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
8
“어이.”
간단하게 몸을 푸는데, 누가 나를 불러세웠다.
“……?”
‘오, 몸이 무슨 흉기 같은데.’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그랬다. 나보다 키가 4~5센치는 더 큰데다, 온몸이 탄탄해 보였다. 그런데 유연하기까지 해서 날렵한 야생의 표범을 연상케 했다.
“날 알아?”
“모를 수가 없지. 크롬웰 집안의 Bastard(사생아)잖아.”
“음, 따지자면 난 크롬웰도 아니고 사생아도 아닌데? 난 김씨 집안 로한이라고 해.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정통 후계자지.”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디서 말장난을. 내가 우숩냐?”
상대가 슬슬 다가오면서 위협을 하자, 나는 거의 무조건 반사적으로 사과를 하려 했다. 전생의 습관이다. 전신마비의 장애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적을 만들면 안 되니까.
“전혀 안 우스워.”
“……?”
“저능아 새끼가 어버버거린다고 굳이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것까진 없잖아. 그냥 똥 밟은셈 치고 내가 너그럽게 봐줘야지.”
“뭐라고?”
애가 너무 당황했는지 화도 나지 않는 표정이었다. 물론 가장 당황한 것은 나였다.
‘어머나?’
나는 분명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퇴물이라고 들었는데 아직 성깔은 남아 있는 모양이야. 난 올해 들어온 웨이드 존스. 오클랜드 고교를 탑으로 이끌 인재지.”
“그런 건 보통 남이 대신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나와 함께 트라이아웃을 하게 된 걸 영광으로 알라고.”
웨이드는 그렇게 말하고 유유히 떠났다. 그리곤 사람이 보이는 족족 말을 걸었다.
– 넌 지누라고 했던가? 여기서 또 만나는군. 괜히 내 발목 잡지 말고 알아서 포기하는 건 어때?
–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군? 난 웨이드 존스다. 우리 학교를 대표하는 미식축구 유망주지.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보도록 해.
이쯤 되니 신입생들은 알아서 웨이드를 피해 멀찍이서 몸을 풀었다.
이제보니 진즉에 그에게 당한 이들은 아예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웨이드를 욕하고 있었다.
‘참 특이한 신입생이야. 인상이랑 다르게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은데.’
“……”
그나저나 나는 조금 전, 웨이드와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더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가끔씩 내가 분노조절장애가 걸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욱하는 감정을 느끼곤 했지만…’
지금처럼 겉으로 튀어나온 것은 처음이다. 이게 원래 ‘로한’의 성격이었을까?
웨이드가 의외로 순한 성격이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사건이 충분히 커질 수도 있었다.
‘의외로 할 말을 다 해보니까 속이 시원하긴 했어.’
*
오클랜드 고교 미식축구부 트라이아웃은 1학기 최고의 행사 중 하나.
전교생이 다 모였는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관중석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 시간만큼은 수업이 모두 중단되고 선생들까지도 함께 즐겼다.
운동장이 훤히 보이는 황금 자리. 트라이아웃이 시작되기 전, 여학생 몇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꼴통 학교이긴 해도, 스포츠 보는 맛은 있어 그치?”
“남자들이 왜 스포츠에 환장하는지 조금은 알겠어. 나도 설렌다.”
“올해는 트라이아웃 신청하는 신입생들이 꽤 많은 것 같아.”
“대충 봐도 100명은 되는데? 이번 신입생 총원이 500명 아닌가? 그 중 어림잡아서 남자는 250명이라 치면, 사지 멀쩡한 애는 다 모인 셈이네??”
“진짜 바글바글하다. 도대체 저 중에서 몇 명이나 뽑히는 거야? 클로이 넌 알아?”
신입 여학생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2학년인 클로이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혼자서 화장을 고치던 그녀는 시선을 흘겼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관심 없어.”
“관심 없다면서 미식축구부 애들이 다 아는 척 하더라? 설마…”
“미쳤니? 쌍둥이 동생이 미식축구부니까 싫어도 얼굴 보게 되는 거지. 쟤들 운동할 때나 사람 구실하지, 바깥에서 보면 머저리들이 따로 없어.”
“어? 동생이 미식축구부야? 쌍둥이라고 했으니까 2학년일테고, 그럼 아직 주전은 아니겠네.”
알리사는 과연 클로이의 쌍둥이 동생이 누구일지 열심히 추측하기 시작했다.
“일단 백인에 금발일 가능성이 높고… 음, 클로이 반만 닮았어도 꽃미남일 거 아니야?? 그런 동생이 있었음 나부터 소개시켜줘야지!”
