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7
47
똑똑 –
묵직한 노크 소리.
‘뭐지?’
거의 돌덩이로 내려찍는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주목하게 되었다.
그 사이 엄마가 현관문을 열었고, 바로 목소리가 높아지셨다.
“여기가 어디라고 둘이 찾아와?”
슬쩍 다가가보니, 다리우스… 그리고 아버지가 한때 언급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던 차머스였다.
엄마가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다리우스는 그냥 코웃음을 치고, 차머스는 넉살 좋게 웃어넘겼다.
“다이애나 이런 곳에서 살고 있었어? 말 좀 하지… 그럼 내가 먹을 거라도 좀 보내줬을 텐데.”
“…경찰 부르기 전에 가.”
엄마가 실제로 핸드폰을 꺼내들자, 차머스가 여유롭게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잠깐, 잠깐. 내가 좋은 소식이 있어서 찾아온 거야. 용건을 듣고 쫓아내도 늦지 않잖아?”
“놔, 안 놔?”
엄마도 육상 선수 출신이라 힘이 센 편인데, 차머스는 한 손으로 엄마의 두 손을 완벽하게 장악한 듯보였다.
‘이 집안은 도저히 정이 안 가.’
겉만 번지르르한 콩가루 집안.
내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갔지만, 한발 늦어버렸다.
“지금 무슨 짓인가?”
나보다 더 멀리에 있던 아버지가 어느새 둘 사이를 막아섰다.
차머스나 다리우스보다 최소 20cm가량 작은 아버지. 체격도 비정상적으로 큰 놈들 사이라 더욱 왜소해 보이셨다.
“당장 그 손 안 떼나?”
그런데 아버지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당당하고 둘에게서 엄마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지키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쯤 돼서 물러나겠지만, 차머스의 눈엔 노기가 서렸다.
“지금 우리 집안사람끼리 이야기하는 거 안 보여?”
상대의 살기등등한 기세에도 아버지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게 미쳤나!”
그리곤 볼펜을 꺼내 차머스의 손을 찍어버리려고 하자, 차머스가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얼굴로 물러났다.
드디어 단단한 올가미가 풀려나며 엄마의 두 손이 자유로워졌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말로도 기세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이게 위험한 흑인 동네에 한국 남자가 살아남는 방법일까?
“아, 참 평화롭게 이야기하러 왔는데 슬슬 열받게 하네.”
차머스의 미소는 커졌지만, 그만큼 눈빛도 위험해졌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나섰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지, 그래.”
“오랜만이야, 로한.”
‘로한’의 기운을 빌릴 필요도 없었다.
“…못 본 사이 많이 컸어. 이 삼촌을 똑바로 쳐다볼 줄도 알고.”
“너도 그동안 많이 늙었네. 이래서 위협이 될만한 선수는 다 피하고,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상대만 받아서 50승 채운 거야?”
“……”
“추하긴 하지만, 그게 노장의 방식이겠지?”
다리우스는 경악한 눈빛으로 나를 봤고,
엄마마저 나를 뒤로 잡아당겼으며,
아버지는 또 묘하게 부추기는 상황이었다.
“오랜만에 정신교육 좀 할까?”
차머스는 나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는데, 내가 그의 팔목을 잡았다.
“어쭈? 이제 좀 잘 나간다 이거야?”
그는 그게 멋이라고 생각하는지 굳이 한 손만 쓰며 힘으로 날 억누르려고 했다.
“……!”
그래서 나도 한 손으로 버텼다.
처음에는 가소롭다는 얼굴로 웃던 차머스의 얼굴이 급격히 구겨졌다. 예상외의 힘에 살짝 놀란 눈치. 사실 내가 더 놀라긴 했다.
‘힘이 점점 세지고 있나?’
“여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 때 우리의 대치를 깨뜨린 건 순찰 나온 경찰관 둘.
나의 요청대로 리아가 발빠르게 신고한 덕분에 사태가 너무 커지지 않았다.
“아뇨, 가족끼리 대화를 좀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차머스는 바로 웃으며 한 발자국 멀어졌지만, 사실 나는 미리 그의 옷매무새를 봐두었다.
“가족이긴 하죠. 근데 경찰관분들도 먼 사촌 중의 한 명쯤은 마약사범이 있지 않아요? 이 자식이 허리에 차고 있는 총으로 슬쩍 위협하면서 마약을 사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오클랜드 경찰청장이 강력하게 마약 단속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기 때문에 떠올린 대응이었따.
