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0
60
생일의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 보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집밥을 먹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드게임이라는 걸 해봤다.
“……”
정리를 돕고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가까스로 억눌러놨던 감정의 봇물이 터졌다.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다니.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다.
나는 뿌연 시야 사이로, 부모님의 선물을 다시 손에 들었다.
오래된 사진 한 장.
땀에 젖은 채 지쳐 보이는 엄마, 그리고 엄마의 품 안에 푹 박힌 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신생아. 근심 어린 얼굴로 그런 둘을 바라보는 아버지.
‘로한’이 태어난 날, 병원에서 찍은 유일한 사진이라고 하셨다.
사진의 뒤에는 그날을 회상하는 엄마와 아버지의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엄마]– 엄마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어.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안아도 보고 싶고, 꼼지락거리는 발가락도 깨물고 싶고, 자기만의 아이가 가지고 싶어 하는. 엄마는 전혀 그렇지 않았어. 육상 선수였던 엄마에겐 성가시고, 여자의 인생을 망치는 그런 짐덩이처럼 느껴졌지.
– 그래서 갑자기 임신하게 되었을 때 세상을 원망하고, 많이도 울었어. 네 아빠를 매우 힘들게 하기도 했지. 왜 이런 나를 임신시켜서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엄마로 만드냐고.
– 지금도 엄마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너는 태어난 그 순간 너무 귀여워서 안아도 보고 싶고, 발가락도 깨물고 싶고, 없는 줄만 알았던 모성애가 샘솟더라.
– 생일 축하한다, 로한. 사랑해.
[아빠]– 우리의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냥 기쁘지 않았다. 어떻게 생겼을까. 내가 먹여 살릴 수는 있을까. 나는 우리 아버지랑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초조하고, 두렵고, 기대되면서도 어깨가 무거웠다.
– 하지만 로한 네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너를 품 안에 안았을 때.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겼다.
– 부족한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네가 가져다주는 기쁨으로, 나는 아직도 살아간다.
“……”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심상 세계에 그 내용이 실시간으로 기록될 정도로 강력한 글귀. 이젠 눈을 감고도 달달 외울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 –
그 순간 심상 세계에 변화가 일어났다.
심상 세계 속 세 영역 중 하나.
[현실]에 새로운 파편이 떠올랐다.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병상에 누워 있는 유년기 철수]그 파편과 평형을 이루는 지점에,
새로운 [‘로한’의 첫 생일]의 풍경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엄마와 아버지가 로한을 품에 안고 있는 장면.
한쪽은 블랙홀처럼 모든 생기를 빨아들이는 불길한 기운이 풍겨져 나온다면, 반대편은 생기와 활력이 넘쳤다.
‘오늘 하루만 두 개의 파편이 생성되었구나.’
나는 멀지 않은 지점에 자리를 잡은 [로한의 17번째 생일] 파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를 향해 케잌을 던지는 오클랜드 고교 전교생들.
그 중심의 ‘로한’은 화가 난 듯 고함을 지르며 무서운 기세로 반격하고 있지만, 그의 입에 걸린 미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
나는 눈을 감고 가만히 그 두 파편을 몇 번이나 다시 체험했다.
‘심상 세계는 나의 무의식을 형상화한 곳. 아직 어둡고 불행한 영역이 훨씬 많지만…’
언젠가는 행복한 경험이 쌓여 이 모든 영역을 물드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음?”
로한의 두 생일 파편과 공명을 하는 나의 습작이 있었다.
‘이건?’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존의 「그녀가 사라졌다」, 「착한 사람」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작품.
나는 두 파편의 행복한 경험에 영향을 받아, 그 작품이 새롭게 탈바꿈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
드디어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방학이라지만, 학기 중 보다 바쁠 것 같다.’
일단 방학 기간 대부분은 피셔 감독의 신작이자, 내 소설의 첫 영상화가 될 「착한 사람」 프리프로덕션에 할애해야 했다.
