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3
63
나는 오랜만에 밤잠을 설쳤다.
영화 「착한 사람」 작업을 위해 LA로 떠나는 날.
‘내 생애 첫 여행인가?’
전생에는 어쩔 수 없이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야 했다.
비록 강제로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상상 속에서나마 자유로이 바깥세상을 거닐었다.
내 몸이 감옥처럼 느껴져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 그나마 여행 유튜브를 보며 상처받은 영혼을 달랬다.
‘그런데 이젠 화면을 통해서만 봤던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다.’
여전히 캘리포니아 안이라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가게 일이 아니었으면 같이 가줬을 텐데… 미안하구나.”
“거기 가서도 책만 읽거나, 일만 하지 말고. 그래도 여름방학인데 재밌게 잘 다녀오렴.”
“사고 치지 마라.”
가족과는 오클랜드 공항에서 헤어졌다.
이제부턴 진짜 혼자였다.
[위너 스튜디오]에서 사진과 함께 자세한 안내 가이드를 보내주었기 때문에, 다행히 헤매지는 않았다.‘근데 시나리오 작가 혼자 이동하는데 회사 전용기를 내주기도 하나?’
공항에 사람이 꽤 많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전용기를 타는 구역은 아예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비행기까지 막힘 없었다.
“오…”
기종은 걸프스트림 IV.
찾아보니까 중형 비즈니스 제트기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모델로, 딱 봐도 감탄이 나오는 매끈한 외양을 지녔다.
“안녕하세요!”
더 가까이 다가가니, 비행기의 계단을 타고 준연예인급 미모의 스튜어디스가 내려왔다.
“‘위너 스튜디오’의 특별한 손님(VIP) 로한이시죠?”
“네, 맞습니다.”
내가 피셔 감독의 시나리오 작가 및 현장 자문 작가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내건 유일한 조건이 바로 Hyde 작가의 익명성 유지.
실제로 [위너 스튜디오] 측에서도 피셔 감독의 이례적인 요청으로 내가 특별 자문으로 참여하는 줄로만 알지, 원작의 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줄은 모른다.
“운동선수이신가요? 키도 크시고, 굉장히 몸이 좋으세요.”
“아, 학교에서 선수로 뛰긴 합니다.”
“어쩐지…! 머지않아 프로 씬에서도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튜어디스는 무척 발랄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나를 자리로 안내하면서 쉴새 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저는 오늘 로한님을 모시게 된 소피아라고 해요. 기내에 샴폐인과 와인 컬렉션이 있는데, 리스트를 먼저 보여드릴까요?”
“아, 아뇨. 물 한 잔만 주세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나는 그사이 열심히 기내를 구경했다.
‘집 거실에나 있을 쇼파에 앉다니…’
비행기를 타본 적은 없지만, 일반 여객기가 어떤 구조인지는 잘 알았다.
보통 다리도 잘 뻗기 힘든 좁은 자리에, 좌우로 사람이 앉으면 여러모로 불편할 수밖에 없어 보였는데… 이 전용기의 쇼파에서는 원하면 두 다리 쭉 뻗고 누울 수도 있었다.
‘최대 15명이 탈 수 있고… 어? 전세를 내려면 보통 2만불(=2600만원) 정도는 지불 해야 하는구나.’
일반 비행기를 타면 2~300불 선에서 갈 수 있는 거리.
내가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전생에서부터 뼛속 깊이 새겨진 씀씀이가 하루아침에 바뀔리 있나.
겨우 1시간의 비행을 위해 전용기가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자, 물 가져왔어요. 곧 이륙을 할 테니 편안하게 기다려주세요.”
“…혹시 다른 분은 안 타시나요?”
스튜어디스는 내 말이 너무 재밌다는 얼굴로 한참을 웃었다.
“당연히 로한님의 편안한 이동을 위해서, 로한님만을 모시고 가는 비행기입니다.”
“……”
“그럼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벨을 눌러주세요. 대화 상대도 해드리니까, 부담 없이 찾아주세요.”
“……?”
그녀는 어째서인지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고 갔다.
드디어 혼자 남은 나는 쇼파에 몸을 기대며 비행내내 창밖의 풍경을 만끽했다.
‘진짜 피셔 형제가 날 많이 배려해주셨구나.’
전용기에서부터 나중에 도착한 럭셔리 숙소까지.
특급 작가 대우를 한껏 받으며 나는 처음 방문한 LA에서도 편안하게 정착할 수 있었다.
‘내 작품이 영화가 되다니. 나도 최선을 다해 도와서, 좋은 영화가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
.
