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1
81
타이틀 매치 당일.
차머스는 신경질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을 좀 설쳤다.
경기가 코앞까지 다가와서 그런지, 얼마 전 아버지와의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 흥행성을 위해 로한을 제물로 삼은 후, 마지막 은퇴 경기를 갖겠다고…?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 마지막 경기까지 무결점의 기록을 유지한다면 나도 은퇴 선물을 준비해야겠지. 원하는 사업체가 있으면 미리 한 번 골라보거라. 은퇴 후엔 ‘크롬웰 프로모션’만으론 품위유지가 어렵겠지.
그때는 마냥 감사하게 받아들인 말씀이었다.
[크롬웰]에는 알짜배기 사업체가 많았고, 그동안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으니까.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
– 다만, 혹시나 지게 된다면… 말 안 해도 알겠지?
경각심을 가지라고 그냥 하는 말인줄 알았더니… 지금 떠올려보면 아버지의 표정이 의미심장했다.
‘음흉한 노인네가 설마…’
차머스는 잡념을 떨치기 위해서 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가 복싱계에 몸 담은지도 어언 20년이다.
성년이 되고 나서의 삶은 항상 끊임없는 식단 관리와 체력 단련이었다.
초창기만 해도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몸을 다스리면 마음까지 차분해졌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어렵게 평정을 찾아갔다.
“……”
안타깝게도 오래가진 못했다.
그는 순간 어제의 계체량을 떠올리며 얼굴을 구겼다.
‘건방진 새끼.’
로한.
그놈의 낯짝만 떠올리면 피가 끓었다.
[다리우스 vs 로한] 경기 때는 로한이 워낙 체급을 물고 늘어져서, 캐치웨이트(Catchweight: 선수 사이 임의로 합의하는 체중)를 감안하고 있었다.그런데 정작 로한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 그냥 무제한으로 합시다. 그래야 졌을 때 변명의 여지가 없죠.
처음 경기가 성사되었을 때만 해도 겁대가리가 상실한 줄 알았는데, 어제 로한의 모습을 보니 위기의식이 느껴졌다.
“……”
차머스는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강자를 경험한,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 중의 노장.
이젠 상대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딱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완벽하게 단련한 몸이다.’
겉으로는 양아치처럼 건들건들거리지만, 로한의 차분한 눈빛은 차머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똑똑 –
그때 마침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했다.
점잖은 노년의 신사, 닥터였다.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그는 느긋하게 코트와 모자를 벗고, 슬쩍 주위를 둘러보더니 차분하게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차머스가 물었다.
“결과는 어떻게 됐나?”
“약물 검사 결과는 당연히 깨끗했네. 설마 나를 의심했던 건가?”
“흥,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는다면 프로가 아니다. 복싱판을 몰라?”
닥터는 차머스가 짖든 말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피향을 즐겼다.
“경기 끝나고 나서도 문제는 없겠지?”
약물검사는 계체량 때 뿐만 아니라, 경기가 끝난 후에 또 한 번 한다.
“말했잖나. 약물 성분이 몸에서 모두 배출됐다고. 치밀하게 계산해서 약효만 남도록 설계했네. 내 평생의 역작인만큼 남들이 의심할 순 있어도, 아무도 확신하지 못할 걸세.”
“조금의 실수도 없어야 할 거야.”
“내가 실수하는 걸 본 적이 있나. 그래서, 몸은 어떻지?”
차머스는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며 처음으로 미소를 되찾았다.
온몸에 힘이 넘친다.
테스트를 했을 땐 전성기를 웃도는 기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자신을 커리어 내내 괴롭혔던 고질적인 약점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고양감이 느껴진다.
“최상이지.”
닥터는 신중하게 그의 몸을 검사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가지. 너무 많이 맞지 않도록 조심하게.”
“내 복싱 스타일을 몰라서 그래?”
“누군가가 그렇더군.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아야 프로라고.”
“…시끄러.”
차머스는 닥터의 최종 검진이 끝난 후 막대한 잔금을 치렀다.
‘여기서 죽여버려야 한다.’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
[아, 패터슨 선수의 승리로 마지막 언더카드 경기가 끝이 납니다.] [역시 언디스퓨티드 챔피언의 경기라서 그런지 언더카드들도 랭커들이 대거 포진한 수준 높은 이벤트가 되었는데요… 모든 팬들이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오늘의 메인 카드겠죠?]간단한 승리자 소감 인터뷰가 끝나고 링을 다시 준비하는 동안 중계가 쉴 새 없이 진행되었다.
[드디어 차머스의 복귀전이자, 전 세계 복싱팬들이 손꼽아 기다려온 4개 협회 통합 타이틀 매치가 열립니다. 이번 경기를 두고 여러모로 말이 많았죠?] [그렇습니다. 아무리 돈에 미치기로 유명한 차머스라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었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차머스만 없었다면 각 협회에서 충분히 챔피언이 되었을 출중한 컨텐더들이 최소 2~3명이나 있는 헤비급 전성시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카스트로, 루이스, 베넷. 전성기의 차머스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 붙으면 적어도 이 셋은 충분히 타이틀을 뺏어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면서 팬들의 기대감을 키워왔죠.]현재 복싱판에서 가장 뜨겁게 화제가 되는 주제였다.
