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77
77
“……”
나는 노인이 누군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솔직히 체육관이 이 정도로 난리가 났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
다만 갑자기 찾아와서 내 온몸을 꾹꾹 이리저리 눌러보기 시작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마치 소고기를 부위별로 등급을 나누듯, 자세하게 따져보는 느낌이었다.
“쯧쯧쯧…”
노인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옆에서 조지 코치가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으나 아무도 노인을 만류하지 못했다.
“이런 몸을 갖고 태어났으면서 이 정도밖에 활용 못 하다니. 요즘 젊은 놈들이란…”
“네?”
“이래 가지고 어찌 차머스랑 한 링에 선다고, 에잉.”
노인은 바로 뒤돌아서 다시 체육관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일단 훈련하는 걸 한 번 보고 판단하셔도 늦지 않잖아요.”
“결과물을 보면 과정이야 안 봐도 뻔하지. 시간 낭비해서 뭣하나.”
“아, 정말 이러시기에요. 제가 보장하는 선수라니까요.”
“쯧쯧쯧… 그 키스 놈 붙잡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다. 타고난 재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근성이야. 근성 없이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 봐야 결국 쓰레기통 안에 썩어가는 산해진미지.”
내 안의 ‘로한’이 슬쩍 고개를 들이민다.
‘내가 쓰레기통이라…’
“코치, 그냥 집어치우라 하세요. 노인네 손해 아니겠어요?”
“야야… 로한아. 아버지가 좀 올드스쿨이라서 그렇지, 진짜 뛰어난 트레이너셔. 너도 잘 알잖아? 인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실제로 능력만큼은 뛰어난 거. 아니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
“……”
“……”
나랑 노인은 처음으로 단합하여 조지 코치를 노려봤다.
“제 이야기를 하시는 건 아니죠?”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 지껄이는구나.”
조지 코치는 웃음을 흘렸다.
“거봐요. 둘이 죽이 잘 맞을 거라니까? 오늘 하루만 합을 맞춰보고, 성에 안 차면 강요 안 합니다. 로한이 너도 한 번 훈련 받아 보고 나서도 영 아니다 싶으면 다른 트레이너를 초빙해보자.”
“선수에게 선택권을 줘? 그래서 요즘 복서들이 물러터진 거다. 오냐오냐하니까 단련할 시간에 자기 권리 찾기 바쁜 거지. 이래서 복싱계는 다시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했는데…”
나는 한 쪽 귀를 후볐다.
“아, 퇴물들은 다 비슷하다니까.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해. 현실이 시궁창이라. 전 그냥 코치님만 있으면 됩니다.”
“……”
– 저 미친놈.
– 한편으론 존경스럽다.
– 관장님을 들이받아?
체육관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정작 노인은 웃고 있는데 말이야.
“재밌는 아이구나. 그래, 모처럼 나왔으니 하루 정도는 훈련을 봐주겠다. 다신 이놈의 트레이닝 따윈 못 받겠다고 사정을 해도 그땐 소용 없을 게다. 그래도 괜찮겠냐?”
“하하하. 제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오늘은 조지 코치님의 체면도 있고 하니, 한 번쯤은 따라드리는데… 내가 지금까지 트레이닝 시킨 선수와는 차원이 다르구나! 하면서 너무 뻑 가시면 안 됩니다. 아무리 사정하셔도 제가 먼저 거절할거에요.”
나와 노인은 서로를 보며 한참을 크게 웃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기개만큼은 마음에 든다.”
중간에 낀 조지 코치는 우리 둘을 번갈아보며 한숨을 팍 내쉬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그 사이 노인은 벌써 링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체육관의 모두에게 말했다.
“뭣들하고 있어? 지금 구경할 때야? 모두 집합.”
놀라웠다.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숨어서 눈치만 살피던 이들이 재깍 달려왔다.
총 20여 명에 달하는 인원. 나도 어슬렁어슬렁 그들 사이에 섰다.
“……”
노인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우리를 둘러봤다.
“키스. 너도 나오너라.”
‘어? 그러고 보니 좀 전까지 있던 키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네?’
조지 코치가 슬쩍 노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미 몸을 뺀 것 같습니다.”
“흥. 키스. 마지막이다. 안 나오냐.”
