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4
74
소설 시장과 달리 코믹스 시장의 저작권은 출판사 우호적이었다.
‘요즘 좀 나아진다고 하지만, 양대 출판사가 바뀌지 않는 한…’
[원더웍스]나 [인피니트]는 여전히 창작자를 ‘고용’해 월급을 주거나 건당 프리랜서로 쓰는 작업 방식을 고수했다.기획은 출판사가 한다는 점을 들어, 작품의 모든 저작권을 가져가는 것이다.
노아도 그 부분을 마음에 안 들어하지만, 필요악임을 인정했다.
“회사 지침이 그래. 공용 IP에 포함되는 캐릭터만 발전시켜. 그 캐릭터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기획하고, 안 되면 기존의 인기 캐릭터들이랑 콜라보 시키고, A급 작가 붙여서 단편 내주고.”
가능성만 보인다면, 출판사 차원에서 그 캐릭터가 뜰 때까지 지원해준다.
“그러다 흥행이 받쳐주는 시리즈가 나오면 끊임없이 후속편을 붙이고. 운이 좋으면 영화화나 드라마화가 될 수 있겠지. 그렇게 출판사는 또 하나의 인기 공용 IP가 생기는 거야.”
이 과정을 거의 100년 가까이 무한 반복해서 지금의 [원더웍스]와 [인피니트]가 되었다.
심지어 지난 15년은 성공적인 영상화를 통해 메인스트림 입성.
이제는 엔터테인먼트계의 공룡 회사로 성장했기 때문에, 창작자가 설 자리는 더더욱 줄었다.
“그래서 저작권을 보장하는 신생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고민하기도 했죠.”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아직 신생은 코믹스 쪽에서도 성장하는 단계야. 영상화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슬슬 나오기는 하는데, 100년의 유산을 하루 아침에 따라잡기는 힘들지.”
노아가 아직도 [인피니트]에 남아 있는 이유라고 했다.
수많은 천재 작가의 영혼을 갈아 넣은 대가로, 두 출판사가 쌓은 공용 IP는 대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젠 시대가 많이 좋아져서 어쨌든 저작권을 포기하지 않고도 우리 출판사에서 런칭할 수 있게 됐잖아?”
“한계가 있는… 반쪽짜리 런칭 아닌가요?”
노아는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봤다.
“저작권이 없어도 출판사에서 어쩔 수 없이 캐릭터를 ‘유니버스’에 편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
“호오?”
“가장 유명한 예로 ‘원더웍스’의 ‘판타스틱 스파이더’가 있지. ‘원더웍스’가 재정 상황이 어려울 때 진즉에 영화 판권을 팔아버린 건 알지? 근데 이젠 자체적인 영화 제작사를 이끌게 되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슈퍼 히어로 중 하나인 ‘판타스틱 스파이더’가 눈에 밟히네? 그럼 어떡해야겠어?”
나도 어느 정도 아는 이야기였지만, 노아는 업계의 전문가이다보니 디테일한 부분까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원더웍스’는 20여년 전에 판권을 팔며 ‘판타스틱 스파이더’의 영화가 만들어질 때마다 매출의 5%를 약속받았어. 그땐 좋았지. 어쨌든 영화가 만들어지면 코믹스도 잘 팔리고, 로열티도 따로 받았으니까.”
반면 이제 영화 제작에 뛰어들게 된 [원더웍스]가 아쉬운 상황이 되자, 판권을 도로 사오고 싶어했지만… 이미 영화계에서 「판타스틱 스파이더」가 황금알 낳는 거위로 탈바꿈한 나머지 협상불가.
“궁여지책으로 ‘원더웍스’는 기존의 조건 유지하겠다며 어떻게든 콜라보 해보자고 제안했어.”
[원더웍스 엔터]가 자신들의 세계관 안에서 직접 「판타스틱 스파이더」 영화를 제작하되, 영화 순이익 5%만 가져간다.나머지 95%는 판권을 지닌 제작사에게 돌아간다는 말도 안 되는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엄청 손해를 보고 합작을 하게 되었지만… 그게 더 이익이라고 판단했겠죠?”
