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49
49
훈련에 집중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심상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항상 그런 건 아니다.
고도의 몰입력, 그리고 일종의 ‘깨달음’이 필수였다.
예를 들어 지금은 풋워크를 연습하고 있다.
가장 먼저는 사방(四方: Four sides)을 점하는데 익숙해지기 위해 훈련했다.
전진 스텝으로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히고, 후진 스텝으로 거리를 벌린다.
거기에 좌측과 우측으로의 횡이동에 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바로 포 사이드 스텝(Four side steps).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사방을 더한다.
그러니까 팔방(八方: Eight sides).
사방의 대각선 방향까지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 했다.
“음.”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이게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다.
잘하다가도 금방 스텝이 꼬이고, 펀치나 위빙과 같은 움직임을 곁들이면 몸의 균형이 바뀌면서 아예 다른 스텝을 밟는 느낌이다.
‘몸 건강한 사람도 자신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구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제보니 사람은 자기가 익숙한, 그러니까 수천 수만 번 움직인 방식이 자연스러운거지 그걸 갑자기 바꾸려면 쉽지가 않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복싱은 그 습관을 깨고 새로운 틀에 만들어야 했다.
‘조지 코치가 훈련의 악귀가 될 수밖에 없겠어.’
복싱 링 위에서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선 훈련밖에 없다.
모든 방향으로 스텝을 밟아봐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내가 공격을 할 때와 수비를 할 때를 달리해야 한다.
공격 방식과 수비 방식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상대의 신장과 복싱 스타일에 따라 또 변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 건 어렵다.
‘그나마 내 몸에 맞는, 가장 변화무쌍해서 다양한 대처를 할 수 있는 스텝을 찾아야한다.’
어떻게 보면 첫 걸음마나 다름없는 풋워크. 나만의 풋워크를 찾아가는 과정이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재밌었다.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그것을 뛰어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에 휩싸였다.
체육관에 와서는 직접 뛰었고, 일상에서도 공부하다 말고 영감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직접 연습해봤다.
– …너 괜찮아? 원래도 이상했는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는 거 아니야?
리아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수준이었다.
어쨌든 오늘도 체육관에서 몸을 데운 후 풋워크 훈련들을 반복적으로 하다가… 갑자기 심상 세계가 열렸다.
현실에서의 나는 차례대로 사방 팔방을 밟고, 섀도우 복싱을 하듯 상대의 공격에 따라 훈련 매뉴얼에 따른 대응을 했다.
심상세계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모든 감각이 극대화 되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고, 링 위에서 내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차라리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 스스로 체득하는 것이 가능했다.
‘뭔가 머신러닝 같아서 무서운데.’
수많은 정보가 입력되며 스스로 더 나은 방법을 찾는다.
심상 세계에선 그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됐다.’
그리고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팔방을 점할 수 있게 되었다. 세레모니 삼아 순식간에 풋워크를 펼쳤다.
각자의 방향대로 따로는 밟아본 스텝이지만, 깨달음을 얻고 나선 각 방향으로 이어지는 리듬감이 생겼다. 박자를 타는 느낌.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게 바로 운동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내가 몸을 끝없이 단련해 내가 생각한 대로, 아니 생각한 이상의 결과를 낼 때의 희열은 중독적이었다.
전생에 이런 쾌락을 놓치고 살았다니.
나는 계속해서 풋워크를 밟았다. 밟고 또 밟았다. 점점 속도는 빨라지고, 더욱 깊이까지 침투할 수 있었으며, 무릎이 꺾이지 않는 한계선에서 방향을 틀 수 있었다.
몸의 움직임과 생각의 반응 속도가 조금씩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 더… 조금 더!
새로운 스킬을 끝없이 연마하고 있는데, 갑자기 심상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저기…”
정신을 차려보니 나를 부른 건 키스였다.
항상 권태롭다는 얼굴로 건성건성 훈련에 임하는 선수.
뭔가 제대로 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체육관 모두의 존중을 받았다.
특히 조지 코치가 가장 아끼는 선수라는 건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눈빛부터가 묘한 열기에 일렁거렸다.
“우리 스파링 한 번 할까?”
