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7
57
윌리엄 피셔(William Fisher).
그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40대 영화감독 중 한 명이었다.
지난 19년간 11 작품을 찍는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그중에서 한 작품을 빼곤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심지어 최근 두 작품은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세련된 영상미로 관객들을 사로잡아 북미에서만 4억불의 매출을 올리며, 북미박스오피스 역대 50위권에 안착.
‘일단 피셔가 메가폰을 잡으면 손해는 안 본다,’는 든든한 이미지에 현재 영화 제작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영화감독으로 등극했다.
“윌리엄. 왜 바쁜 사람을 오라 가라야?”
마침 투덜투덜대면서 피셔 감독의 LA 저택을 찾은 사람은 그와 비슷한 외모의 친동생 데이비드.
지난 다섯 작품 함께 호흡을 맞춘 프로덕션 매니저(Production Manager: 영화 제작의 모든 과정을 지원하는 역할)이기도 했다.
피셔 감독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커피 테이블 위의 각본을 가리켰다.
“미안. 비공개 각본이야. 복사 불가에 스튜디오 통틀어 한 부밖에 없어서 오라고 할 수밖에 없었어. 일단 한 번 훑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
“뭐? 뜬금 없이…”
어이가 없었지만, 데이비드는 군말 없이 쇼파에 앉아 각본을 집어 들었다.
‘미친놈은 맞지만 아무 이유 없이 뭔갈 시키는 미친놈은 아니니까…’
형제이면서도 함께 10년간 일할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선을 잘 지키기 때문.
할 때는 정말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야 살아남는 쇼 비즈니스 업계였다.
「A Good Man」
순간 제목을 확인한 데이비드의 눈이 커졌다.
“이게 벌써 각본으로 나왔어? 도대체 누가 작업했는데??”
“뭐야, 너도 아는 작품이야?”
“우리 팀에서 항상 새로운 작품 물색하는 거 알잖아. 팀원 중에 독서광이 있는데, 하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작품이라 나도 빌려서 읽어봤어.”
“원작이 책이라는 거지?”
“그것도 몰랐어?”
데이비드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보통 각본이 있으면 각본과 관련된 연관 사항이 정리되어 있기 마련.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 경력, 원작 여부 기타 등등.
그런데 「A Good Man」은 정말 각본밖에 없었다.
“이거 원작, 지금 베스트셀러 1위야. 다른 소설이랑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무려 피터 오웬이 극찬한 작품이라고. 영화만 보지 말고 독서도 하라니까?”
“으음… 그러니까 더더욱 고민이 되는군. 내가 지금 고사하면 바로 다른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겠지…”
“뭐어? 설마 이거 하고 싶어서 고려하고 있었던 거였어? 도대체 언제? 10년 후에??”
“……”
고뇌에 빠진 피셔 감독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평생을 지켜본 형이기에 그것보다 확실한 대답은 없었다.
“씨발, 이번 걸 엎으려는 건 아니지?? 네가 사람이면 그런 상상조차 못 하겠지! 내가 이번 작품 확보하려고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알면서… 경쟁 제작사한테 가서 간도 쓸개도 다 빼주고, 우리 감독님 차기작도 하나 걸어야 될 수도 있는데…”
재작년에 개봉한 전작을 마지막으로 선뜻 차기작을 고르지 못했던 피셔 감독.
하필이면 꽂힌 작품이 경쟁 스튜디오의 블랙리스트(Blacklist: 제작자 선정, 그 시기 가장 좋은 각본) 중 하나였다.
평범한 감독이라면 그 선에서 포기를 할 텐데, 피셔 감독은 그런 상식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일단 한 번 마음을 먹으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나사 빠진 인간.
노예 입장에서는 무조건 일을 성사시켜야 하기 때문에 데이비드만 죽어라 고생했고, 이제 겨우 최종 계약을 남긴 상태였다.
“우리 작품 좋아. 윌리엄 너의 색깔에도 맞고, 각색을 좀만 하면 시너지가 날 거야. 이미 동의한 부분이잖아?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일단마저 읽고 이야기 하자. ‘A Good Man’을 읽고도 네 생각이 여전하면, 원래 진행하던 거 그대로 하자.”
“어? 아… 알겠어.”
데이비드는 떨떠름한 얼굴로 각본을 펼쳐 들었다.
‘이렇게 쉽게?’
이런 상황에서도 언제든 프로젝트를 엎어버릴 수 있는 것이 피셔 감독이었다.
그런 변덕을 유일하게 컨트롤 비슷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데이비드 본인.
장황한 논리를 무기 삼아 몇 시간은 싸울 각오를 했는데, 대뜸 자신의 판단에 맡기겠다니?
‘내가 아는 독재자 윌리엄 맞아? 남에게 이런 중요한 결정을 맡긴 적이… 어렸을 때도 한번 없었던 것 같은데?’
너무 생소한 경험이라, 그는 반신반의하며 「A Good Man」을 읽기 시작했다.