“정확해. 간이랑 쓸개를 내주고서라도… ‘판타스틱 스파이더’를 원더웍스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편입시킬 필요성이 있었어.”
「판타스틱 스파이더」의 단독 영화로 큰 이익을 볼 수는 없지만, [원더웍스]의 캐릭터를 공동으로 출연시키며 글로벌 무대에 노출 시키며 성장시켰다.
그리고 계약 기간 동안 「판타스틱 스파이더」를 [원더웍스]의 다른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할 수 있게 되면서 자체 작품들의 흥행성을 크게 높였다.
“판권을 가진 제작사, ‘원더웍스,’ 그리고 우리와 같은 팬들 모두에게 윈윈인 아주 이상적인 협상이었지.”
“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했지만, 내가 창작한 슈퍼 히어로 「더 섀도우」를 「판타스틱 스파이더」에 비교하는 건 아직… 그의 말대로 100년은 멀지 않았나.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우리는 한 단계씩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어쨌든 우리의 목표는 굳이 저작권을 넘기지 않고서도, 출판사에서 ‘인피니트 유니버스’에 편입시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거야.”
“저작권이 없더라도 ‘더 섀도우’가 ‘인피니트 유니버스’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면… 다른 캐릭터와의 시너지가 우수하다는 게 인정된다면 ‘판타스틱 스파이더’와 비슷한 수순을 밟을 수 있을거란 뜻이군요.”
“바로 그거지. 그리고 마침 아주 적당한 무대가 있어.”
“……?”
노아는 핸드폰으로 하나의 포스터를 보여주었다.
“코믹콘(대규모 코믹스 박람회)?”
“그래. 우린 일단 코어 팬층에게 작품을 검증받는 게 먼저야. 그러기 위해선 20만명이 방문하는 코믹콘이 딱이지. 아무리 영향력이 있는 코믹스 출판사도, 코어 팬은 무시 못 하거든.”
“아, 그럼 코믹콘에서 작품을 먼저 선보일 기회가 있나보군요?”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구나? 하긴… 그러니 이런 작품을 썼겠지.”
“……”
“정색하면 무섭다는 이야기 좀 듣지 않아? 나 지금 오돌오돌 떠는 거 보이지…? 살짝만 웃어줄래. 아, 아니다… 그게 더 무서운 듯.”
“……”
“크흠. 어쨌든 정확해. 코믹콘에서 런칭을 준비하는 신작을 미리 볼 수 있는 코너가 있어. 일종의 이벤트지. 팬들의 투표를 가장 많이 받는 작품일수록 출판사에서 더 밀어주고, 반응이 미묘하면 그 자리에서 폐기가 되기도 해.”
“확실히 좋은 기회네요. 어쨌든 코어팬의 검증을 받으면 작품성이야 깔고 들어가는 거고… 정말 재밌으면 나중에 소셜 계정이나 각종 커뮤니티에 소문을 퍼뜨리겠죠? 코믹스 커뮤니티는 끈끈하니, 홍보 효과가 제법 클 거고요. 출판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거의 없는 작품이니 안심하고 밀어주겠죠.”
“…진짜 17살 맞아? 고교 운동 선수라며…?? 어떻게 이쪽 생리를 꿰뚫고 있는 거지??”
노아는 나를 여러모로(?) 괴물 보듯 했지만, 이미 [마법도서관]을 통해서 온라인 연재를 해본 경험이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딱 하나 있는데…”
그는 내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신작 시사회에 출품하는 것 자체야 내가 치프 에디터이자 결정권자이니 상관없지만, 기본 조건이 3부까지 맞춰가는 거야. 혹시 그동안 작업한 분량이 더 있는지…?”
‘엄청 기다리셨나보네.’
노아는 애써 무덤덤한 척하지만, 그의 눈빛에서 후속편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느꼈다.
