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2
72
아리아나는 로한의 서류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걸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AP 수업을 벌써 6개나 들었다고?’
AP 수업은 미국 대학 협회에서 편성하는 정규 과목들로, 실제 대학 수준의 난이도로 짜여졌다.
고교 일반 수업보다 진도도 훨씬 빠르고 주제도 깊이 들어가는 편.
똑같은 A를 받아도 AP 수업의 A는 대학 입시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아이비리그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AP 수업을 최소 6개 이수하는 추세였다.
‘그런데 겨우 2년 만에 6개를 채웠어.’
물론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라면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스펙이지만, 그걸 지금 F급 오클랜드 고교 학생이… 그것도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외양(?)의 로한이 4.0 만점 이수했다는 사실은 그녀의 가치관을 뒤흔들었다.
이미 그 정도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그 아래 적혀 있는 수상 내역은 그녀가 곧바로 핸드폰으로 교차검증할만큼 믿기 힘든 일이었다.
“로한 학생… 작년 캘리포니아 주 데카슬론 우승자 출신이었구나…?”
“네. 운이 좋았죠.”
지금까지 툭툭 내뱉는 말투가 조금은 건방지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뭔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느껴졌다.
‘무려 개인 부문 1위라는 말은, 팀 부문 1위에 대한 공헌도가 가장 높다는 뜻.’
겉모습만 놓고 판단하면, 당연히 아이비가 캐리해서 팀이 우승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찾아보니 심사위원들이 로한을 극찬하는 기사가 몇 개 있었다.
‘…여기까지만 봐도 경쟁력 있는 아이비리그 후보.’
단순히 배움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적용한 성공적인 레스토랑 창업까지, 입학사정관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로 점철된 이력서였다.
“……”
하지만 이후의 내용이 훨씬 충격적이었다.
‘학업 부문은 분명 우수하지만… 스포츠 부문은 단연 전국 최고 아닌가?’
보통 고교 스포츠 선수는 대학의 종목별 리쿠르터들이 직접 영입에 나서기 때문에, 아리아나는 이쪽 분야에 문외한일 수밖에 없었다.
‘미식축구 전국 랭킹 1위? 그것도 여섯 개 포지션에서??’
듣도보도 못한 스펙이었다.
“잠깐만.”
아리아나는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바깥으로 나왔다.
신호음이 채 가기도 전에 바로 전화가 연결됐다.
– 음? 드디어 밥 한 번 먹을 마음이 생기셨나?
“…뭘 하고 있길래 전화를 바로 받아?”
– 딱 너한테 전화 올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핸드폰을 들었더니, 역시나~. 이런 게 운명인가…?
“윽. 그런 멘트가 먹히긴 해? 참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니까.”
– 내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 용건이 뭐야.
“로한이라고 들어봤어? 잠깐… 성이 뭐더라… 동양적인 성이었는데…”
– 킴?? 설마 로한 킴? 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니가 알 정도로 유명해지긴 했구나. 당연히 잘 알지.
서류에서 로한의 이름을 확인한 아리아나는 깜짝 놀랬다.
“누군지 바로 아네? 서면상으로 봤을 때 스포츠를 꽤 하는 것 같더라고. 근데 난 실제 플레이를 본 적이 없어서 네 의견을 물어보고 싶었어.”
– 꽤 한다고?? 꽤?? 꽤애?? 와, 최근에 한 친선 경기가 지금 밈으로 온갖 소셜에 다 퍼지고 있는데… 넌 진짜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구나. 알고리즘의 선택도 안 받는 걸 보면.
“네가 이 정도로 반응하는 걸 보니, 거품 낀 랭킹은 아닌가보군. 그래도 여섯 개 포지션 1위라니. 그런 게 가능한 건가…”
– 잠깐. 그럼 너는 어떻게 로한에 대해서 아는 거야?
“아, 그 말을 안 했네. 나 가끔씩 입시 상담 봉사 나가잖아. 이번에 오클랜드 고등학교 왔어.”