끼이이익 –
그제야 저 구석 락커가 스르르 열리더니 그 사이로 불퉁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관심이 없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것하나 놓치지 않는 스타일이시군.’
모두 복싱링 앞에 정렬하자 노인이 선언했다.
“다들 체력 훈련을 잊지 않았겠지? 바로 준비하도록.”
“……!”
나처럼 새로 들어온 몇몇은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살폈다.
“난 이미 체력 훈련 했는데…”
“조금도 안 바뀌셨어…”
“또 다 토해내겠네…”
체육관에 나온지 2년이 넘은 선수들은 억지로 끌려가듯 힘없이 사이클, 줄넘기, 달리기 훈련장을 찾았다.
특히 키스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창백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악마에게 손을 벌리다니. 이게 다 너때문이야 로한.”
그는 진심으로 나를 원망했다.
나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올드스쿨이라더니!’
*
조지의 아버지, 지오반니 소렐리는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였다.
그의 가족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뉴욕.
복싱의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라, 지오반니는 일찍이부터 복싱의 문화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몇 살 위의 형을 따라 몰래 훔쳐본 복싱 경기는 지오반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운명의 이끌림이었다.’
두 남자가 목숨을 걸고 펀치를 교환한다. 아무리 얻어맞아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그들의 근성이 지오반니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날부터 소렐리 형제는 매일 같이 지역 체육관을 찾았다.
돈이 없어서 청소나 잔심부름을 대신해 주며 시설을 사용했고, 일단 어깨너머로나마 다른 사람의 훈련을 따라하며 복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먼저 빛을 본 건 형 쪽. 일단 지오반니에 비해 훨씬 체격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재능이 있어서 금방 코치의 눈에 들었다.
형은 정식으로 1년 정도 훈련을 받은 후, 작은 규모의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동네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 음, 꼬맹이 너는 가망성이 없다. 그냥 포기하고 공장에나 들어가서 돈이나 벌어라.
반면 지오반니는 뼈가 굵었지만,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약한 몸을 타고나서 스파링만 해도 골병이 들곤 했다.
‘그래도 복싱에 대한 열정만큼은 내가 최고였다.’
그는 자신의 미천한 재능에 상심하지 않았다. 복싱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것이다.
대신 지오반니는 복싱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갈망했고, 구할 수 있는 모든 복싱 경기 자료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미국 자료가 부족하다 싶으면 복싱의 고장, 영국의 경기 자료까지 어렵게 구해서 외울 때까지 반복해서 봤다.
‘그래서인지 눈썰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네 체육관 코치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냥 개인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해 가르치는 게 다였다.
결국 형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조언을 해준 것이 바로 지오반니였고, 이후 트레이닝을 전담하면서 형은 전국구 인지도를 가진 복서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지.’
비록 형은 랭킹 10위권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은퇴 수순을 밟아야했지만, 지오반니는 그동안의 경력을 내세워 새로운 선수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전설적인 지옥의 트레이너, 지오반니의 탄생이었다.
이후 집중적으로 키운 4명의 선수 중 3명이 무려 챔피언으로 군림했고, 마지막 한 명은 10년에 한 번 태어날까말까한 불세출의 천재로 평가를 받았으나 비운의 사고로 사망.
큰 충격을 받은 지오반니도 돌연 은퇴를 선언하며 그대로 복싱계에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과거의 찬란했던 명성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아이언복싱]이 그의 유일한 유산이었다.
지오반니는 불규칙적으로 체육관에 나와 소소하게나마(?) 선수들의 훈련을 도와주며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놈이 원수지. 늘그막의 아버지를 못 부려 먹어 안달이 나서…’
지오반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체력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을 지켜봤다.
– 헉, 헉, 헉… 도저히 못하겠다.
– 차라리 죽여줘!!
훈련을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퍼지는 선수들이 나왔다.
‘저런 것들이 무슨 복싱을 한다고.’
그의 복싱 철학은 무척 단순했다.
[프로라면 3분씩 12라운드를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1~2라운드에 팔팔한 건 아무 의미 없다.
11~12라운드에 힘을 다 소진해 엉망의 경기력을 보인다면 그게 어떻게 프로라 할 수 있겠나.
