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58
58
[ghostagent: 이 사람들 제정신이 아닌데? 아니 협상의 여지는 줘야지?? 처음부터 이런 계약서를 내밀면 어쩌자는 거야??]채팅만으로도 고스트 에이전트가 당황한 게 느껴졌다.
하긴, 그는 피가 끓는다며 협상의 자리를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 첫 계약서는 바로 쓰레기통으로 처넣으면 돼. 출판사나 영화 제작사나 다 똑같아. 항상 예산의 최저한도에서 논다니까?
– 툭툭 잽을 던지듯, 상대가 얼마까지 생각하고 왔는지 파악하는 게 쫄깃해. 한 마디 한 마디 서로 신경전이 장난 아니야.
– 총만 안 들었지, 살벌한 협상 끝에 상대가 상사의 결재를 받아야 할 정도의 금액을 싸인한다? 그때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도 절반은 훌륭한 글을 세상에 내보낸다는 성취감, 나머지 절반은 이런 협상에서 상대를 짓밟을 때의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서야.
– …물론 그렇게 정글 속에서 피 튀기는 혈전 끝에 그 어떤 에이전트도 쉽게 받을 수 없는 조건을 들고 왔는데, 정작 담당 작가가 아주 손쉽게 몇 단계 높은 조건을 직접 받아오면 현타가 씨게 오긴 해.
하지만 그런 고스트 에이전트도, [위너 스튜디오] 측에서 보낸 계약서 초안을 보고는 전투의지를 상실했다.
[ghostagent: 도대체 그날 미팅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c.k.: 글쎄…? 그냥 작품 이야기하고, 나중엔 소소한 스몰토크 정도?]나도 영화감독님은 처음 뵈는 자리라 나름 긴장하고 나갔는데, 편하게 잘 해주셔서 재밌게 대화를 나누고 돌아온 기억만 있었다.
*
며칠 전, 오클랜드의 한 커피숍.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부스가 잘 되어 있어서 사람 만나기는 비교적 좋은 환경이었다.
피셔 형제는 약속 시간보다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미리 커피를 주문했다.
“세상 참 좋아졌어. 영화감독이 먼저 와서 시나리오 작가도 기다리고… 10년 전? 아니, 5년 전만해도 30분은 먼저 와서 장소 세팅 다 하고 그랬는데.”
데이비드는 괜히 피셔 감독의 눈치를 보며 더 유난을 떨었다.
“약속 시간에 늦지만 않으면 되지. 급한 건 우리니까.”
다행히 피셔 감독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인내심 있는 편이 아닌데, 그만큼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군.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건져야 한다.’
데이비드는 각오를 다지며 전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 데이비드. 고등학생분이라고 하셨지?”
“맞아. 흑인, 남성, 16살. 너무 충격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네.”
첫 만남을 앞두고 에이전트에게 전해 들은 신상 정보를 몇 번이나 재확인했다.
“세상이 넓기는 넓구나. 치밀한 스토리 구성은 그렇다 쳐도, 감정의 깊이가 절대 10대의 것이 아니었는데…”
“우리랑 세대가 다르잖아. 요즘 아이들은 워낙 다양한 정보를 흡수할 수 있어서, 어려서부터 간접 경험도 풍부하고… 평생 독서에 빠져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가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중, 고등학생들이 있다. 간혹 베스트셀러를 내기도 하고, 전문가 뺨치는 식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가. 원작은 천재적인 재능이라고 포장을 해봐도, 시나리오 작법에까지 능숙한 건…”
지금까지 업계의 수많은 ‘천재’를 만나본 피셔 감독은 거의 처음으로 불가해한 존재와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그래도 둘 다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Hyde 작가는 지독한 10대의 책벌레일 거라고.
“긴장을 많이 했을 테니까, 최대한 가볍게 미팅을 진행하자고. 어차피 계약 조건은 나중에 에이전트와 협의하면 되니까 오늘은 함께 작업이 가능한 사람인지만 보자.”
“이건 데이비드, 네가 전문가이니 네 리드를 따르겠…”
그때였다.
“피셔 감독님?”
그냥 딱 봐도 운동선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위협적인 체격의 흑인 남성이 다가왔다.
6ft 4in(=193cm)의 큰 키에 앉아 있던 둘은 한참을 올려봐야 했다.
“어… 혹시 팬분이신가요? 감독님과 사진? 아니면 오토그래프(Autograph: 싸인)?”
데이비드는 익숙하게 대처를 했다.
아무래도 영화감독은 배우에 비해 얼굴이 덜 알려지는 편이지만, 피셔 감독 정도 되면 종종 알아보는 일반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남성의 행동에 둘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아, 네 팬 맞습니다. 나중에 둘 다 해주시면 감사하죠.”
그러면서 바로 건너편에 착석하는 남성. 데이비드가 제지를 하기도 전에 그는 자기소개를 했다.
