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2
82
로버트 로빈슨은 차마 경기장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PPV로 집에 앉아서 [차머스 vs 로한]의 타이틀 매치를 관람하는 중이었다.
“……?!”
그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메시지앱 단체 채팅창이 불타오르고 있다.
[주적은 로한]– 가빌란: 지금 내가 본 거 실화??
– 홉킨스: Holy Fuck! 다시 돌려보기 무한 반복하고 있다.
– 베넷: 아니, 저걸 맞고 버틴다고? 아무 데미지 없이??
복싱 선수들은 서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의 동료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함께 고생하고 고민하는 부분이 비슷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
다만 ‘주적은 로한’ 채팅방의 탄생 배경은 조금 독특했다.
‘존경하는 코치님이 불러서 일정 싹 비우고 찾아갔더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로빈슨은 지오반니와의 인연으로 로한의 첫 스파링 상대로 초청받았다.
– 복싱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으니, 좀 겸손하게 만들어주게.
나름의 특명을 받아, 책임감을 갖고 진지하게 스파링을 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1 스파링 1 K.O. 당한 것도 모자라 밑천까지 탈탈 털어갔어.’
복싱에 입문한 이후 그만큼 끔찍한 악몽을 겪은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결국 로빈슨은 계약 기간 2주를 못 채우고 4일만에 도망쳤다.
물론 프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임자를 추천해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동안 사이가 정말 안 좋았던 가빌란을 꽂아 넣었다. 좋은 건 나눠야지.’
보수가 좋았고, 지오반니의 이름을 파니 가빌란도 아무 의심 없이 요청을 수락했다.
우습게도 가빌란은 2일차에 바로 때려쳤다.
– 어쩐지 꿀잡(Sweet deal)을 소개해준다 했다… 와, 악독한 놈. 아무리 나라도 내 원수에게 그런 끔찍한 지옥으로 밀어 넣지는 않아…
가빌란의 멘탈이 너무 나가서 제대로 항의할 생각도 못했다.
대신 그가 끔찍하게 싫어하는 홉킨스를 지오반니에게 소개했고, 홉킨스는 원수 중의 원수 베넷을 소개.
너무 좋은 경험이라며 스스로 나서서 후임자를 추천한 덕분에, 로한은 스파링 파트너가 끊기지 않았다.
‘하나 같이 너무 충격적인 경험을 해서, 서로 어땠냐고 물어보게 됐고… 다른 피해자들이 똑같은 질문하는 게 지겨워서 단체 채팅방을 파는 지경에 이르렀어.’
공동의 적이 생기면 원수끼리도 사이가 좋아지는 법.
[주적은 로한] 채팅방은 어느덧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대화보다 훨씬 활성화되어버렸다.특히 다들 안 볼 것처럼 빼더니, [차머스 vs 로한] 경기가 시작되니 실시간 채팅하는 수준이었다.
– 로빈슨: (슬로우모션 영상 첨부) 이거 보이냐? 차머스가 살짝 놀란 틈을 타서 번개처럼 풋워크 밟는 거?? 내가 전수해준 거다. 어깨가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무게 중심을 유지해. 그리고 빠악 – ! 체중이 제대로 실린 스트레이트를 꽂았어.
– 홉킨스: 와아, 슬로우모션으로 보니까 더 무섭다. 어떻게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면서 완벽한 자세로 스트레이트를 날리지? 야 가빌란 니가 좀 말해봐. 아무리 같은 체급이라지만, 저거 맞고 아무 데미지를 안 받을 수 있어?
– 가빌란: 불가능해. 무제한이라 같은 체급이긴 하지만, 따지자면 차머스가 한두 체급은 더 나간다쳐도, 저렇게 충격을 쉽게 떨쳐내는 건 말도 안 돼. 특히 차머스는 초창기에 워낙 많이 맞아서 유리몸이 된 거 유명하잖아.
차머스는 복싱 선수라면 모두 인정하는 육각형의 완성형 복서이긴 했으나, 인파이터에서 아웃복서로 전향한 것이 노쇠화 때문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거칠고 화려한 플레이로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데미지가 축적되어 예전처럼 공격을 뚫고 안을 파고드는 전략을 고수하기 힘들었다.
‘차머스의 시대가 그때 저물거라고 생각했건만…’
하지만 차머스는 포기하지 않고 아웃 복서로 전향했다. 긴 리치를 이용해 거리를 벌리고 뛰어난 감각의 회피기까지 장착한 채.
그동안의 경험이 축적되어 그는 금방 정상급 아웃 복서로 성장했고, 차머스의 시대를 대폭 연장시키다 못해 언디스티퓨티드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 가빌란: 제대로 훅을 맞으면 한 방에 갈 정도로 하드 펀쳐야. 솔직히 다른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내가 보기엔 현역 중 주먹으론 로한을 따라갈 놈이 없어.