‘걷지도 못하는 놈들에게 뛰는 법을 가르칠 이유는 없다.’
체력은 정신력과 근성만 있으면 누구나 늘릴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오반니는 기본을 갖춘 선수들에게만 그 다음 단계인 복싱 기술 훈련을 시켰다.
그전까지는 체력, 근력 훈련만 무한반복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1분 – 전속력으로 싸이클 타기.] [1분 – 45lbs 원판 들고 스쿼트 후 숄더 프레스 쉴 새 없이 반복.] [1분 – 전속력으로 수어사이드 반복.] [1분 – 휴식.]이렇게가 한 세트. 총 12세트를 완수해야 체력 훈련이 끝난다.
중간중간에 스텝 레더 훈련, 원판 펀치, 줄넘기 등 운동 방식에 변주를 주긴 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같았다.
복싱의 1라운드가 3분. 각 라운드 사이에 1분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체력 훈련도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됐다.
“체력이 떨어진 놈들은 알아서 열외해! 대충하면 1세트부터 다시 채우게 하겠다.”
“옙!!”
지오반니의 체력 훈련이 유독 힘든 건 모든 세트를 똑같은 속도로 소화해야한다는 것.
조금이라도 페이스가 늦어지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면 그 세트는 무효다.
욕을 먹더라도 휴식 시간을 더 길게 가져서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후 다시 제대로 세트를 소화해야만 횟수를 인정받았다.
– 그동안 체력 훈련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 말하지마… 그 힘까지 아껴.
– 먹은 거 다 올라올 것 같아…
이제 겨우 시작한 지 20분을 넘겼는데, 60%가 바닥에 쓰러져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요즘 것들이란…’
복싱의 전성기와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안 할 수가 없었다.
예전처럼 15라운드가 아닌 12라운드밖에 안 뛰는데도 체력이 부족한 선수가 너무 많다.
‘이렇게 해이해서야…’
“음?”
그런데 의외로 선전하는 선수도 없지 않아 있었다.
특히 로한은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20명 중 가장 빠르게 세트를 채우고 있었다.
힘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확연한데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 보였다.
지오반니는 그를 보며 혀를 찼다.
‘멍청한 놈. 아무리 어리다지만, 무리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단 말인가.’
위태로워보이는 로한의 모습에 조지 코치가 말리려고 했지만, 지오반니가 제지했다.
“그냥 둬라. 몸을 혹사시키는 멍청이들은 직접 그 대가를 치러봐야 가장 빠르게 배운다.”
계속된 오버워크는 영구적으로 후유증을 남기지만, 어쩌다 한두 번은 오히려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는 지오반니였다.
어쨌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과정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
‘정신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군.’
힘들면 멈추고 쉬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데, 그것을 극복하고 계속 나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
그런데 로한은 해내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이 기가 질릴 정도로.
– 괴물이다. 저게 가능해?
–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토 나와.
– 독하다, 독해.
다만 7세트를 넘어가면서 확실히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기어코 가장 빠르게 12세트를 채웠다.
무리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아버지. 진짜 저대로 둬도 괜찮을까요?”
“아직 젊으니 회복력도 빠를 거다. 내일 보면 확실해지겠지.”
놀랍게도 다음날은 8세트까지 소화하고 휴식 시간을 늘렸다.
일주일을 채웠을 때는 10세트까지 무리 없었다.
2주일이 지나자 로한은 12세트를 단숨에 끝내버렸다.
3분간 운동 후 1분간 휴식을 철저하게 지키며 모든 세트를 해치운 것이다.
“원래도 체력이 좋은 친구이긴 했는데… 사람이 저렇게 빨리 늘 수가 있나요?”
조지 코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설마 이걸 다 계산하셨던 겁니까? 로한의 한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던 거군요. 그동안 새롭게 트레이닝법을 연구하신 것 같기도 하고… 대단하십니다.”
아들이 마치 트레이너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칭송을 늘어놓았지만, 정작 지오반니의 눈동자는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다음날, 지오반니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체육관에 출근했다.
그리고…
조지 코치는 기적과 같은 성과를 올린 하루의 훈련을 지켜보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거만했는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직 아버지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한심한 코치였어요. 앞으론 절대 방자하게 굴지 않겠습니다.”
“……”
미국 피지컬 천재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