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39
39
사실 나와 리아는 우리의 이사를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얼마 전, 리아가 먼저 내 방에 찾아왔다.
“이젠 책벌레 컨셉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유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동생은 여전히 나를 의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오늘은 용건이 따로 있는지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오늘 집에 나밖에 없을 때 누가 왔는지 알아?”
“숨겨둔 남자친구?”
“웃기지도 않는 조크는 왜 계속하는 거야?”
“난 재밌는데…”
“……”
유치하지만, 이런 노력이 리아와의 관계계선에 조금씩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 먼저 와서 나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그 반증이다.
“됐어, 내가 너랑 무슨 이야기를 하겠어.”
“그래서 누가 왔는데?”
리아는 방을 박차고 나가려다 이내 멈춰 섰다. 그렇게 서서 잠깐 주저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중개사(Real estate agent)가 찾아왔어. 엄마랑 통화했다고.”
“그래?”
“그래.”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집안이 진짜 어렵구나.’
항상 경제적인 어려움은 있었지만, 엄마가 소소한 부업이 아닌 본격적인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신지 좀 됐다.
그 이외에도 장 보러 갔을 때 여러 제품을 비교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셨다.
나는 그때마다 대신 계산하거나, 따로 나가서 필요한 생필품을 사왔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 돈 좀 번다고 우리의 역할까지 넘보지 마렴. 알겠니?!
곧이어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시지만, 엄마의 극심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면 마음이 안 좋았다.
‘나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가난하게 살아봤으니까.’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울 때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 무력감. 불안감. 평생 함께 살아와서 이젠 그런 감정들을 너무 친숙했다.
“저기…”
리아는 바닥을 쳐다보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학교 때려치고 일을 좀 알아볼까? 거기 레드 드래곤도 좋아 보이고… 클로이가 원하면 모델 에이전트를 소개시켜준다고 했어.”
“……”
기분이 묘했다.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가?’
겉으로 항상 틱틱대는 리아가, 알게 모르게 나를 의지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한편으로 기특하기도 했다.
‘집안의 상황을 충분히 원망할 수 있는 나이인데… 어떻게든 보탬이 될만한 방법부터 찾는구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일하면 너무 좋지. 적극 추천해. 하지만 이런 식으론 아니야.”
“그럼?”
“생계를 위해서 일할 생각하지 말고, 네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해. 평소에 흥미가 있었던 분야, 아니면 네 꿈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경험을 쌓으란 말이야.”
리아의 눈매가 얇아졌다.
“우리 상황에서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어딨어. 당장 먹고 살기 힘들면 뭐라도 해서 도울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건 맞지.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마음이 급한 건 알겠는데, 부모님 입장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어?”
“……”
“우리가 갑자기 돈 벌겠다고 학교를 포기하고 일만 해봐. 학생이 학생다워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돈을 버는 자녀들을 보면 부모님의 마음이 어떨 것 같아?”
“그럼 어쩌라고! 그냥… 그냥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기엔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리아는 이내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눈물을 흘렸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등을 쓸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오늘 있었던 일, 어디 가서 말하면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리아는 날 찾아왔을 때만큼이나 발 빠르게 도망쳤다.
“……”
나는 잠깐 서서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가만히 지켜봤다.
‘이래서… 사람이 돈을 많이 벌어야하는구나.’
*
사실 그동안 내색은 안했지만, 나는 거의 하루에 한 번은 통장 내역을 확인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너무 흐뭇하군…’
나는 일단 지금까지 내가 번 돈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레드 드래곤 알바가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
[레드 드래곤]– 16주 동안 180시간 일함.
– 기본 급여: $5,400
– 팁: $8,700
– 추가 순이익의 20%: $16,500
[합계: $30,600(=4천만원 가량)]솔직히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전생에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연봉이 4천만원을 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현생의 내가 불과 4개월 만에, 일한 시간으로만 따지자면 3개월 동안 하루에 고작 3시간씩 일해서 번 돈이었다.
