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5
65
연출팀 회의실에는 「착한 사람」의 스토리보드가 한 장씩, 장면별로 나열되어 있었다.
“…음.”
피셔 감독은 가만히 그걸 내려다보며 각 장면을 연상하며, 머릿속으로나마 가상 촬영을 진행했다.
카메라의 각도, 동선, 조명, 음향등 장면에 적합한 연출 기법을 다양하게 바꿔가면서 최적의 방식을 찾는다.
이따금씩 연출팀이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만, 보통은 침묵 속에서 피셔 감독이 스토리보드 옆에 기법을 메모하는 방식이었다.
숏 리스트(Shot list: 각 장면에 필요한 모든 촬영 컷이 정리된 리스트)의 초안을 잡는 과정.
이 숏 리스트가 완성되면 촬영팀의 규모, 촬영 장비 목록, 장소 섭외 등 본격적인 프로덕션 준비가 시작된다.
똑똑 –
마침 피셔 감독의 부름을 받은 데이비드가 도착했다.
“감독님. 이게 최종 스토리보드인가요?”
“그래.”
이미 진행 상황을 듣고, 몇 페이지는 직접 보기도 했지만 믿기 힘든 결과였다.
피셔 감독이 몇 가지 장면에서 이견을 제의하고 조율을 한 적이 있지만… 평소의 무한수정지옥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다른 작품에서도 똑같은 능력을 보여주실 수 있… 음.. 어쨌든 다음 프로젝트에도 한 번쯤 참여를 부탁드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로한이 원작 작가인걸 모르는 연출팀을 떠올리곤, 급히 화제를 돌렸다.
“무조건. 앞으로도 우리와 작업을 하고 싶으시도록, 대우에 확실하게 신경쓰도록.”
“그럼요. 이미 스토리보드 팀에서는 영웅이나 다름없으시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겠지.”
스토리보드 팀은 기간에 맞춰서 월급이 나가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완수를 조건으로 협의가 이루어진 수당이 지급된다.
그런데 최소 두 달을 예상한 작업이 3주로 줄고, 골치 아픈 문제 없이 보너스까지 받았다.
능력이 출중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사회 경험이 부족해서 한동안 적응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던 자신들이 우스웠다.
“자, 오늘은 이 정도로 하고… 내일 다시 시작하지.”
연출팀이 자리를 비우자, 형제는 그제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자문 위원님 보너스도 신경 써야지?”
“당연한 말을… 자기 몫까지 스토리보드 팀에 챙겨달라고 말씀하셨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스토리보드가 이 정도로 빠르고 완성도 높게 마무리된 건 전적으로 로한의 공로였다.
“예산을 기존의 계획보다 많이 얻게 된 것도, 프리프로덕션 기간을 대폭 줄인 것도 전부 고려한 보너스를 책정하자고.”
“음… 고블린 영감의 결재가 필요 없는 선에서?”
“쯧. 아직도 일 처리가 미흡하군.”
“…미안. 어디까지 생각하는 건데?”
피셔 감독은 스토리보드를 한 번 훑으며 힌트를 주었다.
“아!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처럼, 스토리보드를 들고 가면 구두쇠 고블린도 보물창고를 연다?”
“그렇지.”
“좋아. 그건 내가 책임지고 받아오지. 베스트는 이미 받은 제작비에 얹어서 보너스를 따로 책정받는 거지?”
“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말귀를 알아먹으니 다행이군.”
데이비드는 감독의 시험을 통과한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니까.’
언제든 자신의 목을 날릴 수 있는 냉정한 감독.
둘은 이후 나름 훈훈한 분위기에서 업무에 대해 논의했다.
“아, 맞다.”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중요한 용건이 있음을 떠올렸다.
“자문 위원님은 이제 집에 돌아가셨다가, 프로덕션(촬영) 때 오기로 하셨잖아. 근데 지나가듯 캐스팅에 대해서 물어보시더라?”
“캐스팅?”
“그냥 주연에 내정된 배우는 있는지, 오디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이런저런 질문이 많으셔서 성심성의껏 대답은 해드렸어.”
“하지만 물어본 의도가 따로 있으신 것 같다?”
역시 형제라 둘은 서로의 뜻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작품이 영화화되는 거니까 개인적인 호기심도 있으시겠지만… 자문 위원님의 말씀을 허투루 하는 편이 아니시잖아?”
“그렇지. 혹시 캐스팅에 참여하고 싶으신 건가?”
“확신하긴 어렵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 감독님 생각은 어때?”
둘은 어느새 로한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가볍게 넘기기가 어려웠다.
피셔 감독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조용히 스토리보드를 몇 장 넘겨봤다.
그는 직접적인 대답 대신, 아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더군. 내가 이번 스토리보드에 별로 관여하지 않은 걸 보고.”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아무리 스토리보드 수준이 높다지만… 감독의 작품관에 안 맞을 수 있잖아. 그런데 의외로 그냥 넘기더라?”