– 베넷: 미친놈 lol. 지가 뻗었다고 너무 올려치는 거 아니냐? 카스트로만 해도 타이슨이 인정한 핵주먹이잖아.
– 가빌란: 그래서 로한한테 K.O. 안 당한 사람 있음? 아니면 싸물어.
그 사이 1라운드가 끝나고 1분간 휴식 후 2라운드 시작.
‘저게 사기야. 차머스도 풋워크가 좋은 편인데, 로한의 활동량은 무슨 미들급 수준이야.’
수준 높은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
치열하게 거리 싸움을 하고, 빠르면서도 묵직한 잽으로 견제하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나면 정타로 응징한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는데, 로한이 승부수를 던졌다.
팡, 팡!
차머스가 슬쩍 물러서기 위해 무게 중심이 뒤로 빠지기 시작하자마자 전력을 다해 치고 들어갔다.
차머스는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게 잽으로 밀어내고, 짧은 스트레이트까지 연계를 했지만, 로한은 예상했다는 듯 잽은 고개를 살짝 틀어 피하고 스트레이트는 정면으로 맞아주었다.
빠 악 !
동시에 차머스의 턱을 정확하게 맞춘 훅.
이번에는 차머스도 고개가 크게 흔들리며 두 발자국 밀려났다.
로한은 노련한 사냥꾼처럼,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차머스를 몰아세우며 호시탐탐 후속타를 노렸다.
“……”
그런데 잠깐 주춤하던 차머스는 금세 회복하고, 평소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 로빈슨: 도대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 가빌란: 존나 좋은 약을 오버도스한 모양인데?
– 홉킨스: 음, 개인적으로 연구를 해야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어떤 닥터를 쓰는지 알아낼 수 있을까?
– 베넷: 쓰레기 새끼. 복싱 꿈나무들이 우러러보는 4대 통합 챔피언 놈이 약에 손을 대??
로한의 강펀치를 직접 경험해본 이들이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좋지 않다.’
채팅의 분위기는 비교적 가벼웠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로빈슨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로한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별개로, 그는 뼛속까지 복서이자 스포츠맨이다.
보아하니 차머스는 어지간한 충격도 쉽게 떨쳐내는 괴물 같은 회복력을 지녔다.
아무리 로한이 체력이 좋은 편이라도, 저 정도의 풋워크와 무브먼트를 12라운드 내내 보여줄 순 없다.
특히 잽 하나하나도 묵직한 하드 펀쳐이기 때문에 체력적인 소모가 막심한 상황.
‘장기전으로 간다면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로한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단 체급 차이가 나는만큼 차머스의 주먹 역시 만만치 않은 파괴력을 지녔다.
그걸 무려 12라운드 내내 상대한다면 누구 한 명 병신이 돼도 이상하지 않는다.
애초에 복싱이 15라운드에서 12라운드로 줄어든 이유도, 데미지가 축적돼 경기 중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
파박 !
그때 차머스의 시기적절한 카운터에 맞고 몸을 웅크리는 로한.
‘로한이 저 정도의 타격을 받는 것 또한, 약의 효과일 수 있다.’
만약 차머스의 펀치력까지 기존보다 강화되었다면, 이 경기는 로한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어쩌면 복싱계의 신성은 제대로 빛을 발하기도 전에 꺼져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경기.
‘이걸 지오반니 코치님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경기를 중단시키지 않는다는 건…’
로빈슨은 마른침을 삼켰다.
– 로빈슨: 이겨내라 로한!! 절대 저런 개새끼한테 지지 말라고!!
– 가빌란: 로한! 로한! 로한!!
– 홉킨스: 복싱의 정수를 보여줘라!
– 베넷: 스포츠의 배신자에겐 죽음을!!
그들은 고군분투하는 로한을 보며 어느새 한 마음이 되어 응원하기 시작했다.
*
[4라운드]– 미친. 이게 복싱이라고??
– 아니, 그동안 인플루언서 복싱만 보다가… 찐 프로들은 완전 괴물들이야! 차원이 다르다고!!
– 후후후, 이제 로한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바로 내가 복싱에 눈을 떴거든.
평소 복싱을 즐기지 않는 라이트팬들도 경기에 푹빠졌다.
골수팬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누구보다도 환호했다.
휙 휙 – !
팡!
차머스와 로한의 공방전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치열해지고 있었다.
단순히 시간을 벌거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무의미한 견제는 없었다.
상대를 죽여버리겠다는 각오가 스크린 너머로 전해질 정도로 살벌한 기세로 펀치를 주고받았다.
‘그래, 이게 바로 복싱이야.’
WBC 협회장은 평소의 어수룩한 모습을 연기할 정신이 없었다.
