 같던데.
그러다 이내 깨달았다.
‘그냥 로한이 무례했던 거겠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숟가락 가득 수프를 퍼먹었다.
“오! 너무 맛있어요.”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전생에는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다.
‘건강한 사람이 느끼는 맛은 이런 거였나??’
너무 황홀해서 입에 한참을 머금고 있었다. 맛의 향연이 펼쳐졌다.
꽤 자극적인 음식이라고 들었는데, 방금 퇴원한 나를 배려해서 조미료를 거의 안 친 느낌.
그래도 한 숟갈 한 숟갈, 입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포근한 음식(soul food)라고 하더니,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금방 한 그릇을 비웠다.
“조, 조금 더 줄까?”
“네! 부탁드려요.”
엄마는 ‘조금’이라고 표현했지만, 처음 보다 더욱 푸짐한 양을 내주었다. 이걸 다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닝롤로 마지막 국물까지 찍어 먹고 있었다.
“그동안 굶고 지냈니? 잘 먹는 건 좋은데…”
‘로한은 집에 잘 안 붙어 있는 스타일이었나보군. 엄마가 이렇게 놀라는 걸 보면, 집밥을 선호하는 편도 아니었겠지?’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밥을 열심히 먹으면서도 눈치껏 거실이나 부엌을 살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엄마도 나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나보다.
“이 책들이 마음에 드니? 취향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방에 가져가렴.”
“하하… 제가 무슨 책을 읽겠어요. 오해이십니다.”
“…됐어. 책 한 번 보고 한 입 먹고, 또 한 번 보고 한 입 먹는데…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니?”
‘음… 내가 그랬나.’
어느 정도는 로한의 컨셉을 지켜주고 싶었는데… 만년활자중독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컨셉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책을 안 좋아할 수가 있어. 특히 책을 손에서 뗀 지 무려 6시간이 지났다. 지금까지 버틴 게 다 용할 정도였다.
“책을 하나도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조언이니 따라보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부터 집으려고 했지만, 순간 나의 빈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과거에는 해보지 못한, 뒷정리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항상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대신해 준 일이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 때문에 생긴 수고스러움을 내가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이 미안했다.
“뭐하는 거니?”
내가 접시들을 하나씩 포개서 싱크대로 향하자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얘가 이런 걸 할 리가 없지…’
나는 고장난 로봇처럼 부엌으로 가지도, 그렇다고 다시 접시를 내려놓지도 못하고 계속 쭈뼛댔다.
“몸이 안 좋은 애한테 설거지까지 시킬 생각 없으니까 얼른 들어가.”
“넵, 죄송합니다. 아니, 저도 설거지 할 생각 없었어요! 제가 왜 하겠어요!”
이 정도면 잘 수습했으려나?
나는 황급히 방으로 돌아왔다. 물론 엄마가 못 보게 등 돌려서 책을 샥샥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무 빨리 가져오는 탓에 몇 권 빼먹었는데… 다시 돌아가는 건 너무 수상해보이겠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책 다섯 권을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았다.
‘오오!’
책을 보니 금방 의욕이 샘솟았다. 나는 정자세로 앉아서 한 권 한 권 읽기 시작했다. 영문이었지만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적어도 기존의 ‘로한’의 영어 수준은 탑재되어 있는 느낌. 다만 ‘로한’도 모르는 단어는 일일이 핸드폰으로 찾아보거나 문맥상 유추하며 읽었다.
두 권은 소설책, 두 권은 자기계발서,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요리책이었다. 보통 요리책은 잘 안 읽는데, 책을 안 읽은 지 무려 6~7시간이 지나니 뭐든 재밌게 느껴졌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책을 읽었다. 어지간하면 몰입이 깨지는 일이 없는데, 어지간한 일이 일어났다.
“이게 무슨 끔찍한 컨셉이냐?”
혐오와 경멸이 가득한 목소리. 근원지를 돌아보니 풍선껌을 불며 다리를 떠는 여자애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누구?”
“하아, 씨발. 캐릭터 아주 제대로 잡았네. 기억 상실증에 책을 좋아한다? 요즘 K드라마 보냐??”