– 뭐어? 미친, 그런 방법이 있었어? 허억!!! 설마 그럼 로한을 직접 만나본 거야?? 이야기 해봤어?? 하버드 어떻대???
아리아나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 커져서 핸드폰에서 귀를 살짝 떼야 했다.
“지금 계속 상담 중. 학업적인 부분에서도 충분히 하버드에 지원할만한 스펙이라고 생각했는데, 스포츠 쪽은 잘 몰라서 네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어.”
– 아니 무슨 판단이 그렇게 안 돼? 8년째 입 학사정관 일을 한 사람이?? 무조건 모셔와야지!!! 하버드 스포츠 부서에선 S급 패키지를 맞춰줄 생각이니까 어떻게든 설득 좀 해봐.
– 와, 진짜 될놈될(some people have everything going their way)이네? 우리뿐만 아니라 지금 전국 탑레벨 스포츠 프로그램 대학 관계자는 다들 어떻게든 통화 한 번 해보려고 온갖 쇼를 다 하고 있거든.
오클랜드 고교에 적지않은 후원금을 뿌려야 겨우 교장과 연결이 된다는 하소연까지 늘어놓았다.
– 부탁해. 어떻게든 잡아줘. 아니, 우리랑 연결이라도 시켜줘. 내가 진짜 다음에 밥 비싼 거 쏠게!
“그놈의 밥… 후우, 알았어. 그런 상황이란 말이지?”
아리아나는 바로 결정을 내리고 다시 상담실로 돌아왔다.
‘얘도 참 운이 좋네. S급 패키지면… 전액 장학금에 부수적인 혜택은 물론, 당장 이 자리에서 합격을 정해줄 수 있는 거잖아.’
오클랜드 고교 출신이면 가정형편도 어려울 테고, 혼혈이라지만 인종까지 고려하면 사실 통계적으로 하층민 취급을 벗어나기 어렵다.
물론 운동 선수로 잘 성장해서 프로까지 가면 모를까, 그 전에 고꾸라지는 유망주가 대부분 아닌가?
아무도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하버드의 문턱을 넘는 것만으로도 바로 신분 상승 티켓을 얻을 수 있다.
“좋은 소식이 있어.”
아리아나는 당당하게 제안했다.
“우리 하버드에서 너를 원해. SAT를 아직 안 쳤지만, 그 조건은 내 권한으로 무효시킬 수 있어. 지원서는 따로 안 써도 돼. 공식적으로 장학금을 줄 수는 없지만, 특별히 하버드만의 후원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어.”
학생을 직접 지원하고 싶어하는 VIP 후원자들을 위한 제도. 서로 만날 일도 없고, 후원을 받는 학생에게 그 어떤 의무도 지워지지 않는… 극소수의 인원에게 제안되는 혜택이었다.
“학비는 물론, 학교 다니는 동안 생활비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거야. 창업에 관심이 있는 것 같으니, 심지어 창업 자금도 무이자에 가깝게 빌려주신 사례들도 있어.”
그녀는 아이비가 그랬던 것처럼, 감동하는 로한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흐음.”
하지만 잠자코 듣던 그는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좋은 제안이네요. 제 이메일로 구체적인 조건을 계약서의 형태로 보내주시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어? 아… 알겠어.”
당연히 받아들일줄 알았던 로한은 단칼에 거절 아닌 거절을 했다. 아예 자신의 제안에 아무런 감흥조차 없어 보였다.
아리아나는 수업에 늦었다며 쿨하게 떠나는 로한의 뒷모습을 멍청하게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짓을???’
*
‘하버드라… 최고의 학교지.’
나는 일단 ‘로한’의 인생에 적응도 할 겸, 천천히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최대한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단기 목표로 세웠다.
작년부터 어떤 대학에 가면 좋을지 자세히 알아보고 있었지만, 이번 11학년을 마지막으로 졸업하겠다고 마음먹은만큼 본격적인 준비가 필요했다.