차머스와 로한의 경기는 그동안의 빅매치 가뭄을 한순간에 지워버릴 정도로 박진감 넘쳤다.
실시간으로 받아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
복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경기의 짤들을 보고, 뒤늦게 PPV를 구매하는 사람들의 수가 이례적으로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어떤 마케팅에 돈을 쏟아붓는 것보다, 이런 차원 높은 경기를 유치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복싱을 살리는 길이야.’
차머스는 계속해서 로한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고 있고.
로한은 진정한 인파이터로써의 기질을 뽐내며 거칠게 파고들었다.
밀고, 때리고, 도망치며 멀어지는 차머스와, 피하고, 맞고, 전진하는 로한의 치밀한 심리전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위이잉 –
의회장은 복싱 링에서 절대 눈을 떼고 싶지 않았으나, 개인 핸드폰이 너무 요란하게 울렸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전화를 계속 하다 지쳐, 엉망인 철자로 문자를 보낸 것이다.
[울 할아버지: 저 노미… 무.조..건… 약.해..따…]이미 몇 번의 의혹을 제기 받은 의회장은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 사실을 검토했다.
그녀는 경기를 조금이라도 놓칠세라, 빠르게 업무 지시를 내렸다.
“약물로 장난치는 분들 전부 싹 조사하세요. 어디서 뭘 하고 다녔나… 지난 두 달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
의회장은 다시 밝은 미소를 회복하며 경기에 집중했다.
차머스가 스트레이트를 적중하고, 로한은 바디샷을 날리고.
위기감을 느낀 차머스는 다시 거리를 확보하고, 로한이 물고 늘어져서 절대 놔주지 않고.
한 시도 한 눈을 팔 수 없는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
물론 경기를 즐기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분명 약을 했다.’
갑자기 선수가 전성기 시절을 뛰어넘는 활약을 보여줄 수는 있다.
그동안 일부러 실력을 감췄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다만 할아버지의 눈까지 속이는 건 불가능해.’
확신이 있다면, 이제 단서를 쥐 잡듯 찾아내면 된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때까지 돈과 시간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했다.
일단 확보한다면 굉장히 강력한 패가 되겠지.
‘어쨌든 차머스가 이긴다면… 마지막 은퇴 경기까지는 묻어둔다.’
이번 경기를 결국 승리한다면, 차머스는 다시 복싱계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아직 그의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는 계기가 될 테니까.
‘그러나 로한이 이긴다면? 바로 터뜨려서 차머스를 제물로 삼아… 로한을 새로운 챔피언으로 이미지 메이킹한다.’
약물에 손을 댄 추악한 과거의 챔피언.
그런 무지막지한 괴물을 상대로 기어코 승리를 얻어낸 신인이자 새로운 챔피언.
진정한 영웅은 빌런을 짓밟고 태어나기 마련이다.
‘다시 한 번 복싱의 부흥을 이뤄내겠어.’
의회장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누군가를 응원했다.
*
6라운드가 끝났다.
이제 경기 절반까지 온 것이다.
“후우…”
나는 코너에 앉아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이게 복싱이구나.’
차머스와의 경기가 길어질수록 확실하게 느꼈다.
– 누구 한 명 죽을 수도 있다.
목숨을 대가로 사투死鬪를 벌인다.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압도하는 흥분이 온몸을 지배했다.
“후우… 후우…”
“그래. 계속 그렇게 천천히 호흡하면서 쉬어. 경기 중에도 절대 호흡하는 거 잊지마. 그러다 너도 모르게 쓰러지니까.”
경기의 무게감 때문일까? 아니면 실제로 수많은 펀치를 주고받고, 쉴 새 없이 움직여서 그런지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체력을 너무 과신한 대가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동안 상대했던 프로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매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경기.
놀라운 건 정작 차머스가 비교적 안정적인 페이스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나보다 체격도 크고, 나이는 두 배.
그런데 점점 펀치력이 약해지고, 풋워크가 무뎌진 건 내가 더 심했다.
‘확실히 뭔가 이상해.’
나한테 굳이 말하진 않았지만, 지오반니를 비롯해 조지 코치도 단단히 화가 난 눈치.
“언제든 경기를 중단시킬 수 있으니까, 몸에 무리가 된다 싶으면 바로 말해줘.”
“매 라운드마다 물어보시네요? 제 대답도 항상 똑같습니다.”
“…좋아.”
휴식 시간 1분은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갔다.
땡 !
[7라운드]가 시작됐다.“뭐야. 젊은 놈이 벌써 지쳤나?”
차머스가 본격적으로 이빨을 드러낸 것이 바로 그때였다.
마치 나를 완전 간파했는지, 자신감 있게 거리를 좁히며 끊임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
하지만 그의 자신감은 오래 가지 못했다.
차머스의 얼굴은 곧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미국 피지컬 천재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