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0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30
#30
며칠 전, 고스트 에이전트는 아직 계약도 안 되었지만, 가장 신경 쓰고 있는 c.k. 작가의 이메일을 받고 깜짝 놀랐다.
‘이메일? 보통 메시지만 하는 편인데?’
놀랍게도 처음 보는 원고가 첨부되어 있었다.
[시간 날 때 천천히 검토하고 알려줘. – c.k.]Attachment: 「A Good Man」
‘새 작품? 벌써?? 아무런 언질도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보통 업계의 성실한 작가들은 평균적으로 2년에 한 번씩 새 작품을 선보였다.
아무리 의욕 넘치는 신인 작가라지만, 이제 겨우 데뷔작이 출간된 상황에 차기작부터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냥 습작인가?’
어쩌면 기획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업무가 바쁜 상황에서도 잠깐 「A Good Man」 파일을 열어봤다.
[나는 어려서부터 인내심을 강요받았다.] [원하는 장난감을 받지 못하거나, 사탕을 먹지 못하게 되면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감정에 충실했을 뿐인데 그 결과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맞았다.] [그래서 다음에는 화가 나는 상황이 생겨도 맞는 게 두려워서 참았다.] [점점 나이를 먹어도 사회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화를 내는 것보다, 화를 참는 게 훨씬 편했다.]고스트 에이전트는 어느새 「A Good Man」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렇게 빨리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만드는 소설은 많지 않아.’
공감대 형성이 굉장히 빨랐다. 읽다 보면 주인공의 서술이 곧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주인공은 우리가 흔히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부당한 사건들을 당하며, 우리가 한 번쯤 해본 생각을 한다.
‘나는 착한 사람이니까,’라며 합리화하고 갈등을 피해버리는 것이다. 사실은 그냥 두려워서 도망친 거면서.
고스트 에이전트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언뜻언뜻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화나게 했지만,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어서 억울했던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 모두는 내면에 화를 간직하고 있구나.’
사람과 더불어 살면 어쩔 수 없다. 내 의지에 반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고,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내면의 화는 커진다.
그래서 「A Good Man」을 읽으면 읽을수록 독자는 자신에게도 주인공과 같은 화가 내재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심지어 주인공의 일화가 쌓일수록 그 화가 점점 부채질된다.
특히 아내가 자신을 노예 취급하며 괴롭혀오던 직장 상사의 아이를 배었을 때는 분노가 대폭발했다.
“이 호구 새끼가 또??”
당연히 주인공은 이혼을 결심하지만, 아내가 실수였다며 제발 용서해달라 빌고, 그래도 영 못 참겠으면 아이를 무사히 낳은 후에 이혼 절차를 밟자고 애원하자 마음이 약해진다.
“……!”
그리고… 「A Good Man」은 아내가 아이를 출산하며 과도한 출혈로 사망하면서 첫 변곡점을 맞았다.
산처럼 쌓인 업무 따윈 뒤로 하고 결국 그 자리에 앉아서 원고의 마지막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고스트 에이전트는 완독을 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결말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A Good Man」의 내용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격양된 감정이 좀처럼 가라앉을 기색이 없었다.
‘이건… 다르다. 평범한 소설이 아니야.’
고스트 에이전트는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바로 이런 소설을 발굴하기 위해서 에이전트가 됐다.
피곤하지만 따로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각성제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또렷해졌다.
‘이번이야말로 나의 가치를 증명할 때야.’
따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고스트 에이전트는 「She’s Gone」의 런칭 당시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에이전트의 가치는 대외적인 업무를 대신하여 작가가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스트 에이전트는 평균적인 커미션, 작가 수익 15%의 두 배를 요구할 정도로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졌다.
돈 자체보단, 크게 될 신인 작가를 일찌감치 발굴해 그들에게 최적의 여건을 마련해주는 성취감이 컸다.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는 에이전트로써의 명예와 실력이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c.k. 작가는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는 인터넷 연재를 센세이션급으로 성공시켰어.’
작품은 하나고, 원하는 출판사가 수십 개. c.k. 작가는 신인이면서도 일방적인 갑질이 가능했다.
고스트 에이전트가 먼저 발품을 팔아 어렵게 구한 조건이 순식간에 초라해졌다.
그 전에 큰소리 친 게 민망할 정도로, 작가는 자신의 도움 없이 혼자서 「She’s Gone」을 성공시켜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첫 작품은 무상으로 일을 해주었어.’
「She’s Gone」의 법적인 서류 검토 및 제언, 마법도서관과의 런칭 일정 조율, 국내외 배급사와의 계약 조건 협상등을 도맡아 했다.
