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0
80
차머스의 눈이 얇아졌다.
‘이게… 정말 로한이라고?’
편집이나 CG부터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차머스는 [다리우스 vs 로한]의 이벤트 매치를 가장 가까이서 중계한 사람이다.
분명 그 때 로한은 아마추어치고 그럭저럭 괜찮은, 그래. 솔직히 눈부신 재능을 보여준 건 맞았다.
‘후계로 양성하고 싶을 정도로 탐이 나는 재목이었지만… 우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앞으로 10년, 정말 높이 평가해서 최소 5년 정도를 보고 탐을 냈던 거지 당장은 수준 미달이었다.
나쁘지 않은 풋워크와 강펀치라는 무기를 장착했으나, 절대 프로 세계에서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10개월 만에… 이렇게 실력이 좋아졌다고?’
비록 은퇴했다지만, 로빈슨은 풋워크로 복싱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였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로한은 1일차에 그의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갈 수 있게 되었고, 2일차에는 몸으로 따라갔다.
3일차에는 자신만의 풋워크를 완성해 몇 단계 아래 체급의 선수와 동등하게 겨뤘다.
“이거 타임 스탬프가 정확한 거냐? 진짜 하루씩 밖에 차이 안 나는 영상이야?”
“네. 목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
‘3일 만에 이렇게 풋워크가 늘었다고?’
각 영상마다 하루 차이가 아니라 3개월 차이라고 해도 믿기 힘든 발전이었다.
‘그동안 실력을 숨긴 건가? 영상 속에서는 못하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거고??’
차라리 그게 더 신빙성이 있을 정도였다.
사람이라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없다.
차머스는 진지한 얼굴로 나머지 영상들을 차례대로 시청했다.
똑같은 맥락이었다.
로한은 단 하루의 훈련으로 남들의 3개월을 대신했다.
기분이 불쾌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로한은 진심으로 자신을 사냥하려 한다.
실제로 가능성이 있어보인다는 점이 제왕의 심기를 건드렸다.
“……”
차머스는 휴식 시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심사숙고 끝에 핸드폰을 들었다.
[The Doctor]*
WBC, IBF, WBA, WBO.
전통 있는 4대 복싱협회의 관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정기적으로 갖는 모임이지만, 회의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의례적인 안건들은 대충 넘기고… 본론이 시작되자 결정권자들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차머스 그놈이 참 끝까지 말썽일세.”
“그러게요. 복싱계를 아주 자기 손 위에 쥐락펴락한다니까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선례를 만들면 안 그래도 제 주제를 모르는 복서들이 더 난리를 칠 게 분명합니다!”
그들은 테이블 위의 서류를 내팽개쳤다.
[4개 대회 통합 타이틀 매치]최종 안건은 바로 차머스 측에서 제안한 타이틀 매치 내용.
4개 협회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던 순간이지만, 문제는 차머스가 선택한 상대다.
“그동안 바이러스다, 부상이다, 흥행성이 떨어지는 상대다… 온갖 핑계로 3년이나 타이틀 매치를 미뤄오더니. 뭐? 랭커는 무슨… 갓 라이센스만 딴 아마추어를 데려와?”
“그것도 자기 집안 사람이에요. 너무 대놓고 밀어주는 거 아닌가요? 복싱팬들이 우습나??”
“진짜 그 이벤트 매치 때 돈맛을 좀 봤는지 복싱판을 집안싸움으로 더럽혔습니다. 당장 타이틀 반납시키고, 벌금 물게 해야 합니다. 저희 WBO에서는 날짜만 보고 있습니다.”
관계자들이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타이틀 매치는 각 복싱협회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매출이 높은 경기.
챔피언이 누구고, 챔피언이 왜 강하고, 누가 그를 상대할 수 있는지 등.
협회에서 큰돈을 투자해 챔피언의 캐릭터를 잡아주면, 연쇄작용으로 팬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관심은 곧 PPV 판매 즉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복싱은 그렇게 100년의 역사를 쌓아왔는데, 문제는 항상 챔피언의 영향력이 너무 커졌을 때 생긴다.
“우리가 열심히 포장하고, 시간을 들여서 키워온 컨텐더들은 싸그리 무시하고… 진짜 복싱협회의 위상이 말이 아닙니다. 저희 WBA도 타이틀 박탈을 고려하겠습니다.”
“그래? 음… 하긴 은퇴할 때가 됐다고 우리가 너무 오냐오냐 해주긴 했어. 그놈이 우리한테 사정해서 겨우 큰 경기들을 잡아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관계자 셋은 서로 짜 맞춘 듯 거침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눈치를 살폈다.
현재 복싱계를 쥐락펴락하는 4대 협회라고 하지만, 남은 셋을 다 합쳐도 정통성과 흥행성에서 압도하는 WBC 의회장의 의견을 살피는 것이다.
