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
5
교장 선생님이 준 서류를 확인해보니, 내가 받은 장학금은 도시 교육부 차원에서 저소득 가정, 그리고 낙후된 지역에 사는 가구 중에서 재능이 특출난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름 고등학생 장학금치고 파격적인 혜택이 보장되는군.’
고등학교를 다니는 4년 내내 필요한 모든 비용이 충당되고, 물가를 고려한 생활비까지 나오는 장학금은 흔치 않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고생하시는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눈에 선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고 망나니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셨을지도…
‘그래도 꾸준히 로한을 서포트해주시는 걸 보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려는 부모인가보다.’
나는 그래서 최대한 빨리 장학금 유지 조건을 회복하기로 마음먹었다.
“GED 시험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냐?”
교장 선생님은 이제야 진심으로 내가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하셨다.
“미친 게 아니라… 기억을 잃은 건데요.”
“기억 상실이라고 진단을 내린 의사가 돌팔이다. 너는 미친 게 맞다. 최하위 성적으로 입학한 것도 모자라 그 이후 공부를 한 번도 안 한 주제에 GED를 치르겠다니.”
GED 시험은 한국의 검정고시와 동격인 고등학교 자격시험이었다.
애초에 고등학교가 잘 맞지 않다거나, 사정이 안 되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시험이었으나, 운동부 출신도 가끔씩 GED를 치르곤 했다.
아무래도 운동부 선수들은 학업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보니, 멱살을 잡고 어떻게든 4학년까지 진학시킨다고 해도 졸업 기준에 미달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고교 선수들은 대부분 대학 리그를 통해 성장을 해야만 프로의 무대를 꿈꿀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든 고교 졸업장을 받아야 하지.”
미국의 대학은 천재적인 재능을 위해서 학생의 학점이나 평판 따위는 싸그리 무시할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졸업 자격도 획득하지 못한 경우 대학에 받아들일 방법이 없었다.
“보통 그런 기로에 있는 학생만을 위해 오랜 기간 과외를 붙여 GED를 준비시키는데, 네가 그걸 지금 치르겠다고? 이렇게 급히?”
교장 선생님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했다.
“물론 대입시험인 SAT나 ACT에 비교할 수준의 시험은 아니지만, 부끄럽게도 오클랜드 고등학교의 상위 10%도 통과하기 힘든 난이도다.”
“……”
과연 전국 최하위 랭킹의 학교. 감옥에 가지 않고, 스스로 자퇴만 하지 않으면 졸업을 시켜주는데도 30%만이 살아남는 곳이다보니… GED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이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학교에서도 꼴찌가 하루 아침에 GED를 치루겠다니 얼마나 가당치않겠어.’
교장 선생님이라면 그나마 싹수가 있는 학생을 수두룩하게 봤을텐데, 그게 로한이 아닌 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지난 1년동안 학교도 잘 나오지 않았던 문제아 학생을 이렇게까지 신경쓰고 있었던 사람인데, 모를 리가 있나.
“일단 내일 바로 한 번 쳐볼게요. 그리고 너무 어렵다 싶으면 착실히 운동부 활동을 해야겠죠.”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면야. 현실 자각을 하는 계기로 나쁘지 않겠지.”
교장 선생님은 그제야 나를 놓아주었다. 언제라도 내가 도망쳐서 다시는 학교에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하셨지만, 나는 씨익 웃으면서 격려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학생이 학교가 아니면 갈 곳이 어딨겠어요.”
“…그러니까 더 걱정이 되는군.”
안타깝게도 역효과만 났다.
*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GED 준비 도서들을 빌렸다. 기출 문제들이 많이 담겨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손 떼가 하나도 안 탄 새 책이었다.
“이걸 다 가져간다고?”
두꺼운 책으로 열 권 가량을 들고 나타나자 사서 선생님이 나를 의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네.”
“내다 팔려는 건 아니지?? 반납하지 않으면 벌금까지 책값의 두 배를 내야 해.”
