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6
46
사이먼하퍼의 치프 에디터, 로렐라이 콜린스는 이번 계약이 절실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사시켜야 해.’
그녀 정도의 위치가 되면, 돈은 숫자에 불과하다.
더욱 중요한 건 포트폴리오. 어떤 작품을 핸들링 했냐에 따라 명예가 높아지고, 돈은 부수적으로 딸려오기 마련이다.
‘c.k. 작가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어.’
평소에도 그 때의 일을 떠올리며 후회하지만, 오클랜드에 와서 그런지 더욱 생생하게 기억났다.
‘아니, 작가님을 처음 뵀으면 누구라도 당황했을 거야.’
「She’s Gone」을 읽고 c.k.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잡혀 있었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
인성이 바름.
가정 교육을 중요시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을 가능성 높음.
결혼과 사랑에 대한 깊은 이해.
20년의 에디터 경험으로 견주어봤을 때, 아무리 젊어도 30대 초반. 어지간하면 30대 중반의 교양 있는 남성을 특정 짓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의 작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사회에 불만… 아니 비판적으로 보이시는 흑인 고등학생분께서 나타나면 누가 믿겠냐고…’
너무 당황해서 조금은 무례를 범한 것도 같고, 어쨌든 신인 작가를 만나는 자리라 안일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다.
‘우리가 사이먼하퍼니까, 신인 표준 계약서라도 무조건 넙죽 받아들일 줄 알았어.’
대부분의 신인, 그것도 투고를 통해 연락된 작가가 그랬다.
그리고 자신의 도움은 단순히 계약 조건에 국한되지 않았다. 무조건 베스트셀러로 성장시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제안을 했건만 보기 좋게 물먹었고, 그걸 계기로 c.k. 작가는 업계 최고의 블루칩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라. Hyde 작가는 여타의 A급 작가분으로 대우하겠어.’
오늘을 위해 아예 샵을 다녀왔다. 옷차림도 굉장히 신경을 썼고, 보통의 ‘넥스트 베스트셀러’ 대상작에 제시하는 조건보다 한 단계 높은 A급 계약서를 준비해왔다.
Hyde 작가에 대한 이미지가 대충 잡혀 있었지만, 뇌리의 저 구석에 멀리 날려버렸다.
‘세상 풍파를 다 겪은 4~50대? 아냐, 천재라면 30대에도 가능하겠지. 각박한 사회 속에서 빛을 찾으려고 애타게 노력하지만, 결국 모든 불태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과격한 사람.’
직업병이라서 저절로 떠오르는 심상을 한 편으로 접어두고, 오늘은 누가 나와도 놀라지 않겠다는… 최대한 오픈마인드로 미팅에 나왔다.
‘에이전트가 작가분의 익명을 유지해달라고 하셨지… 그래도 흑인 남성분이라는 귀띔을 받았으니까, 그때와 같은 실수는 절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순간 로렐라이는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다.
“작가님!”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오클랜드도 작지 않은 도시인데, 하필이면 딱 이 호텔 로비에서, 좀 전까지 떠올리고 있던 c.k. 작가가 눈앞에 나타났다.
로렐라이는 벌떡 일어나, 추태를 무릅쓰고라도 c.k. 작가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뛰어갔다.
“헉, 헉.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계속 연락드렸는데,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아, 굳이 절 위해서 뛰실 필요까지는… 아 그러셨어요? 에이전트분이 바빠서 미처 전달해주지 못했나봐요.”
“하. 하. 하. 그래서 연락을 한 번도 못 받으셨구나.”
‘건방진 에이전트…’
로렐라이는 표정이 굳었다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환하게 웃었다.
“뒤늦게 축하드려요! ‘그녀가 사라졌다,’가 5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를 하고 있더라고요. 하아, 인터넷 연재를 선택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역시 작품이 좋으니까 세상이 알아주네요.”
그녀는 c.k. 작가가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아,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실까요?”
“네? 아… 그게…”
평소라면 굉장한 행운이라고 여겼을 제안이었다. 언제 차기작을 쓸지 모르니 무조건 친분을 유지해야 하는 인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문제는 Hyde 작가와의 약속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
로렐라이는 불과 5초만에 식은땀을 흘리며 온갖 고민을 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작가님. 실례인 줄은 알지만, 혹시 오늘 시간이 되시면 나중에 저녁 식사 가능할까요? 지금은 제가 따로 약속이 있어서 긴 이야기는 어렵고, 내일도, 아님 다음 주도 괜찮아요. 무조건 시간 맞추겠습니다.”
“……”
어쨌든 Hyde 작가가 선약이고, 지금 그녀에게 훨씬 중요한 클라이언트.
그런데 c.k.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 초조해하는 자신을 보며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Hyde 작가 만나러 온 거 아니에요?”
“…..?! 그걸 어떻게… 혹시, 설마? 두 분이 아는 사이인가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c.k. 작가가 오늘의 미팅에 대해서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이어진 그의 말은 로렐라이가 상상조차 못한 것이었다.
“제가 ‘착한 사람’을 집필한 Hyde입니다. 동시에 c.k.이기도 하고요.”
“…거짓말.”
그녀의 오픈 마인드로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
내가 정체를 밝히자마자, 치프 에디터는 휘청거리면서 쓰러질 뻔했다. 그녀를 부축해서 로비의 테이블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얼마나 충격을 많이 받았는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혼자 계속 중얼거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장르 소설로 현재 1위를 찍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뭐어어?? 순문도 잘 쓴다고? 겨우 10대 나이에?? 인생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
자신은 인생을 헛살았다느니, 너무 배 아파서 가식도 못 떨겠다느니. 그녀는 체념한 듯했지만, 어째서인지 치프 에디터의 가꿔진 이미지보다 지금의 모습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후우. 죄송합니다. 잠깐 정신줄을 놓았네요. 오늘은 진짜 잘하고 싶어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이미 글러먹은 일이겠죠? 하긴, 저라도 이런 인종차별적이고 근시안적인 에디터와는 일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요.”