“……”
나는 그녀가 의심하기 전에 빠르게 단서를 종합했다.
현재 시각 새벽 2시. 이런 야심한 시간에 나의 방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존재라면…
‘설마 로한이랑 메시지를 주고 받는 수많은 여성 중 한 명??’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만 되어도 연인들이 몰래 집을 들락날락한다던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었다.
다만 여자애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화장을 안 한 엄마와 꽤 닮았다.
미국인의 액면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신체적인 발달 수준과 앳된 얼굴을 보니 동생 포지션이란 빠른 계산이 나왔다.
‘휴우… 다행이다.’
그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몇 개월 동안 집에도 안 들어오던 놈이, 차라리 죽어버리지 왜 미쳐서 돌아왔냐?”
“그냥 갈 곳이 없어서.”
“하아. 가족이 참 좋지? 돈 떨어지면 돈 받으러 와, 잘 곳 없으면 잠 자러 와. 어떻게 사람이 염치가 없어도 이렇게 없냐?”
‘음, 동생은 정상인가보군.’
정상이라면 이런 오빠를 싫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고 머리를 굴렸지만, 너무 맞는 말만해서 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게 말이다. 로한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했을까?”
“우욱, 씨발 지금 3인칭으로 자기 부른 거? 아주 제대로 돌아버렸네.”
동생은 상종도 하기 싫다는 태도로 방을 나섰다.
“기본만 하자, 어? 나야 오빠(Big brother) 하나 없다 친다지만, 아빠 엄마 보기도 미안하지 않아?”
그리곤 쾅- 문을 닫아버렸다.
나는 잠시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런 망나니도 오빠라고, 아직 애정을 가지고 있구나.’
기분이 묘했다. 엄마와의 관계도 그렇고, 동생을 만나보니 로한이 내심 부러워졌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나?
*
다음날 아침, 나는 등교 시간에 맞춰서 준비를 마쳤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학교 앱을 통해 수업 일정을 다 확인할 수 있구나.’
혼자서 씻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샤워를 조금 길게 했지만,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옷은 최대한 컨셉에 맞게 불량하게 입었어도, 책가방만큼은 거실을 탈탈 털어서 최대한 알차게 채웠다.
‘무슨 애 방에 공책이나 필기도구가 하나도 없어?’
준비하고 나와보니 엄마가 아침을 만들고 있었다.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다.
“…로한?”
엄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국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하아…”
옆에서 엄마를 도와 요리를 하던 동생, 리아는 표정으로 경악, 혐오, 수치심을 차례대로 그려냈다.
“……?”
영문을 모르는 나는 멍청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학교 갈 준비를 했구나? 학교 가는 날인 줄은 어떻게 알고…”
“학교 앱을 통해서 확인했어요. 그래도 익숙한 환경을 자주 접하면 기억이 더 돌아올 것 같아서요.”
그러자 리아는 혀를 찼다.
“니가 내 오빠인 게 더 이상 수치스러울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밑바닥이 한참 남아 있었구나.”
“리아! 몸이 안 좋은 환자에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야, 익숙한 환경에 가고 싶으면 술집이나 약쟁이들한테 가지, 니가 학교를 왜… 으악!”
엄마의 등짝 스매싱은 자녀들에게 공평한 모양이다.
엄마는 리아의 입단속을 위해 인정사정없이 때리셨고… 리아는 할 말이 많지만 살고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참는 눈치였다.
“방에 처박혀 있는 것보단 뭐든 도움이 되겠지! 리아 너는 오빠 데리고 학교 잘 갔다와.”
“아니 내가 왜… 아, 알았어! 알았다고… 경찰에 신고할 거야. 자기 애 패는 엄마가 어딨어…”
리아는 몇 번이나 더 얻어맞고 나서야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가족이 다 함께 어색한 분위기에서 아침 식사를 마쳤고, 리아는 이를 꽉 깨물며 집을 나섰다.
“학교에서 아는 척 흐즈므르. 죽는다.”
“……”
*
리아는 이미 최악을 상상했지만, 정작 학교에서 상상을 초월한 일을 경험하게 됐다.
‘이 새끼… 제 정신이 아니야.’
미국 피지컬 천재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