‘…이 학교의 스케일은 참…’
나는 몇 번이고 GED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가까스로 책을 빌려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나는 방에 앉아서 한 권 한 권을 차례대로 공부를 했다. 책이 열 권이라지만 어차피 범위는 정해져 있어서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수학, 과학, 사회, 영어. 고교 수준이라서 이미 내가 숙지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았다.
특히 수학, 과학은 용어만 정리를 해도 충분했고, ‘로한’은 의외로 회화를 제외한 영어 독해와 문법에 약했지만 내가 전생에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었다.
사회(Social studies)는 한국의 교과과정을 거친 나에게 무척 생소한 과목이었다.
‘오히려 좋아.’
안 그래도 복습만 하는 것이 지겨웠는데, 모르는 내용을 배우게 되자 진짜 공부하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칸 아카데미’나 무료 유튜브 강사들을 통해 모르는 부분은 집중적으로 교육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사회 범위를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고, 나머지 시간은 기출 문제들을 풀어보는데 썼다.
‘벌써 밤을 샜나?’
젊음이 좋은 건지, 아니면 피지컬이 타고난 건지 잘 모르겠다. 근데 밤을 꼬박 새서 공부를 했는데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피곤하지도 않았다.
배가 고파서 냉장고에서 잠깐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은 것이 다였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나는 다시 공부에 열중했다.
*
“용케 도망치치 않고 제 발로 나타났군.”
교장 선생님은 또 다시 예상에 벗어난 나의 모습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우리는 컴퓨터 랩에서 만났고, 그는 갑자기 잡힌 GED 일정에 다른 선생을 불러오지 않고 직접 감독을 한다고 설명했다.
“네 사정이 딱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컨닝은 허락하지 않겠다. 핸드폰을 반납하고, 교재는 가방에 다시 넣어라.”
나는 순순히 지시를 따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온라인으로 치르는 GED 시험이 띄워져 있었다.
“준비 되면 바로 시작하도록.”
“넵!”
오랜만의 시험이라 기분이 설렜다. 시험이야말로 공부의 꽃이 아닌가. 시험의 폐해야 당연히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시험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부가 진정 재밌는 것 아닐까?
성적이 나오고 순위가 나뉜다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시작해볼까?’
나는 GED 시험의 주의사항을 꼼꼼하게 읽고 ‘시험 시작’ 버튼을 눌렀다.
GED는 총 4가지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영역마다 주어지는 제한 시간은 평균적으로 두 시간씩.
“……”
나는 집중해서 문제를 하나 하나 풀기 시작했다.
*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스스로 GED를 치룬다고 한 걸까?’
레이몬 교장은 로한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거리에 앉아서 그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것도 4 시험을 동시에 치겠다니.’
보통 GED는 한 과목씩 치룬다. 고교 수업을 하나도 듣지 않은 일반적인 학생의 경우 3개월 공부하고 1과목을 치는 일정이 지배적이었다.
아무래도 고등학교를 대체하는 시험이다보니 문제의 난이도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려운 경우였다.
‘그런데 공부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문제아가 4가지 시험을 동시에 치른다니.’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이라면 애초에 8시간 앉아서 시험을 보는 것 자체가 고문이었다.
“……”
레이몬 교장은 솔직히 로한이 몇 분 풀다가 그만 둘 거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GED 시험 부담금이 아깝기는 했지만, 로한이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남는 장사라고 여겼다.
‘공부가 만만치 않으니, 그나마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운동에 집중하게 될 수도 있겠지.’
어떤 계기를 통해서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으니, 로한이 말귀를 알아들을 거란 기대가 조금은 있었다.
그래서 레이몬 교장은 오늘 직접 GED 시험을 감독하게 되었다. 로한이 당연한 결과를 받아들고 너무 충격을 받지 않게 위로해주고, 앞으로의 갈 길을 안내해줄 생각이었다.
‘미국 최고의 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스포츠를 하지 않는다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지.’