그동안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차기작이라도 맡아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대어를 가지고 올 줄이야.
‘오랜만에 내 110%를 발휘하여 최상의 결과를 가져온다.’
고스트 에이전트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단순히 권한위임뿐만 아니라 정식으로 에이전트 계약을 체결할 생각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She’s Gone」보다 「A Good Man」을 더 성공시키겠어.’
그렇게 해야만 실추될 명예가 회복될 것 같았다.
그래서 고스트 에이전트는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다양한 단체에 접촉했고, 바로 c.k. 작가에게 제안했다.
*
고스트 에이전트는 내게 의외의 제안을 했다.
[ghostagent: 「A Good Man」은 보통 상업소설과 결이 달라. ‘마법도서관’에 연재해도 당연히 좋은 결과가 있겠지만, 내가 추천하는 방향은 차라리 필명을 바꿔서 명망 높은 문학 공모전에 출품하는 거야.] [c.k.: 아, 작품성을 위주로 평가하는 그런 공모전을 말하는 거지? 나도 고려는 해봤어. 당선이 어려워서 그렇지, 순식간에 세계적인 명성을 얻잖아.] [ghostagent: 맞아. 특히 모든 예술 분야가 그렇겠지만, 대중성은 매출이 증명하고, 작품성은 수준 높은 공모전의 검증을 받아야만 하는 구시대적인 부분이 있어.] [c.k.: 그런 무대가 이번 작품에 적합하다는 건 인정. 근데 다른 필명을 쓰면 장점이 있나?] [ghostagent: 한 회사라도 제품의 포지셔닝에 따라 브랜드를 따로 내. 브랜드 이미지가 소비자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야. 그런 의미에서 「She’s Gone」은 완벽한 장르 소설이야. 작품성도 당연히 있지만, 뛰어난 오락성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지.] [ghostagent: 반면 「A Good Man」은 예술 작품이야. 쉽게 읽히고, 전개가 흥미롭다는 네 장점이 잘 살아 있지만… 분명 작품성이 뛰어난 예술 작품이야.] [ghostagent: 앞으로 소설의 성향에 따라 두 개의 다른 필명을 쓴다면 매출은 매출대로, 전문가들의 평점은 또 평점대로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을 거야. 이미 많은 유명 작가들이 초창기부터 사용하던 검증된 전략이지.]‘작품성을 선호하는 독자층과 대중성을 선호하는 독자층을 따로 공략한다라…’
똑같은 상품이라도 어떤 브랜드에서 출품하느냐 따라 평가와 판매량이 크게 달라지는 소비 현상을 활용하는 방식.
고스트 에이전트는 천천히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했지만, 이야기를 듣는 즉시 느낌이 왔다.
[c.k.: 그렇게 진행하자. 어떤 필명을 쓸지는 좀 더 시간을 줘. 공모전은 어디 생각해? 출품 시기까지 좀 기다려야 하나?] [ghostagent: 좀 아쉬운 게, 4년마다 한 번씩 수상하는 ‘이 시대 문학상’이 딱 한 달 전에 마감됐어. 여긴 딱 대상 한 작품만 뽑는데,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작가들이 심사하는 가장 공신력 높은 공모전이야. 본선 진출작 안에만 들어도 천재적인 작가로 인정받지. 다음에라도 한 번 노려보자.] [ghostagent: 그래도 출품 시기가 잘 맞아떨어지는 문학 공모전이 현재 세 곳 있어.] [ghostagent: 1. 하버드 대학의 ‘베리타스 문학상.’ 2. 빅5 공동 주최하는 ‘넥스트 베스트셀러,’ 그리고 3. 미국도서협회의 ‘미국 소설상.’ 전부 동시에 출품할 생각이야.] [c.k.: 오, 베리타스랑 넥스트 베스트셀러는 들어봤어. 동시 출품이 되는구나.] [ghostagent: 맞아. 근데 워낙 많은 지원자가 있다 보니까 심사위원 외에도 심사위원들을 도와주는 스크리닝 팀이 있어. 먼저 한 번 필터링을 거친 다음에 위로 올리는 개념이지.] [c.k.: 음, 심사위원들이 직접 검토하는 작품은 훨씬 적겠네?] [ghostagent: 정확해. 출품수가 워낙 많아야지. 대부분 1차 필터링을 통과하지 못해. 그래서 인맥이 확실한 에이전트가 중요하지. 난 이미 세 곳의 심사위원에게 직접 원고를 전달하기로 말을 맞춰놨어. 네가 허락만 한다면 꼭 읽어보고 최소 피드백은 해줄 거야.] [c.k: 그럼 너무 좋지. 역시 능력 있다니까? 일처리도 빠르고… 그럼 이번에 정식으로 계약할래?] [ghostagent: 아직은 일러. 일단 공모전 결과가 확실히 나오고, 연계된 출판사와 출간 조건을 조율한 다음… 너도나도 만족스러우면 그때 정식 계약을 맺자.] [c.k.: 그래… 또 아무런 대가 없이 일해주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ghostagent: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그리고 돈은 내가 훨씬 많으니까, 신인 작가님은 제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작품활동 부탁드립니다.]안 그래도 지난 몇 달, 「그녀가 사라졌다」의 대부분 업무를 깔끔하게 처리해줘서 고마웠는데… 이젠 여러모로 「착한 사람」의 공모전 결과가 좋기를 바래야겠다.