당연히 프로덕션 매니저로써 반려해야하는 각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척 기대가 됐다.
‘피터 오웬이 인정한 작품. 나도 너무 재밌게 읽었어.’
피셔 감독이 책을 안 읽는 대신, 데이비드가 그만큼 더 많이 읽어야 했다.
자신의 가치는 어디까지나 피셔 감독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을 때 빛나는 것.
다만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을 읽다 보니, 딸려오는 부작용으로 어지간한 책을 읽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아무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지만…’
그런데 「A Good Man」은 달랐다. 처음 완독했을 때의 전율과 여운은 아직도 마음 깊은 구석에 잔향을 남겼다.
작품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분위기와 복잡한 심리묘사는 피셔 감독의 장기이기도 해서, 데이비드는 후보 차기작 리스트에 기록까지 해뒀다.
물론 걱정도 있었다.
‘각색이 쉽지 않았을텐데… 도대체 누가 담당한 거지?’
원작 「A Good Man」은 불필요한 장면이 없다. 정교하게 맞물리는 스토리.
도저히 신인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었는데, 원작이 출간된 지 몇 개월만에 각본이 나왔다?
애초에 각색이 잘되지 않았다면 피셔 감독이 지금 이걸 읽어보라고 제안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비드는 일단 몇 페이지를 읽기 시작했다.
“…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3시간 남짓이 흘렀다.
‘그럼 그렇지, 독재자 자식! 애초에 선택권은 하나밖에 없는 선택지를 줬으면서 내 판단에 맡기겠다고 생색만 냈어!’
물론 입밖으로 나온 말은 무척 공손했다.
“그럼 기존의 플랜은 싹 엎어버리고, 「A Good Man」으로 새로 셋팅한다?”
“역시 능력 있는 매니저다운 판단이군. 이미 머릿속으로 연출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어.”
“…이거 각본 쓴 시나리오 작가부터 섭외한다?”
“아, 너 이거 원작 읽었다고 했지. 어때? 원작이랑 비교해봤을 때 각색 실력이 괜찮은 것 같아?”
단순히 원작이 좋아서 각본이 잘 빠진건지, 아니면 실제로 각색을 잘해서 이 정도의 각본이 나온 건지 확인하는 질문.
“천재가 확실해. 내용을 압축하는 정도가 아니라, 재창조했는데도 원작을 전혀 해치지 않았어. …믿기지 않지만, 부분적으로는 원작을 초월한 것 같은데??”
소설 자체의 가치는 원작이 우월하겠지만, 영상화 측면에서 보자면 각색된 시나리오가 월등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앞으로 우리 팀에 아예 반영구적으로 꽂아 넣고 싶어. 괜찮은 원작만 있으면 수준급 시나리오를 뽑아낼 수 있단 의미잖아.”
“원작도 좋고, 시나리오도 좋다라…”
“굉장하지. 특히 시나리오는 딱 너의 연출 성향을 고려해서 최적화를 해놨던데? 누가보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시나리오 작간 줄 알겠어.”
피셔 감독도 가장 놀란 부분이 그것이었다.
시나리오 작가가 자신의 오랜 팬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을 맞춰서 각본을 완성해왔다.
별다른 수정 없이, 이대로 가져가서 영화를 찍어도 걸작이 나올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시나리오 작가, 무조건 섭외하자. 미팅 날짜만 잡으면 나도 같이 나가는 걸로 하지.”
“저, 정말??”
지금까지 피셔 감독이 직접 나선 적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데이비드를 신뢰하기도 하고, 결과물만 봐도 배우든, 작가든 실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안목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한테 이 정도로 맞출 수 있는 시나리오 작가라면, 다른 감독의 스타일도 맞출 수 있을 거야.”
“아, 그래. 이런 보석이 노출되기 전에 포섭하자 이거군. 알겠어.”
“아… 그리고 자문을 위해서 원작 작가도 혹시 참여할 수 있는지 여쭤봐.”
“그 정도까지?”
“그래.”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도 않았고, 데이비드도 묻지 않았다.
이제는 각자의 일에 집중할 때.
그는 급하게 저택을 빠져나갔다.
‘뭐, 어차피 둘 다 신인이라고 했으니까… 섭외 자체가 어렵진 않겠지.’
*
데이비드는 방심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지만, 원작 작가와 시나리오 작가를 섭외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생각해보면 둘 모두에게 인생역전의 기회였다.
무려 윌리엄 피셔의 새로운 영화.
원작 기반 영화라는 소식을 발표하자마자 소설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할 것이다.
‘아… 이미 베스트셀러 1위였나?’
어쨌든 영화의 홍보가 곧 소설의 홍보. 박스오피스 성적이 바로 소설 매출로 이어진다.
신인 시나리오 작가는 말할 것도 없다.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앞으로의 경력은 탄탄대로나 마찬가지.
그래서 섭외에 이골이 난 데이비드는 별다른 생각 없이 담당 에이전트에게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뭐, 뭐라고요? 원작 작가분이 직접 시나리오를 각색했다고요??”
