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
7
‘돈을 벌어야 한다.’
항상 생각하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서 나의 의지는 더 확고해졌다.
그동안은 ‘로한’이라는 새로운 인생에 익숙해지는데 정신이 없었다. 언제든 자고 일어나면 이 ‘꿈’에서 깨어날 거란 불안감도 있었고.
그런데 사람의 적응력이 참 무서운 게, 그것도 일주일이 지나니까 내가 ‘로한’이라는 게 점점 받아들여지더라.
그쯤 되니까 인생의 방향성이 조금은 생겼다.
‘언제까지고 얹혀살 수 없지.’
내 입장에선 그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게 당연했다.
따지고보면 나는 ‘남’이잖아. 엄마와 아직 출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는 껍데기만 ‘로한’인 나를 부양하고 있는 처지였다.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내가 전생에서 가장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이 바로 누군가의 짐이 되는 것. 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삶은 무력하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 내 영혼 깊숙한 곳에 상처로 남아 있었다.
과거의 족쇄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려면 완전한 독립을 이뤄내야겠지.
‘일단 소설을 써보자.’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마음먹자, 가장 먼저 글을 써보고 싶었다.
아직 내 머릿속에는 전생의 마지막 1년을 불태워 집대성한 작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약 30년간 활자중독자로 산 사람으로써 그 작품들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상업적인 성과를 올리는 것과는 별개로 각 작품의 수준 자체는 내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결과는 부딪혀봐야 알겠지.’
나는 최대한 자유 시간을 활용하여 집필을 이어갔다.
“‘소포를 확인했다. 발신자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다만 수신자는 정확하게 내 이름 석자와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수상했다. 지금은 배달 업체가 아파트를 도는 시간도 아니어서 선뜻 소포를 뜯기가 그랬다. 그래서 그냥 바깥에 내버려두었다. 반품을 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차라리 누가 훔쳐가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처음은 [미제 7]이란 작품으로 결정했다.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내 습작 대다수는 제목 대신 순차적으로 넘버링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미제 7]은 내가 7번째로 집필한 작품이란 뜻.
굳이 분류를 하자면 초기작에 해당되어 글솜씨가 무척 투박하지만 그만큼 이야기에 힘이 넘쳤다.
‘스토리가 그냥 쏟아져나왔어. 나는 간신히 고삐를 잡고 방향만 잡아줄 뿐.’
이제 막 집필을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아이디어가 마구마구 샘솟았다. 실제로 집필을 시작하니 댐이 무너진 듯 스토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때는 정말 신나게, 거침없이 소설을 완성했다. 심지어 퇴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퇴고를 하면 퇴고를 할수록 글이 밋밋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랄까? 그걸 죽이면 차라리 안 쓰느니 못한 작품이었어.’
그래서 결과물이 거칠었지만, 그것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끝났다.’
나는 총 한 달에 걸쳐 [미제 7]을 완성했다.
아무래도 전생에는 모든 작품을 한글로 집필한만큼, 이번에 영어로 번역하느라 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다.
‘로한’의 기본적인 어휘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전생의 나라고 해서 번역이 뛰어난 건 아니라 골머리를 많이 썩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집중력이 좋아졌단 말이지.’
몸이 젊어져서 그런가? GED를 공부할 때도 느꼈지만, 내 스스로가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이 좋아졌다.
어려운 개념도 금방 이해하고, 영어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나중에는 번역이 아닌 영어로 직접 저술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미제 7이 그나마 구조가 단순하고 쉬운 내용이라 이 작품부터 번역하기로 한 거지만…’
나는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일단 [미제 7]을 완성하는데 집중했고,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
완성된 [미제 7]을 손으로 쥐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생에는 모든 작품이 디지털 파일로만 저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도서관을 찾아가 모두 출력했다.
고작 프린트물을 한데 뭉쳐놓은 것이라지만, 물리적인 종이로 나의 작품을 손에 들자니 감정이 격해졌다.
‘이게 실제 책으로 출간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해도 즐거웠다.
나는 [미제 7]을 다시 한 번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했다.
‘재밌다. 내가 쓴 작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는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들자, 유명 출판사의 투고 메일을 종합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가장 큰 메이저 출판사 다섯 곳을 빅5라고 부르는데, 그곳들을 포함해서 투고 메일을 구할 수 있는 총 50곳을 리스트업했다.
