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8
48
오픈 60주년을 자랑하는 전통 복싱 체육관 [아이언복싱].
– 조지가 신입을 데리고 저렇게 오랫동안 1:1 봐준 적이 있나?
– 코치님이 진심으로 저렇게 즐거워하는 것도 꽤 오랜만 아냐?
– 넌 안 그러겠어? 어디서 저런 애가 찾아왔어?
체육관이 술렁이고 있었다.
훈련 시간에는 훈련만. 분위기가 엄격한 곳이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이 링 위를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복싱, 재밌네요.”
“그치! 재밌지?? 내일도 같은 시간?”
“음, 스케쥴 봐서요.”
“돈이 문제야? 한동안 그냥 봐줄게. 습관이 잡힐때까진 잘해주고, 중독돼서 안 나오고 못 배길 때쯤 점점 돈을 많이 받는 그런 구조거든.”
“어째 동네 애들 마약 쥐어주는 거랑 비슷한 원리네요.”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이지. 그래서 경찰들이 그렇게 발악해도 결국 뿌리를 뽑지 못하잖아.”
“아하. 어쩐지 생각보다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럼 저도 시간 될 때마다 올게요.”
학생이 바로 나가려고 하자, 그의 뒷모습에 대고 조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번호는?”
“여기 위치를 제가 아는데, 뭐 하러요. 내일 봬요.”
“꼭 와야 한다!”
지금까지 나름 쿨한 코치 코스프레를 하던 조지도, 혹시나 학생이 돌아오지 않을까봐 초조해하는 기색이었다.
학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야 조지는 돌아왔다.
더 이상 사람 좋은 미소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생각에 빠진 듯 조용히 체육관을 걸었다.
“키스, 관장실로.”
조지는 갑자기 선수 중 한 명을 호출하고, 체육관이 한 눈에 보이는 이층의 관장실에 올라갔다.
곧이어 심드렁한 얼굴의 젊은 청년이 들어왔다.
“네, 부르셨어요?”
“봤어?”
“로한요?”
“뭐야? 아는 사이였어?”
키스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고등학생이에요.”
“음, 심지어 고등학생이란 말이지…”
조지의 눈에 탐욕이 스쳤다.
“저 정도 운동신경이면 미식축구 같은 하위 스포츠도 웬만큼 하겠어. 샌프란이면… 퍼시픽 하이츠 소속인가?”
“아뇨, 오클랜드. 그리고 미식축구가 탑티어 스포츠지, 어디가서 하위라고 하면 맞아 죽어요.”
“어쨌든. 일단 복싱의 맛에 한 번 빠져들면 다신 미식축구 하고 싶지 않을걸?”
“그런가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키스는 관장실 쇼파에 기대 눈을 감았다.
“……”
조지는 그런 키스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어쩌다 악마의 재능을 저렇게 게으른 키스에게 주셔가지고.”
“다 뜻이 있지 않을까요? 괜히 노력해도 안 되는 애들이 저 보면서 일찌감치 길을 찾잖아요.”
“차라리 말이라도 못했으면… 밉지라도 않지.”
보통 딜교를 하면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사이인데, 오늘은 조지가 회심의 수가 있었다.
“그래서 로한? 그 아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냐. 너보다 최소 2살은 어릴텐데.”
“정확하게 3살 차이죠. 아직 쟤 10학년(고1)이에요.”
“…당연히 시니언 줄 알았는데, 16살 정도밖에 안 됐다고?”
“우리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선수죠.”
“너처럼 남 일에 관심 없는 애가 알 정도면 꽤 잘한다는 거잖아.”
“고교 리그 1위. 이번에 시즌 MVP로 상을 받았어요. 수비팀, 공격팀 부문 둘 다.”
“…아무리 고교 레벨이라지만 그게 가능해?”
까면 깔수록 양파 같은 존재. 그러니까 더 갖고 싶어졌다.
“복싱계로 끌어들이기 더 까다롭겠는데. 미식축구는 무식하게 서로 부딪히기만 하면서 괜히 브랜딩만 잘해서 여자들한테도 인기가 많잖아… 저 나이에 정신을 못 차리겠어.”
조시의 고민이 많아졌다.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겠어. 아무래도 승부욕이 있는 것 같으니까 스파링 위주로 연습해야 재미를 붙이겠지?’
자신이 딱 붙어서 누굴 집중적으로 키우는 경우는 무척 드물지만, 로한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인재였다.
‘완벽한 체형에서 오는 균형 감각, 무게 중심이 경이로울 정도야. 눈도 좋고 발도 빨라. 맷집은 시험해보지 않았지만, 말도 안 되는 펀치력이 가장 큰 장점.’
겨우 두 대 정도 맞은 배가 아직도 저릿저릿했다.
정신이 번쩍 들게하는 하드펀쳐. 노력해도 키우기 어려운, 타고난 피지컬이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 맞자마자 욕심이 났다.
“하아아암.”
“……”
하지만 당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래서… 미식축구 유망주의 첫 복싱 훈련을 지켜본 소감이 어때?”
