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68
68
로한은 플레이가 시작되자마자 그냥 직진으로 뛰었다.
“……!”
별다른 풋워크나 페이크를 가미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뒤따르는 체이스와 점점 격차가 벌어졌다.
순수 달리기는 꽤 자신이 있었던 체이스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체감 속도는 데이터 수치보다 더 빠르다!’
눈 깜짝할 사이 30야드나 뛴 로한이 항의의 표시로 쿼터백 역할을 하고 있는 코치를 돌아봤다.
그제야 멍하니 보고 있던 코치가 롱패스를 던졌고, 체이스가 마지막 발악으로 점프까지 높게 뛰었지만 아쉽게도 손이 공에 닿지는 못했다.
덕분에 로한은 가만히 서서 여유롭게 공을 받았다.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지켜보던 학생들이나 관계자들은 헛기침만을 했다.
“음, 내가 보여준 풋워크나 이동 경로를 조금이나마 따라할 줄 알았는데… 그게 좀 어려웠나? 단순 무식하게 뛰기만 할 줄은 몰랐네.”
– 추하다, 추해.
– 그냥 처발린 거 인정하지… 괜히 센 척하니까 더 없어보이네.
변명 아닌 변명을 해봤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껴서요.”
“……”
– 오오오! 역시 더 빌런. 대학 랭킹 2위 따윈 안중에도 없다 이건가?
– 재수 없지만, 개 멋있다.
특히 무덤덤하고 짧게 대답하는 로한이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워두면 좋을 거야. 코너백이야 비슷한 선상에서 시작하지만, 세이프티는 뒷선에서 수비를 보잖아. 네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세이프티를 제칠 수가 없어. 그럼 이번에는 뭐든 좋으니까 기술을 좀 써볼래?”
“원하신다면.”
“……”
딱히 무례하진 않아도, 점점 신경에 거슬리는 태도.
‘저렇게 빨리 뛰는데 익숙한 놈이면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게 쉽지 않을 거다.’
체이스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다시 일대일을 준비했다.
다시 마주 선 둘.
삑 !
체이스는 호루라기가 불기 직전, 애매한 시점부터 이미 뛰기 시작했다.
관계자들이 눈살을 찌푸려도 상관없었다.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면 안 되는 상황.
‘사람 몸이 무슨 탱크 같다!’
좀 구차해도… 은밀한 몸싸움까지 서슴지 않은 결과, 거리를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헙!”
그때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로한이 왼쪽으로 틀 것처럼 몸을 움직였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있기 때문에, 연계 동작도 무척 컸다.
보통 저 정도의 덩치라면 움직임이 둔하기 마련인데… 로한은 말도 안 되게 민첩했다.
‘미친, 페이크였다고??’
로한은 그 짧은 찰나, 실제로 온몸이 왼쪽으로 쏠렸다가 금방 180도를 돌며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체이스가 로한의 페이크에 100% 속은 것.
뒤늦게 무리해서 몸을 꺾었지만, 체이스는 볼썽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덕에 로한은 아예 살살 걸으며 캐치볼 하듯 유유히 패스를 받을 수 있었다.
“……”
지켜보던 학생들은 입을 꾹 틀어막았다.
체이스는 더 이상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로한은 무표정하게 가만히 서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속을 긁었다.
‘내가 처음에 보여준 동선과 페이크를 그대로 재현했다.’
문제는 자신이 목표했던 앵클 브레이크(Ankle Breaker: 효과적인 페이크로 수비수가 완벽하게 속아넘겨 넘어지게 하는 행위)를 로한이 아닌 자기가 당했다는 것.
그때 로한은 쓰러져 있는 체이스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잘 배웠습니다. 쓸만하네요.”
치욕스런 상황에서 가까스로 참고 있던 것도 거기서 한계였다.
“뭐 이 새끼야?”
체이스는 벌떡 일어나 로한을 밀쳤다.
“아까부터 띠거운 표정이나 말하는 싸가지가 없어도 너그럽게 봐줬더니, 뭐어? ‘쓸만하네요??’ 이젠 못하는 말이 없네?”
아무리 자유분방한 미국이라도 미식축구의 위계질서는 군대만큼 엄격하다.
직속 후배가 아니더라도, 캠프 안에서는 코치만큼의 권위가 허락됐다.
“오호.”
안 그래도 자존심이 상한 체이스는 위협적으로 로한을 몰아붙였지만, 상대가 좋지 못했다.
로한은 오히려 기꺼운 얼굴로 으드득 – 몸을 풀기 시작했다.
“이제부턴 정당방위인가?”
“잠깐!”
다행히 일찌감치 기세를 읽은 웨이드 존스가 발로 체이스를 밀어내면서 로한을 붙잡았다.
“이미 이 많은 사람 앞에서 개망신을 줬는데, 먼지나도록 패면 쟨 다신 얼굴도 못 들고 다녀. 그러다 사고라도 치면 어떡해.”