그 이외에도 수시로 원고를 모집하는 작가 에이전시 연락처도 50곳을 취합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원고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
“……”
하지만 막상 이것을 세상에 선보인다고 생각하자 두려움이 앞섰다.
나는 재밌게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대중의 반응도 무섭고, 전문가들의 비평도 두려웠다.
단 한 번도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선뜻 이메일을 보내기가 어려웠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총 100곳에 나의 원고를 보냈다.
“으악…”
남들이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니 혼자 자다가도 이불킥을 했다.
‘메일을 다시 회수할 수만 있다면…’
이젠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
미국의 3대 스포츠는 미식축구, 농구, 야구다.
아무래도 미식축구가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고, 농구가 야구보다 미세하게 조금 더 인기가 있는 수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미식축구 시즌이 가장 먼저 시작되고 이어서 농구, 그리고 야구는 가장 마지막에 개막한다.
“이제 곧 있으면 울학교 미식축구 첫 경기네? 누구랑 붙냐.”
“아무리 신입생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걸 모르냐. 개막전은 항상 라이벌인 퍼시픽 하이츠랑 붙잖아.”
“아, 개같네. 걔네 노스캘(North Cal: 캘리포니아 북부) 챔피언이잖아. 전국 대회에도 종종 초대되고…”
오클랜드는 비록 전국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고등학교였지만, 스포츠 부문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재학생이 1500명 이상의 큰 고등학교이다보니 애초에 인재풀이 넓었고, 전반적인 학교의 분위기상 공부 따위는 관심도 없다보니 스포츠에 인생 전체를 건 학생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 또 모르지. 퍼시픽 하이츠 상대로는 애들 눈이 뒤집히다보니까 업셋도 종종 일어나잖아.”
“아, 진짜? 그건 몰랐네?”
“와, 넌 아는 게 뭐냐. 퍼시픽 하이츠 상대로 대부분 지긴 하지만, 가장 치열하게 임하고, 싸움도 가장 많이 나서 항상 관객수가 가장 많은 경기야.”
“이야, 패싸움이 난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 있어. 그게 바로 아마추어 미식축구의 꽃 아니겠어?”
“특히 이번 3, 4학년들은 대학에서도 넘보는 유망주가 많아서 꽤 볼만할걸? 작년에도 노스캘에서 3위 안에 들었는데, 주전 선수 대부분이 남았어.”
“3위?? 그럼 올해는 1, 2위도 가능한 거 아님??”
“당연하지. 그래서 학교에서도 예산을 대폭 늘렸을 걸. 덕분에 대형 신인들도 많이 입학해서, 올해 트라이아웃은 치열할 거라고 했어.”
“와우. 트라이아웃은 공개 시험 아냐? 우리도 구경가자.”
“무조건이지. 우리 오클랜드 고등학교의 최대 행사 중 하나야. 미식축구부 트라이아웃. 거의 전교생 대부분이 모일 걸?”
이제 곧 미식축구 시즌이라서 그런지, 교내 곳곳에서 열띤 토론이 열렸다.
– 이번에 로저스가 주장 됐다며? 작년,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활약하더니 바로 주장 발탁이네. 미쳤다.
– 로저스는 전국구지. 로저스 보고 퍼시픽 하이츠가 아닌 우리 학교 선택한 유망주도 있을 걸.
– 맞아. 걔, 누구냐. 이번 신입생 존스가 그런 경우잖아. 중학교 캘리포니아 챔피언 출신인데, 다른 러브콜 다 뿌리치고 우리 학교 왔어.
– 미쳤다. 노스캘 우승에 전국 대회까지 노려볼 수 있겠는데??
– 충분히. 올해 트라이아웃(입부 시험)은 훨씬 기대되는 듯. 신입생들의 질이 완전 달라.
*
그런 열기는 오클랜드고교 미식축구부 내부에도 전염되었다.
“발이 보인다! 더 열심히 안 뛰어?? 5바퀴 더 돈다!!”
“밀어, 밀어, 밀어! 고작 그것밖에 안 되나!! 가서 분유라도 타줄까??”
“돌대가리야. 전술을 그새 잊었어?? 아예 팔에 문신으로 새겨버린다!!”
학기 초부터 훈련 강도를 높였다. 아직 신입들을 뽑는 트라이아웃 전이었지만, 어차피 리그는 대부분 3, 4학년을 주전으로 내세운다.