‘대학 지원서가 대부분 11월 중순 마감이었지?’
두 달 정도의 말미가 있었으나, 여유로운 건 아니었다.
어쨌든 스포츠 선수 전형으로 지원을 하게 될 것 같아서 일단 업계의 유명한 스포츠 에이전트를 추천받아 계약했고, 대학과의 협상을 전적으로 맡겼다.
에이전트는 생각보다 빨리 결과를 알려주었다.
‘역시 미국… 미식축구에 미친 나라.’
미식축구만 잘하면 범죄자도 용서를 받는 나라라서 그런가? 미국 고교 랭킹 1위를 찍자마자 수많은 대학에서 러브콜을 보내왔다.
– 그중에서 로한 선수가 관심 있을만한 대학을 추려봤습니다. 제 다른 클라이언트들과는 달리 공부마저 잘하셔서 유독 아이비리그에서 관심을 많이 보였습니다.
– 만약 명단에 없는 대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따로 또 접촉을 해보겠습니다.
나에게 입학을 보장한 대학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학업 위주]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유펜
[스포츠 위주]앨러배마
TCU
조지아
오하이오 주립
[학업 + 스포츠 둘 다 순위권]스탠퍼드
노트르담
워싱턴
미시건
“흠…”
모두 좋은 학교라서 고민이 됐다.
예전에는 이름만 들어봤던 대학들. 어딜 가도 행복하게 잘 다닐 자신이 있었다.
‘내가 대학이라니…’
배우는 걸 너무 좋아하지만, 사람 관계가 두려워 온라인 강의만 찾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만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이렇게 세계적인 대학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 더 감사했다.
나는 마감 기간까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
오클랜드의 한 커피숍.
바리스타 중 한 명이자, 가게의 오너인 레나는 단골을 전부 기억하는 편이었다.
‘어, 또 오셨네?’
그런데 단골까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손님이 한 명 있었다.
‘로한 킴.’
“어, 로한이다! 사진 찍어줘!!”
“나도나도!!”
“대박. 분기마다 한 번씩 찾는다고만 들었는데, 진짜 왔네?”
이젠 커피숍을 찾을 때마다 적지 않은 팬들이 붙었다.
이 지역 한정 최고의 고등학생 슈퍼스타.
점점 전국 단위로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고 들었으나, 사실 레나는 그가 유명세를 얻기 한참 전부터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키도 작고 비쩍 마르셨었지…’
솔직히 옷 입는 패션은 예나 지금이나 납득하기 힘든 수준이지만,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같은 사람이라는 게 안 믿길 정도로 달라졌다.
‘처음 뵀을 땐 뉴욕에서 유명 잡지사를 운영할 것만 같은 화려한 외양의 여성분을 만나셨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교양이 넘치는 30대 후반 여성과 10대의 오클랜드 흑인 혼혈 학생은 생소한 조합이라 눈여겨봤었다.
‘뜬금없이 무슨 소설 계약을 제안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
레나는 둘의 근처에 있는 자리를 치우다가 의도치 않게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 사이먼하퍼와 미제 7…
책을 정말 좋아하는 레나라서 눈이 번쩍 뜨였다.
‘사람은 외양으로만 평가해선 안되는구나.’
최고의 출판사가 이 학생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다.
그녀는 반성을 하며 애써 둘에게서 멀어졌다.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고 판단해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던 것이다.
‘두 번째 방문은 무려 마법도서관의 대표이자 치프 에디터와 함께였어.’
레나는 그때 제임스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동안 정말 재밌게 읽은 책 중 몇 권이 바로 [마법도서관]에서 선연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거의 매일 찾게된 온라인 플랫폼.
[마법도서관] 관련 기사에 종종 제임스의 사진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그녀는 보자마자 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c.k.작가… 온라인 연재…
둘에게 서비스로 따뜻한 머핀과 갓 구운 쿠키를 건넬 때 또 몇 개의 키워드를 들었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뭔가에 홀린 듯, 그날 이후부터 [마법도서관]에 새로 연재되는 작품은 다 찾아봤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플랫폼 자체적으로 대규모 홍보를 한 「She’s Gone」이 연재되기 시작했다.