“좀 하던데요? 미식축구 선수들을 괜히 피지컬 괴물이라고 부르는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타고난 신체적인 조건이나 재능만큼은 널 뛰어넘을지도 몰라.”
“그런가요?”
질투를 유발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없어보였다.
‘실패인가?’
키스는 중학교 시절, 처음 체육관에 발을 디딘 그 순간부터 10년에 한 번 태어날까말까한 최고의 복싱 천재로 추앙받은 유망주 중 유망주였다.
또래의 나이에선 적수를 찾기 어려운 수준.
현재 올림픽 국가대표를 준비하고 있고,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였지만… 과연 복싱협회 관계자들은 알까?
‘평생 훈련을 하루에 한 시간도 잘 안 했다는 걸?’
말 그대로 악마의 재능이었다. 보통 선수만큼이라도 훈련한다면, 그의 이름은 복싱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차라리 키스를 만난 적이 없었다면 모를까, 일단 자신의 체육관과 인연이 닿은 이상… 조지는 그걸 자신의 숙명으로 삼았다.
‘차라리 그 날 다른 체육관을 찾아갈 것이지…’
문제는 우리의 나태한 천재님께서는 자신의 숙명을, 아니 키스 본인 자체의 잠재력을 꽃피우는데 전혀 협조할 생각이 없었다.
“너도 앞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 로한이 올 때 같이 훈련하자.”
“네에에? 그럴 힘이 없는데요…”
“대신 원래 스케쥴을 빼줄게.”
“오, 진짜요?? 안 그래도 요즘 빡세서 시간 줄여달라고 조르려 한 타이밍에… 완전 땡큐죠.”
프로 선수 훈련량 1시간 vs 쌩 초보 기초 훈련량 1시간.
키스는 무슨 로또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표정이 밝아졌다.
‘자극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
키스를 가르치는 기존의 방식은 이미 실패했다. 억지로 1시간을 붙잡고 있지만, 그 이외에는 완전히 퍼져서 핸드폰 게임이나 한다.
당분간이라도 뛰어난 후배를 보면 느끼는 바가 있지 않을까? 아주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 미식축구 천재는 나이도 어리고, 성실한 성격에 인성도 좋아보이던데… 넌 왜 그 모든 게 결여된 건지…”
“네에? 인성??”
자신의 말에 키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핸드폰을 꺼냈다.
평소 그 어떤 도발에도 반응하지 않는 그였지만, 차마 로한보다 인성이 못하다는 말은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눈치였다.
화면 속 영상은 로한의 ‘망나니 세레모니’ 모음.
조지의 눈동자가 격심하게 흔들렸다.
“이, 이게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함께 훈련하면 사람의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무려 1시간 동안 트레이닝한 로한은 전형적인 모범생. 키스가 10분의 1만 닮아도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기분일텐데…
[크아아아아!]조지는 화면 속에서 포효하는 로한이 너무 낯설었다.
“차라리 제가 더 낫죠?”
“……”
으스대는 키스의 모습이 꼴불견이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
이번 복싱 경기의 협상 주도권은 내가 쥐고 있었다.
‘다리우스가 나와의 복싱 경기에 목을 매는 이유를 모를 수가 없지.’
다리우스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가문의 관리를 받으며 스포츠 셀렙으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팔로워도 많고, 전국구 쿼터백으로 성장하며 NFL에 입성하기도 전부터 어지간한 프로 선수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오클랜드 vs 퍼시픽 하이츠]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 됐다.
인기가 많았던 만큼 시샘하는 사람도 많았고, 경기에서 진 것도 모자라 능욕당하는 모습이 박제된 것은 꺼지지 않는 조롱거리였다.
– 다리우스 거품이라니까. 고교 수준에서도 저렇게 처참하게 당하는데, 대학 온다? 벽 느낄걸?
– 야 크롬웰 무시함? 어려서부터 과학적인 트레이닝으로 차근차근 성장하고 있다고.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단단해질 거야.
여전히 그의 팬층은 두텁지만, ‘로한’ 사태로 심각한 금이 갔다.
이대로 내버려 두기엔 그동안의 노력과 손실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는 이번 복싱 경기를 통해 모든 잡음을 없애고, 다시 자신의 언터쳐블 이미지를 재구축하려는 심산.
‘우리가 한동안 미식축구로는 붙을 일이 없으니, 똥줄 타겠지.’
그래서 나는 복싱 경기를 승낙하는데 앞서 일방적인 조건을 몇 가지 걸었다.
– 일단 라이트 헤비급으로(175lbs=80kg까지) 가지?
솔직히 지금 당장 붙어도 나는 자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차머스와 다리우스만 좋은 일. 나는 최대한 그들을 괴롭히고 싶었다.
‘로한’의 기운을 빌리니 말은 술술 나왔다.
– 무슨 말도 안 되는! 무조건 헤비급 붙어야지. 지금 몸무게가 135kg이나 되는 아이가 단기간에 그 정도로 뺄 수도 없고, 내년에 대학 미식축구를 시작하는 아이가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도 없다.