실제로 경찰관들의 눈이 달라졌다.
“너 뒤지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니가 마약을 언급해? 당신들 나 몰라? 누가 봐도 구라까고 있잖아. 내가 뭐가 아쉬워서…”
내가 조미료를 살짝(?) 가미하기는 했지만, 차머스는 마약 소지와 투약으로 여러 번 경찰에 끌려간 전과가 있다. 어째서인지 벌금만 물고 나오긴했지만.
그리고 이 정신나간 놈이 총을 소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 경찰관들이 황급히 총을 빼들어 차머스에게 겨누었다.
“일단 서에 가서 이야기하시죠. 모시고 가겠습니다. 천천히, 손이 보이게끔 총기를 내려놓으세요.”
“……”
차머스는 우리 앞에서 수갑까지 채워진 채 그 작은 경찰차에 실려 갔다.
마지막 순간까지 살벌한 눈빛을 뿌리며 천천히 멀어졌다.
*
엄마는 그날 밤늦게 돌아왔다. 굉장히 전투적인 기세로 나가셨지만, 지금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미안해.”
“…엄마가 왜요.”
엄마는 이번 사태를 따지기 위해서 할아버지를 찾아가셨다.
할아버지와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을 텐데, 아쉬운 소리를 하러 먼저 찾아가시는 게 마음에 안들었다.
이게 다 나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내면의 화가 커지기만 했다.
“이제 차머스가 우리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복싱 대결은 알아서들 하라시더라. 역시 아버지는 변함이 없어.”
아이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다, 라며 사실은 크롬웰의 이름을 걸고 이렇게 큰 이벤트가 열리는 걸 기꺼워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어쨌든 사람들에게 꾸준히 언급되어야 가치가 높아지는 스포츠계. 똑같은 실력이면 자주 노출되는 선수가 몸값이 높아진다는 거지 같은 논리였다.
‘우리가 궁지에 몰릴수록, 할아버지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있겠지.’
이 빌어먹을 집안에서 할아버지에게 반기를 든 건 엄마, 그리고 나밖에 없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받는 엄마는 본보기지만, 고교 미식축구 리그에서 승승장구하는 나는 기꺼우면서도 목에 걸린 가시가 아닐까?
“……”
나는 밤새 생각과 감정을 정리했다. 할아버지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려고 했는데, 우리가 이젠 웬수지간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들었다.
[@Rohan_gansta: 날짜 잡자.]다리우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에게도 계획이 있었다.
*
다리우스 측과 지지부진한 협상 끝에 복싱 경기 날짜와 조건이 정해졌다.
대략 3주 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복싱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의외인 점은 단순히 복싱 체육관을 빌리는 게 아니라, 훨씬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을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온라인 상으로 보면 정말 많은 유저가 관심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오프라인으로 참석할 정도일까?’
어쨌든 모든 비용을 다리우스 측에서 부담한다고 했으니… 알아서 하라고 했다.
대신 나는 3주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복싱을 배우는데 집중했다.
원한다면 일정을 더 늦게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 어차피 다리우스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차라리 이번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깔끔하게 2학기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일단 복싱 체육관부터 찾자.’
다리우스는 집 안에 복싱장이 세워져 있었고, 차머스라는 전설적인 복서가 코치를 맡는다고했다.
할아버지가 세팅해준다는 트레이닝팀은 거절했다.
집을 얻는데 모아 놓은 돈 대부분이 들어갔지만, 앞으로 들어올 돈을 생각하면 직접 고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력 있는 팀들은 일정이 바빴고, 차머스의 영향인지 꺼리는 캠프도 꽤 있었다.
순순히 내 조건을 받아들인 팀들은 어쩐지 이번 기회를 홍보의 수단이나 대외적인 부분에만 관심이 있던 것 같기도 하고.
‘인맥의 중요성인가.’
그래도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나도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일단 매일매일 복싱 체육관 3~4군데를 둘러보았다.
“처음 오셨죠? 일단 하루만 함께 트레이닝 하시겠어요?”
“네, 그러려고요.”
시설을 확인하고, 코치들을 파악했다.
단체 수업도 들었고, 개인 수업도 신청했다.
