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ouble life of an American physical genius RAW novel - Chapter 83
83
[7라운드]링 위에 선 차머스는 차분하게 숨을 고르는 로한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뭐야. 젊은 놈이 벌써 지쳤나?”
물론 깎아내리 듯 말했지만, 이미 차머스는 질릴대로 질린 상태였다.
로한은 헤비급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풋워크로 경기 내내 왕성한 활동량을 보였다.
팡 – !
가끔씩 가드를 사이로 뚫고 들어오는 스트레이트는 상당히 묵직해서, 어지간한 선수를 순식간에 넉다운시킬 수준이었다.
‘도대체 체력이 어느 정도라는 거냐?’
로한은 그런 파괴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는 것도 모자라 5라운드까지 점점 발과 주먹이 더 빨라져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몸이 육중한 헤비급은 탱크처럼 기름이 줄줄 새야 정상이건만, 로한은 끊임없이 차머스를 압박했던 것이다.
“후우…”
그나마 기세가 사그라든 것이 6라운드. 다행히 7라운드에 들어서니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듯했다.
“후우… 아재(Old man) 몸에 좋은 건 좀 나눠 먹자. 아직도 팔팔해보이네?”
“그놈의 입은 지치지도 않나. …이제 끝을 볼 때가 됐다.”
경기 내내 거리를 벌리고, 로한을 밀어내는 위치였던 차머스.
그동안은 긴 리치를 적극 활용해 훨씬 많은 잽을 적중시켰고, 파고드는 로한의 움직임을 읽고 철저하게 응징했다.
가까스로 거리를 좁혀 유효타를 먹인다한들, 그 전에 이미 묵직한 두세 번의 펀치를 얻어맞는 것이다.
그러니 노련하게 포인트 싸움에서 압도하고 있었고, 실제로도 로한은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
이대로만 가면 분명 차머스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챔피언 차머스의 전매특허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
7라운드의 종이 울리자마자 차머스의 복싱 스타일이 180도 변했다.
‘제법이지만… 아직 20년은 멀었다, 애송아.’
휙 – !
그의 움직임은 훨씬 날카로워졌다.
더 여유롭게 로한의 잽을 방어하고, 좀 더 힘 있는 스트레이트와 훅은 회피했다.
그동안 방어적인 태세로 아껴왔던 체력을 폭발시킬 때가 됐다.
스윽 – 빡 !
차머스는 과감한 풋워크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침없고, 다가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
로한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코너에 몰렸다.
차머스의 완벽한 설계! 바디샷, 잽, 그리고 턱에 꽂히는 훅을 순식간에 허용했다.
그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여기서 끝낸다!’
야수의 사냥 본능이 깨어났다.
투기 종목은 내내 팽팽했다가도, 한 순간에 흐름이 넘어갈 수 있는 법.
기세가 올랐을 때 폭풍처럼 몰아쳐야 한다.
상대의 숨통을 끊겠다는 각오!
팡 ! 팡 ! 팡 !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로한은 무리를 하면서까지 억지로 비집고 나왔다.
그 사이 차머스의 깔끔한 잽이 다섯 번이나 꽂혔으나, 로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펀치를 휘둘렀다.
그의 동작이 커서 쉽게 읽혔지만, 문제는 여전히 정확도가 높은데다, 실린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저절로 가드가 벌어진다.’
자신의 가드 정중앙을 때리는데, 온몸이 뒤흔들렸다.
팔이 저릿저릿하고, 저절로 몇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정통으로 맞으면 사람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하드펀치.
차머스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서 밟아 놓지 않으면, 복싱계의 판도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
차머스는 다시 재정비한 후 달려들었지만…
땡 땡 땡 !
라운드가 끝이 났다.
1분간 휴식.
“잘하고 있습니다. 상대가 숨을 거칠게 헐떡이고 있는 거 보이시죠? 처음으로 눈도 감았습니다. 모든 힘을 아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8라운드. 챔피언의 면모를 보이실 때입니다.”
차머스는 물로 입을 헹구면서도 로한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난 6번의 휴식 시간 동안은 로한은 한 번도 저렇게 눈을 감고 명상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코치의 말대로 로한의 체력이 방전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는데, 점차 로한의 호흡이 차분해지고… 몸의 떨림까지 멎는 모습을 보자 온몸의 털이 오소소 솟았다.
‘아니겠지. 무슨…’
그리고 경기 재개 직전 로한이 천천히 일어났을 때, 몸이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차머스는 불길한 생각을 떨치고, 마우스피스를 물었다.
코치의 말대로 때가 되었다.
차머스의 전매특허는 바로 ‘상대 간파.’
그는 인파이터와 아웃복서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직접 경험한 베테랑 선수다.
특히 지능과 감각이 뛰어나, 충분히 주먹을 섞는다면 그 어떤 상대도 ‘간파’하는 게 가능했다.