“단순히 그런 문제가 아니다.”
피셔 감독은 스토리보드의 한 장면을 데이비드에게 넘겼다.
“아, 이 장면. 잘 알지. 작품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잖아.”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
완벽한 삼각 구도를 이루고 있는 세 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출산을 하다 죽은 아내.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
그리고 주인공.
자신의 인생에 고통만을 주었던 아내가 죽었다.
그래도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지만, 안타까움보다 후련한 마음이 커서 주인공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죽어서까지 자신에게 골칫덩이를 남기는 것까지, 참 아내답다.
주인공은 그런 아이를 두 손으로 들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다.
“원작이랑 달라져서 많이 고민하고 있지 않았어?”
“그래. 하지만 결국 자문 위원의 각색을 따르기로 했어.”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아이를 짐덩이처럼 생각하고, 하루 빨리 아동 보호 시설로 치워버리고 싶어했지만… 영화화를 고려한 각색인지 그 내용을 비틀었다.
그 시작점이 바로 이 장면.
“원작과 달리, 여기서 주인공은 아이에 대한 살인 충동을 느껴. 이대로 목을 살짝만 비틀면 그대로 죽어버릴 텐데.”
주인공이 평생 살면서 지금까지 억눌렀던 화가, 바로 아이의 탄생을 계기로 폭발한다. 다만 냉정한 분노다. 이성을 온전히 유지한 채, 상상만 해보는 것이다.
이후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분노를 달래야 했다. 분유를 먹이면서도 독극물을 섞고 싶고, 울음이 그치지 않으면 입을 막고 영원히 잠재우고 싶었다.
일상도 많이 달라졌다.
상사에게 가만히 구박을 듣는 대신, 따박따박 할 말을 했고, 다른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언성을 높이지 않으며 냉정한 분노로 대처했다.
“의외로 아이가 태어나면서 더 이상 참지 않게 된 거지. 원작이랑 결과는 똑같지만 과정이 달라.”
원작에서는 아이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면서, 이미 죽었으니 아내를 조금이나마 용서하고,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로써 강해진다는 좀 뻔하지만 클래식한 빌드업을 한다.
다만 각색에서는 분량의 확보를 위해 그걸 대폭 삭제하고,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는 짧지만 강렬한 동기를 새롭게 부여한다.
“그렇게라도 조금씩 분노를 해소해야… 아이를 죽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아이를 볼 때마다 너무 큰 분노에 휩싸이는데, 다른 것마저 참으면… 아이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주인공은 자신의 이런 감정 변화가 너무 낯설었지만, 큰 분노를 달래기 위해 작은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상화하기에 훨씬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전개다.’
피셔 감독은 그래도 원작의 느낌을 더 좋아했고, 어지간하면 평소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겠지만… 각색된 시나리오, 그리고 완성된 스토리보드를 보고 마음이 확고해졌다.
“처음이다. 수정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본 것은.”
피셔 감독은 그 어떤 시나리오도 철저하게 자신의 스타일로 바꾸는 작업방식을 선호했다.
그래서 모든 시나리오 작가 크레딧에, 자기의 이름도 함께 들어갔다.
‘그래야 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비판도 적지 않게 들었다.
– 미국만 사랑해주는 영화감독. 결국 자기 동네에서만 어깨 펴는 지방의 실력자.
– 작품성과 흥행성 둘 다 잡았다? 아카데미도 한 번 못 받았고, 미국에서나 매출 50위. 전 세계적으론 100위 바깥이다.
– 어떤 새 영화를 찍어도 똑같다. 안 봐도 뻔한 맛. 매너리즘에 빠진 피셔 감독.
자기의 확고한 틀로 성공했고, 그 틀을 점점 날카롭게 벼려 성적으로는 지난 두 작품 정점을 찍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본 만큼 평점은 오히려 하향 곡선을 그렸다.
“‘A Good Man,’ 영화 각색은… 그대로 재현해보고 싶다. 이걸 최대한 어떻게 가장 잘 살릴 수 있을지, 그 고민만 하고 있어.”
“……!”
스토리를 완전히 신뢰한다는 뜻.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 리스크가 상당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보상도 굉장할 수 있다.
“캐스팅에 참여하실 수 있는지 부탁드려보자. 그분이 상상하고 있는 영화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군.”
“……”
데이비드는 열의에 가득 찬 피셔 감독의 모습을 보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직도 더욱 좋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열망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처음 메가폰을 들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피셔 감독은 만족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결과 영화 「A Good Man」에 대한 로한의 권한은 캐스팅에까지 확장되었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그는 모두가 놀랄만한 기여를 했다.
