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
6
“……”
우리 집 앞에 검은 에스컬레이드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보낸 기사. 애초에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데려가겠다는 의미였다.
‘뭐, 일단 한 번쯤 만나보면 좋겠지.’
언제까지 로한으로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정보를 모으기로 마음먹은 이상 할아버지도 한 번쯤은 만나는 게 맞았다.
“……”
우리는 베이 브릿지(Bay Bridge: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이어주는 해상교량)를 지나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퍼시픽 하이츠 (Pacific Heights)에 진입했다.
‘이쪽 저택들은 한화로 400억쯤 하는구나…’
핸드폰으로 찾아보니 그랬다. 뭘 잘 모르는 내가 그냥 봐도 비싸 보이는 동네이긴했지만, 단위가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사는 지역과 너무 상반된 분위기. 겨우 다리를 하나 건넜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차원이 펼쳐져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나는 기사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먼저 차량에서 내렸다.
할아버지 댁은 5층짜리 대저택이었다. 아무래도 땅이 귀한 샌프란시스코이다보니 정원이 넓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바깥과 집의 경계가 확실히 나누어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현관문 앞에서는 다른 직원이 마중 나왔다. 그녀를 따라 실내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펜트하우스’라 쓰여 있는 최상층으로 이동했다.
전생에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잣집이라 나도 모르게 위축됐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계속 내 자신을 환기시켰다.
“……”
근데 막상 펜트하우스에 도착하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이 턱 막혔다.
태평양 위의 금문교가 한눈에 보이는 위치. 너무나 아름다워서 한참을 서서 가만히 지켜보게 되었다.
전생에도 자연 풍경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할아버지인가? 무슨 사람 덩치가…’
으리으리한 쇼파에 몸을 기대고 있는 60대 중반의 노인.
그의 험악한 인상에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
할아버지도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로한! 와주었구나. 번거로웠을텐데 정말 고맙다.”
“……??”
솔직히 어느 정도 선입견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할아버지는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얼른 달려와 나를 꼭 껴안아주었고,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다만 힘이 얼마나 좋으신지 온몸이 으스러지는 느낌이었다.
“키가 상당하시네요…?”
2미터는 족히 넘는 키는 물론, 비쩍 마른 로한이 한 다섯 명은 겹쳐야 비슷하다고 느낄 정도로 육중한 덩치를 자랑했다.
“허허허,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아… 네.”
“솔직히 또 너의 말도 안되는 기행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레이몬 그 친구가 보장을 다 하더군. 로한이 공부를 다 한다면서…”
“레이몬 교장 선생님이요?”
사실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건 영화, 소설 속에서나 흔하지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접해보기 힘든 현상.
그러다보니 주변 사람 중 아무도 순순히 믿어주지 않았지만, ‘로한’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할아버지는 납득하고 말았다.
“그래. 그 친구가 얼마나 호들갑을 떨던지, 오클랜드 고교 역사상 최고의 브레인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더구나.”
“아… GED 시험 결과를 들으신거군요. 뭐, 운이 좋았죠.”
“…제 손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모자라 겸손을 떨어?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사람 자체가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우리 주치의에게 정말 검사를 받으련?”
“아, 아닙니다. 차차 기억이 돌아오면 금방 이전처럼 되돌아가겠죠.”
“좋은 지적이다. 그래 괜한 검사를 하거나 진료를 해서 상태가 호전이 되면 큰일이니,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보자꾸나. 건강에 지장은 없다고 하니…”
“할아버지?”
퍽 –
“허허허 농담이다, 농담. 젊었을 때 사고도 치고, 철없이 지내는 것이야말로 이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사치지.”
‘손이 매운 건 유전이었어…’
얻어맞은 등이 한참이나 얼얼했다. 할아버지는 장난기 어린 얼굴로 그런 나를 한참 지켜보다가 뒤늦게 물었다.