[데이비드 피셔(프로덕션 매니저): Hyde 작가님! 몸만 오시면 되도록 세팅해 놓겠습니다. 출발 날짜가 정해지는 대로 비행편, 숙소, 렌트카를 예약하겠습니다. 이외에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저에게 직접 연락주세요.] [Hyde: 감사합니다. 이런 것까지 다 직접 신경 써주시고… 제가 그냥 예약해도 되는데…] [데이비드 피셔: 무슨 말씀을! 이게 바로 제 일입니다. 작가님은 오로지 시나리오 작업에만 100%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언제든 불편하신 점이 있으시면 바로바로 말씀해주세요.]“……”
첫인상은 과로에 시달려 다크 서클도 짙고, 신경질적인 성격일 것 같았는데… 완전 내 선입견이었다.
‘나처럼 낯을 좀 가리시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친절해지는 데이비드는 내가 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어쨌든 여름방학은 물론,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면 11학년 1학기가 시작되고 나서도 현장에 붙어 있어야 할 가능성이 컸다.
‘그 전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다 마무리하고 가야지.’
나는 일단 오클랜드 다운타운으로 이동했다.
‘플뢰르 측에 레노베이션을 맡기길 잘했다.’
어느새 건물 레노베이션을 시작한 지 6개월을 다 채워갔다.
건설업체 플뢰르의 조언대로 외양은 최대한 유지하는 쪽으로 하되, 낡은 부분은 전면 교체. 소재나 양식을 비슷하게 맞춰서 그런지 이젠 오래되었다기보단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반대로 내부는 최신식으로 맞췄다. 배관부터 냉난방, 환기시설은 아무리 비싸도 가장 안정성이 뛰어나고 효율적인 설계를 채택했고, 자재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부모님과 장 아저씨, 그리고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야.’
“아버지, 저 왔습니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건설업체 사람과 익숙하게 회의하고 있었다.
“잠깐만.”
“넵, 천천히 하세요. 전 둘러보고 있을게요.”
아버지가 일을 마무리하시는 동안, 나는 꼼꼼하게 건물의 곳곳을 살펴봤다.
‘아버지가 신경을 많이 쓰셨구나.’
보통 이런 큰 공사는 시간이 지체되거나, 더 많은 예산을 잡아먹기 쉬운데… 우리가 추가로 요청한 부분 때문에 기존 계획에서 살짝 벗어났지, 레노베이션 자체는 흠잡을 부분이 없었다.
“오래 기다렸니?”
“괜찮아요. 요즘 정신없으시죠”
“아무래도 시작만큼 마무리가 중요하니 신경을 더 쓰게 되더구나.”
“‘레드 치킨’ 쪽도 둘러보고 왔는데, 바로 장사를 시작해도 되겠던데요?”
“그쪽은 엄마가 고생해주었지. 아직 메뉴 선정이 끝나지 않아서, 그것 때문에 좀 고생을 하고 있어. 적당한 후보는 몇 있는데, 딱 확정을 짓기 애매해서.”
“그래요? 시식회 한 번 진행할까요? 리아 친구들이나, 우리 운동부 애들 부르면 어느 정도 피드백 받을 수 있을 거에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레드 치킨]은 빠르면 4일 후, 주말에 오픈하는 것으로 목표를 삼았다.아직 준비가 완벽히 끝나지 않아서 일정을 조금 더 미뤄도 큰 차질은 없겠지만, 아버지는 일단 최대한 준비를 마쳐 오픈하고, 장사를 하면서 조금씩 수정하는 방향을 선호하셨다.
“여긴 그럼 아버지만 믿을게요. …시장하시죠?”
우리는 다른 세부 사항을 조율하고, 근처 베트남 쌀국수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문득 아버지가 물었다.
“아, 장 씨에게서는 연락이 왔니? 대충 원하시는대로 공사를 진행하긴 했는데, 최종 컨펌을 해주면 좋을 것들이 좀 있어서…”
“음… 그게 말이죠.”
나는 혹시나 하고 다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역시 장 아저씨의 연락은 없었다.
‘해외에 가셨나?’
문자 답장이 없는 것은 물론, 전화를 걸어봐도 연결음 없이 바로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알림만 들렸다.
“일단 제가 컨펌할 수 있는 거는 주세요. 나중에 영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거니까.”
“그래… 별 일 없으시겠지?”
“그럼요. 감히 누가 아저씨를 해코지 하겠어요. 반대면 모를까.”
우리 부자는 실없는 농담에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도 지난 4~5개월 동안 장 아저씨와 연락이 안 되자 조금씩 걱정이 됐다.