.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이번 「착한 사람」 작업이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
[위너 스튜디오] 본사는 LA의 북부, 헐리우드 지역에 위치했다.커다란 부지 대부분은 촬영을 위한 세트장들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가장 안쪽에는 중요 오피스 건물들도 적지 않았다.
[스토리보드 작업실]영화 「착한 사람」가 공식적으로 프리프로덕션에 들어가면서, 시나리오를 스토리보드로 변환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스토리보드란 텍스트로 된 시나리오의 장면을 실제 영화의 한 컷으로 시각화한 결과물.
각 컷마다 인물의 구도, 의상, 소품까지 일일이 그려놓으면, 그걸 토대로 실제 장면을 촬영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이 시나리오… 아무리 봐도 미쳤는데요?”
피셔 감독과 지난 두 작품을 함께 합을 맞췄던 스토리보드 팀은, 「착한 사람」의 시나리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완벽주의자 피셔 감독이 이것만큼은 단 한 번도 수정을 시키지 않았다는 괴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겠어.”
실제로 시나리오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피셔 감독은 작품에 대한 아주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고, 그 비전을 100% 재현하기 위해서 아주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도 통제하기로 악명 높았다.
자신의 비전과 한 치의 오차라도 생기면 무한 수정 지옥에 빠지는 것이다.
당연히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가 가장 엄격하고도 혹독한 기준으로 반려 당했다.
– 일단 하루하루 천문학적인 금액이 깨지는 촬영이 시작되면 어쩔 수 없이 타협을 봐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걸 피하기 위해선 사전계획이 완벽해야겠지.
일반적인 영화는 포스트프로덕션(후반작업) 기간이 제일 긴 편인데, 피셔 감독의 경우는 프리프로덕션(계획) 단계가 가장 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깐깐한 피셔 감독이 한큐에 통과시킨 전설의 시나리오라… 도대체 이걸 누가 각색한 거에요?”
“저도 너무 궁금해서 확인했는데, 작가명이 공백이더라고요.”
“다들 원작 소설 읽어봤습니까? 원작의 찐 팬으로써, 각색된 시나리오가 조금이라도 거지 같으면 신랄하게 비난할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시나리오의 찐 팬까지 되어버렸습니다.”
“무슨 각색이 아니라, 영화에 맞춰서 새롭게 창작을 해놨어. 이 정도면 진짜 유명 시나리오 작가가 붙은 거 아니야?”
“팀장님은 귀띔받은 거 없습니까?”
팀장 클레이튼 클라크(Clayton Clark)는 고개를 저었다.
“작가 신상은 철저하게 기밀 유지가 되는 모양이더군. 너희도 너무 궁금해하지 마라.”
“네? …왜요? 작가라면 일단 피셔 감독 작품을 맡았다는 걸 알려야 경력이 쌓이는 거 아닙니까?”
“아! 혹시 피셔 감독이 자기만의 보물상자에 숨겨놓고 남들에겐 안 보여주려는 건 아닐까요? 이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면 앞으로도 작업을 함께 하시겠죠.”
“오, 그럴수도 있겠어. 이쪽 업계의 경쟁률은 엄청 치열하니…”
신나게 음모론을 펼치는 팀원들. 클레이튼은 모두를 집중시켰다.
“어차피 그건 아무리 입 아프게 떠들어봐야 우리가 알아낼 수 없는 일이고,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다.”
“……?”
“이번 프로젝트는 결재방식이 달라진다. 그동안은 스토리보드 장면이 완성되면 다이렉트로 피셔 감독님에게 컨펌 받았지? 이제는 먼저 특별 자문 위원을 거쳐야 한다.”
“……”
순간 팀원들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럴만도 했다.
“팀장님. 뭔가 잘못 된 것 같은데요? 피셔 감독님이 이 중요한 걸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리가 없습니다.”
“아니, 피셔 감독님이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1차 충격이 휩쓸고 지나가자, 문득 불쾌감을 나타내는 팀원들이 생겨났다.
“근데, 특별 자문 위원은 누굽니까? 스토리보드는 우리가 전문가인데, 그걸 검토할 자격은 됩니까?”
“그러게? 피셔 감독님이야 자기가 원하는 결과물이 정확히 있으니까 수정 방향을 이야기해줄 수 있지만… 괜히 고문관 취향 맞추다가 정작 피셔 감독이 최종 반려를 하면 우리만 삽질하는 거 아냐?”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다들 조용.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그냥 피셔 감독님이 다 뜻이 있어서 특별 자문 위원을 투입했다고 믿어야겠지.”