“오늘 내가 왜 불렀는지는 아느냐.”
“모르죠.”
“네가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때 이 할아버지가 약속을 한 적이 있다.”
“……?”
“이런… 전혀 기억을 못하는구나.”
그는 나를 꿰뚫어 보는 듯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섰다.
“네가 만 18살이 되었을 때, 우리의 가족 이름 ‘크롬웰’을 물려준다고 약속했다.”
“아…!”
“크롬웰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아는 모양이구나.”
“아뇨… 그냥 뭔가 대단한 것처럼 말씀하셔서 반응해드렸을 뿐입니다.”
“……”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격심하게 흔들렸지만, 이내 평정을 찾으셨다.
“우리 크롬웰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그에 알맞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네 사촌들과 똑같은 액수의 자산이 증여될 것이고, 최고의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가문의 네트워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물욕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이 공간 안에 서 있으니 돈이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내 욕망을 읽으셨는지, 불길을 살살 부채질하셨다.
“크롬웰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금전적으로 부족할 일이 없어진다. 가문의 시스템만 잘 따른다면 평생 상류층으로 살아가는 거지.”
역시 달콤한 제안 속에 가시가 숨어 있었다.
“가문의 시스템이 정확하게 무슨 뜻이죠?”
“우리 크롬웰은 단순한 가문이 아닌 일종의 왕국이다. 왕국을 유지하고 부흥시키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몇 가지 있지. 일단 가문의 코치가 붙어 너의 식단과 스케쥴을 철저하게 관리할 것이다. 이쪽으로 이사를 하고 네 사촌들이 다니는 사립으로 전학도 시켜야겠지. 그 이외에도 네 그릇을 최대한 키워줄 자잘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규칙을 어긴다면 왕국에서 쫓겨나겠군요.”
“가족의 개개인 모두 나에게 너무 소중하고 사랑하지만, 대의에 따르지 못한다면 축출해낼 수밖에 없다. 가지치기에 실패한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거든.”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는 썩은 가지였겠네요?”
우리가 사는 환경, 그리고 할아버지를 언급하는 엄마의 태도를 떠올려보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썩었다기보다는 내 딸 다이애나에겐 자신의 소소한 행복이 왕국의 건설보다 중요했을 뿐이지. 개인적으로는 그 아이의 선택을 무척 응원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무척 사람 좋게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호적상에서 파냈거나, 그에 준하는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네 어미의 선택. 비록 너에게 열등한 피가 섞였다 할지라도, 크롬웰은 크롬웰. 너에게도 똑같이 선택할 권리가 있다.”
할아버지는 차분하게 ‘크롬웰’의 특권이 무엇인지 설명했다. 수백억에 달하는 자산이 증여될 것이며,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문의 명예와 권력까지 약속하셨다.
“당장 결정하라고 독촉하진 않겠다. 안 좋은 일도 있었고, 기억도 온전치 않은 모양이니 시간을 주마. 하지만 명심해라.”
할아버지는 여전히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띄고 있었으나, 전하는 말에는 적지 않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네 그릇의 크기는 타고난 재능이 중요한 것은 물론, 지금 이 시기의 노력에 따라 한계가 정해진다. 이미 사촌들에 비해 한참 뒤쳐졌고,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점점 결정이 늦어진다면…”
굳이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나는 정확하게 알아들었다.
‘아직은 원석이지만, 너무 늦어지면 굳이 이런 제안을 할 가치도 없어진다는 뜻이겠지.’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나왔지만, 사실 결정은 진즉에 내렸다. 할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 조금 더 확고해졌을 뿐.
*
할아버지 댁에 다녀온 이후, 나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일상을 살았다.
엄마가 먼저 이야기하지 않는 한, 엄마와 할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과거의 일은 묻지 않기로 했다.
– 할아버지가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셨니?
– 네. 그냥 제 건강을 걱정하셨고 안부를 나누었어요.