–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두 작가의 담당 에이전트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잠깐 의심했지만, 신인이 원작과 각본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쓸 수 없을 거란 선입견이 더 컸다.
하지만 일류 프로덕션 매니저는 그 어떤 상황도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법.
“정말 재능이 출중한 작가님이셨군요. 마침 잘 됐습니다. 피셔 감독님이 직접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혹시 다음 주 토요일 오후 5시, 피셔 감독님 저택에서 뵐 수 있을까요?”
어디에 살든 1등석 비행기표는 물론 모든 경비를 미리 지급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 아, 미리 말씀을 드릴 걸 그랬습니다. Hyde 작가님은 익명을 유지하고 싶어하십니다.
“네? 그게 무슨…”
–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그렇지.’
데이비드는 신인 작가가 몸값을 올리기 위해 나름대로 비싼 척을 한다고 귀여워했지만, 에이전트의 이어진 말은 긴장을 바짝하게 했다.
– 물론 미팅 전에 법적 효력이 있는 비밀 유지서약서를 작성해주셔야 하고, 직접 작가님이 있는 곳으로 와주셔야 합니다.
“…아니,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피셔 감독님이 오히려 작가를 뵈러 이동하셔야 한다고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요? 피셔 감독님과의 미팅 자리가 얼마나 귀한 기횐지 잘 알고는 있는 거죠?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분…”
– 저희도 요구하기 죄송한 까다로운 절차이지만, 작가님이 워낙 바쁜 시기라 일정을 빼기가 어려운 점도 있고, 보안을 유지하기에는 낯선 장소로 이동하는 것보다 이 방법이 낫다고 자문을 받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
– 만약 어려우시면 다음 달에 찾아뵙는 건 어떨까요? 그땐 여름이라 작가님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셔서 직접 찾아뵐 만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름? 여름이라고 더 한가해질 이유가 있나?’
어쨌든 기분이 불쾌해지려는데, 에이전트가 적절하게 차선책을 제시했다.
“그래요. 작가님의 개인 사정이라는 것도 있을 텐데, 우리가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어려움이 있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피셔 감독님이 직접 거동하긴 힘드니 다음 달로 날짜를 잡아 LA에서 만나는 걸로…”
– 알겠습니다. 일정을 잘 조율해서 꼭 찾아뵙는 것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아쉽지만 그럼 이번 달에는 아르노프스키 감독님만 뵐 수 있겠군요.
데이비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 아르노프스키 감독님이요?? 아론 아르노프스키??”
– 네. 작가님은 피셔 감독님의 팬이라서 각본을 피셔 감독님에게만 전달했지만, 아로노프스키 감독님은 「A Good Man」 원작을 감명 깊게 읽으셨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미팅을 요청하셨고, 똑같은 절차를 안내해드렸는데 다음 주에 바로 찾아오신다고 하셨습니다.
“……”
심지어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피셔 감독과 연출 감각도 비슷했다.
‘에이전트가… 일을 잘 하네.’
보통 다른 감독과의 미팅 사실은 대외비일텐데 일부러 흘린 것이다.
어쨌든 작가가 피셔 감독을 훨씬 선호하지만, 만약 아르노프스키 감독을 먼저 만난다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
“그럼 작가님을 뵐 수 있는 날짜와 시간을 최대한 많이 뽑아주세요. 물론 아르노프스키 감독을 만나기 전으로요.”
일을 무조건 성사시켜야 하는 데이비드의 입장에선 여기도 선택권이 하나밖에 없었다.
*
나는 두 감독님을 모두 직접 만나 뵐 수 있었다.
하필 2학기 일정이 정말 바쁠 때 미팅 요청이 와서, 부득이하게 오클랜드로 모실 수밖에 없었는데… 감사하게도 두 분 다 내 사정을 봐주셨다.
‘성격이나 외양이 굉장히 다르시구나.’
피셔 감독과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를 찍는 것치고 사람 자체는 느낌이 완전 달랐다.
그래서 두 분의 연출 철학 그리고 영화에 대한 가치관을 자세히 듣는 건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예기치 못하게 만난 아르노프스키 감독님도 대단한 필모그래피의 세계적인 감독이라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아르노프스키 감독님이 찍는 「착한 사람」도 너무 기대되지만…’
「착한 사람」은 이미 피셔 감독님을 내정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한 거라, 아쉽지만 아르노프스키 감독님의 제안은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 아쉽군요. 그럼… 기회가 이번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제가 지난 10년 동안 악마에게 영혼을 받쳐 준비하고 있는 회심작이 있는데, 디벨롭이 마무리되면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그건 괜찮죠?
우리는 미래를 기약하고 헤어졌고, 나는 곧바로 피셔 감독님 소속의 영화 제작사와 판권 계약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 계약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ghostagent: ????? 이게 계약서야? 맞아???]그런데 [위너 스튜디오]에서 제안한 계약 조건이… 조금 이상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