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4
54
장(Zhāng)은 새벽 일찍, 밤사이 쌓인 주방의 먼지를 꼼꼼하게 닦아내고 재료 손질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밤새 우려 놓은 육수의 맛을 보고,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반찬거리를 만들면 어느새 날이 밝아 출퇴근 풍경이 펼쳐진다.
그는 바깥의 벤치에 앉아 잠깐의 휴식을 취했다.
[레드 드래곤]낡은 간판을 보며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좀 내려놓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는 90년대에 오클랜드로 이민을 왔다.
그 당시만 해도 전체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었다.
상권이 근처의 샌프란시스코 위주로 발달한 나머지, [레드 드래곤]이 자리 잡은 오클랜드 다운타운은 인적의 거의 없는 죽음의 거리였다.
그래서 수많은 갱단이 은신처로 삼았고, 대마 피우는 냄새가 끊이지 않는, 강도나 안 당하면 다행인 위험범죄구역으로 악명을 날리던 시기.
‘그래서 내 형편에 간신히 인수할 수 있었지.’
장은 전 재산을 다 털어 고금리 빚까지 내서 무너져가던 [레드 드래곤]을 인수했다. 그것도 동포에게 속아서 시가보다 20%는 비싸게.
건물을 통째로 산 거라, 유지보수도 직접 해야 했는데… 낡은 배관부터 해서 벌레가 갉아먹는 벽까지 멀쩡한 구석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첫 6개월은 장사를 접고 직접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로도 몇 년간은 주말 내내 뭔가를 고쳐야만 하는 식이었다.
“……”
그때는 조금의 희망도 없는 지옥 같은 나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고생하면서 영혼을 갈아 넣은 [레드 드래곤]이라 그런지 가게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새 인생을 살게 해준 소중한 곳이다.’
가게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과거를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일했더니, 어느새 안 좋은 습관이나 충동이 저절로 억눌러졌다.
‘무엇보다 요리가 너무 즐거웠어.’
그전까진 딱히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음식에 장난질을 안 치고 합리적인 가격에 판다는 것만으로도 손님들이 몰리던 시기.
처음으로 떳떳하게 장사해 돈을 버니, 액수는 적어도 성취감이 대단했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 만족해하며 다시 가게를 찾는다는 점이 말로 형용하기 힘든 책임감을 주었다.
…그래서 쉽지 않았다. 이곳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다른 방법이 없겠지?’
*
“음…”
솔직히 기대도 안 했다.
장 아저씨는 가게를 팔려는 이유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했다.
[목돈이 필요하다.]“우리 이제 좀 개인사를 나눌 정도로 가까워지지 않았나요?”
“흠???”
장 아저씨는 기가 찬다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뭔가를 휘갈겨 썼다.
[우리가 그렇게 친해서 네가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와 복싱 경기 소식은 숨겼던 거구나. 또 뭐가 있었더라… 미식축구 경기 한 번 보러 오라 안 했고, 어디 가서 공부? 아니 시험을 쳤다고 했던가…?]“…리아가 참 입이 가벼운 편은 아닌데, 아저씨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따지자면 나와 리아가 친하겠군.]“……”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나는 장 아저씨의 필체만 보고도 느낌이 왔다.
‘살짝 삐지신 것 같은데?’
최소, 섭섭해 보이셔서 나는 한동안 기분을 풀어드려야 했다.
“리아가 당연히 제 허락을 맡고 알려드린 거죠. 아저씨만 특별히. 그동안 너무 바빠서 마음이 아프지만, 알바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잖아요.”
“흠.”
장 아저씨는 그제야 아주 살짝 기분이 나아진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수준이 아니어서 나는 슬쩍 웃으면서 제안했다.
“아저씨, 저녁 장사 준비하셔야죠? 얼른 같이 끝내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실까요?”
“흠?”
애써 숨기지만, 장 아저씨의 입꼬리가 씰룩씰룩한다.
나는 바로 주방에 들어가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청소를 시작했다.
장 아저씨는 청결을 가장 중요시하기 때문에 요리하는 틈틈이 청소를 하셨고, 저녁 준비 시간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흠!”
“에이, 당연히 아직 안 잊었죠. 그동안 해온 가닥이 있는데.”
나는 아저씨의 루틴 그대로, 꼼꼼하게 장비와 도구들을 청소했고, 나중에는 시간이 남아서 재료 손질을 도왔다.
“흠.”
