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2
32
UC버클리 영문학 교수 세실 와그너는 전공 특성상 수업 하나를 도서관에서 진행했다.
그래서 최소 일주일에 두 번은 도서관을 오고, 주말에 한 번은 수업 준비를 위해서 찾는 편.
그는 도서관의 풍경이 익숙할 수밖에 없었는데, 최근 2주 동안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렸다.
‘못 보던 학생이군.’
도서관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커다란 창 앞에 있어 명당으로 꼽히는 자리에 학생이 혼자 앉아 있었다.
인종차별을 하고 싶지 않지만, 도서관에서 흔히 보기 힘든 흑인 학생. 키도 크고 체격이 좋아 얼핏 봐도 범상치 않았다.
‘대학 운동 선수인가?’
애초에 UC버클리에 흑인 학생이 2%정도 밖에 안 되고, 그 중 상당수는 선수 특별 전형으로 입학한 경우.
그리고 선수라고 짐작한 또 다른 이유는, 주변의 다른 학생들이 계속 힐끗 쳐다보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들 알아보는 걸 보면 나름 주전으로 뛰는 선수구나.’
보통 운동 선수들은 도서관을 잘 찾지 않는데, 괜히 기특했다.
몇 번 오다가 말 가능성이 높았지만 저렇게라도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음?’
그런데 다음에 도서관을 찾았을 때도 똑같은 자리에 그 남학생이 있었다.
“……”
심지어 주말에도 나오자, 와그너 교수는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
자료를 찾기 위해서 남학생을 여러 차례 지나쳤는데, 그는 고개를 한 번도 들지 않았다.
도서관에 작은 소란이 일어나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이 있는 함께 쓰는 공간 속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철저하게 분리가 되어 있는 느낌.
‘뭘 해도 성공할 친구다.’
와그너 교수는 그 다음 주에도 우직하게 도서관에 나오는 남학생을 보며 속으로나마 응원했다.
“음?!”
며칠 후, 와그너는 이제 도서관의 마스코트가 된 것만 같은 남학생을 스쳐 지나가다…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실례인 걸 알면서도 상대의 노트북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문학 공모전?’
마침 남학생은 특정 문학 공모전의 결과 발표 웹페이지를 스크롤 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작품을 출품했다가 반려당한 학생의 모습.
와그너 교수는 아무래도 영문학 안에서도 창의적인 글쓰기를 담당하는 교수이다보니 그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내가 너무 외양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 건가? 이리도 훌륭한 인재일 줄이야!’
글쓰기야말로 언어의 궁극적인 형태. 그는 모든 학생들이 더 많은 글쓰기를 해야한다고 핏대를 세워가며 설파하는 선두주자였다.
‘우리 과 학생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멘토가 되어주어야겠다.’
안 그래도 흡족하게 지켜보고 있던 학생이, 전공과목도 아닌데 스스로 시간을 내어 공모전에 참가하다니!
와그너 교수는 반가운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남학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학생은 소설을 씁니까?”
*
“네?”
나는 크게 당황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
나는 도서관에 있는 3~4시간 동안 대부분 경시 대회 준비를 했다.
필요할 때마다 제임스와 「그녀가 사라졌다」 관련 업무를 처리하기도 하고, 「착한 사람」 공모전 발표에 맞춰 결과를 확인하기도 하지만… 다 합쳐봐야 하루에 10분 정도?
그런데 마침 한 공모전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중년의 남성이 확신을 갖고 소설을 쓰냐고 물어본 건 너무 공교로운 우연의 일치 아닌가?
“아… 혹시 부끄러워서 그래요? 하긴, 저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남들에게 밝히기 좀 그랬습니다. 학생은 스포츠도 할 테니 동료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이겠지요.”
“……”
‘혹시 정신이 좀…?’
내가 계속 경계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그는 얼른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괜찮아요. 저한테는 편하게 이야기해도 됩니다.”
“아… 네.”
어차피 시간도 많이 지났고, 이상한 아저씨도 만났겠다… 이대로 짐이 나 싸서 집으로 돌아갈까 싶었다.
‘세실 와그너? 그 감정술사(Master of emotions 세실 와그너??’
아무 생각 없이 명함을 받았다가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실례인 줄 알면서도 바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마, 맞잖아!’
정작 스토커인 줄 알았던 유명 작가이자 교수인 상대는 손뼉을 한 번 치며 흡족해했다.
“아, 명함을 받고도 끝까지 의심하는 모습 아주 좋습니다. 작가에겐 그런 비판적인 사고가 훌륭한 자산이 되죠.”
“아… 감사합니다. 너무 갑자기 치고 들어오셔서 당황했네요.”
“그럴 만합니다. 노트북 화면을 훔쳐본 건 맞으니까요. 제가 같은 소설가를 만나면 너무 기뻐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듭니다.”
“……”
마치 자기 손주가 이뻐죽겠다는 얼굴로 날 뚫어져라 보는 와그너 교수님.
‘이렇게 부담스러운 캐릭터는 오랜만인데?’
나는 슬며시 거리를 벌리며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만나 뵈어서 영광입니다. 교수님의 저서는 모두 감명 깊게 읽었거든요. 제가 하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라…”
“아! 읽어봤군요. 혹시 어떤 작품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다 여러 번 읽었지만, 전 ‘개보다 못한(Worse than a dog)’을 특히 좋아해요.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오!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감상입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와그너 교수는 이미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상하다? 유명한 작가이고 교수님인데 이렇게 나한테 관심을 가지나?’
그는 그런 나를 유심히 관찰하더니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가야된다고 했죠? 제가 눈치 없이 너무 오래 붙잡았군요. 다음 기회에 또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저도요.”