“……?”
*
– 키스가 먼저 스파링을 하자고?? 쟤가 애초에 뭔갈 먼저 시도한 적이 있나?
– 항상 조지가 닦달해야 간신히 움직이잖아. 역시 키스도 저 아이를 보면서 자극을 받은 거야.
– 솔직히 쟤가 들어오면서 체육관 분위기가 더 좋아졌어. 옆에서 훈련하는 거보면 나도 심장이 뛰는데…
– 왜 미식축구에선 망나니라는 별명이 생겼는지 모르겠네. 너무 성실하고 인성도 바른 학생이…
체육관이 술렁거렸다.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다가와서 스파링 준비를 도왔다.
나머지는 은근슬쩍 링 주위를 모여들었다.
“너희, 뭐하는 거야!”
관장실에 있던 조지 코치가 헐레벌떡 내려왔다.
“스파링 한 번 해보려고요. 저랑만 안했잖아요.”
“니가 먼저 제안했어?”
“네. 저도 엄연히 체육관 선수인데, 우리 뉴비를 위해 도와줄 수 있죠.”
“…그러냐.”
조지 코치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이내 링 위로 올라왔다.
“시한폭탄 같은 두 명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내가 심판을 볼 테니 칼 같이 지시 따라. 알겠어?”
“넵.”
이미 몸을 풀어둔지라, 둘의 스파링은 신속하게 준비됐다.
“둘 다 헤드기어는 빼.”
“진짜요?”
“실전처럼 간다. 그리고 너희 둘… 눈빛 보니까 끼면 더 다쳐.”
둘은 오히려 잘 됐다는 얼굴로 헤드기어를 내팽겨쳤다.
“너희… 서로 악감정은 없잖아? 맞지?”
너무 호전적인 태도에 조지 코치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럴 리가요.”
“같은 체육관인데, 호감이 있으면 호감이 있죠, 악감정은 무슨.”
“……”
누가 봐도 인위적인 대답. 하지만 조지 코치는 피식 한 번 웃고는 스파링의 간단한 룰을 고지했다.
“1분씩 3라운드만. 대신 실전처럼. 룰도 똑같다.”
“네에? 너무 짧은데…”
“시끄럽다.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원한다면 매일 붙여줄 테니까 이 정도만 해.”
조지 코치는 서로 살살하라는 의미에서 시간을 짧게 주었지만, 정반대의 효과만 불러일으켰다.
휙- 휙 – 팡!
스파링용 휘슬을 불자마자 키스와 로한은 착 달라붙어 잽을 교환했다.
견제 따위는 없었다.
마지막 라운드인 것처럼 빠른 풋워크와 주저 없는 잽을 던졌다.
‘얼마나 하는지 볼까?’
키스는 로한을 절대 초보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겨우 2주 넘게 체육관에 나온 것치곤, 체육관의 어지간한 선수보다 기본기에 충실하다.
‘미식축구에서도 풋워크가 중요한 건 알지만, 애초에 로한은 그게 중요한 포지션이 아니잖아?’
특히 풋워크는 키스가 보기에도 실전에 먹힐 수준까지 올라왔다. 솔직히 이해가 안되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아직 5년은 멀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기본기로도 극복할 수 없는 벽이 있었으니…
파방!
키스는 로한의 자세를 딱 보자마자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정확하게 바디샷을 먹였다.
“……!”
이후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정확하게 허점을 찾아 과감하게 진입하며 빈 곳을 때린다.
바디, 턱, 가드. 가리지 않고 골고루 콤비네이션을 넣었다.
키스의 장기였다.
직감적으로 상대의 허점을 찾아내고, 정확한 타이밍에 때린다.
훈련으로는 쉽게 단련할 수 없는 천부적인 감각의 영역이었다.
팡 !
특히 공간 감각이 뛰어나서 몇 번 잽을 교환하면 상대의 공격권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아슬아슬하게 그 경계를 넘나들며 잽을 먹이고, 순식간에 빠져나온다.
그래서 로한의 주먹이 자신의 가드에 맞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걸 무한정 반복하니 상대방은 정신이 나갈 지경. 실제 로한은 점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1라운드, 2라운드. 비슷한 양상이었다.
