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4
44
경기 후 다음 날… 학교, 지역 뉴스, 인터넷 모두가 난리가 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격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격렬한 경기였지만 몸은 의외로 멀쩡했고, 정신적인 타격이 너무 컸다.
재미는 ‘로한’이 보고 책임은 내가 지는 느낌. 어째서 부끄러움은 다 내 몫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내가 낸 아이디어라도… 스케일은 다른 놈들이 신나서 키우고.’
나는 수치사할 것만 같아서 가급적이면 어제 경기 관련된 그 무엇과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서 미식축구 팀원들도 피해 다녔고, 최대한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주 잠깐 핸드폰을 하다가, 아예 소셜 최상단에 박혀 있는 아주 익숙한 썸네일의 영상이 보였다.
“와, 얘는 잠도 안 자나… 어느새 이걸 편집해서 올렸어?”
@annachoice라는 아이디의 인플루언서는 이번에도 발 빠르게 [오클랜드 vs 리버티] 경기 영상을 올린 모양이다.
[한 고등학교 미식축구 선수의 패기 마.지.막!]50.9M views / 10.2K comments
‘미친… 조회수가 벌써 5천만이라고??’
나도 사람인지라 호기심이 생겨서 영상을 보고, 댓글까지 확인하게 되었다.
–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우리의 망나니좌! 기다리고 있었다구~.
└ 진짜 개웃기네 LMAO! 고교 미식축구에도 이런 캐릭터가 필요했다고. 제대로 된 빌런이야말로 흥행 공식이지!
└ 속보! 악마도 이 영상을 보고 사표를 냈다고…
– 라이벌팀 현 여친 섭외 실화? hahaha 미친 거 아냐?
└ 전 여친, 친동생은 그렇다고 쳐. 현 여친은 도대체 어떻게 섭외하는 거냐?
└ 내가 듣기론 다들 재밌을 것 같아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던데? 이젠 ‘망나니 세레모니’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도 했고…
└ 재미는 무슨. 다들 팔로워 좀 빨아보려고 나댄 거겠지. 소셜 계정 열심히 키우고 있더만.
– 나, 원래 로한 팬인데… 솔직히 이번에는 선 씨게 넘은 거 아니냐? 졌으면 모를까, 완전 상대를 발라버린 것도 모자라… 현 여친에게 랩 댄스를 받아?
└ 나도 눈살 찌푸려지더라. 퍼포먼스 좋지, 논란 만드는 것 필요하다 이거야. 하지만 패자팀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려야해?
└ 벤치 클리어링 하러 나오는 리버티 팀 봐봐. 표정 존나 불쌍해.
└ 이 새끼들 1~2초 사이로 댓글 주루룩 다는 거봐? 어디 좌표 찍혀서 놀러 오셨나?
└ 미친놈들 리버티 선수들이 불쌍해? 리버티 놈들한테 부상당한 다른 학교 선수들은 벌써 잊음?
“음…”
대충 인터넷 반응을 훑어보니 ‘로한’에 열광하는 사람이 반, 증오하는 사람이 반. 중간은 없었다.
나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격렬한 반응을 보이게 하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나는 어제의 경기 관련 글들을 찾는데 재미를 붙였다.
욕을 먹으면 욕을 먹는대로 ‘로한’이 즐거워했고, 칭찬하는 내용이 있으면 내가 괜히 가슴이 뿌듯했다.
‘내가 스포츠로 남들에게 인정받는 날이 올 줄이야.’
한 번 걸어만 봐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던 불쌍한 아이는, 어느새 전국에서 주목하는 유망주가 되었다.
내가 이렇게 활력 넘치는 육체를 갖게 되다니.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다 나려고 하는데…
띠리링 –
갑자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내 인스타 팔로워들이 나를 특정 게시글에 계속 태그하고 있다는 알림 소리였다.
“이건 또 뭐야?”
내가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인물이 올린 글. 다름 아닌 나에 대한 저격이었다.
‘그동안 잠잠하다 싶더니만.’
다리우스.
[로한. 우리의 악연을 끝낼 때가 됐다.]그는 상의를 벗은 채, 조각 같은 근육을 드러내며 카메라 정면을 가리켰다.
[한 번 붙자 이 잡종새끼야. 누구 한 명 죽기 전까지는 안 끝나는 거야. 알겠냐?]*
며칠 전.
차머스는 막내동생 다리우스에게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너, 점점 아버지 눈밖에 나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
크롬웰로 태어난 이상 모를 수가 없다.