“아… 3부까지는 있어야 하는구나…”
“없어도 괜찮아. 나도 창작자라서 이 정도 퀄리티의 작품을 뽑아내는 게 얼마나 어렵고 오래 걸리는지 잘 알지. 기간이 한 달 정도 남았으니까… 일단 같이 한 번 만들어보고, 안 되면 다른 기회를 찾아보면 돼. 부담 갖지 말고 좋은 작품 만드는데 집중… 어?? 이게 뭐야???”
누가 봐도 실망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던 노아는, 순간 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원고들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 섀도우’ 시, 십 부까지 있어?? 설마…???”
“네, 1시즌 완결까지 모두 완성했어요.”
“맙소사…”
노아는 어느새 헤벌쭉 웃으며 행복하게 원고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바로 2부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내가 다시 덮어버렸다.
“왜?”
“원래는 전부 드리려고 가지고 온 복사본인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요. 다시 써야겠어요.”
“어어?? 갑자기?? 아니, 그래도 이건 내가 읽어봐도 되지 않나?”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존의 ‘더 섀도우’ 캐릭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인피니트 유니버스’에 딱 필요한 부분을 부각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만 내용을 다듬으면, 코믹콘의 코어팬들이 열광하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제 노아와 한 팀으로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나의 수정 계획을 공유했다.
그는 헛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너, 진짜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아주 마음에 들어.”
우리는 함께 작당모의하기 시작했다.
*
노아는 분명 로한의 수정 방안을 들었을 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니, 천재적이야.’
무모하지만, 그 정도는 되어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한은 최소 앞의 3부를 수정해서 일주일 안에 보내주기로 했다.
이후 코믹콘 전까지 그림을 입히고, 인쇄까지 마무리하는 건 자신의 역할.
– 어차피 복사본이라며! 이건 내가 가져가게 해줘. 큰 줄기는 안 바뀐다고 했으니, 나도 미리 읽으면서 준비할 수 있잖아. 어??
수정본이 도착하기 전까지 공부하겠다며, 노아는 정말 사정사정해서 「더 섀도우: 레거시」 10부작을 받아올 수 있었다.
‘진짜…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무 푸대접한다니까. 내가 읽어주겠다면 뭐든 다할 작가들이 트럭째로 쌓였건만.’
그는 투덜투덜대면서도, 테이블 위에 똑바로 앉아… 예의를 차린 채 「더 섀도우: 레거시」의 정독을 시작했다.
2부부터 읽을까 싶다가도, 온전한 ‘체험’을 위해서 다시 1부를 집어들었다.
“……”
그는 1~10부를 완독할 때까지 자리에서 꼼짝을 않았다.
– 뭐야… 게임을 안 해? 잠을 안 자? 식충이가 밥을 걸러??
– 큰일 났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한다는 건…
직원들은 그가 죽을 때가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을 했지만, 노아의 눈에는 그 어느때보다 총기가 서려 있었다.
“진짜 미친놈… 아니 미친 분이시라니까.”
「더 섀도우: 레거시」 1시즌을 다 읽으니 저절로 극존칭을 쓰게 되었다.
‘완벽하다. 1부의 퀄리티가 이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고민한 내가 병신이지.’
갈수록 더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말초적인 재미를 완벽하게 선사한다.
그러면서 작품성을 잃지 않고, 마지막에는 모든 복선이 퍼즐조각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한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됐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수정한다는 거야?’
아무리 봐도 손 볼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 마스터피스를 망가뜨리지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런데 정확하게 3일 후. 「더 섀도우: 레거시(완성본)」을 받아든 노아는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 노아 작가님만 믿고 연출의 한계까지 끌어올려봤습니다. 영 무리가 되면 알아서 다운그레이드 해주세요.
“하하하… 역시 재밌는 분이라니까.”
그는 뛰어난 글 작가인 동시에 그림 작가였다.
무려 15살에 완성한 「수호자들」이 아직도 최고의 코믹스 시리즈로 화자가 될 정도로 글그림 모두 출중한 천재 중의 천재.
이후 차기작만 안 했을 뿐이지, 출판사 일을 하면서 작품을 보는 안목은 점점 좋아졌다.