장 아저씨가 먼저 말을 하기도 전에 칼을 건넸고, 도마를 갈아드렸으며, 아저씨가 손질한 재료는 바로바로 지정된 통에 쌓았다.
별다른 의사소통 없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장 아저씨의 흡족한 기분이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
우리의 환상적인 호흡으로 인해 준비는 평소보다 일찍 끝나, 저녁 오픈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우리는 [레드 드래곤] 바깥에서 장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캔 음료를 하나씩 사이좋게 마셨다.
식당 간판을 보는 장 아저씨의 눈빛이 오묘했다.
“건물까지 같이 파시려는 거죠? 혹시 예상하는 가격이 있으신가요?”
[$1.5M(=20억 가량)]“…리아가 이런 것도 이야기해요?”
[우린 친하니까.]“……”
‘아저씨 뒤끝 있는 스타일이시네…’
아저씨의 성격상, 내가 그 정도의 자본이 있다는 걸 알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제안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리아가 아무에게나 내 이야기를 하는 아이는 아닌데.’
“사업을 파실 생각이라고 리아한테 먼저 언질을 주셨군요.”
[누구완 달리 나한테 관심이 많아서. 무슨 일 있냐고 찾아올 때마다 꼬치꼬치 캐물었다.]“…죄송합니다. 더 자주 올게요.”
“흠.”
난 저 ‘흠’이 ‘그러든가 말든가’로 들렸다.
‘리아는 내가 꼭 여기를 인수해줬으면 했나? 단지 레드 드래곤이 아쉬워서? 아니면…?’
어쨌든 나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다.
“그 정도면 제가 그냥 빌려드릴 수도 있어요. 물론 적당한 이자를 받고. 제가 생각보다 성공해서 부담도 없습니다.”
[역시 재수 없는 놈답게 재수 없는 소릴 할 줄 알았다. 거절한다.]정작 아저씨는 고민할 여지도 없는지 바로 잘랐다.
“근데 가격 책정은 어떻게 하신 거죠? 제가 잠깐 계산을 해봐도, 대충 두 배 이상으로 책정하셔야 할 것 같은데.”
전문가의 정식 감정을 따로 받아봐야겠지만, 나는 일단 핸드폰으로 상가 시세를 찾아봤다.
같은 지역 비슷한 규모의 건물 실거래가가 $2.5M.
거기에 오클랜드 지역 레스토랑은 보통 1년 매출의 25%~50% 사이에 판매가 된다고 하니, 내가 알바를 하던 당시의 매출이 계속 지속된다는 가정하에 $0.9M 정도가 적절한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어림잡아서 대충 $3.4M(=44억)
그런데 아저씨는 절반 이상을 깎아서 불렀다.
목돈이 필요한 사람치고 너무 후한 조건.
[그래도 나에겐 20배 이상 남는 장사다.]“…지난 30년간의 인플레이션에, 아저씨가 쌓은 무형 가치도 감안해야죠. 그리고 이 정도 장사면,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서지 않아요?”
“…흠…”
장 아저씨의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에 난 바로 직감했다.
“정식 오퍼도 받았군요?”
“…흠…”
“그것도 두세 곳 이상.”
[아니, 내가 실토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바로바로 눈치채지?]“우린 친하니까요.”
“……”
이번에는 내가 꼬치꼬치 캐묻자, 장 아저씨는 어쩔 수 없이 털어놓았다.
그동안 받은 정식 오퍼 조건.
– [Future VC]
인수 제안 금액: $5M
– 단골
인수 제안 금액: $3.8M
– 개인 투자자
인수 제안 금액: $3.3M
“아저씨 제정신이에요??”
내가 계산한 금액이 시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저한테는 왜 반값 이상으로 후려치는 거에요?? 팔 거면 당장 $5M(=65억) 받고 팔아야죠.”
[악의 축에 영혼을 팔 수 없다.]“악의 축이요?”
그러고 보니 [Future VC]는 다름 아닌 크롬웰 집안이 운용하는 벤처 캐피털이다.
‘우리 집도 샀던데, 여기저기 부동산에 많이 투자하는구나? 프리미엄까지 붙여가면서.’
그 이유를 장 아저씨가 자세히 설명했다.
[지금 오클랜드뿐만 아니라 큰 기업들이 미국의 많은 집과 상가들을 사들이고 있다. 이 라인의 건물들? 이미 다 퓨처 놈들이 대부분 사 갔지. 나까지 돈 몇 푼 더 받자고 젠트리피케이션에 굴복할 수 없다.]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외부 자금 유입으로 임대료가 높은 새 건물들이 들어서며, 원래 살던 주민들이 생활비 상승을 감당하지 못하고 강제로 이주를 강요받는 현상.