지금의 인원이 95% 확률로 최종 멤버.
10일 앞으로 다가온 개막전, [퍼시픽 하이츠 vs 오클랜드] 경기를 앞서 코치진은 선수들의 마지막 땀한방울까지 쥐어짜냈다.
“훈련 끝이다 이 애송이들아. 내일도 오늘처럼 형편없는 체력을 보여준다면 모두 퇴출시킬 줄 알아!”
선수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락커룸으로 향했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찬물로 샤워를 하고 힘겹게 옷을 갈아 입었다.
“로저스, 너 그거 들었어?”
오클랜드 고교에는 몇 없는 금발 백인의 전형적인 미남자 로저스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 합을 자주 맞추는 리시버 사무엘이었다.
“뭘?”
“내일 트라이아웃에 그 잡종 새끼가 온다던데?”
“잡종?”
오랜만에 듣는 단어, 하지만 자신이 입학했을 때만해도 귀에 박힐 정도로 자주 들었던 누군가의 별명이라 금방 기억이 떠올랐다.
“그 크롬웰을 말하는 건가? 퇴학당한 줄 알았는데…”
“크롬웰은 무슨. 걍 로한 킴이지. 동양인 피가 섞여서 운동 신경이 병신이랬어. 괜히 집안에서 쫓겨나겠어.”
“근데 걔가 갑자기 트라이아웃을 왜 하지? 2학년도 할 수 있나?”
트라이아웃은 보통 신입생들 위주로 멤버를 뽑기 위해 거치는 실기 시험이었다.
“원래 트라이아웃은 전 학년 다 신청 가능하지~. 2차 성징이 늦게 와서 훌쩍 크는 애들도 있잖아.”
“음.”
“물론 로한 킴은 그런 경우가 아니지. 요즘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학교에 자주 나오던데 키가 엇비슷하더라. 마약에 찌들어서 그런지 체격은 더 말랐고.”
로저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년 일을 떠올렸다.
‘나름 크롬웰 집안의 아이라, 내가 먼저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갔지.’
로저스는 아주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오클랜드 고교에 입학했다. 그 목표에 도움이 될만한 사람과는 얼마든지 친해질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로한 킴은 크롬웰 집안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자신보다도 훨씬 기대를 많이 받은 유망주.
질투심은커녕, 함께 선의의 경쟁을 펼칠 생각에 기대감이 더 컸다.
– 난 로저스라고 한다. 포지션 경쟁을 하게 되겠지만,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러자 로한 킴은 웃었다. 그가 로저스 자신에게 했던 말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났다.
– 꺼져 병신아. 이딴 쓰레기 학교에서 너나 실컷 해. 꼭 작은 물에서 노는 놈들이 겁대가리가 없더라?
– ……
– 안 꺼져? 처 맞고 싶냐?
로한 킴은 자신이 오클랜드 고등학고에 처박힌 것을 수치스러워 했고, 그 어떤 운동부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질이 안 좋은 아이들과 함께 다니며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나중에는 학교 자체를 아예 안 나와서 관심을 껐다.
‘근데 이제 와서 갑자기 트라이아웃을 신청한다라…’
“미친 거지… 도대체 우리 미식축구부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1년 동안 운동을 쉰 것도 모자라 마약에 찌든 새끼가 트라이아웃에 참석해.”
“트라이아웃 때 보이면 죽여버리자. 다시는 얼씬 안 하게.”
사무엘 말고도 다른 주전 선수들까지 이를 갈았다.
로한 킴에게 무시를 당한 건 로저스뿐이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로저스는 아주 잠깐 고민을 하다가 이내 흥미를 잃었다.
이젠 그에게도 로한 킴은 신경을 쓸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
트라이아웃 당일이었다.
“오! 잔디 냄새.”
나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이 바글바글 모인 야외 운동장에 발을 디뎠다.
따로 경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관중석이 가득 찼다.
‘미국 고교 스포츠는 인기가 대단하다더니.’
어째서인지 다들 나를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싸늘했지만, 뭐 로한 킴이 보통 문제아였어야지. 이제는 누가 잘해주면 의심을 해야 할 수준이었다.
‘일단 간단하게 몸 좀 풀어볼까?’
그런데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왔다.
“……?”
미국 피지컬 천재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