‘너무 행복한 나날이었다…’
[마법도서관]을 20위권의 중소규모 플랫폼에서, 단기간에 Top 3로 성장시킨 불세출의 작품.레나는 「She’s Gone」에 푹 빠져서 한동안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나중에 정식 출간된 이북은 물론 종이책까지 함께 산 찐팬.
본능적으로 로한이 소설의 저자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절대 티를 내지 말아야지.’
레나는 이미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더 빌런’ 로한을 나 혼자 아는 소중한 작가님으로 남겨두려했다.
‘어?’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로한이 카페에 비치되어 있던 「She’s Gone」의 종이책에 싸인을 하고 레나에게 건네주었다.
– 그동안 알면서도 모른 척 해줘서 고마워요. 아시다시피… 주변 친구들한테 밝히기는 조금 민망해서, 당분간은 비밀로 하려고 해요.
왜 그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날의 분위기.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 의외로(?) 점잖은 로한의 태도 등 삼박자가 잘 맞아떨어져서 그랬는지… 그 순간은 레나에게 아주 제대로 심쿵 모먼트였다.
가끔 침대에 누우면 자기도 모르게 되돌려보게 되는 장면.
‘나와 작가님 사이의 비밀.’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 간의 은밀한 교감이었다.
안 그래도 내가 너무 사랑하는 작품을 쓴 작가라 내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레나가 c.k. 작가에 대한 충성도가 훨씬 높아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뭐야, 뭐야… 저 사람 피셔 감독 아니야???’
이후 누구와의 미팅을 진행해도 철저하게 눈 귀를 닫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 유명한 피셔 감독이 로한과 만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릴렉스, 릴렉스…’
혹시나 「She’s Gone」이 영화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며칠 밤잠을 설쳤다.
틈만나면 각종 언론 매체를 뒤지며, 피셔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소식을 기다렸다.
‘A Good Man은 또 뭐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완전히 다른 작품의 프리프로덕션을 시작하셨고,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감이 커서 한동안 잊고 살았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런데 오늘, 로한이 또다시 커피숍을 찾은 것이다.
‘볼 때마다 몸이 너무 좋아지는 거 아니야??’
순간 미성년자에게 할만한 생각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애써 화제를 돌렸다.
“어, 네… 로한 학생도 방학 잘 보냈어요? 그 에이펙스 소식은 들었어요. 동네 아이들의 영웅이더라고요.”
“음, 반면교사여야 할 텐데… 영웅은 좀.”
“겸손하기는. 평소 먹는 걸로 준비해줄까요? 상큼한 스무디에 달달한 마카롱?”
“아, 네! 그리고 손님이 오실 거라, 나중에 그 분 오더도 함께 받아주세요.”
“아 그래요? 그럼 제 사무실을 쓸래요?”
“네? 그러실 필요는 없는…”
로한이 한사코 거절하는 걸,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집어넣었다.
작은 커피숍이지만 행정업무를 처리할 일이 많아서 따로 마련한 작은 방. 미팅을 진행하기에는 충분한 환경이었다.
‘누구를 만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게를 찾아줄 때마다 대단한 사람들을 모셨지.’
c.k. 작가의 비밀을 이렇게 오늘도 내가 지켰다는 생각이 들자, 레나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띠링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퀭한 눈과 피폐한 안색의 남성이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설마?’
*
나는 한동안 바빠서 미뤄놨던 두 코믹스 출판사와의 미팅을 진행했다.
‘어지간하면 그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겠지.’
이미 어느 정도 사전 조사를 한 결과, 「더 섀도우: 레거시」를 맡기고 싶은 코믹스 출판사가 있었다.
그러나… 둘을 만나고 나서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 피지컬 천재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