“…데려가 주기만 한다면 내가 데이트 비용에 이사 비용까지 다 대준다.”
“오오, 바로 동거까지 허락해준거다.”
알리사가 혼자 신나서 꺅꺅 웃는데, 곁에 앉아 있던 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딱 보면 모르겠어? 저기 주장 완장 차고 있는 사람 얼굴 잘 봐봐.”
“…주장?? 클로이 동생은 2학년인데?? 설마…”
알리사가 입을 틀어막았다.
클로이가 일찍부터 모델 생활을 해서 쌍둥이 동생도 아무리 남자라지만 비슷한 체격일 거라 상상했다.
어지간하면 공만 차는 키커, 운동신경이 뛰어나면 와이드 리시버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클로이의 쌍둥이 동생은 다름 아닌 오클랜드 고교 쿼터백 대런 로저스.
단순히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의 스타 운동 선수였다.
“미쳤다, 미쳤어. 한 명은 잘 나가는 패션 모델에, 또 한 명은 미식축구 슈퍼스타. 집안 유전자 좀 나눠줄래? 너희 혼자 다 해먹지 말고??”
“…뭐래.”
“어쩐지 미식축구부 애들이랑 친하더라니. 클로이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먹고 싶은 거라도 있으면…”
알리사 뿐만 아니라 다른 여학생들도 클로이에게 친한척을 하며 화려하기로 유명한 트라이아웃 애프터 파티에 초대해달라고 졸랐다.
클로이는 귀찮다는 듯 다시 속눈썹을 마는데 열중했다.
“오, 이제 시작되나보다. 후보생들 줄 서기 시작했어.”
“처음은 40 yard dash(35미터 빨리 달리기)인가?”
“난 트라이아웃 종목 중에서 40야드 대쉬가 가장 재밌더라.”
그녀들의 말대로 후보생들이 코치의 지시에 따라 정렬하고 있었다.
사람이 많다보니 열 명씩 한 조를 이루어 시간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잠깐 스치듯 훑어본 클로이는 문득 리아를 돌아봤다.
“리아. 로한도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기로 했어?”
“뭐? 그놈이 미쳤다고 트라이아웃에 왜 와. 니가 잘 못 봤겠지. 요즘 뭘 잘 못 먹었는지 집에 처박혀서 책 읽거나 낙서 끄적이고 있을걸?”
“세 번째 줄 오른쪽에서 여섯번째.”
“…그게 무슨…?”
너무 구체적인 묘사에 리아는 속는 셈치고 후보생들을 살폈다. 놀랍게도 클로이의 눈은 정확했다.
“저 새끼가 왜 저기에???”
“뭐야뭐야, 리아 오빠 이름이 로한 아니야?? 완전 남매의 축제네.”
“잠깐… 리아의 오빠면… 운동을 꽤 잘하는 거 아니야??”
“근데 오빠 2학년이라고 하지 않았어? 왜 지금 트라이아웃을 봐?”
리아는 다른 친구들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집 얼간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봤다.
‘도대체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처음 오클랜드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면 모를까, 지난 1년 동안 로한은 단 한 번도 운동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야 잘 모르지만 간간히 연락했던 리아는 그가 엉망인 식습관, 그리고 위험한 마약에까지 손을 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임을 똑똑히 확인했다.
리아는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다가 얼른 핸드폰을 꺼냈다.
[나: 멍청아. 도대체 무슨 짓이야. 너 갑자기 급격한 운동하면 쓰러져. 의사 선생님 말 벌써 까먹었어? 얼른 튀어나와! 뒤지기 싫으면!!]스팸 문자를 쏟아냈지만, 로한은 주변을 둘러보며 멍청하게 웃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핸드폰을 놓고 나온 모양이다.
탕 !
그 순간 첫 조의 40야드 대쉬가 시작됐다.
[1조 순위]1. 닉 도노반 4.92초
2. 데이빗 윌리엄스 5.35초
.
.
10. 래리 오코너 6.20초
“4.92? 이름 모를 신입생치고 꽤 잘 뛰는데?”
“다들 빨라 보이긴 하는데, 기록을 어느 정도 찍어야 미식축구부에 붙는 거지?”
“40야드 대쉬가 트라이아웃에서 가장 중요한 종목이긴 하지만, 이거 하나 잘 본다고 자동으로 붙는 건 아니야. 아니다. 대학 수준의 기록을 찍으면 무조건 붙겠지만, 어쨌든 여기선 종합점수를 내서 상위 11명 정도만 뽑을 거야. 작년에도 그랬거든.”