팬들은 만났다하면 열을 내며 싸웠다.
– 솔직히 차머스가 가장 초라한 언디스퓨티드 챔피언 아니냐? 시기가 잘 맞아서 물 챔피언들 상대로 타이틀 따먹기나 하고.
– 미친놈. 넌 50승 무패가 우습냐? 4개 협회의 랭커란 랭커는 다 패고 정상에 오른 거야. 헤비급에서 이걸 해낸 사람이 복싱 역사 통틀어 록키 정도밖에 없다고.
– 솔직히 젊었을 땐 인정. 근데 30대 후반에 들어서더니 존나 입만 터는 병신이 됐잖아. 카스트로, 루이스, 베넷 삼대장이랑 붙어보자고.
– 다 시기가 있는 거지. 은퇴 경기는 좀 신중하게 고를 수 있는 거 아니냐?
– 응, 그래서 갓 라이센스 딴 사생아 조카놈이랑 붙어? 추하다 차머스야. 걍 타이틀 반납하고 거기도 떼자.
오랫동안 정상을 군림한 차머스이기에 그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 vs 특유의 악동 이미지에 대한 반감과 함께 그동안의 행보를 비난하는 정상인들 사이에서의 챔피언 자격 논쟁은 식지 않는 떡밥이었다.
[특히 타이틀 매치 날짜까지 잡아놓기 기다리던 카스트로에게는 부상 핑계를 대고 경기를 무기한 연기했다가… 뜬금없이 로한이랑 복귀전을 펼친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복싱팬들이 분노했습니까.] [절대 티켓이랑 PPV를 안 사겠다며 대규모 불매 운동을 펼칠 정도였죠.] [그런데 놀랍게도 현장 티켓은 10만장이 매진 되었고, PPV 판매량도 아마 복싱 역사상 10위 안에 들거란 말이 많아요.] [이게 차머스 효과도 없진 않겠지만, 놀랍게도 로한의 흥행 파워가 그 이상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현재 고교 선수로는 미식축구 1위, 농구도 랭킹에 드는 유망주인데, 그냥 복싱 선수도 아닌… 가장 위대한 복싱계 레전드 차머스와 4개 협회 타이틀전을 치룬다? 이건 로한의 팬들이 절대 못 참거든요.] [어쩌면 기존의 복싱팬보다, 신인 선수의 개인팬이 더 많이 시청하는 최초의 경기로 역사에 기록될 것 같네요. 아! 이제 시작되려나봅니다. 로한 선수가 음악과 함께 입장하네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지배하는 느낌이다.
오늘의 타이틀 매치가 열리는 미식축구 스테이디움.
필드 중앙에 링을 세우고, 추가 관중석을 빼곡하게 채워 최대 수용 인원 10만명을 맞췄다.
예전에 [다리우스 vs 로한]의 경기가 진행된 체이스 센터보다 5배나 많은 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나는 모두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 로한, 로한, 로한!
– 이곳은 이제부터 더 빌런이 접수하겠다!
– 목은 잘 닦아놨냐, 차머스야!
그들의 환호성에 세포 하나 하나가 깨어나는 느낌.
‘나도 관종이 다 되었구나.’
나는 화답을 하듯 씨익 웃으며 근육에 힘을 주었다.
“……”
하지만 입장을 마치고 링 위에 올라가자 중압감에 숨이 턱 막혀온다.
– 차머스! 차머스! 차머스!
– 차머스가 곧 복싱이다, 이 애송아!
– Boxing God! 다시 한 번 신의 권위를 보여줘!
그때 입장을 시작한 차머스.
과연 챔피언은 달랐다.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혼자 걸어 나왔다.
음악도 틀지 않았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대단했다.
모두의 시선을 확 사로잡는 그만의 카리스마.
세컨드와 스텝은 이미 링 주변에서 대기해 그를 맞이했다.
‘차머스.’
우리는 링의 양쪽 끝에 서서 서로를 노려봤다.
내 안의 ‘로한’에게서 짙은 살의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의지는 차머스의 눈빛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Ladies and Gentlemen!] [홍코너: 로한 킴]– 6ft 5in(=195cm)
– 212lbs(96kg)
[청코너: 차머스 크롬웰]– 6ft 8in(=203cm)
– 250lbs(113kg)
중앙에 사회자가 나와서 나와 차머스 둘을 차례대로 소개하는 순서가 끝나자, 주심이 손가락을 까딱하며 우리 둘을 호출했다.
“락커룸에서 알려준 규칙을 기억하겠지? 무조건 내 지시에 따르고, 클린한 경기를 펼친다. 알겠나?”
“……”
나와 차머스는 여전히 서로만을 찢어 죽일 듯 노려봤다.
“후우… 각자 코너로 가도록.”
결국 주심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우리를 떠밀었다.
땡 !
1라운드 시작.
휙 휙 – !
파 방 !
나는 바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차머스에게 잽을 던졌다.