‘건방진 년. 우리가 이렇게까지 목소리를 높이는데 지금까지 한 마디를 안 해?’
‘고개 뻣뻣한 거 봐. 자기들도 타이틀 걸려 있는 매치잖아? 그쪽 명성에 가장 흠이 심하게 갈 텐데, 이걸 그냥 지켜봐?’
‘이래서 어린 세대는 안 된다니까. 역사와 전통을 몰라요.’
각자의 속내가 어떻든, 겉으로는 웃으면서 작년에 새로이 부임한 WBC 의회장에게 물었다.
“오늘 유독 말이 없으시네? 어떻게 세계 권투 평의회(WBC)에선 조율된 의견이 있으신가?”
의회장은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린 차머스의 요청을 승인하기로 했어요!”
“뭣이…?!”
“아니 지금까지 우리 이야기를 안 들었습니까? 복싱계의 권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짓입니다.”
그들이 핏대를 세워가며 따졌지만, 의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여러분은 차머스의 타이틀을 박탈시키고, 각자의 챔피언 결정전을 준비하세요. WBC는 이번 타이틀매치를 그대로 진행할 예정이에요.”
“그게 무슨… WBC도 타이틀 도전자의 기본적인 자격 요건이 있지 않나? 규칙이 규칙인 이유가 있거늘, 아주 제멋대로군!”
“오, 그래서 여러분은 한 번도 규칙을 바꾸거나, 무시한 적이 없으신가요?”
“……”
셋의 입이 꾹 닫혔다.
그들 모두 화제성을 위해서라면 선수의 자격을 허위로 꾸미는 정도는 물론, 뇌물 수수, 승부조작 등 여러 부정부패로 협회의 위상을 위태롭게 한 흑역사가 있었던 것이다.
“……”
분위기가 한순간에 험악해졌지만, 의회장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리는 이번 경기를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안 그래도 복싱의 인기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어서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잖아요. ‘다리우스 vs 로한’에서 적지 않은 가능성을 봤답니다.”
아무리 빅매치가 없었다지만, [다리우스 vs 로한]은 무려 작년 최고의 매출을 올린 복싱 경기였다.
“로한은 현재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떠오르는 스포츠 스타. 차머스는 반대로 은퇴를 앞둔, 정통 복싱 스타죠. 둘의 경기는 상징적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복싱의 역사상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어요.”
복싱은 여전히 인기 있는 투기 종목이지만, 과거의 영광에 비할 바는 못 됐다.
특히 새로운 세대가 외면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관심도가 떨어질 거란 평이 지배적이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건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젊은 세대는 기존의 방식대로 선수가 천천히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볼 인내심이 없어요.”
기존의 방식은 아마추어에서 열심히 경력을 쌓아 인정을 받은 후 프로 데뷔.
이후 1년에 한두 번씩 프로 경기를 치르며 차근차근 팬들을 모으고, 좋은 경기력으로 협회의 인정을 받으면 상위 랭커와의 큰 경기가 잡힌다.
실력이 좋아서 승리를 거듭하다보면 랭커의 자리에 오르고, 운이 좋아서 흥행성까지 갖추게 될 경우 정식으로 타이틀전을 노릴 자격이 생긴다.
문제는 이 타이틀전이라는 게 보장이 아니다.
챔피언이 다른 대회의 통합 타이틀을 노린다고 하면 1~2년이 순식간에 밀리고, 자기보다 다른 상대들이 더 마음에 든다 싶으면 또 다시 1~2년이 밀린다.
그러다 챔피언이 바뀌기라도 한다? 어떻게 서사가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으면, 언제 타이틀전이 주어질지 기약할 수가 없었다.
“요즘은 오늘 누가 바이럴 돼서 인기가 생기면, 당장 내일 경기가 있기를 바라는 추세에요. 1년이 뭐야. 당장 6개월 후에 그 사람이 복싱 경기를 한다고 해봤자 누가 누군지 바로 까먹어버리죠.”
“복싱이 무슨 동네 패싸움도 아니고… 그렇다고 1주일 간격으로 싸우게 할 순 없잖소.”
“그렇죠. 위험하기도 하고. 다만,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 차머스가, 이번에도 설계를 잘했다고 생각해요.”
“……?”
“어쨌든 이벤트 매치를 통해서 복싱팬이 아닌 대중도, 양쪽 선수간의 서사만 충분히 몰입도가 있다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복싱 경기를 본다는 것을 확인했죠. 이번에는 무려 차머스가 등판하기 때문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거에요. 복싱의 매력에 또 한 번 노출할 수 있는 무대가 되는 거죠.”
“이번 한 경기만 바짝 돈을 벌겠다는 게 아니라, 미래의 팬층을 확보하기 위한 도약판이다?”
의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경기를 고민하고 있는 차머스에겐 꼭 필요한 일이죠.”
누구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어한다.