이곳에서 30여 년간이나 살았던 장 아저씨는 기업들의 횡포에 강력한 반발심을 가지고 계셨다.
[비록 내가 목돈이 필요해서 가게를 넘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필요한 만큼의 액수를 받고 최대한 ‘레드 드래곤’을 아껴줄 수… 아니 오랫동안 존속시킬 수 있는 새 주인을 찾고 싶다.]“……”
장 아저씨의 인생에서 [레드 드래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함께 일해본 누구든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처음 가게를 찾은 새로운 손님도 느낄 수 있는 걸, 내가 모를 리가 있나.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1.5M은 꼭 필요하니까 그 금액을 받고 저한테 파시겠다는 거잖아요.”
“흠.”
“일단 그것부터 알려주세요, 그럼. 만약 가게를 팔지 않아도 금액이 해결되면, 그래도 장사를 접으실 거에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지만, 목돈이 필요해서 억지로 파는 건지. 아니면 이참에 은퇴하려고 파는 건지 알아야 했다.
“……”
장 아저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눈동자가 격심하게 흔들리기만 했다. 그런 가정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 보였다.
나도 잘 아는 모습이었다.
‘모든 문제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헤쳐 나가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아저씨는 몇 번이나 펜을 들었다가 놨다. 그러다 한숨을 쉬고는 힘없이 썼다.
[마지막 힘이 닿는 데까진 요리를 하고 싶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최소 6개월은 떠나 있어야 해서…]아무리 충성도가 높다고 해도, 6개월이나 문을 닫은 가게의 운명은 모두가 잘 안다.
그러니 떠나기 전에 팔아야 그나마 제 가격을 받고, 나한테 팔아야 [레드 드래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미련할 만큼 가게를 사랑하는 거구나. 그 정도의 손해를 감수할 정도로.’
나는 장 아저씨의 각오를 확인하고 바로 결심을 내렸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흠?”
서로 모두 만족할만한 역제안을 했다.
*
나는 며칠 안에 모든 절차를 끝내고 부모님을 찾았다.
밤늦게가 되어서야 우린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엄마는 소외된 계층을 위해 육상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다녀오셨고, 아버지는 어느 정도 빚을 갚을 때까지 3가지 일을 병행하시는 중이었다.
“아들? 무슨 일 있니…?”
“혹시… 그때 애가 생겼다고…?”
내가 ‘로한’으로 빙의한지 5개월. 역시 5개월은 지난 과거를 모두 깨끗하게 지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걸까.
부모님은 내가 갑자기 두 분을 모시자, 단단히 각오하는 모습이셨다.
“저, 건물주 됐습니다.”
“아! 겨우 그런 일이었다면 따로 자리를 안 만들고 지나가듯 말해줘도 괜찮았을 텐데.”
“휴우… 별 거 아니었어. 다행이야, 여보.”
“……”
두 분은 안도의 한숨을 쉬셨다.
“어딜 샀는지 궁금하시진 않고요?”
“알아서 잘 했겠지.”
“재정적인 부분은 괜히 머리 아프게 우리한테 이야기해줄 필요 없다.”
“……”
이게 나를 믿는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건지 잘 구분이 안됐다.
“크흠. 이번에 다운타운에 ‘레드 드래곤’이 있는 바로 그 건물을 정식으로 매입했습니다. 다음 주에 명의가 넘어올거에요.”
“어? 그걸 장 씨가 파셨어? 그럼 그 가게는 어쩌고?”
“가게는 계속 운영하실 겁니다. 다만 앞으로 최소 6개월은 건물 레노베이션에 들어갈 거라 한동안 휴식기를 가지실 예정입니다.”
아버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건물이긴 하지. 잘 생각했다. 아마 레노베이션을 잘만 하면 건물 가치가 두 배도 뛸 수 있는 위치야.”
“네, 그런 부분도 고려했고… 무엇보다 건물에 남는 구역을 그동안 창고로 쓰고 있었거든요? 큰 공사를 시작하는 김에 새롭게 단장해보고 싶은데, 혹시 함께 사업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사업?”
내 금전적인 지원은 거의 질병처럼 질색하시는지라, 그동안 새로운 방법을 구상해야 했다.
워낙 단편적인 정보밖에 없어서 어떤 사업이 좋을지 한참 고민을 했는데… 마침 적당한 게 있었다.
미국 피지컬 천재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