그들의 아버지는 딱 한 가지 기준으로 핏줄들을 판단하셨다.
– 왕국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짐이 되는가.
그런 면에서는 공정한 분이었다.
도움이 된다면 지원하고, 짐이 된다면 거두어가신다.
그래서 누군가는 천문학적인 가치의 자회사를 물려받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눠준 모든 재산을 회수한 후 의절 당했다.
“네가 그동안 잘 성장해주고, 가문의 이름을 드높인 공적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로한에게 심폐소생킥을 당한 그 순간 쫓겨났을지도 몰라.”
“……”
다리우스는 아직도 그때의 치욕이 생생한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차머스는 분위기가 잡혔다고 생각할 때쯤 넌지시 물었다.
“너, 내가 한 방에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 알려줄까?”
“뭔데?”
다리우스는 거의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머스의 말에 흥미를 느꼈는데… 정작 차머스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댔다.
“요즘 복싱의 인기가 옛날만 못하다는 거 알지?”
“너무 뜬금없는 화제 전환 아니… 으악, 아파! 사람 팔 뽑아낼 일 있어? 왜 이러는 거야.”
“끝까지 들어봐.”
“…알겠어.”
“넌 상상이 안 가겠지만, 복싱이 한 때 지금 미식축구보다도 인기가 많았던 시기가 있었어. 너도 타이슨이나 알리는 잘 알잖아?”
“또 옛날 이야기… 아, 알았어. 열심히 들을게.”
“하지만 안타깝게도 복싱은 여러 가지 악조건 때문에 점차 인기가 하락했어. 그러다 결국 매니아들만 찾는 고인물 스포츠가 된 거지.”
차머스는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갑자기 요즘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복싱 돌풍이 일어나고 있어. 그것도 프로 경기가 아니라, 아마추어 경기를 중심으로. 들어봤어?”
“유튜버 복싱 말하는 거야?”
“맞아. 유튜버들끼리 서로 유치한 말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현피를 뜨자고 하지.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근데 아무래도 보여지는 직업이다보니 패싸움은 좀 그러고, 복싱이라는 탈을 쓰고 현피를 뜨는 거야.”
“……”
“근데 그런 조잡한 아마추어 복싱 경기가, 가장 최근에 진행된 복싱 챔피언 타이틀 매치보다 20배 많은 매출을 올렸어. 왜 그런지 알아?”
다리우스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지만, 예의상 물었다.
“왜?”
“서사가 있기 때문이야. 내가 팔로우도 하고 잘 아는 두 명이 서로 갈등이 생겼어. 팔로워 사이에서도 누가 맞다 틀리다 의견이 갈려. 그런 상황을 말로 해결하려는 건 지지부진하고, 재미도 없어. 디스전은 처음에야 잠깐 흥미가 생기지만, 어느 한쪽이 인정하지 않으면 속시원한 결말을 보기 힘들잖아? 누가 이겼는지 졌는지 자기들끼리만 의견이 분분해지는 거지. 그런데 복싱은 어때?”
“…무조건 결판이 나.”
“그래. 남자의 세계에선 승부가 갈리는 그 순간 명분 따윈 의미가 없어져. 누가 맞든 틀리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승자독식. 이긴 사람이 무조건 옳아. 위아래가 정해지는 거지.”
다리우스는 이제야 말귀를 알아들었다.
“설마 나보고 복싱 경기를 치르라는 거야? 로한을 상대로?”
“그래. 지금이 딱이야. 너희 둘은 지금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
확실히 그랬다.
다리우스는 태생부터 크롬웰의 직계에 전국구 쿼터백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고, 요즘은 ‘심폐소생킥’이란 빌어먹을 밈 때문에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까지 알려졌다.
로한의 경우는 훨씬 파급력이 컸다. 매 경기마다 ‘망나니 세러모니’가 전 세계적으로 바이럴되며 수만 안티팬을 실시간으로 양성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경기 때문에 온갖 환호와 욕을 함께 먹고 있는 상황.
“그런 너희 둘이 사이에서 복싱 경기가 펼쳐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 것 같아? 이미 서사는 완벽하잖아. 패배를 당한 것도 모자라 명예까지 더럽혀진 너, 그리고 떠오르는 신성이자 미식축구계의 망나니 로한. 놀랍게도 여기서 언더독은 너고, 모두가 패배하길 바라는 빌런은 로한이야.”