체중 감량은 생각도 안해봤는지 차머스가 불같이 화를 냈지만, 나는 조금도 굽힐 생각이 없었다.
– 그건 시즌 공식 몸무게 아니야? 지금은 좀 덜 나가는 것 같은데? 대충 125kg 맞지?
– ……
– 차머스 당신 옛날 기록 찾아보니까 수분 커팅으로 10kg은 우습게 빼더만. 왜 이렇게 엄살이야.
정곡을 찔렀는지 시종일관 떠들던 차머스의 입이 꾹 닫혔다.
– 하기 싫으면 말아. 나도 필요 없어. 근데 너무 양심 없는 거 아니야? 내가 80kg인데 그 체중으로 나오려고??
– 그건 아니지만… 라이트 헤비급은 절대 안돼.
어쨌든 차머스가 아주 조금은 고분고분해지자 협상은 순조로웠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합의를 본 체급은 한 단계 위.
[경기 체급: 이벤트 스페셜 웨이트(232bs=105kg까지)]내가 생색내며 양보해준 대신 경기 정산 비율이나 기타 다른 것들을 내가 더 유리하게 가져갔다.
‘조금 더 괴롭혀주고 싶지만, 이 정도가 한계겠지.’
항상 미식축구를 위해 살을 적절하게 찌우려다가, 반대로 감량하려면 죽을 맛일 거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일단 체중계에 올라갔다.
‘84kg.’
확실히 몸이 많이 좋아졌다.
로한에 처음 빙의했을 때가 65kg 정도. 그동안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밥을 5~6인분씩 챙겨 먹었고, 무엇보다 미식축구 리그를 뛴 영향이 컸다.
10주간 체계적인 훈련과 실전으로 다져진 몸은 최상의 균형을 찾으며 이보다 좋아지기가 힘들었다.
‘단기간에 증량하면 몸이 둔해지기만 할 텐데.’
투기 종목에서 체급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나도 가능한 선에선 증량할 필요성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이전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이 먹을 수 있도록 음식량을 늘려주셨다.
내가 열심히 음식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시다가도 걱정하셨다.
“꼭 경기를 치러야겠니?”
“남자들이 원래 유치한 거 아시잖아요. 안 그래도 한 번쯤 쥐어패고 싶었어요.”
“…그래도.”
‘로한’과 다리우스의 과거를 아는 부모님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무자비한 태클로 이어지는 심폐소생킥 짤을 보여드렸다.
엄마는 여전히 복싱처럼 과격한 스포츠는 피하기를 바라셨지만, 아버지가 의견을 보태주었다.
“어린 시절 당한 폭력은 평생 트라우마로 남는다. 아빠도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게, 네가 괴롭힘당하는 걸 일찍 눈치채지 못한 것이야.”
아마 로한의 성격이 뒤틀리게 된 건 분명 비정상적인 외가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쳐보는 건 앞으로 중요한 경험이 될 거야.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우리가 항상 곁에서 서포트해주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렴.”
하필 차머스가 깔아놓은 무대에 오른다는 걸 반대하셨지만, 내 의지가 확고해 어쩔 수 없이 승낙한 이후에는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증량 훈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하고.
‘사람의 인체가 정말 신비하구나.’
나는 노력에 따라 육체가 변하는걸 실시간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먹는 것도 힘들고, 운동하는 것도 힘들기만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통스럽지 않으면 운동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한계를 시험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기분이었다.
특히 [아이언복싱]에서 조지 코치와의 훈련이 많은 도움이 됐다.
“복싱에선 체력이 가장 중요해. 프로들도 11라운드 12라운드 가면 움직임이 평범한 사람처럼 느려져. 그땐 기술력이나 체급이 아니라 말 그대로 누가 더 체력이 좋은지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거지.”
알고보니 조지 코치는 웃으면서 사람이 거의 못 걸어다닐 때까지 굴리고 또 굴리는 사디스트로 유명했다.
“오, 미식축구를 한다더니 체력이 좀 쓸만한데? 좀 더 훈련 강도를 높여볼까?”
“음… 생각보다 잘 따라오는군. 그럼 과연 프로의 훈련 일정도 버텨낼 수 있을까?”
“좋아, 좋아! 다들 로한을 본 받으라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잖아! 크하하하, 내가 평생 너 같은 독종을 기다려 왔다고!!”
하지만 조지 코치의 광기 어린 훈련은 2주가 채 가지 못했다.
“저… 로한. 사람이 쫌 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 몸이 회복할 시간을 줘야지.”
어느 순간부턴가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오히려 나를 말리고 있었다.
물론, 멈출 생각도… 강도를 낮출 생각도 전혀 없었다.
부족했다.
근육이 갈라지고, 회복하고. 고통스러울수록 너무 즐거웠다. 왜 로한은 마약에 빠진 걸까? 육체의 단련이 주는 쾌락만으로도 충분한데.
‘나… 미쳐가고 있는 건가?’
얼마나 몰입했는지, 누가 곁에서 나를 곁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