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6
36
제시카에겐 아주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이 시궁창 같은 오클랜드를 떠나는 거야.’
자본도, 인맥도 없는 사람에겐 아직 대학이 최고의 신분 상승 티켓.
아이비리그를 졸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새로운 기회들이 기다렸다.
지난 3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 끝에 학교 GPA와 SAT 점수는 이미 최상위권. 자신에게 부족한 건 특별활동 하나였다.
‘머저리들이나 좋아하는 스포츠엔 관심도 없고, 그나마 내게 가능성이 있는 건 전국 단위의 경시대회밖에 없어.’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은 거의 특별활동 가산점에서 판가름 나기 때문에 그녀는 데카슬론에 목숨을 걸었다.
올해가 벌써 세 번째 참가. 실질적으로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수상이 절실했다.
‘하필이면 내 친구를 밀어내고 저딴 애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친구와 함께 1년 내내 밤잠까지 줄여가면서 전략적으로 데카슬론을 준비했건만!
아이비야 워낙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신입생이라 학교가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쳐도… 오클랜드 고교 최악의 문제아를 이런 중요한 자리에 꽂아 넣다니!
‘내 인생이 이렇지 뭐…’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인생에 태클을 거는 학교와 교사를 저주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팀 순위야 버리면 된다. 어차피 개인 수상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학교도 적지 않았다.
제시카는 칼을 갈며 최선을 다해 마지막 대회를 준비했다.
다행히 성과가 있었다.
1일차 개인 시험 성적이 작년에 비해 30위 이상 뛰어 한 자릿수 순위를 찍었다.
2일차 에세이도 완벽했다. 이미 준비해본 주제였기 때문에 절대 제한 시간 안에 보여줄 수 없는 날카로운 통찰과 기교를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런데…
“…네? 뭐라고요??”
제시카는 소피아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제시카, 2000명 중 4등이야. 굉장히 잘했어.”
“그, 그거 말고요! 쟤가… 몇 등이라고요??”
“로한은 1등이야. 이걸로 우리 학교는 여전히 팀 순위 1위를 기록하고 있어. 이 기세를 타서 내일까지…”
제시카는 이미 듣고 있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장이 꼬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30분 만에 제출하고 나갔다면서?’
아무리 천재라도 그 안에 수준급 에세이를 작성하는 건 불가능하다.
문제가 유출되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역시 더러운 세상. 우리는 상류층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구나.’
그녀는 이를 바드득- 갈며 마지막 3일차 토론을 준비했다.
팀별로 토론을 진행하지만, 기여도에 따라 개인 점수가 주어지는 마지막 시험.
‘배점이 가장 높은만큼, 조금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도 순위를 뒤집을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토론 대회이기 때문에 지난 1년의 절반은 토론만 준비했다. 없는 시간 쥐어짜 알바를 해가면서 토론 아카데미까지 다녔다.
“…얘들아! 너희들이 해냈어. 대단해!!”
3일차 토론 팀 순위 1등. 최종 종합 팀 순위 1등.
이번 지역 예선을 통해 오클랜드 고교는 데카슬론 경시대회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
하지만 제시카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쟤만 아니었다면…!’
[Jessica Lawrence]1일차: 9위
2일차: 4위
3일차: 3위
최종 개인 순위: 4위
그녀는 정말 간발의 차이로 개인 수상권에 들지 못했다.
‘1위… 1위만 더 높았어도!!!’
로한만 없었다면… 개인 수상도 하고, 팀 수상도 했을 거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버드, 스탠포드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
그녀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멍하니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대회에서 어떻게든 참가 자격 박탈을 시켜버려야 한다.’
*
3일차 토론 대회가 끝나고 두 시간 후에 순위가 발표되었다.
– 아니… 그라나다 힐스가 2등할 줄 누가 알았어.
– 그것보다 오클랜드가 1등할 줄은 아무도 몰랐을 듯.
– 진짜 흥미진진한 대회였어. 아쉽게도 우린 떨어졌지만, 두 눈으로 이런 언더독의 반란을 보게 될 줄이야.
– 근데 쟨 무슨 일본 아니메에나 나올 것 같은 남자주인공 아니냐. 겉모습은 일진 양아치, 하지만 속엔 누구보다도 뇌지컬 뛰어난 천재.
– 퉷! 불공평한 인생. 꼭 저렇게 다 가져야 되냐??