우린 간단하게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도서관을 나오는 가운데, 수군거리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니… 와그너 교수님이 저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었어? 누구한테 먼저 가서 쉴 새 없이 이야기하는 거 첨 봤네.
– 넌 영문 전공이 아니라서 잘 모르는구나. 원래 사색을 많이 하셔서 평소에 말을 별로 안 하시는 거지… 누구한테 한 번 꽂히시면 투머치토커가 되시지.
– 아 진짜? 그냥 흔한 일이었구나…
– 흔한 건 또 아니지. 뭔가 안목이 좋으신 건지…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들만 콕 집어서 관심을 보이시더라. ‘반짝인다,’며…
– 그거 신기하네… 쟤 그 톡톡에서 미식축구의 망나니로 유명한 애잖아. 교수님도 보셨나? 흥미로운 케이스 스터디이긴 하지.
“……”
이럴 땐 청력이 너무 좋다는 게 단점이 된다.
‘세실 와그너라…’
그는 나에게서 무엇을 봤을까?
*
이후에도 도서관에서 와그너 교수님과 종종 마주쳤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걸 눈치챘는지, 간단한 인사 정도만 하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 이거 먹고 하세요. 머리가 안 돌아갈 땐 단 거.
가끔 내가 화장실을 갔다와서 자리를 비우면 간식을 챙겨주시기도 했다.
‘이 정도면 스토커가 맞지 않나?’
그래도 처음의 섬뜩함은 사라지고 감사한 마음이 점차 들었다.
어쨌든 항상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나름대로 챙겨주시려는 마음이 느껴졌으니까.
나는 오늘 목표한 경시대회 공부 분량을 채운 후 다시 노트북을 집었다.
[소중한 작품을 브루클린 작가 협회 공모전에 출품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위원들의 집중적인 검토 결과, 작가님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수상하지 못하였습….]“아… 또 반려?”
이걸로 벌써 세 번째다. 출품한지 3주가 채 안 돼 또 반려가 되었다.
‘작은 공모전도 경쟁이 이리 치열한가? 간단한 피드백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난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쉬었는데… 바로 그때 와그너 교수님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 맞다! 처음 만났을 때 제가 왜 너무 반가웠나면, 저도 막 글을 시작했을 때 보여줄 사람이 없어서 공모전 위주로 출품을 했었습니다.”
“네?”
“뭐, 솔직히 두 가지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이런 작품을 쓰다니… 세상이 놀라겠지?’ 자신감이 있었던 것도 있고, 뭔가 남의 평가를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도 않아서… 누군가에게 직접 보여주지 않는 한 피드백을 받을 수 없던 시기였죠.”
“그러셨구나…”
와그너 교수는 잠깐 양해를 구한 다음 내 노트북 화면을 보다가 이내 혀를 찼다.
“저도 작은 규모의 공모전이 부담 없어서 열심히 작품을 보낸 시기가 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수상이 내정된 작품이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자기 제자 챙기기라고 할까? 사실 출품을 받아도 사실 읽어볼 이유도 없는 거죠.”
“그건 몰랐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제 조금 더 이해가 되는 것 같네요.”
“오, 그런 자신감 좋습니다. 그래, 내 작품을 안 읽어봤으니까 이렇게 반려시키지.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작가는 자기 글에 대해 그 정도의 자신감은 가지고 있어야 앞으로도 계속 집필할 수 있습니다.”
“아… 네.”
와그너 교수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초보자가 남에게 글을 보여주기까지 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괜찮다면 제가 학생의 작품을 읽고 피드백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글에 진심인 게 보여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야 그럼 너무 영광이죠. 교수님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은데…”
“아닙니다. 제가 왜 교수가 되었겠어요. 부족한 능력으로나마 후학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제 가치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나는 와그너 교수님의 제안이 진심으로 기꺼웠다.
내 작품에 자신이 있다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세 번이나 각기 다른 공모전에서 반려를 당해보니… 믿음이 조금은 흔들렸다.
‘와그너 교수님이 사람은 좀… 이상해도 작품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을 정도로 능력 있으시니까.’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착한 사람」을 읽고 어떤 평가를 내리실지. 혹시나 어떤 부분을 보완하면 더 좋은 작품이 된다고 피드백 주실지 너무 기대가 됐다.
*
캘리포니아 주 데카슬론 대회 이틀 전.
소피아 선생님, 나, 아이비, 그리고 제시카는 오클랜드 공항에서 만났다.
“자, 빼먹은 건 없지? 마지막 최종 점검한다.”
어차피 꼭 필요한 건 신분증과 돈 정도.
“로한 넌 짐을 바리바리 싸오길래 경시대회에 필요한 교재를 가져온 줄 알았더니…”
난 무게에 딱 맞춰서 캐리어에 책을 잔뜩 싸 왔다.
대부분 데카슬론 시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소설책이나 비문학 서적 위주로 챙겼다.
“데카슬론 대회 일정만 3일이잖아요. 오늘부터 5일이나 LA에 가 있는 건데 심심할까봐 챙겨왔습니다.”
“공부는 포기했어? 원래 참가자들은 시험 시간 외에 마지막 날까지도 밤새워 공부해.”
나는 어깨만 한 번 으쓱했다.
“이미 할 만큼 준비한 것 같아서요.”
그러자 이제껏 조용하던 제시카가 코웃음을 쳤다.
“재수 없어. 너한텐 공부가 장난이지?”
“……!”
나는 깜짝 놀라서 얼른 팔짱을 꼈다.
‘참아라… 이번에는 꼭 참아라…’
내 안의 ‘로한’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