상대의 정확한 공격 범위, 방어 범위를 분석하고, 그것을 철저하게 활용할 수 있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7라운드에 바로 그걸 증명했다.
여전히 로한의 반격은 거셌지만, 자신이 마련한 틀에서 놀아났다.
어떤 각도로 얼마나 빨리 치고 들어올 수 있는지. 어떤 펀치를 주 무기로 삼는지 정확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었다.
땡 !
[8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차머스는 살벌한 눈빛으로 접근하다가… 이내 우뚝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이게 미쳤나?’
갑자기 로한의 스탠스가 바뀌어 있었다.
지금까지 줄곧 오소독스(오른손잡이 자세)로 경기에 임하던 그가, 지금은 사우스포(왼손잡이 자세)로 섰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다.
‘이게 지금 만화라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까지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선보였던 로한이기에, 어느 정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는데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차머스는 인상을 구기며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만용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
빠 악 !
그런데 정작 차머스가 순식간에 레프트 훅을 얻어맞았다.
분명 지금까지 다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사우스포인데, 동작이 훨씬 자연스럽고 레프트 훅은 정확하게 자신의 턱을 깎아 쳤다.
“다운!”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차머스는 처음으로 한쪽 무릎이 꿇리며 다운을 당했다.
닥터의 약효 때문인지 몸은 멀쩡했지만, 차머스의 본능적인 감각이 경고했다.
‘위험하다…’
“…3…4…5!”
주심의 카운트를 들으며 차머스는 천천히 일어났다.
‘도대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아… PTSD…”
현재 헤비급에서 3대장 중 하나로 불리는 베넷은 로한이 스탠스를 바꾸자마자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의 스파링을 도와주었던(혹은 당했던) 경험이 생생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사우스포를 한 번도 상대해본 적이 없던 놈이… 불과 하루 만에 완벽히 대응법을 찾는 걸 보고 기겁을 했지.’
베넷은 헤비급 랭커 중 유일한 사우스포였다.
3대장 중 괴물 같은 나머지 둘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도 그 희소성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베넷도 순순히 인정했다.
아무래도 낯선 만큼 사우스포가 오소독스를 공략할 방법은 많았고, 오소독스가 사우스포를 대응하는 방식까지 이해한다면 그걸 역이용하는 것도 손쉬웠다.
같은 3대장 사이에서는 통하지 않지만, 그 아래급에서는 재미 보면서 탑 쓰리에 입성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그런 자신감은 로한을 겪으며 시원하게 꺾였다.
– 로빈슨: 진짜 저건 선 넘었지…
– 가빌란: 베넷 복싱계에 사과해라. 원래도 괴물인데, 포켓몬처럼 2차 진화시킨 건 너잖아.
– 홉킨스: 와… 레프트 훅 꽂히는 거 봤어?? 약쟁이 차머스가 다운이 될 정도였어… 차라리 저거 안 맞아본 게 다행인가…
– 베넷: 모두 미안하다. 그래도 너희는 헤비급이 아니라서 부딪힐 일 없잖아…
– 가빌란: You idiot!! 나는?? 나는???
– 베넷: 너한텐 특별히 더 미안하군.
[8라운드]안 그래도 지금까지 수준급 복싱을 보여주었던 로한은… 사우스포로 스탠스를 바꾸며 말 그대로 한 단계 진화를 거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왼손잡이였다니…!’
*
빠악 !
나는 이번에 왼손으로 정확하게 바디샷을 적중했다.
차머스의 몸을 웅크리며 재빨리 물러났다.
지금까지 어지간한 데미지는 쉽게 털고 일어나던 차머스.
하지만 왼손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나서는 극도로 경계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왼쪽 주먹의 펀치력이 훨씬 강하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양손을 생각보다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건 스포츠를 하면서 금방 깨달았지만, 미식축구의 패스도 오른손으로… 농구의 슛도 오른손으로 던졌다.
그런데 알고보니 ‘로한’은 왼손잡이였다.
– 아, 그것도… 잊었던 거구나… 미안하네. 엄마는 그냥 일부러 약한 쪽을 연습하는 줄 알았어.
– 보통 스포츠 선수들이 자주 그러잖니. 실제로 더 플레이가 좋아지고 있어서 기특하게만 봤지… 왼손잡이 인 걸 아예 모를 줄은…
사우스포인 베넷과 스파링을 하면서 알게 됐다.
사우스포를 처음 상대하다보니, 첫 스파링 때 완전 혼쭐이 났다.
거리 감각이 완전 엉망이었고, 상대의 잽과 스트레이트에도 잘 대응하지 못했다. 몸이 고장이라도 난 듯, 가드를 올릴 때도… 상대의 펀치를 피할 때도 버퍼링이 걸렸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우스포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낯선 사우스포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베넷의 스탠스를 따라해봤고, 놀랍게도 이질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당연히 오소독스의 풋워크와 완전 반대라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지만,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 전환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빠 악 !