그동안 미식축구와 경시대회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많이 줄였는데도, 점점 [레드 드래곤]의 손님이 많아지고 매출이 늘어나면서 팁과 추가 순이익 급격히 불어난 덕택이었다.
‘솔직히 장 아저씨가 날 좋게 봐주고, 돈 거래를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라 이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어.’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액수이지만, 놀랍게 그 다음 수입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보였다.
[그녀가 사라졌다]– 마법도서관 출판사 계약금: $300,000
일단 계약금 단위부터가 압도적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큰돈을 만져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그런데 이어진 「그녀가 사라졌다」의 종이책 판매량도 만만치 않았다.
– 페이퍼백 1쇄 5만부 완판: $324,750 (가격 $12.99 X 직판 정산 50% X 5만부)
우리 모두가 무모했다고 욕한 제임스의 초판 5만 부가 하루 만에 품절.
다른 유통망이 아닌 [마법도서관] 플랫폼에서 직접 판매를 진행했기 때문에 정산 비율이 말도 안 되게 높았다.
‘종이책만으로 한화 4억을 벌다니…’
제임스가 [그녀가 사라졌다]을 확보하기 위해 무려 $300,000을 계약금으로 선뜻 내줄 때 극구 사양했지만… 진짜 선견지명이 대단한 대표였다.
어쨌든 판매 개시 딱 24시간 동안 종이책 판매량만으로 계약금을 모두 회수해버렸으니까.
‘앞으로 종이책이 본격적으로 온, 오프라인 서점에 깔린다는 걸 생각해보면…?’
사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마법도서관]은 이미 계약금의 몇 배수를 벌어들였다.– 이북 판매: $1,111,880 (가격 $9.99 X 직판 정산 70% X 16만부)
[제임스: 작가님! 제가 예상한 것보다 이북 판매량이 아직 10분의 1밖에 안 나왔지만, 앞으로 다양한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서 최대한 목표치를 맞춰보겠습니다.] [제임스: 그나마 다행인 건, 종이책을 산 88%의 독자분들이 이북도 함께 결제했다는 것입니다. 종이책 배달까지 시간이 좀 걸리니까 바로 이북을 결제해서 읽은 것도 있고, 아무래도 작가님의 의견대로 연재 형식으로 끊어놓으니 서로 댓글로 소통하기 위해 이북을 구매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너무 비현실적인 금액이라, 숫자의 단위를 몇 번이나 다시 세보게 되었다.
‘전생의 나라면 평생을 벌어도 절대 만져볼 수 없는 액수.’
– 합계: $1.7M(=약 22.6억)
내가 [그녀가 사라졌다] 한 작품으로 벌어들인 돈이었다.
더욱 무서운 건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는 것.
나는 조용히 은행앱을 종료하고, [고스트 에이전트]가 추천한 이 지역 부동산 중개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우리는 지난 며칠 동안 짐을 싸고 열심히 이사준비를 했다.
당장 집을 비워주어야 중개사가 홈 스테이징(Home Staging: 최대한 집을 예쁘게 꾸며주는 과정)을 시작하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그동안 틈틈이 엄마와 아버지는 우리가 들어갈만한 새로운 보금자리를 물색하셨고, 최종적으로 세 후보군을 추리셨다.
“가족이 다 함께 둘러본 다음 결정을 내리면 좋겠다.”
“넵!”
두 곳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오클랜드에서도 가장 흑인 분포도가 높고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한 동네 이스트몬트.
“……”
한 곳은 콘도, 다른 한 곳은 다가구주택이었는데, 둘 다 시설이 낡았지만 관리는 비교적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다만 집들이 너무 따닥따닥 붙어 있어 답답했고, 거리에는 웃통을 벗고 있는 흑인무리가 위험한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 불안감을 조성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볼까?”
“…넵!”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오?’
그나마 마지막은 웨스트 오클랜드의 끝자락에 위치해 동네가 조금은 더 안전해 보였지만, 아파트가 너무 작고 낙후되어 있었다.
“방이 두 개밖에 없지만, 너희가 방을 따로 쓰고… 엄마랑 아빠는 거실을 쓰려고 한다. 어차피 아빠는 거의 집에 없을 테니까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거다.”