“……”
다들 어느 정도 수긍을 했지만, 여전히 불만스러운 몇몇이 있기 마련.
클레이튼 팀장 다음으로 실력이 뛰어난 루(Lou)가 으르렁거렸다.
“어쨌든 우리가 자문 위원님의 자.질.을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 일하기 편하다는 건 다 동의하시죠?”
“으음.”
“일단 최대한 빨리 교통 정리하는 걸로 합시다. 뭐, 실제로 팀장님급 사람을 한 명 더 뽑았으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도움이 될 것 같고, 아니면… 자기의 위치를 확인시켜줘야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않겠어요?”
클레이튼 팀장은 그 정도 텃세까지는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능력이 있는 자문 위원이라면 실력으로 돌파할 것이고, 없다면 고분고분 우리의 방식을 따르겠지.’
어쨌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클레이튼 팀장은 열정적인 팀원들이 썩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똑똑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하던가(Speak of the devil)?
프로덕션 매니저 데이비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계시죠? 앞으로 많은 도움을 주실 특별 자문 위원 로한을 모셔왔습니다.”
마침 잘 됐다는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루.
“……”
그는 순간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상대를 보곤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무슨 사람 피지컬이…?’
20대? 30대? 정확하게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사내. 그는 키도 6ft 5in(=195cm)쯤 되어 보이는 장신이었지만, 몸 전체의 균형이 상당했다. 그냥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
“……!”
특히 루는 눈을 마주치고는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상대는 정말 눈빛만으로도 나는 새를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기세를 풍겼던 것이다.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그런데 하필이면 자기가 로한의 앞길을 가로막은 형태. 로한이 루를 내려보며 물었다.
루는 거의 무조건 반사적으로 친절하게 웃으면서 안으로 그를 안내했다.
“잘 오셨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팀원들을 소개하고, 시설 투어를 시켜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굉장히 친절하시네요.”
“하하… 제가 성격이 좋아서 그런 말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루라고 불러주세요.”
“……”
루는 왠지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로한의 보조라도 된 듯 하루종일 곁에서 적응을 도왔다.
*
‘뭐야, 너. 간신이 따로 없네. 자문 위원 엉덩이를 헐게 해서 쫓아낼 생각이냐?’
‘있어 봐, 다 생각이 있으니까.’
물론 루는 이대로 패배를 받아들일 생각이 아니었다.
살짝 작전을 수정해야 했지만, 아직 뼈대는 그대로다.
그는 정글 같은 헐리우드에서 10년 가까이 살아남은 베테랑.
루가 팀원 한 명에게 신호를 보내자, 상대가 곧바로 자문 위원의 책상을 찾았다.
“씬 S#1.4 초고입니다. 혹시 수정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총 6페이지로 이루어진 씬 S#1.4.
루는 곁에서 그걸 지켜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시나리오의 어느 부분을 콘티화한 건지 적어 놓지도 않았고, 정작 스토리보드 페이지도 뒤죽박죽으로 섞어놨다.’
팀원이 건네준 그대로 한 장씩 넘겨보면 내용이 엉망이란 뜻이다.
시나리오를 달달 외우고 있지 않은 한, 자문 위원이 그 사실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문 위원이 이게 뭐냐고 팀원을 문책하면 그제야 페이지가 섞였다면서, 내가 순서를 맞춰주는 거야.’
스토리보드를 그려온 당사자가 아닌, 옆에서 얼핏 본 루가 바로 문제점을 찾아내고 손쉽게 해결한다?
그럼 상대적으로 자문 위원이 무능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시나리오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여지도 생긴다.
“저기요.”
그런데 팀원이 초고를 넘기고 뒤돌아선 지 5초는 됐을까?
자문위원이 바로 그를 불러세웠다.
“네?”
“이거 일부러 이런 식으로 저한테 준 겁니까?”
딱히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는데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 있었다.
자문 위원은 휙휙 – 대충 페이지를 넘기더니 순식간에 순서를 맞췄다.
루는 자기도 모르게 바로 개입했다.
“야, 너 초고 순서를 엉망으로 드렸어? 정신을 어디다가 두고 다니는 거야?”
“……?”
“자문 위원님이 능력이 출중하셔서 바로 알아차리신 거지… 한참 시간 낭비하실 뻔했잖아. 다음부터 조심해라.”
“……??”
“와, 저도 조금은 헷갈릴 것 같은데, 어떻게 보자마자 눈치채셨습니까? 정말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미국 피지컬 천재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