문제는 도전자 중에서 네임드이면서도, 만만한 상대가 없어서 최종 방어전이자 은퇴전을 질질 끌어왔고, 그 결과 차머스의 흥행성이 많이 하락했다.
“이번 경기로 화제성을 얻은 후, 은퇴전을 준비하겠다는 그림인 건가? 차머스를 어떻게 믿고? 또 2~3년 시간만 끌면 우리의 손해만 막심해지는 걸세.”
“WBC는 계약서 새로 썼어요. 로한과의 이벤트 타이틀전을 승인해주는 조건으로, 6개월 안에 우리가 정해주는 컨텐더와 정식 방어전을 치른다. 불이행 시 곧바로 챔피언 자격 박탈 및 백만 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했어요.”
“흥, 그 놈이 그런 식으로 우릴 농락한 게 한두 번인가?”
“대신 이번에는 J.P. 크롬웰이 보증을 섰죠. 아무리 제멋대로인 차머스라도, 그분의 말은 고분고분 듣더라고요.”
“……!”
의회장은 어느새 흔들리기 시작하는 나머지 관계자들을 보며 쐐기를 박았다.
“어차피 대중은 타이틀 방어전이 중요하지, 몇 개 협회의 타이틀이 걸려 있는지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고요.”
“……”
“함께 하시든, 빠지시든… 마음대로 하시되, 만약 함께 하신다면 정식 타이틀 방어전의 도전자는 투표로 뽑는 걸로 하죠.”
관계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안 그래도 점점 흥행이 저조해지고 있는 복싱판. 아직까지 차머스를 놓아주지 못한 건, 통합 챔피언이기도 하고… 그의 은퇴전만큼 확실한 흥행패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매치를 승인해주는 대가로 무조건 은퇴전을 치른다고 확답을 받고, 심지어 도전자를 고를 기회가 생긴다면?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선수를 챔피언의 자리에 앉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자기 협회에 우호적인 통합 챔피언이 생긴다면, 앞으로의 경기 주선도 훨씬 수월해진다.
“그런데…”
머릿속에서 한창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려보던 관계자 한 명이 의심스런 얼굴로 물었다.
“만약 차머스가 지면?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너무 가능성이 희박해 고려할 가치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위치에 있다보면 항상 대안은 고민해야 한다.
의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화제가 되겠죠. 어떻게 고삐를 틀어쥐느냐에 따라 부흥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쇠락의 전조가 될 수도 있겠죠.”
“뭐,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나. 정식 방어전 도전자 명단이나 추려보자고.”
“그냥 만에 하나 생각해보는 거였습니다.”
관계자들은 웃어넘기며, 안건을 최종 마무리했다.
의회장만이 그들을 지켜보며 애써 미소를 감췄다.
‘어려운 시기에 영웅은 태어난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그녀는 은밀히 입수한 로한의 훈련 영상을 떠올리며 핑크빛 미래를 상상해봤다.
*
다음날.
정식으로 기사가 나갔다.
[3년 만에 차머스의 복귀전 확정! 상대는 누구??] [돈에 미친 차머스. 동생의 이벤트 매치를 보고 눈이 돌아갔나?] [4개 타이틀을 걸고 진행되는 방어전! 0승 0무 0패의 신인 도전자에게 무슨 정통성이 있나?] [“차머스는 복싱계 최대의 수치다.” 타이틀 전을 위해 3년이나 기다려온 도전자들, 단단히 화가 나다.]날짜는 2023년 12월 24일.
[다리우스 vs 로한]의 이벤트 매치 이후 정확하게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복싱 관계자들, 현역 선수들, 특히 코어 팬들은 소리 높여 [차머스 vs 로한]의 타이틀전을 비난했다.
– 존나 더럽다. 타이틀전을 애타게 기다려온 랭커들이 몇 명인데, 이걸 자기 조카에게 줘버리네?
– 크롬웰 카르텔이잖아… 자기들끼리 다 해먹어요.
– 이걸 협회에서 승인해줬다는 것 자체가 뇌물 인증 아님? 여전히 정신 못 차렸다니까. 누가 고소 좀 안 하나??
– 불매운동하자. 흥행이 대 실패해야 협회가 알아먹는다니까.
– 좋은 생각임. 거의 모든 커뮤니티에서 똑같이 불매운동을 진행한다더라. 이번이야말로 팬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대대적인 합동 불매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이번 타이틀전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다.
…하지만 티켓 예매가 열리자마자.
[‘차머스 vs 로한’ 타이틀전, 온라인 예매 오픈 5분 만에 매진.] [전국적인 불매운동에도 불구하고 10만석 매진. 암표 가격 벌써 10배.] [과연 PPV 판매는 얼마나 될까? 이번 타이틀 전이 차머스의 최대 흥행 경기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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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날이 커지는 관심 속에서, 복싱계의 전설로 남을 [차머스 vs 로한]의 타이틀전 아침이 밝았다.
미국 피지컬 천재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