“너, 복싱한 지 2주 된 아이를 상대로 너무 진심인 거 아니니?”
“하아… 뭐, 그래도 잘 따라오잖아요. 눈빛 봐요.”
키스의 말대로 로한은 지치기는커녕 점점 불타오르고 있다.
평소에는 의외로 순둥순둥한 맛이 있는 아인데, 훈련하다 이따금씩 동물적인 살기를 흩뿌려 주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랬다.
사실 둘이 입밖으로 꺼내지만 않았지, 로한이 이 정도까지 버텨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지막 1분이다.”
그걸 신호로 키스와 로한은 서로를 향해 달라붙었다.
‘이게 젊음인가?’
스파링인만큼 풀파워로 주먹을 날리지 않지만, 그래도 타격이 정확하게 들어가면 아프다.
점점 세기를 높여도 로한은 저돌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휙 – 휙 –
그러고 보니 점점 자신의 잽을 피하는 횟수도 늘었다. 반대로 로한의 주먹이 날카로워 키스의 발이 바빠지기도 했다.
“거기까지.”
“……”
겨우 1분씩 3라운드.
키스는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
벌써 숨이 차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평소보다 많이 움직였다는 뜻 .
[2일차 스파링]“……!”
키스는 더이상 자신의 장기가 쉽게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치고 들어가려는 타이밍을 미리 읽히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발을 떼면, 로한은 이미 대응을 하고 있다.
마지막 라운드쯤이 되자, 회피가 아닌 카운터까지 날리는 섬뜩함을 보였다.
‘설마 노린 건가?’
[3일차]팡!
이제 로한은 잽이 아니라 스트레이트나 훅도 날리기 시작했다.
키스는 대부분 회피하거나 가드했지만, 겨우 3일차 만에 이게 가능한가?
지금까지는 적절하게 봐주고 있었다면, 이젠 정식 스파링의 느낌이다.
‘공간 감각이 예리해졌어.’
로한이 자기 자신은 물론 키스의 리치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심지어 풋워크가 훌륭하니, 둘은 치열하게 공간 싸움을 펼쳐야 했다.
숨이 턱 막힌다.
[4일차]“……”
로한은 키스의 장기를 역이용하기 시작했다.
분명 감각이 허점이라 파악하고 공략에 나섰는데, 그건 셋업이었다.
자신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자세, 눈빛, 호흡까지 통제한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키스가 치고 들어오면 잽은 피하고 바디샷은 맞아주고.
아슬아슬하게 공격권에 들어선 순간을 놓치지 않고 로한이 카운터를 먹였다.
휘익 – 퍽!!
키스가 재빨리 오른손으로 가드를 해서 충격을 막은 건 오로지 뛰어난 반사 신경에 의한 무의식적인 방어였지… 의도한 건 아니었다.
“……”
스파링이 끝난 후, 키스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오른손을 오므렸다 폈다. 카운터를 방어한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코치님. 이게 하드펀쳐였나요? 지금까지 만난 상대는 다 거짓말을 한 것 같은데요.”
“윽, 말도 마라. 트라우마가 생겼는지, 쟤 주먹 휘두르는 것만 봐도 아랫배가 아프다.”
“후우… 코치님이 현명하셨습니다.”
“뜬금없이?”
“저 자극 주려고 같이 훈련 붙인 거 아니에요? 이제야 좀 재밌네요, 복싱이.”
다음날부터 키스는 스파링을 중단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뀐 것처럼, 가장 먼저 훈련을 시작하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며 점점 날카로워졌다.
‘내가 의도한 바이긴 한데…’
조지 코치는 마냥 기쁘지 않았다.
여전히 기계처럼 침착하게 훈련에 임하는 로한. 오로지 자신을 끝없이 발전시키는데만 관심이 있다.
미증유의 공포에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아버지를 한 번쯤 모실 때가 되었어.’
그는 관장실에서 키스와 로한이 훈련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
어느새 이벤트 매치 이틀 전.
계체량이 바로 내일이었다.
“음…”
복싱에 재미를 붙이며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았지만, 아직 남은 과제가 하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