‘처음으로 공모전에 참여해서 그런가? 은근 떨리네.’
그런데 고스트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하며 문득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생각난 김에 미국의 소설 공모전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해봤다.
‘여긴 땅덩어리가 커서 그런가? 공모전이 정말 많구나.’
출판사에서 직접 공모전을 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 이외에도 주에서 열거나 작가 단체에서 여는 공모전도 꽤 많았다.
‘확실히 고스트 에이전트가 추천한 세 곳 말고는 딱히 공신력이 있지도, 홍보 효과도 있어 보이지 않아.’
일 처리 하나는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니, 어련히 잘했겠지.
“……”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미련이 남았다.
‘뭐, 밑져야 본전이지.’
결국 나는 본격적으로 검색을 이어갔다. 지금 당장 출품할 수 있는 공모전. 아니면 앞으로 두 달 안에 시작되는 공모전을 위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다른 공모전과 동시 출품, 동시 수상이 가능한 걸로 추려보자.’
내친김에 영국과 캐나다 등, 영어권 국가의 공모전도 알아봤다.
아무래도 출판사는 직접 출간한 작품을 공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 출품, 동시 수상이 불가능하지만… 그 이외의 단체에서 여는 공모전은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대충 서른 곳 정도인가?’
나는 고스트 에이전트에게 일일이 출품을 부탁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아직 정식 계약도 안 했는데 괜히 일을 시키는 것 같아서 말았다.
‘다들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
– 와, 로한이다 로한. 쟤 갑자기 학교 하루도 안 빼먹지 않냐?
– 그러게 말이야. 1학년 출석일자를 두 손으로 셀 수 있다던데… 요즘은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 게다가 벌써 고교 진도 다 떼서, 대학 AP 수업만 듣잖아. 워낙 수강하는 학생이 적어서 성실하게 공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일 나오는 게 어디야.
– 우리 학교에 그런 학업 수준의 애가 있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람이 매 경기마다 고교 미식축구의 사건사고는 다 일으키고 있다는 최악의 빌런 로한 킴이다? 이건 소설로 쓰면 욕 먹을 거야.
– 요즘 소문 돌잖아. 쟤 약물과다복용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가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 나도 들었어. 은근히 쟤 무슨 마약했는지 물어보는 애들 많더라.
– 병신들이지. 자기들이 똑같이 마약하면 중독자 돼서 인생 말아먹는거지, 로한처럼 갱생하겠… 요즘 정치 어때? 대충 예상은 했지만, 너무 리버럴한 정책이 많이 나와서 부담되…
“……”
언제나 그렇듯 멀리서 내 뒷담화를 하고 있던 아이들은, 내가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화제를 돌렸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묵묵히 다음 교실로 향했다.
‘인생은 대학부터지.’
나의 단기 목표는 일단 좋은 대학교로 진학하는 것.
어쩌면 전생에서부터 세뇌된 한국 시스템의 폐해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못해 본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오클랜드에선 너무 악명이 높아졌으니, 아예 동부의 다른 주로 멀리 떠나서 신분 세탁을 하면… 친구도 좀 사귀고 어쩌면 여, 여자친구도 생기지 않을까?’
나 혼자 그런 부푼 꿈을 안고, 대학 입시에 중요한 AP 수업은 물론 특별활동(extra curricular activities)인 미식축구를 열심히 했다.
‘오늘은 미분을 시작하던가?
나는 AP 수학 수업을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미리 교재를 훑어보고 있었다.
“얘들아 안녕.”
언제나 그렇듯, 수학 선생님은 정시에 딱 들어왔다.
수학엔 진심인 소피아 선생님은 보통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수업 시간 45분 내내 진도를 빼는데, 오늘은 어색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저, 로한.”
“네?”
“혹시 이주 후에 시간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