오클랜드 고등학교의 대부분 학생은 그냥 학교에 나와주기만 해도 고마운 상황이라면, 로한은 달랐다.
그는 실제로 미래가 창창한 학생으로, 로한을 제대로 인도해주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 중 하나였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로한이 그를 불렀다.
“교장 선생님?”
“어? 벌써 두 시간이 다 되어가는군. 그래, 그럼 두 번째 과목은 바로 치르겠나? 아님 15분간 휴식을 가져도 좋다.”
“아, 그게 아니고 시험을 다 쳤습니다.”
“…시험을 다쳤다니?? 설마…”
레이몬 교장은 서둘러 로한의 화면을 확인했다.
“전 과목 전부 다 쳤습니다.”
“……”
총 8시간이 주어진 네 과목을 겨우 2시간 안에 다쳤다고?
‘설마 찍은 건가??’
체념이 빠른 것도 나쁘지 않은 성격이지만, 레이몬 교장은 왠지 모르게 실망감이 들었다. 이게 당연한 일이건만…
“…원한다면 지금 바로 성적을 확인해 줄 수 있다. 좀 부끄럽다면 내가 따로 이메일로 보낼 수도 있고.”
“아뇨, 지금 바로 확인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알겠다.”
레이몬 교장은 감독관 모드로 전환하여 채점 모듈을 돌렸다. 주관식이 따로 없는 유형이라 성적이 금세 확인되었다.
“…맙소사.”
레이몬 교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Test Scores]– Mathmatical reasoning 200/200
– Science 200/200
– Social Studies 200/200
– English 200/200
800점 만점에 800점.
GED 합격 기준인 580점을 훌쩍 뛰어넘은 것도 모자라, 전국에 1명도 잘 나오지 않는 만점을 받았다.
물론 애초에 대학 입시 시험인 SAT처럼 응시자의 수준이 뛰어나지 않아서겠지만, 어쨌든 1년에 GED를 치루는 사람이 무려 70만명인데 그중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정작 로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점수는 잘 나왔네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아니라면 장학금을 위해서 GED를 치를 수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에요.”
“……”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오클랜드 고등학교와 같은 곳에서 GED 만점자가 나오면 받을 수 있는 추가 지원금이 수두룩했다.
로한은 자기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걸 전혀 모르는지, 그대로 수업에 들어가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컨닝을 해도 이런 점수를 받을 수가 있나?’
분명 시험 보는 내내 자기가 지켜보고 있었고, 문제를 푸는데 수상한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로한은 자신의 온전한 실력으로 시험을 치렀다.
그래서 더더욱 말이 안 됐다.
레이몬 교장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서둘러 핸드폰을 꺼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랜만일세. 다름이 아니라… 자네 손주 있지? 아니, 그 아이말고 로한. 로한이가 글쎄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나?”
*
똑똑똑 –
다음날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두드렸다.
“네, 엄마. 들어오세요.”
“어떻게 나인 줄 알았니?”
“리아가 노크를 할 리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는 책을 읽다가 말고 잠깐 엄마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뭔가 어려운 말을 꺼내려고 한다는 것이 느껴져서였다.
“네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어. 얼굴을 한 번 보자고 하시더구나.”
“아, 할아버지요? 근처에 사시나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할아버지도 기억이 안 나는가 보구나. 그래, 한 50분 거리에 떨어져 사신다.”
그 정도면 꽤 가까이 사는 편인데 지금까지 리아나 엄마에게서 단 한 번도 언급이 된 적이 없는 존재였다.
‘자주 보는 사이라면 한 번쯤 이야기가 나왔을 텐데…?’
“어떻게 할래. 거절할까?”
확실한 건 엄마의 태도를 봤을 때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로한과도 별로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겠지.
“네, 갈게요. 언제 가면 될까요?”
“그게 말이지…”
놀랍게도 그날 저녁 바로였다.
나는 할아버지를 방문하고 나서야 엄마가 왜 지금까지 할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피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부자 동네에 사신다고??’
미국 피지컬 천재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