평소 같았으면 닥치고 모든 걸 쏟아부었을 텐데, 그에게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가만히 마주한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져서, 일단 견제를 하며 실력을 가늠해볼 생각이었다.
스윽 – 휙 !
과연 차머스는 일찌감치 나의 주먹을 읽고 고개만 살짝 까딱여 피하거나 쳐냈다.
어지간한 스파링보다 여유로워 보였다.
‘이게 현재 복싱의 정점이라는 통합 챔피언…’
차머스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을 뒤로하고 보면, 경외감이 들었다.
– 차머스는 육각형의 만능형 복서야. 모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나진 않지만, 각 분야에서 한 손안에 들어가지.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모든 걸 완벽하게 녹여낸다는 거야.
조지 코치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자료 조사를 하며 숙지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마주해보니까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효율적이고 우아한 복싱을 한다.’
험악한 인상과는 굉장히 상반된 스타일이다.
안 그래도 나보다 키가 8cm 크고, 체중은 20kg 가까이 더 나가는 차머스.
나에 비해서 싱대적으로 민첩성이 떨어지고, 속도도 부족할 수 있으나 그걸 팔다리의 길이로 무마시켰다.
‘미리 동선을 읽고 최적의 대응을 한다.’
잽을 뻗으려 하면 차머스는 이미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살짝 피한다.
전진하면 먼저 다가와 거리를 애매하게 만든다거나, 멀어지면서 긴 팔로 적절한 타이밍에 잽을 날린다.
타이밍, 거리 감각, 반응속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복싱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느낌.
– 차머스는 프로 데뷔하고 첫 10년은 인파이터로, 남은 10년은 아웃 복서로 활동했어. 인파이터로도 상대가 없었지만, 인파이터의 특성을 간파하고 있는 아웃복서로는 무결점의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데…?’
휙 휙 – !
나름 풋워크를 밟으며 회심의 펀치를 날려도, 차머스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손쉽게 대응했다.
헤비급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덜 맞는 선수라더니, 귀신 같은 위빙 솜씨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조금 더 거리를 좁혀야 하나?’
처음으로 나보다 팔이 긴 차머스를 상대하려니, 그가 편한 거리에서는 쉽게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일단 파고들면 선택지가 많아질 거란 생각이 들어서, 차머스의 움직임을 읽으며 전진하는데…
퍽 !
차마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번개 같은 훅을 적중시켰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무슨 힘이?!’
*
차머스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적잖게 놀랐다.
‘이게 복싱을 겨우 1년 남짓 배운 신인의 데뷔전이라고?’
영상에서보다 더 뛰어났다.
이렇게 큰 무대에서도 떨지 않고, 노련하게 경기를 끌고 간다.
발은 쉬지 않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였고, 잽은 말도 안 되게 빠르고 묵직했다.
무엇보다 날카로운 지점을 정확하게 타격해 차머스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컨디션은 역대급이다.’
몸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한다. 감각의 영역.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 느낌이 오자마자 바로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초감각은 전성기 3~4년 이후에는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이미 어지간한 랭커들도 다 닥터의 클라이언트라지?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라…’
이 좋은 걸 왜 더 일찍 시험하지 않았을까.
차머스는 즐겁게 로한과 장단을 맞춰주다가 슬쩍 허점을 노출했다.
퍽 !
안 그래도 슬슬 조바심을 내던 로한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 훅을 맞췄다.
손맛이 좋았다.
프픗 !
바로 스트레이트로 연계를 넣어 넉다운을 노렸는데, 놀랍게도 로한은 살짝 고개를 틀어 자신의 펀치를 완전히 피하진 못하고 충격을 완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방금 그 타이밍과… 동작이 친숙한데… 설마?’
차머스는 너무 놀란 나머지 아주 잠깐이지만 가드가 느슨해졌고, 순식간에 로한의 날카로운 펀치가 정확하게 안면을 강타했다.
파 앙 !
골이 크게 뒤흔들린다.
‘이 새끼가!’
정타를 허용한 차머스는 데미지를 떨쳐내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잽 잽, 스트레이트. 기본적인 콤비내이션과 함께 로한과의 거리를 벌렸다.
– 아니 경기 수준이… 이렇게 높다고???
– 그래 이거지!! 이게 바로 복싱이지!!!
– 미쳤다… 차머스가 퇴물이라던 새끼들 다 어디 갔냐! 저게 바로 챔피언이지…!
– 로한이… 원래 저렇게 복싱을 잘 했나?
*
차머스와 로한이 수준 높은 공방을 보여주며 관객을 사로잡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어…!!!!”
갑자기 로한의 코너쪽에서 작지 않은 소란이 일었다.
조지 코치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말했다.
“저 새끼 약했다!”
“……?!”
키스를 비롯한 로한 측 스텝들이 모두 일제히 차머스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누가 봐도 확신에 가득 찬 사람들.
특히 지오반니는 경멸에 가득찬 눈빛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로한의 펀치를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안 뻗었단 말이냐! 저건 약을 한 게 아니고서는…!”
그는 이를 바드득- 갈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미국 피지컬 천재 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