“오오, 역시 스포츠광 아이비인가. 프로뿐만 아니라 고교 스포츠도 섭렵했구나?”
아이비는 안경을 고쳐쓰며 자신의 아이패드를 훑었다.
“우리 학교 데이터 정도는 꿰고 있어야지. 어쨌든 4.92초면 고등학교 미식축구 수준에서는 1티어야. 현재 주전 선수 평균이 대략 4.9초에서 5.6초 사이니까 말 다했지.”
“와, 멋있다. 역시 미식축구가 강한 학교라 그런가 좀 하는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왔나 보다.”
아이비는 알리사가 귀엽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사실 쟨 신입생이 아냐. 넌 잘 모르겠지만, 다른 학생들은 다 알아볼 걸? 닉 도노반은 이미 주전이야. 3학년이었나? 어쨌든 근처 대학에서 눈독 들이는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 중 한 명이지.”
“어? 주전이라고?? 근데 왜 트라이아웃에 참석해?”
“여기 오클랜드 고등학교의 전통이야. 항상 1조 1번은 주전 중 그 종목을 가장 잘하는 사람을 내세워. 일종의 기죽이기지. 현재 미식축구 주전과 너의 차이는 이 정도다. 시작부터 기선제압을 해서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거야.”
“아… 그렇구나. 주전의 위상을 보여주면서 우리 같은 일반 학생의 기대감을 키우기도 하겠다. 우리 학교가 이 정도는 되는구나 하면서.”
“오, 알리사. 꽤 예리해졌는걸. 맞아. 그리고 생각해보면 반대의 상황에서도 효과가 꽤 커.”
“반대의 상황? 후보생이 주전을 뛰어넘는 걸 말하는 거야?”
“그래. 일종의 밀어내기도 당할 수 있으니까, 트라이아웃에 참가하게 된 주전은 죽을 힘을 다 한다더라. 실제로 몇 개의 종목에서는 신입생들이 더 뛰어난 기록을 보여주기도 하니까.”
“오오, 그럼 보는 재미가 꽤 있겠는데? 항상 1조 1번이 주전이라고 했지.”
여학생들은 더욱 숨죽여서 트라이아웃을 지켜보게 되었다.
탕 !
이어서 2조의 결과가 전광판에 떴다.
[2조 순위]1. 피터 크라우더 5.30초
2. 대니 슈 5.45초
.
.
10. 티에리 페이엇 6.41초
“아이비 말대로네. 쟤들도 진짜 빨랐는데 4초대는 말도 안 되는 거였구나. 주전은 주전이구나.”
“저 성적도 나쁘진 않아. 1, 2등은 주전 후보 정도는 될 수준이야. 아직 1학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발전 가능성도 크고. 어쩌면 이번 트라이아웃은 11명보다 더 많이 뽑을 수도 있겠다.”
“음…”
“어? 클로이? 갑자기 관심이 좀 생겼어? 모처럼 집중하고 있네?”
알리사의 말대로였다. 3조가 40야드 대쉬를 위해서 정렬하자, 클로이가 착착착 – 화장품을 모두 정리하고 운동장을 바라봤다.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던 아이비가 혀를 내둘렀다.
“관심없는 척해도 클로이는 신입생 유망주를 잘 아나보다. 저기 3조 첫 번째가 바로 웨이드 존스야. 중학생 때 와이드 리시버 랭킹 5위 안에 드는 슈퍼 유망주지. 그것도 전국에서. 이번 대쉬 기대해도 좋아.”
“니가 그렇게 말해서 그런진 몰라도, 엄청 빨라 보인다. 어지간한 육상 선수보다 쎄보여.”
반면 리아도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3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멍청이가!’
하필이면 로한이 3조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탕 – !
바로 그때 열 명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역시나 웨이드 존스가 시작하자마자 치고 달렸다.
“…너무 무섭다. 무슨 탱크가 슈퍼카처럼 빠르다고 할까?”
“엉터리 같은 표현이라고 하고 싶지만, 무슨 말인지 딱 이해되는 거 있지.”
그만큼 기세가 상당했다. 그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저절로 비켜줘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
반대로 로한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뛰었다. 처음에는 그냥 놀러 나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결과가 더욱 충격적이었다.
[3조 순위]1. 로한 킴 4.79초
2. 웨이드 존스 4.81초
“……”
운동장이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코치진이 멍하니 전광판을 바라보느라 트라이아웃이 잠깐 중단될 정도였다.
미국 피지컬 천재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