항상 반대의 상황에 있던 다리우스에게는 무척 생소한 상황.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유리하기도 했다.
“생각해봐. 그런 이보다 완벽한 판은 만들어 줄 수도 없어. 네가 로한을 때려 눕힐 수 있다면, 시원하게 K,O.라도 시킬 수 있다면… 너 스스로도 복수할 수 있고, 아버지에게도 제대로 눈도장 찍는 거야. 네 안티팬은 팬으로 돌아서고, 로한의 안티팬까지 너를 인정하게 되면서, 넌 이 위기를 기회로 삼게 되는 거지.”
다리우스의 차머스의 말을 들으면서 피가 끓기 시작했다.
상기된 그의 표정을 본 차머스는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니가 존나게 때렸던 코찔찔이 아냐? 나중엔 너랑 눈만 마주쳐도 경기를 일으키던 병신이었잖아.”
“…그랬지.”
“걜 보호 패드에 칭칭 감아서 샌드백처럼 가지고 놀다가 뼈 부러져서 병원에도 몇 번 실려 갔잖아. 내가 입단속 시키느라 진땀뺐던 기억이 있네.”
어느새 다리우스는 [오클랜드 vs 퍼시픽 하이츠]의 처참한 경기 내용을 잊고, 과거의 귀엽고 꾀죄죄한 쥐새끼 로한이 떠올랐다.
“네가 무조건 이기는 경긴데 안 할 이유가 있나?”
다리우스는 차머스가 경기장 섭외 및 프로모션을 도맡아 하겠다는 말을 듣고, 결국 그의 복싱 경기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곧바로 차머스의 도움을 받아 강도 높은 훈련에 들어갔다.
어렸을 적부터 차머스의 악영향으로 복싱을 정말 싫어하게 된 다리우스는 군말 없이 차머스의 지시를 따랐다.
‘절대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로한 때문에 경기에서 진 것도, 그에게서 심폐소생킥을 당한 것도 용서할 수 없는 일. 다리우스는 그날의 기억을 모두 덮어씌우기 위해서라도 로한을 죽여버리던가, 불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
다만 다리우스와 차머스가 간과한 문제가 딱 하나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로한 쪽에서 연락이 없었던 것이다.
*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다리우스의 도전장(?)에 대한 화제가 뜨거웠다.
– 진짜 다리우스랑 로한이랑 복싱 뜨는 거야?
– 둘이 체급이 맞긴 한가? 그냥 헤비급으로 가는 건가.
– 실제로 누가 더 세냐? 다리우스? 로한? 그 악마놈이 진다는 게 상상이 안 가는데?
– 너무 재밌을 거 같다. 어렸을 때 나이가 더 많은 다리우스가 존나 괴롭혔다며?
– 로한이 초등학교 땐가? 내가 듣기론 다리우스 때문에 인생이 지옥 같아서 자살 시도한 적도 있다던데?
– 그럼 ‘심폐소생킥’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나.
– 어쨌든 그런 병신한테 지 자존심인 미식축구에서 처발렸으니… 홧병으로 뒤질 것 같겠지.
어쨌든 세기의 매치업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것이 바로 싸움 구경.
거기에 크롬웰 집안의 복잡한 사정이 많은 둘이다보니,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복싱 매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야, 이게 무슨 소리야. 너 진짜 그 고릴라 놈이랑 복싱해?”
나는 일 처리 할 게 좀 있어서 방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뜬금없이 리아가 박차고 들어왔다.
“아니. 내가 왜?”
“…다들 붙는다고 알고 있던데?”
“걔가 일방적으로 지껄인거지, 내가 승낙한 적은 없어.”
“그럼? 고릴라가 도발했는데 그냥 넘어갈 거야? 다들 니가 겁 먹었다고 생각할 걸?”
“…그래서 붙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그, 그냥 그렇다는 말이지.”
‘무슨 내가 애도 아니고.’
다리우스라는 이름의 패배자가 뭐라고 지껄이던 별로 화도 안 나고, 남들의 시선 따위는 더더욱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에겐 당장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ghostagent: 공모전 결과가 다 나왔어. 다른 중소 규모의 공모전은 몰라도 ‘이 시대 문학상’이랑 내가 추천한 3대 문학상 시상식은 어떻게 할래?] [ghostagent: 그리고 피터 오웬이 「A Good Man」 관련해서 직접 만나서 논의하고 싶은 안건이 있다던데… 날짜 잡아줘? 내 측근의 말에 의하면 꽤 큰 프로젝트가 있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