“음, 일리가 있군.”
“이 새끼들이??”
눈앞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둘을 보며 체이스는 잠깐 이성을 잃었다가, 이번에는 자신을 꽉 잡는 웨이드의 압도적인 힘에 정신을 차렸다.
‘무슨 놈의 힘이??’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도…’
워낙 로한이 특출나서 묻힌 거지, 따지고보면 웨이드도 전국 탑 레벨 피지컬의 소유자인 것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내가 지금 당신 목숨 구해준 거야. 평생 고마워하면서 살도록.”
“……”
체이스는 질린 얼굴로 그런 둘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진짜 제대로 미친놈들이다…’
*
어느덧 에이펙스 캠프 4일차가 마감되고, 마지막 하루를 남겨두었다.
“하아… 머리 아프다. 순위 매기는 게 원래 이렇게 어려웠나?”
“점점 고교 선수들의 실력이 우상향해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유망주들이 많아지는 건 기꺼운 일이지. 이런 새싹들을 일찌감치 발굴하는 맛에 내가 리쿠르터 하지.”
에이팩스 캠프는 주관하는 3개 대학뿐만 아니라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50여개의 대학 리쿠르터들도 한 자리에 모인다.
그들의 역할은 캠프에 참가한 300명의 역량을 평가하고 개인 레포트를 쓰는 것.
체력검정 기록을 바탕으로, 각종 훈련에 임한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고, 그것을 종합하여 캠프 최종 랭킹을 공표한다.
포지션별 랭킹은 물론, 300명을 줄 세운 종합 랭킹까지.
“이번 캠프를 끝으로… 전국 랭킹에 파란이 일겠어.”
“이렇게 단숨에 순위가 급상승한 선수가 여태껏 존재한 적이 있나?”
에이펙스는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망 높은 여름 캠프라, 일단 자체 랭킹이 발표되면 미국 미식축구 고교 협회의 공식 랭킹에도 즉각 반영되었다.
그러니까 단 5일간의 캠프만 잘 소화하면 전국적인 인지도가 상승하는 꼴.
보통 주니어(Junior: 11학년)때의 랭킹에 따라 거의 대학 진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고교 선수들이 에이펙스 캠프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올해는 유독 분위기가 과열되는 양상이었다.
드르륵 –
그때 미식축구팀 작전회의실에 테일러 감독 및 코치진들이 들어섰다.
“허허허, 다들 고생이 많군. 그럼 바로 회의에 들어가도록 하지.”
하루 일정이 끝난 후 가지는 일일보고 시간.
각자 담당하는 학생에 대한 레포트를 매일 제출하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은 구두로 논의했다.
“그래,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치던가?”
“아… 그게 말입니다.”
첫 회의에는 분명 각 포지션별로 눈에 띄는 두세 명을 돌아가면서 다루었다.
그런데 겨우 2일차부터 일단 먼저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야기가 되지 않는 화제의 인물이 생겼다.
“오늘은 ‘그’ 선수가 라인맨, 그것도 센터 포지션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 센터라면 그 아이에게도 쉽지는 않았겠어.”
로한은 상대적으로 체격이 크면서도 말도 안 되게 민첩한 것이 최대의 장점.
여러 포지션에서 활약하기 좋은 축복받은 신체 조건을 지녔지만, 상성에 안 맞는 포지션이 딱 하나 있었다면 그건 바로 라인맨 중에서도 중앙을 맡는 센터.
센터는 동선이라고 할 것도 없이, 플레이가 시작되면 바로 상대 라인과 맞붙어서 힘겨루기를 하는 상남자의 포지션이었다.
오로지 크고, 무겁고, 힘이 세면 끝.
그래서 캠프에 참여한 센터 선수들 대부분이 로한보다 컸고, 몸무게도 모두 300lbs(=136kg) 이상 나갔다.
아무리 로한이라도 그 사이에서는 기를 펴기 쉽지 않을 텐데…
“표정을 보니… 또 한 건을 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조교 선수들에게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일대일을 신청하더군요.”
“대학생이라고 승부욕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 허허허.”
체이스는 로한과의 일대일 이후, 먼저 선수를 밀쳤다는 이유로 캠프에서 쫓겨났다.
로한도 와이드 리시버 포지션 훈련에서는 열외되었지만, 어쨌든 캠프에는 남았기 때문에 그것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대학 조교 선수가 많았다.
“로한을 혼쭐 내주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후우…”
참관했던 리크루터는 오늘의 훈련을 회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학 센터 랭킹 5위 안에 드는 로드니가 훈련이 시작되자마자 일대일을 신청했는데, 로한은 기다렸다는 듯 승낙했습니다.”
“무모하지만, 그 아이답군.”
센터의 일대일은 스모 경기나 다름없다.
기술, 기교없이 순수 힘 대결을 펼치는 것. 몇 발자국 밀리는 순간이 곧 패배였다.
“일대일이 시작되자마자 로한이 그냥 로드니를 내동댕이쳤습니다.”