“오늘 만나 뵙기로 한 작가입니다. 일찍 온다고 왔는데, 먼저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
무의식적으로 연약한 이미지의 작가를 상상했던 둘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와 완전 상반된, 어딘지 모르게 불량해 보이는 외양. 작가라는 것도 안 믿기고, 10대(?)라는 것도 믿기가 힘들었다.
“그… 작가님이 익명을 원한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혹시 대리로 나오신 겁니까?”
“아, 아뇨. 두 분이 직접 오신 상황에 제가 감히 그럴 순 없죠. 다만, 이곳에서는 저를 편하게 로한이라고 불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잠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던 둘이기에 잠깐 충격을 받아들일 시간을 필요로했다.
“저, 혹시…”
마침 누군가가 머뭇거리며 천천히 다가왔다.
이번에도 데이비드가 나섰다.
“아! 피셔 감독님의 팬분이신가요?”
“네?”
순간 상대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게 누구죠? 전 당연히 로한을 알아보고… 로한! 나 완전 팬이야. 미식축구 너무 재밌더라.”
“아… 고맙다.”
“얼른 다음 시즌 시작하면 좋겠어. 이번에는 전승 1위 가능한 거지??”
“그럼~. 주전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서 기대 해도 좋아.”
“오케이. 어렵겠지만, 이번에는 제발 출장 정지만큼은 피해줘…”
“……”
상대는 로한과 사진을 찍고 만족하며 떠났다.
데이비드는 멋쩍게 웃었다.
“학교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뛰시나봅니다. 어쩐지 피지컬이 남달라 보이시더니…”
“아, 네. 운이 좋게 발탁이 돼서 몇 경기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들은 조금 더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서 「A Good Man」의 시나리오에 대해 논의했다.
원작을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는지, 각색을 하며 무엇을 중점적으로 고쳤는지, 그리고 왜 피셔 감독에게만 시나리오를 보냈는지.
로한은 그때마다 막힘없이 답변해주었다.
피셔 감독과 데이비드 둘은 감탄의 시선을 교환했다.
‘진짜 작가가 맞구나. 사람의 외양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참.’
이제 막 대화의 진도가 빠지는 찰나, 이번에는 여성이 다가왔다.
“엌, …로한?? 로한 맞지??”
“아… 어…”
“이번 시즌 농구 너무 잘 보고 있어!! 오클랜드가 원래 미식축구는 그럭저럭하는 편이어도, 농구는 아니었잖아. 니가 들어와서 팀이 완전 달라졌어! 최고야!!”
그녀는 한참 칭찬을 늘어놓다가, 데이비드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곤 행복해하며 자리를 비워주었다.
“아, 농구도?”
“네, 어쩌다보니… 아시다시피 고등학교 수준에선 선수 풀이 적어서 많은 종목을 병행하잖아요.”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잘은 모르지만, 지역에 팬이 많을 정도로 잘하시는 거니까…”
데이비드와 피셔 감독은 이어서 로한이 아직도 영화 판권을 팔 의향이 있는지, 실제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가면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아, 그게 말이죠…”
“……?”
하지만 그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중학생 그룹이 우르르 몰려왔다.
“로한이다, 로한!!”
“내가 말했잖아. 더 빌런, 여기 단골이야.”
“로한! 우리 다리우스전 복싱매치 직관했음!!”
“쟨 사실 다리우스 팬으로 가서, 다리우스가 처맞으면서 점점 ‘그어어억,’ 좀비화되는 거 보고 울었어. 속지마.”
“야! 다들 입덕 시점이 다를 뿐이야. 다음날부터 곧바로 로한의 팬으로 돌아섰다구.”
“근데, 로한…! 차머스랑 곧 복싱 날짜 잡힌다는 루머 돌던데?? 팩트임?? 우리한테만 말해줘!!”
금방 소란스러워져서 로한이 벌떡 일어나 통제에 들어갔다.
“쉿! 중요한 손님들이랑 있으니까, 잠깐만 이야기하고 갈까? 죄송합니다. 잠시 나갔다가 금방 오겠습니다.”
로한은 정중하게 사과를 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커피숍 바깥으로 나갔다.
엄마 닭을 쫓는 병아리들처럼 학생 무리가 따라나섰다.
“……”
“……”
피셔 감독과 데이비드는 잠깐 시선을 교환했다.
“이 지역 스포츠 유망주이신가보다.”
“그러게. 미리 알았으면 좀 조사해올걸. 쏘리. 상상도 못했어.”
“뭐, 워낙 익명을 강조하셨으니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처음 딱 봤을 때 포스가 있어서 걱정을 좀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말주변이 뛰어나고 예의가 바르시네.”
“그러니까. 반전 매력이 있어. 겉으로 보기엔 거칠 것 없는 고교 선수, 실제론 누구보다 순박한 천재 작가.”
“아 스포츠팀에서 엄격한 훈련을 받을 테니까, 팀원 간의 협력도 잘 할 테고, 성실성은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고등학생 작가와 일해본 적은 없어도, 또래의 배우나 스텝은 적지 않았다.