‘언제 오시려나?’
*
‘드디어, 내가 손꼽아 기다리던 시간.’
나는 필요한 업무를 모두 몰아서 한 후, 나머지 시간은 신작을 집필하는데 투자했다.
LA로 떠나기 전에 최대한 마무리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
나는 눈을 감고 심상 세계에 집중한 뒤, 나의 세 번째 작품을 선택했다.
그러자 주변의 풍경이 금방 작품의 세계로 물들었다.
익숙한 병원의 풍경이 펼쳐졌다.
병상에는 창백한 피부의 동양 남자애가 누워 있었다.
간혹 생리 현상 처리, 혹은 바이탈 체크를 위해 간호사가 다녀가지만, 하루 대부분을 혼자 누워 있는 소년.
‘그’를 관찰하니 씁쓸한 감정이 떠올랐다.
가끔 시간 날 때 과거의 습작들을 들춰보곤 하는데, 이 작품은 한 번도 그럴 생각을 못했다.
부끄러웠다.
‘현실의 나를 거의 있는 그대로 투영한 소설이었어.’
주인공이 바로 나였으니까.
「더 섀도우: 레거시」
제목부터가 오글거리는 이 작품은 내가 전생에 쓴 100개의 습작 중 두 번째로 집필한 것이었다.
초창기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전개가 투박하고, 내 원초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부분이 많았다.
이 소설은 특히 더 노골적이었다.
‘애초에 슈퍼 히어로 장르였으니까…’
나 같은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슈퍼 히어로물만큼 대리만족이 잘 되는 스토리도 없었다.
대부분 뭔가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특정한 계기로 능력을 얻으며 인생이 180도 변한다.
그중에는 장애가 있던 슈퍼 히어로도 적지 않아서, 나 자신을 주인공에 몰입시키기가 좋았다.
읽다보면 진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된 느낌이라, 한동안 정신 못 차리고 그 장르만 파던 시기가 있었다.
‘이건 나 혼자 보기에도 민망한 작품이었는데…’
「더 섀도우: 레거시」는 말 그대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슈퍼 파워(Superpower: 능력)가 생긴다면?’이란 상상해보며 나 혼자 신나게 쓴 작품이었다.
남에게 보여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심상 세계에서 이 작품이 공명하는 것을 보고 크게 당황했다.
뭔가 치부를 들킨 느낌?
‘하지만 확실히 매력이 있는 작품이야.’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한번 ‘체험’하게 된 「더 섀도우: 레거시」는 할 말을 잃게 할 정도로 재밌었다.
특히 심상 세계에서는 워낙 스토리가 현실처럼 리얼하게 재현되다 보니, 한 번 맛(?)을 보니 좀처럼 헤어 나오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집필을 하고 싶다는 충동마저 잠깐 잊었을 정도로 「더 섀도우: 레거시」에 푹 빠져서 살았다.
‘와, 미쳤는데.’
사람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120% 시원하게 긁어준다.
사건 구조, 전개, 인물등이 모두 단순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효과적이다.
기대감을 주고 그걸 빵 터뜨리는 것만큼은 내 다른 작품들보다 월등했다.
특히 현실이 시궁창이라 어떻게든 도피하고 싶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보다 강력한 자극은 없었다.
“……”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심상 세계 속에서 「더 섀도우: 레거시」을 읽고 또 읽었으며, 그때그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스토리를 재구성해봤다.
‘흐흐, 이게 행복이지…’
시도 때도 없이 심상 세계에 빠져 있다 보니, 리아는 그런 나의 모습을 종종 목격하곤 몸서리를 쳤다.
– 뭐야, 왜 눈 감고 그런 음흉한 미소를 지어?? 야동이라도 보는 줄 알았잖아!
아무래도 좋았다. 뇌가 절여지는 느낌이 들 때까지 나는 「더 섀도우: 레거시」의 세계 속에 빠져 살았다.
‘이건 진짜… 악마적인 재미다.’
*
고스트 에이전트를 통해, 로한의 원고는 두 출판사의 중요 에디터에게 전달됐다.
정확하게는 코믹스 전문 출판사.
코믹스계의 양대 산맥으로 묶이는 두 출판사였지만, 로한의 원고에 대한 반응은 서로 완전히 달랐다.
미국 피지컬 천재 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