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3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33
이제 로한으로 살게 된 지 4개월쯤 됐나?
그동안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며 깨닫게 된 몇 가지가 있다.
‘이 몸 안에 로한의 의식이 잠들어 있어.’
로한의 몸에 빙의한 부작용인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할 때가 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래도 위험한 순간이 아직 좀 있다.
‘감정이 격해지면 안 돼…’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 놈이라, 누구나 짜증날만한 갈등의 순간이 찾아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풀악셀을 밟는다.
뇌를 거치지 않고 그냥 감정이 몸을 지배한다고 할까?
가끔은 그 무모함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지금 같은 때는 피하고 싶다.
어째서인지 제시카는 경시 시험 준비 스터디그룹에 참석을 안했는데, 그나마 학교에서 마주치면 나를 피하는 듯했다.
“재수 없어. 너한텐 공부가 장난이지?”
“……?”
‘이렇게 갑자기?’
이 세상에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사람은 로한만이 아닌 것 같다.
‘참아라… 경기 중에는 풀어주잖아… 엉??’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가는 걸 느끼며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이 미친 아이는 사람 많은 공항이라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주먹질을 할 수 있는 공정한 남자였다.
“진짜 운동 선수들 지긋지긋해. 학교에서 주는 특혜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로 모자라 경시대회 자리까지 빼앗냐?”
‘어..어…어?’
나는 어쩔 수 없이 ‘로한’의 기운을 빌려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뭔 개소리야. 너 눈이랑 귀는 장식이야? 그때 내가 설득당해준 거 못 봤어?”
“그러니까 역겨운 거지. 아무리 미식축구가 돈을 많이 벌인다지만, 망나니 한 명 세탁해주려고 경시대회 자리 빼주는 게 맞아?”
“아이고, 우리 정의 사도님이 화가 많이 나셨어요? 그래서 어쩌라고. 불의를 참지 못하면 당장 때려치고 어디 인터넷 게시판에 가서 징징대. 교육청에 찌르던가.”
“……!”
바로 선공필승! 너무 심하게 흔든 사이다병은 천천히 김을 빼주어야 폭발하지 않는다. 최악을 면하기 위한… 차악책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못 할 줄 알아?”
제시카는 머리끝까지 열받은 듯했으나, 그 자리에서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만 흘릴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았다.
“어이, 둘. 거기까지만 해. 보자보자하니까 못하는 말들이 없네. 그리고 제시카 너, 나랑 교장 선생님이 우스워? 겨우 이런 아이 세탁하려고 학교 대표로 주 경시대회에 내보낼 것 같니?”
“선생님?”
“로한이 너도 참 성질머리 하곤. 어떨 때 보면 나이에 안 맞게 성숙하고, 또 이런 때 보면 금방 감옥 가서 못 보게 될 것 같단 말이야.”
“……”
소피아 선생님은 우리의 분란을 대충 정리하며 짐을 챙겼다.
“데카슬론은 개인 점수도 중요하지만, 팀 점수도 그거에 못지않게 중요해. 좋든 싫든 팀을 이뤘으니… 친한 척이라도 하렴.”
“……”
나와 제시카는 못마땅한 시선을 서로 주고받았지만, 그 이상 논쟁을 벌이진 않았다.
“올해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제시카의 혼잣말은 못들은 척 했다.
*
고교 경시대회 데카슬론은 지역 예선이 있고, 전국 본선이 있다.
우리는 바로 캘리포니아 지역 예선을 위해 LA를 찾았다.
“내일 시험이 시작되니까 오늘은 일정을 자유롭게 보내자. 함께 공부하며 호흡을 맞춰보면 좋겠지만, 그럴 분위기는 아니네.”
나와 제시카는 서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했고, 중간에 낀 아이비만 어색하게 웃으며 어쩔 줄 몰랐다.
소피아 선생님은 굳이 억지로 친하게 만들 생각은 없는지,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아무런 방해 없이 독서에 몰두할 수 있겠어.’
보통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학교로 이동해서 수업 듣고, 알바는 시간을 많이 줄였지만 가끔씩 [레드 드래곤]을 찾기도 하고.
시간을 빼고 빼서 어떻게 UC버클리 대학교에서 공부를 좀 해보려고 해도 4~5시간이 최대였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학교를 빼먹고, 나만을 위한 호텔방에서 원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여기가 천국이구나.’
나는 깨끗하게 씻은 후 테이블 옆에 책을 한권씩 가져다놨다.
가방에서 한가득, 두 개의 캐리어에서도 잔뜩 쏟아졌다.