학생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 바로 근성 부족.
현장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기로 유명한 피셔 감독은 개개인의 능력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태도였다.
“그 말인 즉슨 꼭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거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나에게 꼭 필요한 작품이야.”
“그래, 그럼 우리가 최대한 조건을 좋게 제안하는 방향으로 이야기할게. 어차피 예산은 문제없으니까. 원작도 지금 판매량이 심상치 않….???”
데이비드는 문득 창밖에서 아직도 시끌벅적한 학생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 핸드폰에서 어떤 영상을 로한에게 보여주며 신나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고교 선수면… 인터넷에 플레이 영상도 많겠지?’
호기심이 생긴 그는 일단 인스타에서 로한을 검색해봤다.
‘풀네임을 쳐야 나오려나?’
그의 걱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수많은 영상이 촤르륵 떴다.
심지어 천만 단위 조회수를 자랑하는 초인기 영상들.
데이비드는 기대감과 함께 쇼츠 영상들을 차례대로 훑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점점 딱딱하게 굳다 못해 온몸이 얼어붙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봐?”
그러다 피셔 감독도 함께 보게 되었다.
“……”
그 유명한 미식축구의 ‘망나니 세레모니’부터 시작해서 따끈따끈한 신작, 상대 수비수의 면전에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처박곤 피식 비웃는 시리즈.
[빠 악 – !]마지막으로 다리우스에게 어퍼컷을 꽂아버리고, 코너 위에 올라가 차머스를 도발하는 영상이 가히 화룡점정이었다.
너무 생동감 넘치는 영상이어서, 둘은 마치 자기가 어퍼컷이라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이후 다리우스는 병원에 실려 가 2주간 퇴원하지 못했다고 한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육체적인 재활보다 정신적 트라우마 극복에 더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마치 영화의 에필로그처럼 자막으로 상대 선수의 근황까지 알리는 영상.
“……”
피셔 감독과 데이비드는 바깥에서 너무나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까지 일일이 찍어주는 로한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
[c.k.: 진짜 미팅 분위기 너무 좋았고, 피셔 감독님이 특히 점잖으시더라. 편안하게 대화 잘하고 돌아왔어.] [ghostagent: 그 감독, 엄청 고집 세고 자기 멋대로 인 걸로 유명하던데… 이상하다??? 나이 먹고 좀 유해졌나.] [c.k.: 전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서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비우기도 했는데, 조금도 언짢아하시지 않고… 오히려 우린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서두르지 말라시더라.] [ghostagent: …그래?? 흠, 어쨌든 널 좋게 봤으니까… 단순히 영화 판권만이 아니라, 영화의 정식 시나리오 작가로 채용하고 싶어하는 거겠지.]우리 둘 다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영화 판권이야 당연하고, 기껏 해봐야 시나리오까지 사가는 걸 염두에 뒀다.
아무래도 피셔 감독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사단이 있고, 항상 함께 작업을 하는 작가진이 따로 있었으니까.
그런데 [위너 스튜디오]는 나의 작가 계약서까지 함께 발송해왔다.
그것도 엄청난 조건을 걸고.
[영화 판권: $1M(=13억)]※올해까지 원작 판매량이 100만부 초과시 $1M 추가 지급
[시나리오: $1M] [작가 : $1M] [세 계약 모두 수락시: +영화 매출 1%]‘영화 매출 1퍼센트를 지급한다고??’
내가 느끼기에 고스트 에이전트는 계약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괴감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ghostagent: 내가 진짜 열심히 싸우면 받을 수 있는 최고치가 각각 $1M이라고 생각했어. 1티어 작가들에게만 허락된 기준선이거든… 하지만 매출 수익 쉐어??? 이건 진짜 현역 시나리오 작가 중 10명도 안 받는 특급 대우야…] [ghostagent: 또… 또… 이렇게 되는구나. 아직 우리가 정식 작가-에이전트 계약을 안 맺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돈 받고 일해주면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었으면 죽어버리고 싶었을 거야.]고스트 에이전트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아는 나로써는 그럼 최소 10% 정산 계약이라도 맺자고 제안했지만, 그는 자존심을 들먹이며 또 거절했다.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한데…’
어쨌든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위너 스튜디오]가 제안한 모든 계약을 수락했다.
마침 영화의 프리프로덕션 시기가 여름방학으로 잡혀 있어서 일정도 잘 맞았다.
‘영화 작가라니… 너무 재밌을 것 같다.’
*
‘시간 참 빠르다…’
어느덧 2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내가 ‘로한’으로 빙의한 지 벌써 10개월.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위이잉 –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 오랜만이다, 손자.
“할아버지.”
– 곧 생일이 다가온다지? 내가 파티에 초대받지는 못할 것 같고… 우리끼리 따로 한 번 파티를 열면 어떻겠냐. 본가에 한 번 찾아오려무나.
미국 피지컬 천재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