“음…”
나는 지나치게 청력이 좋아, 멀리서 사람들이 속삭이는 말도 귀에 쏙쏙 박혔다.
내 뒷담화를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활기가 넘치고 피가 끓었다.
‘…얘는 진짜 애초에 빌런 체질인건가…’
뭐, 어쨌든 캘리포니아 주 지역 예선 역사상 이 정도로 드라마틱한 결과는 없었다며 다들 호들갑이었다.
“모두 착석해주십시오. 이제 곧 마지막 일정이 시작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물론 준비위원들도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 일정의 마지막,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준비위원 대표 폴 스미스입니다. 먼저 데카슬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준 참가자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지, 참가자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대표는 형식적인 인사치레 끝에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데카슬론은 개인 순위에 따라 수상을 하지만 결국 팀 경합이 중심이 되는 특별한 대회입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할 때 더욱 멀리 갈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죠.”
– 뭐 이리 시작이 거창하지?
대표의 말에서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읽었는지,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우리 데카슬론은 다른 경시대회와 달리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성이 부족하거나 팀의 단합력을 해친다고 판단이되면 참가 자격 박탈이라는 강력한 제재를 가해왔습니다.”
– 설마????
장내가 금방 소란스러워졌다.
“……”
나는 뒤통수가 따가워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제시카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니, 아주 손까지 흔들면서 살갑게 인사한다.
“아시다시피 토론 대회가 끝나고 모든 참가자들이 평가지를 제출했습니다. 여러 질문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건 각 팀원의 기여도와 단합력을 평가하는 내용이었죠.”
어느새 제시카가 의자를 땡겨 내 가까이 앉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로한.”
처음으로 듣는 상냥한 말투에 속이 메슥거렸다.
“고맙다고? 글쎄. 과연 잠시 후에도 똑같은 마음일까?”
“그게 무슨??”
나는 굳이 그녀의 의문을 해소시켜주지 않았다.
그게 그녀에게 더 큰 충격을 줄테니까.
“안타깝게도 올해는 참가 자격을 박탈당하는 학생이 나왔습니다.”
– ……!
모두가 숨을 멈췄다.
대표는 일부러 뜸을 들이며 그들의 감정을 가지고 놀았다.
‘넷플 다큐 찍는다더니… 아주 능숙하시군 그래.’
그래도 나는 웃으며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제시카 로렌스 학생. 대회 내내 우수한 성적을 올리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팀원들이 만장일치로 제시카 학생의 자격 박탈을 요청하였습니다. 이 자리가 모두가 모인 공개적인 장소인만큼 사유는 개인적으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
너무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순간 사고가 정지된다.
제시카도 사태파악이 안 되는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리곤 천천히 현실을 깨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라고!! 니, 니가 뭔데 날 팀에서 제명해!!!”
그녀는 나의 멱살을 잡고 열심히 흔들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고는 아이비로 타겟을 바꿨다.
“아이비,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우리 이야기가 됐잖아? 왜 저 자식을 제명시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했잖아! 도대체 왜!!!”
나는 제시카를 제지해야하나 잠깐 고민했는데, 아이비의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보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게요? 이상하다? 난 분명 제시카의 말대로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
제시카는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갈라지는 목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하하하하…”
내 안의 로한이… 분명 내 안의 로한이, 모두의 앞에서 파멸하고 있는 제시카의 모습을 즐거워했다.
‘아이비가 내 편에 서서 다행이지… 하필이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뻔 했어.’
최종 순위가 발표되고, 팀원 평가지를 작성하기 직전.
아이비가 나를 찾아왔다.
– 제시카가 당신을 팀에서 제명 시키자고 찾아왔어요. 평가지에 우리가 로한의 단합력을 최악, 기여도까지 최악을 찍으면 100% 참가 자격 박탈되고, 개인 수상까지 철회된다고 하더라고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미처 예상을 못해서 충격은 더 컸다.
‘가만히 앉아서 당할 뻔했어. 사람이 이렇게까지 추해질 수 있나?’
너무 상식 밖의 일이라서 상상조차 못했다.
– 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제시카의 제안을 듣고 마음 먹었어요. 전 제시카에게 최하위 평점을 줄 거에요. 로한의 손안에 제시카의 운명에 대한 결정권이 생기는 거죠.