나는 그걸 차곡차곡 쌓아서 여러 개의 산을 만들었다.
‘시작해볼까?’
책을 한 권씩 읽을 때마다 산이 작아졌다. 독서 자체도 너무 즐거웠지만, 눈으로 그것을 확인할 때마다 소소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
1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한두 번 화장실을 간 것, 그리고 너무 배가 고파서 선생님이 놓고 간 간식거리를 틈틈이 먹을 때 말고는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똑똑 –
“…독한 놈. 아직도 이러고 있니?”
소피아 선생님은 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운동 선수들은 온종일 먹어도 배가 고프다던데…”
안 그래도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내가 걱정됐는지, 못해도 5인분은 되어 보이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오셨다.
“다른 애들은 LA 구경도 하고, 맛있는 레스토랑도 데려갔는데… 재미없게 여기 와서도 공부만 하니?”
“전 책 읽는 게 가장 재밌습니다.”
“…제시카나 아이비가 말해도 안 믿을 것 같은데, 니가 그러면 순순히 받아들이겠니?”
나는 어깨만 한 번 으쓱하고 바로 음식을 받았다.
“잘 먹겠습니다. 대충 허기는 면하겠네요.”
“…겨우 허기만?”
로한의 몸에 빙의하고 나서… 사실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다. 그냥 이만하면 다음 몇 시간은 괜찮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느낌 정도?
막상 음식을 보니까 배가 고파져서 열심히 먹었다.
3개의 햄버거는 각각 두 입씩, 감자 튀김은 그냥 입에 털어 넣었고, 커다란 샐러드로 입가심 정도는 했다.
이 정도만 가져오셨으면 아쉬웠을 텐데, 다행히 피자 한 판이 남았다. 두 조각씩 포개서 먹으니까 금방 바닥났다.
“…진짜 허기만 면하는 수준이구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나가기 귀찮았는데…”
나는 다시 책을 집어들었다. 무언의 축객령이랄까? 그런데 소피아 선생님은 오히려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진짜 공부할 책은 하나도 안 가져왔네. 준비 잘 한 거 맞아?”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역 데카슬론만해도 3위권 안에 수상하면 아이비리그에서 인정해줘. 본선에 진출하면 추가 가산점이 있으니까 열심히해.”
“그럼요. 저 대학에는 진심입니다.”
“그게 참 의외란 말이야. 이러다 갑자기 기억을 되찾아서… 기존의 너로 돌아가는 거 아니지?”
“…기억을 찾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음…”
소피아 선생님 같이 직설적인 사람도 선뜻 대답하기 꺼려졌는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을 나갔다.
“아, 그리고 제시카 말이야… 너무 미워하지 마라.”
“인생에 사연 없는 사람 있을까요? 자신의 행동은 자신이 책임지는 겁니다.”
“…그래.”
나는 소피아 선생님이 나가고 나서 다시 책을 집어들었다.
애피타이저 정도는 먹었으니, 앞으로 3~4시간 정도는 더 읽어도 괜찮겠지.
“음.”
그래도 소피아 선생님 말이 좀 신경이 쓰여, 잠깐 눈을 감고 심상 세계에 빠져들었다.
내가 심상 세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바로 나만의 도서관을 찾았다.
내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읽었던 대부분의 책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최근에는 ‘데카슬론’ 책장이 생겨 거의 100여 권이나 채웠다.
나는 마치 그것을 나의 애완동물처럼 한번 쓸어보았다.
‘좀… 과하게 준비한 거 같기도 하고?’
*
데카슬론은 작년 캘리포니아 지역 우승자이자, 전국 본선 우승자인 그라나다 힐스 고교에서 개최되었다.
“사람이 굉장히 많네요.”
“당연하지. 최소 500여개의 학교에서 참가 신청하고, 각 학교마다 학생 3명씩 오니까.”
인솔 교사도 함께 오고, 대회 진행팀까지 포함하면 거의 2000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등록 절차를 밟는 부스만 10곳이 넘으니, 말 다했지.
‘음… 내가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참가자 대부분 동양인이네?’
캘리포니아 자체가 동양인 비율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역시 교육열이 높아서 그런지 참가자의 90%는 동양인처럼 보였다.
‘나도 따지면 영혼은 동양인, 육체는 50% 동양인인데…’
남들은 그렇게 보는 것 같지 않았다.
– 쟤도 참가자야? …아닌가? 구경하러 왔나??