“……???”
“그러자 눈이 뒤집힌 로드니가 다시 달려들었고, 로한은 무슨 투우사라도 된 듯 로드니를 훌쩍 뛰어넘었죠.”
아주 가관이었다.
빨간 망토만 없었을 뿐이지, 정말 투우사 그 자체였다.
로드니가 아주 죽여버리겠다는 기세로 달려오면 로한은 그럴 때마다 날렵하게 몸을 피해 꼴이 우습게 만들었다.
특히 마지막. 나중에 실수라고 사과했지만, 로드니가 돌진하다가 로한의 다리에 걸려 얼굴이 바닥에 처박혀버렸다.
“허허허허….”
테일러 감독의 웃음소리가 점점 힘이 없어졌다.
“이로써 와이드 리시버, 코너백, 러닝백, 쿼터백, 세이프티에 이어서 센터 포지션의 조교 선수까지 망신을 준 건가…”
무슨 도장 깨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로한은 지난 3일간 6개의 포지션을 순회하면서 대학 선수 한 명 한 명을 깨부쉈다.
비록 그것이 대학 선수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해도, 그들의 권위와 자존심에 흠이 간 것은 사실.
“정말 악마의 재능이라는 말이 정확하군.”
테일러 감독은 물론, 회의에 참석하는 모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체력 단련이나 전술 훈련을 참여하는 태도는 어떤가?”
이번에는 코치진 쪽에서 난감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 이런 말씀을 드리기 좀 그렇지만, 체력 단련이랑 전술 훈련 모두 굉장히 성실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거기서의 모습만 보면 모범생이 따로 없어요.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도 쉽게 이해하고, 실수를 범하는 일도 좀처럼 없습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진짜 열을 아는 스타일이죠.”
“허허허허…”
조교 선수들의 포지션 훈련에서는 영혼을 탈탈 터는 악마 같고, 코치진의 훈련에서는 모두의 모범이되는 천사 같고.
동일 인물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온도 차이였다.
테일러 감독이 가만히 의자에 기대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공격 코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감독님.”
“뭐지?”
“대학 조교 선수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걸로 하시죠.”
“내일 경기 말인가?”
“그렇습니다. 캠프의 취지가 고교 선수들에게 더 높은 차원의 미식축구를 경험하게 하여, 일종의 자극을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교 리그와 대학 리그의 수준 차이는 과장을 보태 하늘과 땅 차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더 성숙한 것은 물론, 프로레벨 훈련 시스템을 적용하는 시점이며, 시즌 때에는 프로선수에 비견하는 훈련량을 소화했다.
에이펙스 캠프는 일부러 정상급 대학 선수들을 초청해, 지금 자신이 최고인 줄 아는 고교 선수들의 견문을 넓히고, 더 열심히 노력할 수 있도록 채찍질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로한에게는 오히려 역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 선수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아주 득의양양해졌죠.”
“그래서?”
“내일 경기에서만큼은 대학 수준의 팀이 어떤 모습인지 깨닫게 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
테일러 감독은 곧바로 대답을 하진 못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재밌긴 하겠군.’
*
에이펙스 캠프 5일차이자 마지막 날.
미식축구 여름 캠프답게, 정식 경기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었다.
‘역시 에이펙스라서 그런지 스케일이 상당하단 말이야.’
놀랍게도 스포츠 전문 케이블 채널과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실시간 중계가 되고, 실제 관객이 들어서는 경기였다.
‘그것도 무려 5만명이라…’
스탠퍼드 스테이디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을 보니 피가 들끓기 시작했다.
오클랜드 고교의 미식축구 경기는 정말 많을 때 관객이 2만명 남짓.
다리우스와 치렀던 복싱 경기도 그 수준이었다.
그때도 정말 너무 많은 관객이라고 생각했는데, 5만명은 상상을 초월했다.
다른 학생들은 대학 리쿠르터는 물론, 프로 스카우터까지 왔다는 소식에 잔뜩 긴장을 한 눈치였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그냥 이 많은 관람객의 환호와 야유를 들으며 경기를 뛸 생각에 미친 듯이 흥분되었다.
얼른 경기장을 가로지르고 싶었다.
[전국 최고의 고교 선수팀 vs 평균적인 대학 선수팀]우리는 경기 시작 전, 간단하게 몸을 풀기 시작했는데… 간혹 상대팀과 눈이 마주쳤다.
‘거의 뭐, 사람 한 명 담글 기센데?’
어째서인지 다들 나만 쳐다보고 있는 기분.
나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똑바로 마주보며, 씨익 웃어주었다.
그리곤 이미 주눅 들어 있는 우리팀에게 격려의 한 마디를 전했다.
“오늘 지면, 너흰 내 손에 죽는다.”
“……!”
난 긴장 풀라고 농담을 한 것이지만, 어째서인지 다들 더 경직된 듯했다.
미국 피지컬 천재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