무엇보다 사우스포의 스탠스로 왼쪽 주먹에 회전이 더 실리자, 안 그래도 위험했던 펀치력이 한 단계 더 좋아졌다.
그 무뚝뚝한 지오반니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에게 조심스럽게 조언할 정도였다.
– 사우스포로 레프트 훅이나 어퍼컷을 함부로 쓰지 마라. 사람 하나 잡고 싶지 않다면…
실제로 왼손, 왼발로는 힘조절이 안 되어서 내가 원하는만큼 정교한 풋워크나 정확한 핀포인트 타격이 어려워서 오소독스를 선호하기도 했다.
빡 ! 퍽 ! 파박!
하지만 나의 오소독스에 차머스가 완벽하게 적응한 지금은, 사우스포가 훨씬 효과적이었다..
차머스는 8라운드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갑자기 달라진 스탠스는 물론, 라이트 펀치는 곧잘 견뎌냈지만, 레프트 훅으로 턱을 정확하게 맞고 나서는 확실히 데미지가 축적되는 느낌이었다.
안타깝게도 나의 일방적인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땡 땡 땡 !
라운드 종료.
–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 차머스가 밀린다고? 듣보(newb)한테??
– 분명 조금전까지만 해도 죽어가던 로한이, 어떻게 잠깐을 쉬었다고 팔팔해지지? 저게 젊음인가?
– 이거… 큰 거 오나?? 0승 0무 0패에서 첫 승만에 4개 타이틀 벨트를 받고 언디스티퓨티드 챔피언이 되는 복서가 있다??
[9라운드]‘오?’
차머스의 경험은 무시할 바가 못 됐다.
역시 사우스포를 상대한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잠깐 정비를 했다고 벌써부터 본래의 복싱 스타일을 되찾았다.
거리를 벌리고, 공격권 안에 들어서면 응징하고.
분명 이전보다 무뎌졌지만,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느려진 속도를 상쇄시켰다.
‘이렇게 나와야 재밌지.’
나는 씨익 웃으며 본격적으로 템포를 올렸다.
[10라운드]확실히 몸이 무거워졌다.
심상 세계를 통해 짧은 시간 안에 극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횟수는 단 한 번.
지오반니와의 체력 훈련 때는 찔끔찔끔 명상을 해서 도움을 받았지만, 1분 만에 1시간 정도 쉰 효과를 누리는 심상 세계의 휴식은 아직 하루에 한 번 정도밖에 활용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젠 진짜 체력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챔피언의 벽은 높구나. 이대로 져도 이상하지 않아…’
아쉽지만, 패배 또한 스포츠의 당연한 결과.
복싱을 더 진지하게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해졌다.
‘더 오래 훈련했다면…?’
나는 질 땐 지더라도, 아무 후회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아직 한 번도 실전에서 써먹어본 적은 없지만, 심상 세계에서는 충분히 시뮬레이션 해본 기술을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퍽 ! 퍽 ! 퍽 !
오소독스에서 사우스포로, 사우스포에서 오소독스로.
내가 선 위치와, 내가 때리려는 펀치의 종류에 따라 자유자재로 스위치했다.
레프트 훅을 더 빠르고 세게 때리려면 사우스포로. 라이트 어퍼컷을 정확하게 힘 있게 올려치려면 오소독스로.
언제든 발이 쉽게 꼬일 수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컸지만, 제대로만 펼치면 차머스의 리듬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오소독스에 적응을 했더니, 사우스포로 뒤흔들어 놓고, 사우스포에 적응을 했더니 이젠 자유자재로 스위치하니… 그가 눈으로는 내 움직임을 따라가도, 몸이 고장난 듯 삐걱거리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스윽 – 빠 악!
그 결과 차머스는 가끔씩 큼지막한 펀치도 정면으로 얻어맞았다.
그때마다 몸 전체가 크게 흔들리며,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11라운드]차머스는 결국 이성적인 대응을 포기했다.
더 이상 거리를 벌리지도 않았고, 내 움직임을 분석하고 예측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듯했다.
그냥 나랑 똑같이… 거리를 좁히며 인파이트를 시도했다.
풋워크를 밟을 거리를 주지 않음으로써 말 그대로 남자 대 남자의 주먹을 교환하는 무식한 방식을 고른 것이다.
– 지금이야! 차머스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아웃복싱으로 전환해! 차분하게 말려 죽이는 거다!
희열에 찬 조지 코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우리의 전략이었다.
사냥감의 힘을 빼놓고,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할 차례.
이젠 둘 다 체력이 바닥을 보였지만, 나는 여전히 스탠스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걸 이용해 끊임없이 거리를 벌리고, 작지만 확실한 타격으로 데미지를 축적시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피가 너무 끓었다.
[12라운드]마지막 라운드의 종이 울리자마자 우리는 약속한 듯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드 따위는 필요 없었다.
슬러그페스트(Slugfest)!
난타전이 펼쳐졌다.
미국 피지컬 천재 84