“예?”
“트라우마가 되겠어요… 진짜 지난 10년 동안 이 정도로 간절하게 계약을 하고 싶었던 작가분이 많지 않았거든요. 근데 두 분 모두에게 거절을 당하다니… 잊지 못할 경험이 되겠네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사라졌다,’건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더 좋은 기회가 있었어요. 하지만 ‘착한 사람,’은 오늘 계약하고 싶어서 나왔는데요?”
“네, 악감정은 전혀 없어요. 비즈니스잖아…네? 잠깐만요. 계약이요? 진짜요!!”
‘같은 사람이 맞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그녀는 내 두 손을 맞잡고 마구 흔들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일단 속내를 보여주기 시작하니, 경계가 많이 무너지는 타입 같았다.
몇 번이나 내 의지를 확인해주고 나서야 그녀는 “흠흠,” 멋쩍은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일단 계약 조건부터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 넵! 모든 부분은 조율 가능하니, 일단 시작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 A급 작가
[계약금 $30,000] [선인세 $100,000] [기본 인세 12%] [판매 부수에 따라 정산 비율 상향]이미 고스트 에이전트에게 기존 수상작에 대한 조건을 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보다 전체적으로 우호적인 계약서에 내심 감탄했다.
“확실히 유리한 조건이군요.”
“네, 어떻게든 성사시키고 싶어서 어렵게 결제를 받았어요.”
첫 만남 때, 신인 작가의 표준 계약서가 $1000불에 6% 정산임을 떠올려보면, 불과 4개월 만에 나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조건. 하지만 내가 꼭 사이먼하퍼의 치프 에디터를 다시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 조건은 ‘넥스트 베스트셀러’의 대상에게 주어지는 기본적인 혜택과 에디터님 개인적으로 좋게 봐주셔서 가산점을 받은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요?”
“맞아요. 사심이 듬뿍 들어갔어요.”
“그럼 만약 이 위에 ‘착한 사람’의 흥행 요소를 몇 가지 더 얹으면 조건이 또 좋아지겠네요?”
“……?”
나는 「착한 사람」의 수상 예정인 공모전 목록을 보여주었다.
이미 결과가 발표된 중소 규모의 대회가 있긴 하지만, ‘이 시대 문학상,’과 3대 공모전은 사전 고지만 받은 상태.
“…이게 정말인가요? 작품에 대한 확신이 있으셨군요. 그런데 ‘이 시대의 문학상’이라니… 상상도 못했어요. 이러면 확실히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녀는 벌써부터 머릿속에서 바쁘게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직 더 남았나요? 이럴 줄 알았으면 심신 안정제라도 챙겨먹는건데…”
“이미 들으셨겠지만, Hyde는 익명으로 남고 싶습니다. 다만, 언젠가는 Hyde와 c.k. 작가가 동일 인물임을 밝히는 날이 올거에요. 그 파급력의 미래 가치까지 산정하면 좋겠습니다.”
“……!”
치프 에디터의 눈동자가 격심히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내게 건네준 계약 조건을 다시 가져가더니, 작대기를 긋고 그 위에 새로운 조건을 덮어썼다.
– S급 작가
[계약금 $200,000] [선인세 $200,000] [기본 인세 20%] [판매 부수에 따라 정산 비율 상향]“현재 제가 제시할 수 있는 최대치입니다. 이런 제안을 하고도 손익분기점을 못 넘기면 치프 에디터로써 안목을 의심받고, 아마 높은 확률로 밀려날 거에요. 절, 책임지실 수 있겠어요?”
‘이래도 괜찮은 건가? 이 정도까진 바라지 않았는데…?’
나는 표정 관리를 하는데 꽤 애먹었다. 지금 그녀가 내건 조건은 고스트 에이전트가 가능하다고 말한 범위를 한참 넘어섰다.
물론 속내를 감추고 말은 당당하게 했다.
“자기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지는 거죠. 제가 묻고 싶은 건 그 정도의 리스크를 짊어질 믿음이 있나, 그리고 믿음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입니다.”
“아, 제가 또 무례를 범했군요. 네, 자신 있습니다. 믿어주신다면 그 어떤 출판사보다 훨씬 우월한 케어를 해드릴 수 있어요. 한 번 경험하면 너무 눈이 높아져서, 다른 출판사와는 절대 일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서로의 의지를 확인하곤, 악수를 나누었다.
며칠 후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했고, 「착한 사람」의 출간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
‘시간 참 빠르다.’
어느덧 2학년 1학기가 끝나간다. 내가 로한으로 빙의하고 5개월이 다 되어간다는 뜻.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고교 미식축구 리그는 이미 폐막했고, 농구 시즌이 곧 시작된다.
내가 현재 듣고 있는 AP 수업 3과목은 기말고사까지 다 치렀고, 최종 학점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다행히 전부 A를 받을 수 있었어.’
이제 며칠 후면 2주간의 겨울 방학이 시작되어, 크리스마스 시즌에 접어든다.
‘올해는 가족과 함께 보내려나?’
전생의 모든 휴일을 혼자서 쓸쓸하게 보냈던 나는, 내심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새 집으로 이사도 가기 때문에 여러모로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았는데…
사람 일이 다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온몸이 바위처럼 딴딴하고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남자.
그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반갑게 웃었다.
“…오랜만이야, 로한.”
차머스 크롬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