나름대로 복싱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직접 체육관들을 둘러보면서 그나마 필요한 기구가 다 갖춰져 있는 시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자, 간단하게 원투부터 가르쳐드릴게요. 미트 한 번 쳐보실래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코치진의 실력. 나는 미리 코치진의 경력을 찾아보는 것은 물론, 직접 트레이닝을 받으며 그들의 안목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말만 번드르르하게 하는 사람이 많군.’
아예 마음에 드는 코치가 없었던 건 아닌데, 아무래도 매일매일 나와서 초보들을 봐주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싸했다.’
‘여기는 평점이 안 좋아도 좀 기대를 했는데… 역시 꽝인가.’
오클랜드의 유명한 복싱 체육관은 대부분 들러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와서 미리 봐둔 곳들을 돌았다.
‘여긴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중에서 시설은 좀 낡았어도, 복싱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선수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찾았다.
딱 들어서자마자 살갗을 에는 듯한 날카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모두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고, 코치진들은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곳은 보통 평타 이상은 해주기 마련.
“오, 처음 보는 손님? 복싱 배우려고?”
실제로 내가 들어오자마자 링 위에 있던 30대 초반의 남성이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네.”
“어유, 힘 좀 쓰게 생겼어. 키가 한 6ft 2in(=190cm)?”
“맞아요. 최근에 조금 더 커서…”
“역시 한창 성장기로군. 몸이 딴딴한 걸 보니, 운동 좀 하게 생겼는걸?”
그는 웃는 상에 굉장히 사교적인 스타일로 보였다.
그런데 일부러 내 신경을 긁어보는 듯했다.
“네, 미식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아아… 화려하고 인기도 많은 로열 스포츠를 하셨구만. 근데, 복싱에선 별 쓸모가 없어. 수많은 미식축구 선수들이 우리들 훈련 하루 해보고 탈진해서 안 돌아오더라고.”
“그렇군요.”
“안 믿어? 흐흐, 처음이면 그럴 수 있지.”
그는 내가 복싱이 처음이라는 말을 듣고 날 링 위에 초대했다.
보조 코치가 나에게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착용시켜주었다.
“난 조지다. 코치 중 한 명이지. 주먹은 좀 쓰나?”
“음, 휘둘러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었어. 하루가 멀다하고패싸움 할 것 같은데?”
“……”
로한의 얼굴이라면 그렇게 착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화도 안 났다.
“미식축구도 하고, 또래에 비해 체격이 좋으니 주먹에도 자신 있을 거야. 복싱의 시작은 바로 그게 다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는 것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선입견은 물론 악습관을 다 지우고 새롭게 시작해야 해.”
조지는 보호장비를 두르고 자신의 배를 가리켰다.
“안 믿겨? 지금까지 니 주먹 한 방이면 또래 애들이 다 골로 갔겠지? 근데 그건 다 아마추어라서 그래. 나처럼 조금만 단련해도, 니 주먹 따윈 솜방망이나 다름없어. 어디 한 번 힘껏 때려봐.”
“진짜요? 아프실 것 같은데.”
“에헤이. 나 이래 봬도 대학 시절 주 대회 챔피언 출신이야. 맷집은 관장님도 인정해줬다고.”
“음… 그래도…”
“보호장비까지 둘렀잖아. 원래도 별 타격이 안 들어오겠지만,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줬으니 시~원하게 쳐봐.”
나도 남잔가? 조지 코치의 말을 들으니까 오기가 생겨서 한 번 때려보고 싶었다.
“그럼 진짜 쳐볼까요?”
“그래그래. 얼른 해봐.”
나는 자세를 잡고 ‘배운’대로 스트레이트를 정확하게 꽂았다.
팡 !
순간 체육관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나름 쓸만한 주먹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조지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
그는 여전히 사람 좋게 웃으면서 나를 칭찬했다
“…우와. 대단하십니다. 나름대로 자신 있는 펀치였는데… 그럼 제대로 한 번 더 쳐볼까요?”
“아? 잠깐만.”
조지는 계속 미소를 띄면서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더니, 갑자기 보호장비를 한 겹 더 두르고 돌아왔다.
“자, 자. 내 말이 맞았지? 좀 치긴 하는데, 아무렇지 않잖아. 솜방망이야 솜방망이.”
“…그럼 이번에는 제대로 콤보를 넣어볼까요?”
“에헤이. 복싱은 펀치보다 중요한 게 바로 풋워크야. 배워본 적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