*
비록 스토리보드 작업을 3주 만에 끝냈지만, 덕분에 일정을 앞당긴 캐스팅 과정에 참여하며 나는 기존에 계획했던 LA행을 두 달 꽉 채웠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피셔 감독은 주조연 배역의 오디션을 직접 주관했다.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가상의 존재들이…’
피셔 감독의 이름값, 그리고 부끄럽게도 내 작품에 대한 기대치로 수많은 유명 배우들이 지원해주었고, 그들이 오디션에서나마 내가 쓴 대사를 눈앞에서 연기하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느꼈다.
심지어 내 심상 세계를 자극하는 배우들도 몇몇 있었다.
배역에 120% 빙의해서 내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 넣은 분들.
‘이래서 사람이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구나.’
그분들의 연기를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동안 써놨던 습작들이 영향을 받았다.
습작 속에 비슷한 등장인물들이 더욱 생동감 넘치고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진화했던 것이다.
분명 스토리는 그대로인데, 캐릭터가 좋아지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퀄리티가 월등히 좋아졌다.
특히 내가 지금 작업하고 있는 코믹스, 「더 섀도우: 레거시」가 가장 큰 수혜를 받았다.
기존에 썼던 1~3편을 매력이 넘치는 주조연으로 다시 리메이크하니, 스토리가 한 단계는 더 재밌고 풍부해진 느낌이었다.
작품을 완성하면 언제나 그랬지만, 이걸 얼른 세상에 선보이고 싶다는 열망이 유독 강렬했다.
‘어쩔 수 없이 미뤄놨던 코믹스 출판사 관계자들을 슬슬 만나봐야겠어.’
어쨌든 영화의 준비 단계, 즉 프리프로덕션의 막이 내리고 나는 피셔 형제와 작별 인사를 했다.
–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주조연들의 스케쥴에 맞춰서 정식 프로덕션 일정을 조율할 생각입니다. 아마 최소 3~4개월 후가 될 테니 그동안 긴밀하게 연락드리겠습니다.
무려 3개월이나 되었던 여름방학이 이제 겨우 2주 남은 시점.
나는 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다시 짐을 챙겨야 했다.
이번에는 미식축구 장비를 일일이 챙겨서.
“오, 그동안 몸 좀 만들었는데?”
웨이드 존스와 대런 로저스가 동행이었다.
“나야 숨만 쉬어도 몸이 좋아지는 편이지. 조연인 로한 너의 몸이 더 뛰어난 건 날 자극해 더 열심히 노력하게 하는 목적이 전부이니, 너무 우쭐하지 말도록.”
“……”
대런은 이제 웨이드의 헛소리에 반응도 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럼 이제 전국구 고교 선수들에게 이 웨이드 존스의 존재를 알리러 가볼까?”
“……”
나와 대런은 웨이드를 뒤로하고 먼저 집결지로 향했다.
“거기 가선 쟤 그냥 모른 척 하자.”
“아주 훌륭한 의견.”
*
고교 스포츠에 진지하게 임하는 학생들은 모두 Division 1(미국 대학 중 상위 1%만이 참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대학 스포츠 리그 소속) 대학으로의 진학을 꿈꾼다.
특히 전액 장학금을 보장받는 Full ride 선수로 대학에 리크루트 되는 걸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실력을 노출할 기회가 있어야 했다.
소속 고교 리그에서의 활약은 기본이고, 더 규모가 큰 지역구 대회에 참여할수록 대학 관계자의 이목을 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더욱 확실한 방법은 여름방학마다 대학 주관하에 진행되는 미식축구 캠프의 초청을 받는 것.
고교 선수들이 캠프 일정 동안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대학 수준의 훈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은 우수한 고교 자원을 직접 테스트하며 일찌감치 점찍어 놓는 행사나 다름없었다.
“야, 들었어…? 이번 에이펙스(Apex: 정점) 캠프에 더 빌런이 온대.”
“아… 설마설마했는데… 이제 에이펙스도 갈 데까지 갔네.”
“완전 캠프 엉망되는 거 아니냐? 걔 완전 관종이라 이번엔 신나서 전국구 사고 칠 듯.”
“다들 여친 간수 잘해라. 리버티 고교 애들 아직도 고통받는 거 알지?”
“새끼들 쫄긴. 그쪽 동네에서나 어깨에 힘주지, 전국구 무대에선 자라나는 새싹 아님?”
“이번에 정신교육 좀 시켜야 할 듯. 여기 와서도 자기 멋대로 굴 수 있는지 함 보자고.”
미식축구 여름 캠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명망이 높은 ‘3개 대학 합동 에이펙스 캠프.’
주관 대학뿐만 아니라, 수많은 Division 1 소속 대학 관계자들이 올해 에이펙스 캠프를 예의주시했다.
“오, 온다.”
로한의 이름이 고교 미식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2023년 여름 캠프가 시작되었다.
미국 피지컬 천재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