– 하하하, 너무 그러지 마. 쟤네 학교는 우리처럼 시험 쳐서 인원을 뽑는 게 아니라, 인종별 할당이 있을지도.
– 하긴 흑인은 대학 입시 때도 가산점 있지 않나? 경시 대회에서도 좀 챙겨줄 듯? 워낙 다양성을 추구하는 문화니.
– 쌈 존나 잘하게 생겼다. 부러워…
– 근데… 쟤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냐? 뭔가 낯이 익은데.
“로한?”
소피아 선생님은 시시각각 나를 감시하고 있는지, 내 표정이 조금만 변해도 바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넵, 갑니다.”
“제발 여기선 사고 치지 말아줘… 한꺼번에 캘리포니아 주의 모든 학교에 소문나는 거야. 알지?”
“복선 까시는 건가요?”
“미안. 다시 주워 담을게.”
“……”
우리는 바로 각자 배정받은 교실을 확인했다.
3일 동안 진행되는 데카슬론.
1일차는 총 7과목(예술, 경제학, 문학, 수학, 과학, 사회과학, 음악)을 치르는 개인 시험이기 때문에 각자 교실이 달랐다.
“다들 잘 보고, 시험 끝나자마자 선생님한테 연락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오! 너무 좋아요. 저도 오늘은 나온 김에 밥 먹을게요.”
“…뷔페로.”
“……”
어째서인지 소피아 선생님은 후다닥 사라졌다.
*
‘내가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시험은 경제학, 수학, 과학이었나?’
데카슬론은 시험 범위를 정확하게 한 달 전에 공지했다.
한 과목 한 과목 범위도 만만치 않고, 무려 7과목이나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개인이 그 기간 동안 벼락치기 해서 두루두루 좋은 성적을 받기는 어려웠다.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한 아이들이면 조금 더 유리하겠지만…’
어쨌든 그래서 같은 학교에서 온 아이들과 과목을 나눠서 공략하는 게 일방적이었다.
그건 데카슬론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시험처럼 개인 점수 순위에 따라 3위까지 수상을 하지만, 따로 팀 점수를 합산하여 3위까지 상을 주었던 것이다.
팀 점수는 그 팀 안에서 각 과목당 최고 점수만 합산하는 방식.
그러니까 나머지 둘이 경제학을 포기하고 내가 100점을 맞으면, 100점 만점이 팀전 총점에 합산되었다.
물론 개인 점수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전략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각자 주력 과목을 정하고 공부를 했다.
‘오, 생각보다 문제가 재밌는데?’
나는 시험지를 받자마자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시험이야말로 공부를 더 재밌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GED 시험도 아주 즐겁게 준비했고, 이번 경시대회 역시 처음에는 조금 꺼려졌지만 준비하다 보니 과몰입하게 됐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첫 문제를 풀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휠체어를 사용했던 인물은 누구인가요?]문제를 읽으니 심상 세계에서 연관된 문구가 하나 떠올랐다.
– 193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첫 번째로 대통령 후보로 등록된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39번째 대통령인 프랭클린 D. 그는 폴리오로 인해 다리를 사용할 수 없었지만…
‘맞아, 맞아, 그랬었지.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복지를 확대하면서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어.’
[“The Unwinding”이라는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The Unwinding”은 조지 패커가 쓴 2013년 출간된 비평과 사회 문제를 다룬 책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의 사회, 경제, 정치 등의 분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아, 그러고보니 내가 이번에 출품한 미국도서협회의 미국 소설상 수상작이었지. 재밌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는 어디인가요?]-이탈리아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산마리노 공화국은 항상 자신들의 독립성을 유지해 왔기 대문에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계속 이런 식이었다.
문제를 읽으면 그것이 키워드가 되어 나의 심상 세계를 자극했다. 연관된 지식이나 도서가 구축되어 있으면, 그걸 쉽게 ‘떠올리게’ 됐다. 나만의 검색엔진이랄까?
나는 데카슬론의 질문들이 전부 흥미로워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벌써 끝났다고??’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이제 막 몸이 좀 풀렸는데, 더 이상의 문제가 없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을 느꼈다.
*
세실 와그너 교수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에서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그는 항상 취침 전 1시간을 독서하는 시간으로 빼두었다.
이 시간은 신성해서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지켰고, 의무감이 아닌… 자기가 읽고 싶은 책 위주로 골랐다.
‘A Good Man이라…’
오늘은 조금 다른 독서를 하기로 했다.
그는 침대에 앉아서 직접 출력한 원고를 들었다.
‘그래도 기본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와그너 교수는 별 기대 없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