“……”
“당분간만 지낼 거니까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최대한 봄이 오기 전까지는 옮길 수 있도록 노력하마.”
아버지는 굉장히 담담하게 말했지만, 엄마가 참다말고 고개를 휙 돌리셨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뒷모습을 보자마자 리아가 말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
아버지가 뒤에서 그 둘을 안으며 고개를 파묻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가족이 없이 자랐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너무 낯설었고, 좀 민망하기도 했다.
“……?!”
그런데 ‘로한’은 아무 주저 없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온 가족을 힘껏 안았다.
가장 키가 크고 팔이 길어서 그런지, 내 품에 쏙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위로했다.
나는 분위기를 살피다가, 적절한 시점에 제안했다.
“제가 봐둔 곳도 있는데, 거기까지만 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네가?”
엄마와 아버지는 각기 다른 이유에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돌아봤지만, 이내 내 진지한 눈빛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가는지 먼저 알려주면 안 될까?”
“가보시면 알죠. 서프라이즈인데 미리 말씀드리면 재미없잖아요.”
나는 네비를 보고 운전하는 아버지에게 길을 알려드렸다.
“여긴?”
순간 나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당황했다.
우리는 그나마 오클랜드에서 가성비가 좋고 치안이 안전한 그랜드 레이크 지역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 ‘가성비’라는 게 어디까지나 평균 이상의 소득을 가진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이라, 다들 월세부터 걱정했다.
“…아들?”
하지만 곧이어 그 걱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내가 우리 가족을 이끈 곳은 작은 호수가 훤히 보이는 신식 단독주택 앞.
시세로 따지면 지금 부모님이 팔려는 우리 집보다 두 배는 더 비싼 곳이었다.
“환영합니다, 가족 여러분.”
“……???”
아버지와 고스트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설립한 법인(LLC)의 이름으로 구입한 나의 첫 부동산.
아무래도 미성년자이다보니 최종 서류작업이 조금 남았지만, 나는 미리 받은 열쇠를 따고 현관문을 열었다.
“……”
정작 엄마, 아버지, 그리고 리아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질 못했다.
나는 우리 가족을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제 첫 집치고 나쁘지 않죠? 방이 좀 남는데, 원하시면 여기서 같이 지내셔도 되고요.”
“……”
“여러분?”
너무 큰 충격을 받은 그들은 그렇게 한참동안 나와 집을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했다.
*
“따님께서 집을 정식으로 하우스 세일즈 리스트에 등록했습니다.”
“중개사는?”
“이미 연락해서 서류작업 준비하라고 말해뒀습니다. 가서 서명만 하시면 바로 타이틀(Title: 소유권)이 양도 됩니다.”
“가격은?”
“중개사의 의견으로는 따님이 급매를 하는 상황이라 시가에서 10% 아래는 무조건, 어쩌면 빠른 거래만 약속한다면 15% 이상 차감하는 게 무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됐네. 그냥 협상하지 말고 현재 매물가에 15% 얹어서 준다고 해.”
“예?”
“설명이 필요한가?”
웃으면서 되묻는 J.P. 크롬웰의 모습에 비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들은 곧바로 차량에 올라타 이동했다.
오클랜드 베이 브릿지를 지나는 장면이 창 사이로 보였다.
‘로한.’
J.P. 크롬웰의 목적은 오로지 손자의 회유.
일반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으니, 아주 특별한 전략을 세웠다.
일단 집을 좋은 가격으로 매입해서 숨통이 트이게 해주고, 원한다면 그곳에서 무상으로 계속 지낼 수 있게 조치해줄 생각이었다.
‘한동안 아무 대가 없이 퍼준다.’
당장의 대가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한없이 베풀어줄 것이다.
은혜를 입으면 보답을 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인간의 심리.
‘이래도 로한이 버틴다면… 버티지 못할 때까지 퍼준다.’
J.P. 크롬웰은 너무 기대가 돼서 웃음이 다 났다.
집을 올리자마자 높은 가격에 판매된 행운의 순간.
그걸 산 사람이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로한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