‘그래서 뭐든 성에 안 차 내 작품을 하기 더 어려워진 점도 있지.’
노아는 역시 17살이 어리긴 어리다며, 피식 웃곤 완성본을 집어들었다.
이번에도 로한은 완성도 높은 그림 콘티의 형식으로 10부작을 보냈다.
“……”
그의 웃음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중에 가서는 아예 덮어버리고 싶었다. 계속 보기가 두려웠다.
‘내가 천재라고?? 고작 내가???’
놀랍게도 그동안 로한은 자신의 작품, 「수호자들」을 완벽하게 해부한 모양이다.
고작 3일 만에… 「더 섀도우: 레거시(완성본)」은 철저하게 자신의 작풍에 맞춰서 완전히 새롭게 그려놓았다.
한 마디로 노아식 연출법의 정수가 담겨 있었다.
같은 스토리도 연출에 따라 격이 달라진다. 「수호자들」이 특별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액션씬이면 액션씬, 일상씬이면 일상씬. 장면 하나하나 고도의 연출 기법을 이용해 독자의 몰입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덕이 컸다.
슬픈 장면을 더 슬프게, 통쾌한 장면을 더 통쾌하게.
수준 높은 코믹스 연출법 덕분에 「수호자들」을 교재로 삼아서 후배를 양성하는 곳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발전시켰어.’
믿을 수가 없었다.
노아가 신작을 쓰지 못한 이유가 바로 높아진 안목 때문.
그건 스토리에 대한 까다로운 기준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기교적인 부분도 컸다.
‘표현하고 싶은 느낌과 결과물은 있는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는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으로 개척한 영역이라 더 막막한 부분도 있었다.
“……”
그런데 로한의 그림 콘티는 「수호자들」에 비해 한 단계 더 발전된 연출법을 녹여냈다.
노아가 지난 15년동안 붙잡고 있던 문제의 답안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 영 무리가 되면 알아서 다운그레이드 해주세요.
얄미운 로한의 메모는 이제 자신의 능력에 대한 시험처럼 느껴졌다.
‘내가 한 단계 성장하지 않으면 소화하기 힘들 거야.’
이미 그림 콘티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만, 이걸 실제로 하나의 부드러운 흐름으로 완성하기 위해선 그림 작가의 능력이 받쳐줘야 한다.
“……”
그래서 「더 섀도우: 레거시(완성본)」 읽기가 무서웠다.
내 치부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느낌.
지금까지 모두가 자신을 천재로 칭송해온 나날들이 떠올랐다.
당연히 기분 좋은 대우였지만, 그만큼 손발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했다.
‘만약 내 차기작이 수호자들만 못하면? 아니… 아예 망해버린다면?’
어쩌면 그동안의 기행은 그냥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15살 아이의 방어기제였는지도 모른다.
“……”
노아는 며칠간 심마에 시달리며 끙끙 앓았다. 눈을 감으나 뜨나, 「더 섀도우: 레거시(완성본)」의 내용이 영혼을 잠식했다.
결국 그는 초췌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만 눈빛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인했다.
‘나, 노아 무어야. 시원하게 망하면 또 어때. 내가 재밌으면 됐지.’
노아는 괴롭더라도 「더 섀도우: 레거시(완성본)」의 내용을 완독했다.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여러번 더 읽었다.
그리고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노아는 다시 펜을 들었다.
처음 펜을 들어 아무 생각 없이 「수호자들」을 그리기 시작했던 바로 그날처럼.
*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샌디에고 코믹콘(Comic-con).
3박 4일의 일정 동안 평균 20만 명의 팬들이 찾는 코믹스 계의 축제였다.
“뭐야, 저기 사람이 왜 저렇게 많아?”
보통 코믹콘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찾는 행사는 코믹스 원작의 영화나 게임을 체험하고 홍보하는 순서인데, 올해는 유독 의외의 부스가 선전하고 있었다.
[코믹스 신작 시사회]“이게 무슨…??”
미국 피지컬 천재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