대신 나와 할아버지 사이의 일을 대충 얼버무렸다.
고등학교는 조금 고민했지만 교장 선생님과의 상담 이후 계속 다니기로 마음 먹었다.
– GED 시험을 통과했으니 원한다면 졸업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대학교에서 인정해주는 과목들 위주로 들어보는 게 어떻겠나?
원래도 평범한 고등학교 생활을 해보고 싶었고, 앞으로 3년을 더 장학금을 타면서 대학교에서 학점을 인정해주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무시하지 못했다.
‘대신 운동부를 하나 들어야 한다고 하셨지. 뭐, 그건 어차피 해보고 싶었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운동 특기생으로 입학한만큼, 운동부에 정식 등록하면 추가로 지원받는 장학금이 많았다.
아직 운동 종목을 정하지 못했지만, 학기 초인만큼 두루두루 경험해보고 결정할 생각이었다.
– 와, 쟤 진짜 공부하는 거야?
– 또 학교를 왔는데??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 난 걱정이야. 분명 무슨 사고를 칠 것 같은데…
나는 수강 변경 기간 동안 이런저런 수업을 청강하며 시간표를 대략적으로 완성했다.
‘의외로 우리 학교에도 열정이 있는 선생님들이 좀 있단 말이야.’
마지막으로 각 운동부의 트라이아웃(Tryout: 입부 시험) 일정을 확인하고, 그것에 맞춰서 준비 계획도 짰다.
‘이럼 대충 하루에 4~5시간 정도 여유가 있구나.’
나는 일정을 최대한 빽빽하게 채워 어떻게든 자유 시간을 확보했다.
사실 원한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공부 시간, 독서 시간, 가족 관계 회복 시간 등, 이것들을 줄이면 넉넉하게 시간을 뺄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덤(?)으로 주어진 인생이기 때문에, 전생에는 해보지 못한 일들을 최대한 해보고 싶었다.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앞섰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유 시간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
나는 매일 매일 자유 시간을 가장 열심히 보냈다.
할아버지와 만나고 나서 아주 뚜렷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돈이 필요해. 돈만 있다면 할아버지에게 쓸데없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나는 로한이 아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물려준다는 자산은 크게 아쉽지 않았다. 있으면 좋지만, 애초에 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마 엄마도 엄마만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척을 지고 나왔을 것이다. 돈과 명예보다 중요한 게 있었으니까.
다만 엄마의 입장에서 어렵게 사는 자녀들, 자신의 소중한 가족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나를 호출해도 말리지 않은 거지. 내가 혹시나 할아버지에게 반감을 가질까봐 나쁜 말도 삼갔고.’
할아버지의 ‘제안’에 대해서 분명히 알고 계셨지만, 나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가난의 고리는 끔찍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끊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가 돈만 있다면 자녀들에 대한 엄마의 죄책감도 덜고,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더욱 깔끔하겠지.’
이미 가족과 어느 정도 정이 든 나는, 그들을 위해 최소한의 도움이 되고 싶었다. 사실, 나를 위해서도 무척 중요한 일이다.
“……”
오늘도 자유 시간에 맞춰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이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핸드폰을 손에 잡았다.
‘어차피 음성으로 받아쓰면 똑같지 뭐.’
나는 며칠 전에 다운 받은 음성 녹음 AI앱, [드래곤 브레스]를 실행시켰다.
“날씨가 무척 좋은 날이었다. 하늘이 맑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딱 낮잠 자기 좋은 그런 날이었다. 띵동 – ‘아, 하필이면 지금.’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깼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소포만 남겨져 있었다.”
그랬다.
전생에서처럼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손가락이 멀쩡하니까 키보드를 써도 되겠지만, 습관이 무섭다고… 나는 그냥 목소리로 글을 써내려갔다.
따지자면 집필이 아니라 이미 예전에 써놓았던 작품을 ‘낭독’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미국 피지컬 천재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