– 왜? 굳이 내 편을 들어줄 필요까진 없잖아. 제시카가 나한테야 사사건건 시비걸었지만, 넌 잘 챙겨주지 않았나?
– 그래도 아닌 건 아니죠. 악의에 매몰되서 제정신이 아니에요. 로한이 대회내내 모든 걸 캐리했는데, 고마워하진 못할망정… 고작 질투심에 못 이겨 이렇게까지 바닥을 찍다니.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제시카 같은 사람은 언제든 존재했어.’
전생에도 많았다. 좋은 사람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악의를 품고 세상을 사는 이들.
전생에서도 그렇게 당한 주제에, 아직도 사람을 믿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특히 제시카의 경우에는 처음서부터 끝까지 내게 선입견을 갖고 조롱한 사람이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조차 못했을까?
꺄아아악!
여전히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제시카.
그랬다. 결국 나는 아이비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시카에게 나에게 하려고 했던 그대로. 데카슬론 참가 자격을 박탈시켰다.
가만히 있었으면 팀 1위로 대회를 마감했을텐데. 그녀의 악의는 고스란히 자기 자신에게 돌아갔다.
“이게 미쳤나…”
결국 보다 못한 소피아 선생님이 그녀를 끌고 나갔다.
‘선생님… 더 일찍 나서지 않은게, 타이밍을 노린 것 같은데?’
어쨌든 그 이후 한동안 제시카를 보지 못했다.
나중에 듣기론 전학을 갔다느니, 오클랜드 고교의 전통대로 그냥 고등학교를 통째로 때려쳤다느니 며칠 소문만 무성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국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
캘리포니아 주 지역 예선이 성황리에 끝났다.
뒷정리가 끝나자마자 준비위원들은 사후 평가 모임을 가졌다.
“로한 킴… 우리가 찾던 슈퍼 스타가 될 수 있는 재목이다.”
“넷플 촬영팀이 철수하자마자 가식이 너무 없어진 거 아닙니까.”
“폴 자네는 남아서 나랑 며칠 일을 좀 더 하자고. 다음은 텍사스 지역 예선인데, 자네처럼 유능한 인재가 꼭 필요하네.”
“하..하… 네 그러시죠. 먼저 가시면 제가 뒤따라가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둘의 만담으로 회의의 분위기가 잡혔다.
“일단, 로한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다 조사해와. 스토리메이킹이 필요해. 가급적이면…”
뷰크 부협회장은 잠깐 고민을 하더니 무릎을 탁 쳤다.
“분명 사연이 있을 거다. 방황하던 문제아가 어느 날 특별한 계기로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를 한다… 이거 다들 좋아하는 갱생 스토리잖아? 분명 로한도 그런 사연이 있을 거니까 최대한 자세하게…”
“부협회장님! 로한 학생을 개인적으로 아시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문제가 있었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흑인 혼혈 학생이라서요?”
“…저기 캐서린. 우리 폴 대표님 비행기표 바로 끊어줘. 출장 명령서도 공식 채널을 통해서 내고. 텍사스에서 하는 거 보고 아예 전국 일주로 가면…”
“사실 사춘기에 모두가 한 번쯤 반항하지 않습니까. 분명 로한 학생도 그런 사연이 있을 거라는 선견지명, 대단하십니다. 넷플 제작자가 스카웃하고 싶어할만한 안목이십니다.”
“그렇지? 그러니까 텍사스에서 따라다니면서 잘 보고 배우라고.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현장에서 지휘해야겠어.”
“……”
“방금 욕한 거 같은데?”
“……”
이후 다양한 안건을 다루며, 사후 평가는 30분 안에 끝났다.
용건만 간단히 하는 뷰크 부협회장다운 일처리였다.
“자, 이제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 다들 고생했으니까 이 근처 유명한 한국 고기 뷔페집에 가자고.”
그때 폴이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그… 부협회장님.”
“왜, 또 고기 뷔페라 지겨워서 그래?”
평소라면 깐족댔을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만약에 로한의 반항기가 말입니다… 현재 진행형이면 어떻게 하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는 대답 대신 핸드폰을 내밀었다.
[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의 패기 모음집]그곳에는 폴의 표현대로 반항기가 현재 진행 중인 우리의 슈퍼스타가 담겨 있었다.
“……”
명장면 하나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뷰크 부협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국 피지컬 천재가 되었다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